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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땅 정복과 정착(23-25)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어려워도 한다고 하신 일에 대해서는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말씀이 곧 사건을 창조해내는 능력입니다. 가나안이 이스라엘 백성의 땅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가나안 거민도 이스라엘에게 복종하게 하셨고, 땅도 하나님께 복종하여 충성한 결실로 배불러 먹고 즐기는 복을 만끽하게 하셨습니다.
23주께서 그들의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고 전에 그들의 열조에게 들어가서 차지하라고 말씀하신 땅으로 인도하여 이르게 하셨으므로 24그 자손이 들어가서 땅을 차지하되 주께서 그 땅 가나안 주민들이 그들 앞에 복종하게 하실 때에 가나안 사람들과 그들의 왕들과 본토 여러 족속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임의로 행하게 하시매 25그들이 견고한 성읍들과 기름진 땅을 점령하고 모든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과 판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23-25)
레위인들의 기도(역사 회고)는 출애굽 사건과 광야 전승에서 가나안 땅 정복에 대한 주제로 넘어갑니다.
이 단락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후손과 땅 유업)을 이루셨음을 강조합니다. 23a절의 그들의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후손에 대한 약속을 암시합니다(참조, 창세기 12:2; 15:5), 23b절의 ‘그들의 열조에게 들어가서 차지하라고 말씀하신 땅’이라는 구절도 족장 이야기에 땅 약속과 관련하여 반복되는 표현입니다(참조, 창세기 26:2; 28:4,13; 50:24).
본문은 가나안 땅 정복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로 간주합니다. 특히 24절은 가나안 땅 정복을 하나님께서 싸우신 거룩한 전쟁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정복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임을 강조합니다. 가나안의 정복 이야기에서 여호수아를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역사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가나안 땅에서의 삶을 묘사하는 표현들(25, ‘기름진 땅’, ‘아름다운 물건’, ‘배불리 먹고’)은 그 땅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풍요한 땅('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과 정착을 소개하는 이 단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와 축복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를 보여줍니다.
가나안 땅에서의 불순종과 배교(26-31)
이스라엘 백성의 완악함도 하나님의 고집스러운 사랑,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여러 번, 여러 해 동안 용서하고 구원하며 긍휼을 베푸셨고, 그러고도 돌아서는 자들을 주의 영을 통해 경계하셨습니다. 몇 번을 멸해도 부족할 백성이었고, 그래서 대적의 손에 넘기기도 하셨지만, 기어이 언약을 파기하지 않고 기회를 주셨습니다.
26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지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주를 심히 모독하였나이다 27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사 그들이 곤고를 당하게 하시매 그들이 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에게 구원자들을 주어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 28그들이 평강을 얻은 후에 다시 주 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주께서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 버려 두사 원수들에게 지배를 당하게 하시다가 그들이 돌이켜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여러 번 주의 긍휼로 건져내시고 29다시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경계하셨으나 그들이 교만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에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30그러나 주께서 그들을 여러 해 동안 참으시고 또 주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의 영으로 그들을 경계하시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열방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고도 31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26-31)
약속의 성취에 이어 레위인들의 기도는 가나안 땅에서 겪은 이스라엘의 실패담을 회상합니다. 전체 단락은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한 백성들에 대한 언급을 처음과 끝(26절과 30절)에 위치시킴으로 사사 시대와 왕정 시대를 동일한 불순종과 배교의 시대로 묶습니다. 사사기의 증언에 의하면, 가나안 땅에서의 역사는 불순종과 배교의 시대로 요약됩니다.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배교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이방 대적들을 통한 징계로 나타납니다(27a). 이전에는 대적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스라엘을 대적들의 손에 넘기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배교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대적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사기 문맥에서 대적들의 압제는 이스라엘 배교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그렇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징계를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이 대적들의 압제로 고통당할 때(혹은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구원자(사사)를 세워 대적들의 압제에서 구워하십니다(27b). 진노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참조 예레미야애가 3:19-23).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평안’을 얻은 후에 다시 배교의 상태로 회귀합니다(28a). 우상숭배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리는 결정적인 행위로 하나님께서는 언약적인 책임을 물으십니다. 이스라엘의 반복적인 불순종과 배교는 죄와 유혹의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류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행한 배교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것입니다(29). 말씀에 대한 반복적인 불순종은 결국 배교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 삶(생명)을 얻는 주의 계명’이라고 표현합니다(참조. 레위기 18:5; 신명기 4:1; 30:16), 율법(하나님의 말씀)은 생명과 같은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것은 민족적인 멸망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배교를 오래 참으셨습니다. 선지자들을 보내심으로 그 오길 기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선지자들의 경고를 거부하고, 선지자들을 핍박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인내는 진노로 바뀌고, 이방인의 손에 이스라엘을 넘겨주십니다(30b).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긍휼하심과 은혜를 베풀어 패역한 이스라엘을 다 멸하지 않으시고 남은 자를 허락하셨습니다(31b). 이것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백성들이 70년이 지난 후에 고토로 돌아온 사실을 가리킵니다(참조. 에스라 1-3장)
회복에 대한 청원과 공동체의 죄에 대한 고백(32-38)
레위인들은 하나님께 죄악된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손에 넘긴 일을 공의로운 심판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이제 한 번 더 언약을 기억하셔서 예전의 긍휼과 은혜를 베풀어주시도록 간청합니다. 오늘 여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기도가 아닙니까?
