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은 컬럼비아대학에서 내 제자였지만, 그녀의 인생이야기 앞에서는, 그리고 인생의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그녀의 뜨거운 열망 앞에서는, 그녀가 나의 스승이었다. 여러분도 그녀의 인생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선을 통해 더 단단해지시길 바란다.”
에이다 무이(컬럼비아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
세상에는 성경 ‘욥기’가 가르쳐주듯 고난의 삶을 살아냈거나 감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나치스 정권하에서 정의를 위해 교수형을 당한 본 훼퍼 목사님, 공산 루마니아에서 14년간 감옥살이를 했던 리처드 범브란트 목사님, 차로 귀가하던 중 음주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전신 55퍼센트에 3도의 중화상을 입은 이지선 이화여대 사회복지학 교수의 ‘덤’으로 얻은 삶, 야외 지질연구를 위해 미국의 데스밸리(Death Valley)로 향하던 중 차량전복 사고로 전신마비가 왔지만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며 뺨을 움직이고 입김을 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늘이 내린 행운아라는 무게로 따지면 0.1g도 안 될 것 같은 희망에 모든 것을 걸고 전동 휠체어에 의지한 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로 다시 복귀한 이상묵 교수, 김해 대저면에 있는 선진 양계장을 견학하고 돌아오는 길에 차량 전소사고로 45%의 지독한 화상을 입은 청십자 운동이라는 놀라운 민간의료보장 체제를 도입하고 실험했던 채규철 사회운동가 – 장발에 얹어 놓은 ‘빵떡모자’, 장발과 빵떡모자는 없어진 귀를 감추기 위함이라지요, 코는 형태만 갖춘 채 간신히 붙여 놓았고 의안인 오른쪽 눈동자와 옷깃 사이로 드러나는 살갗은 깊은 화상의 흔적으로 패어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도 싸웁니다. 담뱃불을 붙이는 것에서부터 반찬을 집는 것까지 사소한 것조차 불편한 것 천지입니다. 소주잔도 두 손으로 감싸며 들어 올려야합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 싸움은 계속될 겁니다. 하지만 기업체와 교도소, 각종 봉사단체 등에서 30년이 넘도록 진행되는 그의 강의는 우리들에게 살아가는 의미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의 세속적인 직업은 ‘기업체 강사’입니다. 그런데 불가사의한 것은 35년 간이나 불안정한 ‘강사노릇’을 하면서도 단 한 번도 밥을 굶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 수입을 이리 찢고 저리 찢어 이곳저곳 힘닿는 대로 도와 주었는 데도 부족하지 않았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에게 ‘넘침 없이, 부족함 없이 살면서 낮은 곳에 임하라’고 내려주신 달란트가 아닐까요. 이 이야기는 채규철 선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 주변에서 바보처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맞습니다. 자기에게 아무런 이익도 없는 데도 시간을 낭비하고 돈을 물 쓰듯 쓰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 땅은 바로 우리가 바보멍청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의 손으로 가꾸어지고 윤택해진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아내 유정희 씨의 수기 「더 이상의 눈물은 없다」에서의 아내 ‘폭로’덕분에 30년간 이상 세상과 싸워온, ‘거룩한 투사’로만 알려진 채규철 선생은 보통의 우리와 같은 ‘인간’ 채규철로 돌아왔습니다. 저도 채 선생처럼 ‘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언론인 이기환 편저. ‘아버지의 얼굴’. 한걸음 펴냄 중에서) - 등등 ------. 이에 우치무라 간조 성경주해전집을 근간으로 ‘욥의 견신(見神)과 욥의 종말(終末)’이라는 말씀을 선포했던 설교안의 일부를 지인분들과 공유하고저 합니다.
“종이 자기가 종됨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뼈아픈 말은 언젠가 이정수 선생님이 행하셨던 신앙고백입니다. 기존 성직자나 학자, 재력가가 하기 힘든 이 고백을 평범한 초등학교 교사는 하였던 것입니다. 실로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는 성경구절이 다시금 우리를 경각시킨다 하겠습니다.
기도 : 저희의 신앙이 개개인에게 신앙이 두터워야 하나님께 인정받고, 그 댓가로 행복이 주어진다는 차원에 머무르고 있을 때, 저희를 일깨우기 위하여 닥쳐오는 시련과 유혹에 봉착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기에 앞서 자신의 종됨을 먼저 인식하는 저희가 되게하사 그 가운데서 먼저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자 애쓰는 저희가 되게하시고, 그것을 이겨낼 힘을 주님께 구하는 가운데, 주님의 지키심과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마침내는저희의 신앙이 욥과 같이 아무런 가치없는 자기에게, 전적인 은혜로서 행복이 주어지는 것을 인정할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로써 저희의 삶의 의미가 밝혀지고, 이를 통해 주님의 뜻이 구현되며, 하나님 나라가 형성되어져서 이가 마침내는 주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