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בְּמִדְבַּר 바미드바르" : 토라포션 알리야(Aliyah) in 5779
민1:1-4:20(To), 호1:10-2:21(Haft), 롬9:22-23(Brit), 히1:1-7:28(신약)
샤밭예배
이제 영의 실제를 믿고, 우리가 영의 존재라고 믿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생겨났다. 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주님이 광야로 집어넣으신다. 왜? 영이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끔찍한가? 아니다. 우리는 전혀 끔찍하게 여기지 않는다. 우리를 광야로 집어넣으셨다
בְּמִדְבַּר סִינַי 바미드바르 시나이 : 시내 광야
시나이는 요드 둘, 손이 2개가 나타나서 엄청난 능력으로 평가를 신실하게 한다.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평가받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면 정말 싫다. 물론 좋은 평가를 받으면 좋지만, 너는 쓰레기야, 너는 발가락의 때야라고 평가받으면 정말 싫다. 엄청나게 흥분한다. 생 난리가 난다. 모든 것을 동원해서 그것에 대해서 반발한다. 저는 그런 평가가 내려오면, 동원하다가 최후로 동원하는 것이, 나이다. 우리는 평가받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평가를 안 받으려고 하고, 회칠한 무덤이 되고, 대충 좋게 평가받으려고 한다. 그런데 시내 광야는 어마무사시하게 정확하게 평가한다. 왜 그러느냐? 영이기 때문이다.
영이기 때문에 발가락이던, 상관없다. 발가락의 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는가? 사람 몸에 때가 없으면 안된다. 때를 박박 민다고 다 좋은게 아니다. 적당히 때가 있어야 한다. 밥중에 제일로 귀한 밥이 귓밥이다. 그래야 귀가 산다. 이거 다 긁어낸다고 좋은게 아니다. 코딱지, 코털도 정말 중요하다. 우리가 그렇게 어렸을 때 놀리는 똥꼬, 얼마나 중요한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중요하다.
시내 광야에서 하나님이 Count하신다. 평가를 내리신다. 우리는 우리가 되고 싶은게 되는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다. 평가를 내린다. 그래도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넌 발가락이다!?
One body가 있는데, 온 몸에 너는 손이다, 너는 발이다, 너는 입이다, 뭐든지 상관없다. 주님의 평가가 내려오는 것이 시내 광야이다. 그런데 정말 십자가의 사람들은 놀랍다. 거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왜? 자아가 죽었기 때문이다.
노예란 עבד 에베드이다. 종은 자아의 노예이던지, 하나님의 노예이던지 둘 중 하나이다. 애굽의 노예란, 내가 바로이고 한 존재이다. 나는 절대로 발가락이나 귓밥이 되면 안된다. 내가 머리가 되어야 한다.
제자 훈련 하기 전의 특징이, 다 자기 머리 위에 아무도 없다. 철*이가 유난히 머리가 크다. 지난번에 철*이의 간증에 감격했던 이유가, 교회에 처음 왔을 때는 자기 머리 위에 아무도 없었다. 제자도는, 타하트, 밑에 집어넣어버린다. 그러면 애굽의 노예인지, 하나님의 노예인지, 본색을 드러낸다. 애굽의 노예는 그냥 자기가 머리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자기가 머리가 아니라, 몸이라고 한다. 이게 시내 광야에서 일어난 일이다. 머리는 그리스도이다. 나는 머리가 아니고, 몸이다. 몸 어디인가? 상관없다. 하나님이 지으신대로이다.
우리는 이 땅에 육신을 가지고 태어나서, 머리가 되려고 한다. 그러나 머리가 되려고 하면 다 실패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이, 가난하고, 약한 자들이다. 그들은 우리가 담당하지 못하는 것들을 담당한다. 우리는 장애인들을 바라볼 때, 그 장애인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불쌍한 것이다. 장애인들은 그 몸에서 감당해야 할 역할을 본인들이 자기의 육체로 감당하는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이 저에게 그것을 감당하라고 했다면, 나는 어쩌면 감당 못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못하는 것을 감당하는 가장 아름다운 영혼이다. 상관없다. 육체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그 영혼은 우리를 위해서 그것을 감당할 뿐이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연약함을 본인이 감당할 뿐인 것이다.
