曲學阿世(곡학아세)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굽히면서 권력이나 세속에 아첨하다’는 뜻으로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중 유림열전(儒林列傳)에서 유래한다.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에 시경(詩經)에 밝고 강직한 성품의 원고생(轅固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아흔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제(齊)나라의 원고생(轅固生)과 공손홍(公孫弘)
왕이 원고생과 함께 공손홍(公孫弘)이라는 사람도 초빙하여 나라 일을 맡기려 하였다.
그런데 아첨을 일삼는 유학자들이 실력자인 원고생을 질투하여 그가 나이 많은 것을
들어 헐뜯는 바람에 결국 왕이 그에게 일을 맡기지 못하게 되었다.
원고생과 같이 초빙되었던 공손홍은 뻘쭘하게 함께 서있다가
원고생을 경외(敬畏)의 곁눈질로 보았는데
그때 원고생이 ‘공손자(公孫子)여, 바른 학문에 힘써 바르게 말하고, 왜곡된 학문으로
세상에 아첨하지 마시게 (無曲學以阿世/무곡학이아세)’라고 말한데서
이 말이 전해지게 되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학자 중에는 세속적인 출세와 개인의 이익을 위해 학자적 양심을
저버리고 왜곡된 학문으로 권력에 아부하여 어용학자(御用學者)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정부나 공적(公的) 기관에서 어떤 분야의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정책을 홍보
하려 할 때 명망 있는 전문가를 불러 고위직에 임명하거나 자문위원으로 위촉한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나라를 위해 올바르게 활용하는 사람들이지만
그 중에는 곡학아세하여 자신의 양심과 명성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합리화하기 위해 견강부회(牽强附會),
즉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다 붙이기도 하고 자료를
왜곡하거나 궤변과 교묘한 논리로 혹세무민(惑世誣民) 하기도 한다.
순자는 대략편 57장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반드시 벼슬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벼슬을 하였다면 반드시 배운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學者非必爲仕/학자비필위사 而仕者必如學/이사자필여학)’
며 학자는 양심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학자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이나 언론, 공공 단체를 비롯하여 사회에 영향력이 있거나
대중에게 인기가 있는 사람 중에도 곡학아세의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돈과 권력에 눈이 어두워 역사와 진실을 왜곡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반사회적,
반국가적 사고(思考)를 정당화하여 여론을 호도함으로써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여
결국 사회와 국가에 피해를 입히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런데 곡학아세의 행위로 지탄받는 사람도 문제지만
그러한 행위를 뒤에서 유도하거나 조장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출세욕과 사욕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들이 추구하는 어떤 목적이나 이익의 도구로써 쓸 뿐이다.
따라서 슬기로운 국민이라면 곡학아세하는 사람만을 지적하여 지탄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거나 부추기는 사람이나 세력이 누구이며 그들이 추구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가려낼 수 있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