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싱
지나온 삶을 자주 언급하는 것을 보니 내게 그려진 나이테의 숫자도 어쩔 수 없나 보다. 1982년 어느 여름날인가 보다. 은행이라는 직장에 근무 할 때이니 삼십년이 훨씬 넘었다. 당시도 지금처럼 일찍 출근하는 습관은 버리지 않았다. 어떤 계기였는지 일본소설 “오싱”이라는 책에 흠뻑 빠져 들었다. 기억하건데 총 여섯 권으로 나온 신간 소설이었다. 아마 신문에 신간안내를 보고 구입한 것 같다. 일본의 방송작가 하시다 스가코의 소설이었다. 마치 내 영혼을 모두 그 책에 바친 것처럼 빨려 들어갔다. 어릴 적 내가 성장하면서 어렵게 겪은 내용이 함축되어 있어서 그런지 읽으면서 많은 동질감을 느끼며 감동 깊게 읽은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오싱“은 일본 동부 야마가타 현에 어느 산골마을에 일곱 살 밖에 되지 않은 여자아이가 가난에 못 이겨 쌀 한가마 값에 팔려 남에 집(제제소를 운영하는 부잣집) 더부살이로 가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지금처럼 꿈 많고 어떤 비전을 향해 발랄하게 뛰어 노는 청소년기도 아닌 일곱 살 때이니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한참 뛰어 놀 나이다. 어리고 학령나이도 아니니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못할 때가 아닌가. 그 만큼 당시 일본사회도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민초들의 삶이었나 보다. 우리의 보릿고개 시절처럼 말이다. 그 어린 소녀도 아닌 어린 여자아이가 남의 집 더부살이로 팔려 갔다니 지금으로 치자면 인신매매다. 그런 삶이 정말 싫어 도망쳐 나오고, 다시 붙잡혀 들어가 파란만장한 세월을 겪는 여자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며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조금 컸다고 가출해 처녀의 몸으로 미용사 기술을 읽혔으며 군에서 탈영한 “준사코“라는 청년을 만나 결혼하여 아기까지 낳은 그 여자 오싱은 지금 전국의 체인점을 가진 슈퍼마켓 사장이 되는 고난의 인생 일대기를 엮은 내용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그 소설의 책 표지에 이런 글이 있다. “한 밤 자고 두 밤 자면 집에 갈수 있을까?” 이 한 줄의 이야기는 너무나 가련해 눈물을 쏟지 않을 수 없는 정말 슬픈 내용의 한토막이다. 여자아이는 일곱 살 때부터 그 집에서 살며 성장 할 때에도 무채를 섞은 비빔밥으로 연명하며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무채 밥만 먹었을까. 많은 가족에 끼니가 부족했으니 가족 중 한 아이가 한 끼를 굶으면 다른 아이가 먹을 수 있었다는 내용에 그저 슬픈 세월이었다. “오싱“ 이라는 소설을 나와 같은 시대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도 꽤 많이 읽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교회에서 어느 권사도 그 책을 읽었단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68개국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었다고 하니 가히 어려운 한 시대를 지나온 삶의 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소설이 한참 인기리에 읽혀질 때이니 지금은 세상에 없는 당시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도 일본 나까소네 수상에게 ”오싱”을 통해 비록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의 원죄는 있지만, 전후 어려움을 극복하고 산업사회에 우뚝 선 일본을 극찬했다고 하니 소설 한편이 두 나라 동맹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맺었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일본뿐만이 아닌 우리나라 국민도 소설에 준하는 내용보다도 더 배고프고 어려웠던 시절을 많이 겪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창업의 재벌1세대를 비롯해 어떤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기업인과 또한 개인도 많을 것이다. 묵묵히 일하면서 교육을 통해 훌륭한 자녀들을 길러내고 우리나라를 이렇게 까지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일찍이 산업혁명을 일으키며 제일먼저 부강한 나라를 만든 영국을 비롯해 두 번에 세계전쟁을 일으키며 많은 양민을 학살한 독일국민과 서구에 강대국도 나름대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발전해 지금에 이르고 있지 않겠는가. 어려움을 모르고 성장하는 요즈음 세대들에게도 소설과 비슷한 내용은 아니더라도 교훈은 필요하겠다. 그 후 “오싱“은 1983년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일 년 동안 50% 이상의 국민이 시청했다니 1970년대 내용은 달랐지만 최고 인기리에 KBS TV에서 방송했던 드라마 “여로”가 떠오른다.
비틀즈 | 예스터데이
첫댓글 미역국에 고등어 구운것으러 점심 먹었습니다.
후덥지근한 날씨입니다. 점심 맛있데 드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