거지 나사로의 헌데를 개가 핥았다. 우리는 어쩌면 부자였을 것이다. 아무 문제 없이 부자로 살고 있을 것이다. 파티하고, 밥 잘 먹고 말이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우리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들을 감당할 뿐이다.
육체가 하나의 단독자로 존재를 하면, 광야란 곳은 죽는 곳이다. 도저히 한 육체로 존재할 수가 없다. 광야는 그런 곳이다. 만약에 애굽의 노예로, 하나의 바드가, 아바드, 내가 한 존재라고 한다면, 광야는 그대로 죽음이다. 그런데 광야는 죽음이 아니라, 말씀이 있는 곳, 즉, 그리스도가 사시는 곳, 그리스도의 임재가 계신 곳이 광야의 또 다른 이름이다. 바미드바르, 말씀 자체이신 분 안에, In Him, In Christ, 그분의 쉐키나의 임재 아래에서 사는 것을 광야에서 산다고 한다.
몇년 몇월 몇일날 태어난 나를 나라고 하는 한, 그분의 임재 안에 절대 못 들어간다. 쟤는 광야에 절대 못 들어간다. 광야에 집어넣기만 해도 나를 죽이려고 한다고 난리를 핀다. 우리는 많이 봐왔다. 제 전문이 여러분들을 광야에 집어넣는 것이다. 광야에 간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다. 광야에서는 פקד 파카드, 계수를 한다.
민1:1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가 시내 광야에서 그들을 계수하였더라
וַיִּפְקְדֵם 바이프케뎀 : 그들을 계수하였다
פקד 파카드 : 계수하다
계수하는 것은, קדם 케뎀의 문을 여는 것(פ)이다. 광야는 케뎀의 문이 열리는 곳이다. 케뎀의 문이 열리면, מספר שׁמוֹת 미스파르 쉐모트가 생겨난다. 이름들의 숫자란 뜻이다.
여러분들은 다 이름들이다. 여러분들을 부르는 이름은 이름이라고 안 하고, 이름들이라고 한다. 많은 이름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그래서 השׁם 하쉠, The Name이 있다. 그 이름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שׁמוֹת 쉐모트, Names라고 한다. 주님이 The king이시다. 그러나 그 나라가 구성되려면 새끼 King, kings가 있어야 한다. 리더들이다. 너희들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불렀다고 한다. 여러분들은 왕이다.
그러나, 왕이라고 해서 다 왕이 아니다. 우리는 The king을 섬기는 새끼 king들이다. The king만이 오로지 섬김을 받는다. 날 섬기라는 것이 왕이 아니다. 새끼 king들은 수많은 존재들로 하여금 The king을 섬기도록 하는 존재를 말한다. 많은 존재들로 하여금 The king이 있으니까, 그분을 왕으로 섬겨라를 새끼 king이라고 하지, 내가 왕인데 나를 섬겨라!?는 것은 Anti-christ처럼 적-king이다. 이게 되시면 안된다.
