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 국회의원 역 차인표
"목표 위해 수단·방법 안가려… 분노 연기의 지존? 몰입하다 보니 절로 치밀어"
단어 하나하나 힘주어 말하는 것부터 미세한 손짓까지 선거 유세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연설하는 정치인을 닮았다. 차인표다.
그는 "절대로 정치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가 연기하는 강태산은
'현실 정치인과 가장 유사한 캐릭터' 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말했다. "'2선 국회의원은 선배고 3선은 아버지'라는 대사를 들을
때마다 참 답답한 심정입니다. 이런 국회의원만 있다면 정치에 진실은 사라지고
권모술수만이 존재하게 될 겁니다." 그는 SBS 수목 드라마 '대물'에서 야망에
가득 찬 국회의원 강태산을 연기한다.
강태산은 아버지의 정적인 민우당 대표 조배호(박근형)를 좌절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조배호의 비리를 무마해주는 조건으로 공천권을 얻어내기도 하고 정치 자금을 얻어내기 위해
대기업 산호그룹 회장의 딸과 정략결혼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는 조배호가 버린
딸 장세진(이수경)의 복수심을 자극해 조배호를 무너뜨리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
서혜림(고현정) 역시 조배호를 견제하기 위해 끌어들인 수단일 뿐이다. "강태산에게 인간적인
연민은 느끼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라고 했다.
차인표는 "한국에 강태산 같은 정치인이 없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대물'에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태산은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고 생각하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비기 때문에 친구가 없는 거예요." 그는 "강태산이 젊은
정치인으로서 순수성은 있지만 갈수록 자신이 무너뜨리려는 거물 정치인 조배호와 정확히
닮아가고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드라마에 대한 생각도 같았다. '대물'은 차인표의 강태산보다 이상을 추구하는 정치인
서혜림(고현정)과 정의감 넘치는 검사 하도야(권상우)의 드라마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서혜림은
순수해서 종종 공자님 같은 말을 하긴 하지만 결국 미래에는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태산은 주인공이 아닙니다. 지금 시청자들이 서혜림과 하도야가 아닌 조배호와
강태산에 집중하는 게 안타까워요."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 연기만큼은 늘 찬사를 받으며 인터넷을 달궜던 그는 이번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얼마 전 독기 가득한 눈빛을 이글거리며 양주병을 들고 정신없이 내리쳐
깨뜨리는 장면을 통해 분노 연기의 지존임을 다시 확인시켜줬다.
"당시 다치지 않았냐?"고 묻자, "어차피 제 손이니까 신경 안 쓰셔도 된다"며 "잘해보려는데
좌절당하는 강태산에 몰입하다 보니 분노가 치밀더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는 "정치인과 연예인은 '대중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며 오래전
후배 연예인들에게 강의했던 때를 떠올렸다. "'여러분의 보스는 누구인 것 같냐?'고 물었더니
PD·방송사 사장·영화 감독 등을 말하더군요. 하지만 연예인의 보스는 대중입니다. 대중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도덕을 지켜야 하는 건 그 때문이죠. 대중이 바로 사장님이니까요."
그는 "개인적으로 국회의원을 만나면 참 똑똑하고 애국심도 대단하다고 느끼는데,
이상하게 모이기만 하면 당리당략에 따라 행동하는 것 같다"며 "진정성을 가지고 국민을
사랑하는 정치인 한 명만 있어도 정치가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더는 정치
드라마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강태산 같은 악역 캐릭터를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배우의 장점이 연기를 통해
다양한 직업을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것 아니겠어요?"
자원봉사자, 배우, 소설가, 남편, 아빠…. 어느 하나 소홀히 하는 법이 없는 그는
"'오늘의 차인표'가 중요하다"고 했다. "제 관심사는 오늘 하루 제가 해야 할 일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는 거예요. 유치하지만
전 이런 남자입니다." 차인표는 할 말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