32우리 하나님이여 광대하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하심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조상들과 주의 모든 백성이 앗수르 왕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당한 모든 환난을 이제 작게 여기지 마옵소서 33그러나 우리가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께서는 진실하게 행하셨음이니이다 34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조상들이 주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며 주의 명령과 주께서 그들에게 경계하신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35그들이 그 나라와 주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큰 복과 자기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행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36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는데 곧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사 그것의 열매를 먹고 그것의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나이다 37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왕들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그들이 우리의 몸과 가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의 곤란이 심하오며 38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 하였느니라(32-38)
레위인들의 기도는 끝으로 그들의 현재 상태(죄)에 대한 고백과 청원으로 이어집니다(final petition), 느헤미야서 문맥에서 백성들의 참회와 회복에 대한 간구는 이후에 등장하는 언약 체결 의식(느헤미야 10장)을 준비하는 기능을 합니다.
이 단락은 주제의 전환을 나타내는 ‘베 아타’(ועתה 그리고 이제) 구문으로 시작하는데, 이러한 형식은 시편에서 현재의 고통에서 구원해주시길 간구하는 문맥에서 나옵니다(참조, 시편 39:7). 레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이 당하는 고통을 감찰하시고 이전의 상태로 회복해주시길 기도합니다(32b). 32b절의 ‘앗수르 왕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주전 722년)부터 귀환 이후의 시점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먼저 선조들과 자신들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인정합니다(33). 그리고 이어서 실패의 원인을 두 가지로 요약하는데, 첫째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버리고 하나님을 거역했다는 것입니다(34). 여기에서 율법을 가리키는 다양한 용어(‘주의 율법’, ‘주의 명령’, ‘경계하신 말씀’)를 사용하여 율법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합니다(참조. 13-14,26,29), 둘째, 실패 원인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잊어버린 것입니다(35).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것이 결국 이스라엘 타락의 시작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것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레위인들의 기도는 자신들의 현 상태를 애통하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룹니다(36-37). 본문은 그들의 현재 상태를 ‘종살이’로 규정합니다(36절). ‘하나님 섬기기’를 포기한 결과는 이방 나라의 종살이로 나타납니다(참조, 35b).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다시 구원 이전의 상태로 회귀함을 의미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피정복민의 신분입니다. 그들은 페르시아에 세금을 내고 이방 왕의 통제하에 살아가고 있습니다(37b). 그런 의미에서 현재 그들의 상태는 ‘종살이’입니다. 레위인들의 간절한 소망은 페르시아 왕의 통치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통치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분이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이 시기 때문입니다(출애굽기 15:18; 사무엘상 8:7). 이제 방백들과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언약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합니다(38). ‘언약적인 헌신’을 다루는 38절은 백성들이 언약에 인봉하고 서약하는 장면을 다루는 10장으로 연결됩니다. 이런 배경에서 히브리어 성경(MT)은 38절(‘우리가 …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을 10장의 도입으로 간주합니다. ‘견고한 언약을 세우다’로 번역한 히브리어는 언약 체결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히브리어 구문 ‘카라트 베리트’와 비교할 때 ‘베리트’ 자리에 ‘아마나’가 들어가 있습니다. ‘아마나’는 원래 ‘신실함’ 혹은 ‘충성스러움’을 의미하며, 언약의 의미로 사용된 경우는 이곳이 유일합니다. 이 단어와 동일한 어근 네에만(נאמן 충성스러운) 이 아브라함 언약을 언급하는 장면(8절)에 나옵니다.
저자는 의도적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여 앞으로 체결되는 언약을 아브라함 언약의 연속으로 간주하며, 언약에 참여하는 백성들이 아브라함처럼 언약에 신실하게 반응할 것을 요청합니다. 레위인들의 역사 회고의 기도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율법에 대한 순종이 매우 강조된 형태로 나타납니다(13-14, 26,29,34). 율법에 대한 강조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귀환 공동체에게 ‘토라’가 차지하는 중요성과 위치를 보여줍니다. 신명기적인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 사랑은 말씀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포로 귀환 공동체는 아주 긴, 뼈아픈 역사 반성문을 기록하고 도장까지 찍었습니다. 다시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펼쳐가실 구원사의 주역이 되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들은 첫 출애굽 세대와 다른 역사를 써나가겠다고 결단합니다.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는 것만이 새 역사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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