우리 하나님은 The Father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보트를 주신다. 어떤 사람들은 예슈아 비전교회는 왜 이렇게 아버지라고 하느냐고 한다. 정말 아보트들이 없으면 The Father도 없다. 아보트들이란, 나를 아버지로 섬기라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자녀들로 하여금 The Father에게로 인도하는 자들을 아보트라고 한다. 그래서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고 하지 말라는 이유는, 땅에 있는 자들은 아버지라고 불림을 받으면서도 The Father에게 인도하는 것은 관심이 없다. 오로지 내가 아버지 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주님이 השׁם 하쉠이시다. 미스파르 쉐모트는 쉐모트들의 숫자를 세는 것이다. 쉐모트들은 다 한 몸의 부품들이다. 그래서 이 숫자를 다 세어야 한다. 이름들의 수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광야란 한 몸의 부품들로 Count하는 것이다. 하나라도 없어지면 안된다. 한 몸을 이룰 부품으로 카운트하는 것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이게 광야이다.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 짐승의 그 이름의 수를 이긴 자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짐승의 이름의 수, 즉, 짐승에 의해서 Count되지 마시길 바란다. 짐승에게 Count되는 사람이 누굴까? 짐승이 Count하는 사람을 단독자, 암세포라고 한다. 우리가 One body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제가 정말 안타까운 것이, 사람들이 구별을 못한다. 무엇이 우상숭배인지, 무엇이 뉴에이지인지, 무엇이 카발라인지, 구분을 못한다. 나 한 사람이 구원받겠다, 이게 뉴에이지이다. 개인 구원, 나 개인이 잘되겠다, 내 영성이 좋아지겠다, 내 개인이 신이 되겠다, 이게 뉴에이지이고 카발라이고, 이게 바벨론 종교이다. 결국 궁극적으로는 이 육신이 치유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카운터에서 사모님이 정말 십자가의 진리에 대해서 정수를 선포하셨다. 주일날 한국어로 다시 하기로 했다. 오순절 집회이기 때문이다. 오순절은 십자가의 복음을 성령이 오셔서 실제로 우리 속에 내리는 시간이다.
십자가란 그 개인을 죽이는 것이다. Ego, 자아라는 개인을 죽이는 것이다. 그러면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개인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협박하는건가 뭔가? 짐승의 수라는 것은, 짐승이 카운트한다는 소리이다. 짐승이 누구를 카운트하는가? 개인을 카운트한다. 그래서 우는 사자처럼 삼키려고 돌아다닌다고 한다. 단독자를 카운트한다. 하쉠이 뭔지도 모르고, The Father, 쉐모트가 뭔지도 모르고, 전체 몸에서 내가 그 중의 하나의 부품이라는 것도 모르고, 전체 몸이 그리스도인 것도 모르고, 전체 몸이 머리를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자들을 카운트 한다
내가 으뜸이 아니라, 머리가 으뜸이다. 내가 잘되고, 내가 Priority가 아니라, 머리가 Priority이다.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가 Priority이다. 내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 내 몸 가지고 내가 잘되려고 하거나, 내가 머리가 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몸 가지고 태어나서, 평생 나 잘 살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정체 불명의 나, 이거 좀 행복해보려고 사는 것이 아니다. 이 몸 가지고 뭐하고 있는가? 나는 도대체 뭔가? 영원의 세상에서 얘를 가지고 뭘 할 것인가? 그래서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산다고 치자. 뭐할건가? 영원히 하나님 찬양하면서 살거에요!? 주님이 제일 hate하는 것이 개인이다. 주님은 개인을 상대도 안 하신다. 그런데 그 개인으로 천국에 가서 주님 영원히 사랑할거에요? 아니다. 거기에 주님은 없다. 이 짐승이 오늘날 얼마나 수많은 성도들을 우는 사자처럼 잡아먹는지 아는가?
시내 광야에서 주님이 파카드하신다. 파카드는 케뎀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하늘문, 영의 세계의 문이 열리고, 수로 세어진 사람들, 이 사람들을 케뎀의 것으로 다 Equipment, 무장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군대가 되게한다.
민1:3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이제 싸울 수 있다. 육체는 절대로 주님의 싸움을 할 수 없다. 육체는 사단과 싸울 수 없다. 진짜 마지막 때는 대대적인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을 아는가? 육체는 너 죽여, 라고 조금만 해도 못 싸운다. 저 같이 싸울 수 있을 것 같은가? 마누라가 조금만 뭐라고 해도 죽을 것 같은가? 인터넷에 여러분이 뭐라고 하는 것이 도배되어있으면, 그것뿐이 아니라, 회사에서 여러분을 놓고 어쩌구 저쩌구 하면 잘 싸울 수 있을 것 같은가? 죽을 것 같은가? 그거 아는가? 100명 중에 두 사람만 나한테 뭐라고 해도 죽을 것 같은거 아는가? 사람들이 저한테 뭐라고 한다고 죽을 것 같다고 오면, 누가 뭐라고 하는데? 사람들이요! 성도들이요! 정확하게 이름을 대보라고 하면 두 사람을 넘는 경우를 거의 못 봤다. 200명 중에 말이다. 너에 대해서 뭐라고 했는데? 그게 책 한 권 되는 경우를 본적이 없다. A4 용지 한 장 넘는 경우도 거의 못 봤다. 몇시간이나 너에 대해서 뭐라고 했는데? 한 2-3일 분량 되는 사람 한번도 못 봤다. 기가막히다. 우리는 죽을 것 같다. 육을 뭐라고 하면 달달 떨어서 아무것도 못한다. 그런데, 싸움에 나갈만한 자를 계수해서, 싸울 수 있도록 파카드, 하늘문을 열고, 영적인 것을 부어주는 것이다. 영적인 것이 육에 부어지면, 육은 죽는다. 영의 하나님을 만나기만해도 육은 죽는다. 지금 시내 광야에서 뭘 하는거냐면, 정말 대단한 것이다. 마치 사막 한 가운데서 초인간이 탄생하는 것이랑 비슷하다. 케뎀에서 온 터미네이터. 느껴지지 않는가? 그때 파카드, 케뎀의 문이 열리면서, 케뎀의 모든 계획을 위해서 사탄, 육신, 개인, 단독자, 자아와 싸울 수 있는 모든 힘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성령을 받는다고 한다.
십자가가 아니고는 못한다. 여러분들이 십자가를 이해하지 않고는 못한다. 십자가는 개인주의를 죽이는 것이지, 죄 지은 나를 대신 주님이 지고, 나 천국 보내주는게 아니다. 주님은 나 천국 절대 안 보낸다. 믿으시기 바란다. 이 Ego를 천국 보내면 어떡하는가? 천국가면, 또 사랑해달라고, 나 좀 봐달라고 하지 않을까? 영원히 찬양할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천국에 개인이 가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주님이 2층천에 넣어줘도, 저것은 왜 3층천에 갔어!? 그 놀라운 곳에 넣어줘도 개인은 시기나고 질투나서 못 산다. 십자가가 아니면, 여러분들이 십자가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광야에서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못 싸운다.
계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이 전투에 나가실 수 있겠는가? 삼다수 들고 산으로 가시겠는가? 아니면 저 모래 위로 가시겠는가? 누가 가는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토라이다. 예수의 증거가 뭐냐? 증거 장막, 성막이다. 토라와 성막이다. 시내 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토라와 성막이 주어진다. 토라와 성막을 그리스도라고 한다. 머리라고 한다. 머리를 들라. 그래서 민수기의 시작이 머리를 들라이다. 그리스도의 머리를 들라. 이런 자들을 Count한다. 나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토라는 아버지의 성품이다. 아버지의 비밀이다. 아들만이 아버지의 비밀을 안다. 이것은 믿음의 비밀이다. 나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성품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가 내 아버지라는 것이 믿음의 비밀이다. 아버지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 토라이다. 그리고 그 아버지를 실제로 이 땅에 샤칸하게 하는 것을 성막이라고 한다. 아버지를 이 땅에 샤칸, 거하게 하시는 분을 그리스도, 머리라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다 이 머리에 결합하려고 할 때, 그분의 몸이 된다.
바미드바르, 광야에서는 이 몸이 Operation되는 것이다. 그분을 머리로 드는 자들, 나 개인, 내가 아버지가 아니다. 개인, 단독자란 내가 아비이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내가 되어야 한다. 내가 되어야 할 것을 내가 만든다. 내가 애비다. 이 땅에서 무슨 집을 짓냐면, 내가 살 집을 짓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광고가 내집마련이다. 내 집 마련의 꿈을 가지고 계시는가? 오늘 버리시길 축복한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내 집 마련의 꿈이 있으셨는가? 우리 주님은 아버지 집 마련의 꿈이 있으셨다. 베이트-엘, 벧엘, 아버지 집 건설을 하는 자를 아들이라고 한다. 성막은 아버지 집의 비밀이다. 그런데, 아버지 집이 뭔지를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건물을 지으면 아버지 집을 짓는 줄 안다. One Body, 몸, 교회는 유기체이다.
우리가 작년에 스텝들 수련회를 갔을 때 얼마나 은혜가 있었는지 모른다. 사실 어느 누구도 스텝이라고 한적이 없는데 왔다. 임명장 한번 준적이 없는데 왔다. 그중에 조금 겸손한척하는 사람들은, 저는 사실 스텝 자격도 없는데요라고 한다. 그런데 그 시간이 우리에게 왜 이렇게 놀라운 시간이었냐면, 우리는 누가 뭘 시켜서 한게 없다. 모여보니까, 이 교회는 참 희한하다. 어느 누구도 임명장을 준게 아닌데, 그냥 자기 모습 그대로 이 사람이 이거, 저 사람이 저거 하는데, One body가 되어서 교회가 굴러간다. 신기하다.
여러분들은 제가 경*이에게 저 뒤의 일을 시킨 줄 안다. 제가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 아니다. 암 걸려서 회복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 새벽에 나와서 교회 청소 시키고 그러겠는가? 온갖 뒤에서 교회 일을 다 하고? 전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 아니다. 지가 하는거다. 한번도 하란적이 없다. 또 지가 와서 하다가 서럽다고 울기도 한다. 그런데 또 외롭다고 서럽다고 울면, 저도 이렇게 제 역할을 해준다. 방송해준다. 그러면 또 인기 폭발이다. 그러면 또 회복이 된다.
교회가 종교가 되면,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유기체가 아니어도, 주님이 샤칸하지 않으셔도, 주님이 움직이지 않으셔도 시스템으로 다 정해놓고, 지위를 탐하는 자들이 거기에 올라가서, 그 지위를 누리려고 한다. 기존 교회에 다니면서 재직회에도 가보고 하셨을 것이다. 들어보면 정말 가관이다. 목사님 차 사준다고 싸우고, 차종에 따라서 집사들끼리 또 싸운다고 한다. 부서들끼리 싸우고, 니네 부서는 왜 이렇게 많이 가져가냐는 둥. 우리 교회는 한번도 싸운적이 없다. 우리는 각 부서에서 그냥 갖다 쓴다. 누가 뭐라 그러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누가 많이 가져가면 어떡하는가? 뭐 어떤가. 딴데가서 도둑질하는 거보다 낫지 않는가? 여기서 회개해야 주님께 돌아오지 않겠는가? 교회가 얼마나 육체적이 되고, 물질적이 되는지 아는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꺼 도둑질해야지, 그래야 자녀가 아버지에게로 돌아온다. 그런데, 육체적이 되어서, 물질적이 되어서, 교회 안에서 난리를 핀다.
아버지 집을 그냥 세우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손으로 세운 것은 아버지의 집이 아니다. 다 허무신다. 그래서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른다. 스텝들이, 너는 그래서 그런 일을 하는구나. 어려서부터 딴따라 좋아했던 얘는 하고 있다. 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어려서부터 싸이키 좋아하는 얘들은 조명하고 있다. 심지어 얘 봐주는거 좋아하는 얘들은, 지 얘도 아닌데도 계속 보고 있다. 우리 교회도 조금 그런게 있었다. 종*보고 청년부 회장 시킨적도 있다. 그런데 아무도 모른다. 하려고 하지도 않고, 하는게 없다. 이게 유기체이다. 이게 몸이다. 우리 각자가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제가 정말 감동받았던 한 지체의 고백이 있다. 옛날에 그 지체는 암투병을 해서 몸이 되게 약했다. 그런데 이 지체가 저에게 하는 말이, 자기는 기도 모임에 꼭 나오는데, 자기가 한 명의 숫자를 채우는게 도움이 될까해서 나온다고 하더라. 우리는 너무나도 육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크고 기이한 일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높아지려고 한다. 그런데 이 형제는 기도모임에 사람들이 없으면 기운빠지니까, 나는 사람들 기운 안 빠지게 하려고, 나 한 몸이라도 숫자를 채워주고 싶어서 나온다고 했다.
무엇이 영성일까? 무엇이 구원일까? 기도모임에 큰 역사를 일으키는 탁월한 사역을 하는 사람이 진짜 천국가는 것일까? 아니다. 그래서 거대한 기도 단체를 만든 사람이 천국 가는게 아니다. 한 Piece를 담당하고자 하는 것, 그냥 겸손하게 나에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 Piece를 담당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내 욕망이 있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 그런데 내가 한 Piece라는 것을 알면, 이 몸 하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지 아는가? 저도 마찬가지이다. 여러분들이 샤밭이라고 샤밭 예배 한다는데, 여기에 와서 안 앉아있어봐라. 그러면 저 혼자서 이렇게 신나서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두 명 앉아있는데 되겠는가? 저는 여러분에게 감사한다. 여러분들이 특별한 능력이 있는거 하나도 안 원한다.
바미드바르에서 주님은 드디어 몸을 가동시킨다. 몸으로 Count한다. 에베드, 바드에 대한 비전, 나는 하나님의 부품이다, 이 Total vision을 이렇게 가르치는구나, 내가 몸의 한 부분이다. 애굽의 노예는 나 어떻게 해주세요 하는 것이다. 절대로 주님이 count 안 하신다. 광야에서는 나는 머리에 붙어야 하는 몸의 부품이라고 하는 자들을 주님은 Count하신다. 미스파르 쉐모트, 이름들의 수가 되게 하신다
이 마지막 때에 나 좀 어떻게 해달라, 나 어떡해 노래 부르고 있으면 짐승이 와서 삼킨다. 짐승의 수가 된다. 그것을 666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666이 뭔지 모른다. 짐승이 와서 인친다는 것이다.
파카드는 정말 아름다운 단어이다. 꼭 계수되시길 축복한다. 한때 은사주의에 Visitation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Visit us today, right now!! 주님이 방문하셔서 문 열고 들어오셔서, 주님의 향기가 풍기고, 데리고 천국에도 데려가고, 이런게 유행했었다. 유명한 선지자들 손 붙들고 있다보면 천국으로 올라가고, visit..! 그것을 파카드라고 한다. 토라의 핵심이다. 그런데 은사주의자들이 잘못 알았다. 개인이 하나님을 만나고, 개인이 천국에 갔다오고, 개인이 입신하고, 이것을 다 뉴에이지라고 한다. 개인이 신이 되는 이야기이다. 개인이 신의 나라에 가는 이야기, 이것을 다 뉴에이지, 영지주의, 카발라라고 하는 것이다.
파카드는 개인에게 안 온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옥의 문이 열린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때는 그리스도가 여기있다, 저기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이 사람 방에 나타났다. 그리스도가 이 사람 자는데 왔다. 우와! 저도 얼마나 꿈꿨는지 모른다. 주님이 제 기도를 안 들어주신게 다행이다. 저는 여러번도 아니고, 딱 한 번만 제 방에 와주세요! 옛날에 그런 책이 유행했었다. 굿모닝성령님, 그분은 아침마다 와서 굿모닝 하신다고 하더라. 나도 그거 읽고, 나도 사역자인데, 그 사람처럼 사역하고 싶을거 아닌가? 나도 집회하면 그 사람처럼 하고 싶을거 아닌가? 그분의 책을 봤더니 굿모닝 성령님이다. 나는 그 사람처럼 Everyday도 아니라, 딱 한 번만. 이라고 했는데, 안 들어주셨다. 제가 얼마나 화가 났겠는가? 그래도 마음이 약해서 화도 못 낸다. 나는 아닌가보다 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무지하게 찾아다녔다. 안 오시니까 말이다. 그래서 결국 다다른 곳이 문자적 토라이다. 모든 세상의 종교가 다 문자적 토라에 빠져있다. 문자에서 못 벗어난다. 양이 뭔지 모른다. 어린 양 예수라고 하면, 뭔 이야기를 하는지 모른다. 아버지의 집을 향한 열심이 주님을 삼켰다? 모른다. 그냥 문자로 이해할 뿐이다. 아버지 집, 열심, 삼켰다, 문자로 이해할 뿐, 아무것도 모른다. 주님이 많은 이야기를 해도, 그냥 문자로 이해할 뿐이다.
문자적 토라가 가장 종교의 Top이다. 그리고 알았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가진 나무를 주님이 땅에서 나오게 하셨다. 이게 무슨 말일까? 하늘 아래 모든 물들이 한 곳으로 모였다. 무슨 말일까? 몰라도 그냥 문자로 자기가 읽는다. 하늘, 아래, 모든, 물, 한 곳, 다 안다. 모르는게 어딨는가? 그냥 문자만 알 뿐이다. 아버지의 집의 비밀 근처에도 못 간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정말 감사하게도, 우리 대다수의 저와 같은 기도를 안 들어주셨다. 혹시 이 중에 그 기도가 조금 응답된 사람 있을 수 있다. 주님이 아침에 오시려다가 가신 것 같은 느낌. 거기까지 경험한 사람은 그래도 여기 있다. 뭔가 찌릿은 한거 같다. 그런데, 저는 그런 영의 세계가 없다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개인이 경험하려고 하면, 그것은 짐승의 수가 된다. 우리 모두가 One body가 되어서,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진영이 되어서, 십자가의 진영을 형성해서, One body가 되고, 그분의 군대가 된다면, 케뎀의 문이 열리고, 모든 영원에 속한 신비한 일들이 우리 전체 속에서 경험될 것이다
아까 우리 은*가 감사나눔 했듯이, 가족들과, 리더와 함께, 이게 진짜 생명이고, 이게 정말 지극한 행복이구나, 전체 속에서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광야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머리와 몸으로서 카운트되어서, 드디어 몸으로서 기능하는, 어느 누구도 자기를 머리로 주장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자기 육신의 영달을 주장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만족하며, 항상 기뻐하며, 모두가 육신에 매이지 않고, 육신의 욕망에 따라서 살지 않고, 케뎀의 문이 열려서 주어진 것 그대로, 영의 데스티니대로 사는 것이 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광야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 기도
주님, 파카드, 이제 알겠습니다. 주님이 지금 우리를 계수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지금 우리를 계수하고 계신다. 미스파르 쉐모트, 주님이 이 날을 기다리고 계셨다. 주님은 바미드바르의 시작을 기다리고 계셨다. 여러분들의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여러분들의 제자들을, 영적 자녀들을, 또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계수하고 계신다. 이 유기체적인 교회에서 주님이 나만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 나아쎄 베니쉬마, 우리가 행하고 우리가 듣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처럼,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
이 임마누엘의 주님을 영접한 참된 주님의 몸들로 인하여 주님이 여러분들의 사랑하는 자들을 카운트하고 계신다. 짐승의 수로부터 지키고 계신다. 여러분들의 기도만이, 사랑만이 마지막 때의 소망이다. 여러분들이 아니면 짐승의 수를 이길 수가 없다. 지금 주님 앞에 나와서 같이 기도하자. 주님 우리를 카운트하소서. 당신의 몸입니다. 당신의 신부입니다. 우리는 One body 입니다.
주님, 이제 우리에게 오십시요. 당신이 그렇게 갈망하는 케뎀의 문을 열고 오십시요. 문들아 머리들지어다. 케뎀의 문을 열고 이제 오십시요. 쉐키나의 영광으로 오십시요. 우리 가운데 와서 사십시요. 주님 이 마지막 시대에 당신의 군대를 계수하여 주십시요. 이 마지막 때에 이기주의와 개인 구원과, 개인 종교와, 싸울 수 있는 당신의 군대를 일으켜 주십시요. 그 여인의 후손들을 일으켜주십시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 토라를 받는 자들, 그리고 예수 증거를 가진 자들, 성막을 일으키는 자들, 주님이 당신의 군대로 계수하여 주시고, 하나되게 하여 주십시요. 그래서 우리가 케뎀에서 우리와 하나였던, 우리의 가족들을 지킬 수 있게 하시고, 우리의 가족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하시고, 가족들과 함께 당신의 집을 지을 수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