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앎이 가슴으로부터 세상을 감지하는 것을 느껴 보십시오
◈ 영적 가슴을 불러 일으키기
앎에는 가슴이 있습니다. 이 가슴의 특징은 정서적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의 하나임을 지각하는 직관적 능력이며, 거기에서 한 없이 조건없는 사랑이 흘러 나옵니다.
영적 가슴은 갑정적 가슴이 아니며, 열리고 닫히는 그런 가슴이 아닙니다. 그것은 특정한 곳에 있지 않지만 감정적 가슴과 같은 신체 부위 흉부에서 공명합니다. 앎의 가슴은 항상 열려있다는 면에서는 앎과 같지만 그 열린 상태는 가슴으로 충만합니다.
앎의 가슴은 친밀하게 연결되고 사랑하는 앎입니다. 그것은 집착도 요구도 없는 친밀함입니다. 그것은 닫힐 수도 없고 열릴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늘 이미 앎 자체 만큼 열려있고 광대하기 때문입니다.
앎에 가슴, 즉, 영적 가슴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는 그것을 그것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아예 있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그것에 민감해서 보고 그것에 고요한 현존의 주의를 두어 영적 가슴을 서서히 불러일으켜 보십시요. 앎이 머리 양과 주위에서 몸으로 내려와 흉부의 가슴 부위로 들어가게 합니다.
잠시 감정적 가슴에 주의를 게울이지 않습니다. 감정적 가슴이 그보다 큰 영적 가슴에 공간 안에 있음을 기억합니다. 어떤 감정이든 감정적 가슴에서 있는 그대로 일어나도록 허용합니다.
감정보다 훨씬 미묘한 것에 주의를 둡니다. 내가 가슴이라고 부르는 흉부의 고요함에 주의를 둡니다. 가슴에 주의를 둘 때마다 고요한 현존의 느낌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영적 가슴과 만나는 지점입니다.
이 미묘하고 고요한 현존을 알아차리고 느낍니다. 이러한 가슴의 현존은 주위를 가슴쪽으로 돌리는대 도움이 됩니다. 가슴에 현존이 머무르면 영적 가슴애 활짝 피어남에 자신을 열게 되지만 가슴에 활짝 피어남을 강렬하거나 몹시 행복한 느낌으로 오해하면 안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임을 경험하는 가슴에 지각 능력이 깨어나는 것입니다. 한계 없는 영적 가슴의 고요한 현존이 앎의 전체 장에 미묘하게 충만함을 느낍니다.
앎의 가슴이 현존함을 경험하면 영적 가슴에 잠재력이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앎을 가슴애 둘 때 앎에 느낌을 키우십시요. 앎을 가슴에 둘 때, 앎이 뛰는 현존의 질을 감지해 보십시요. 일상생활을 할 때 가슴속에 현존의 느낌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는지 봅니다.
앎이 머리 안과 주위에서 몸으로 내려와 흉부의 가슴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잠시 감정적 가슴애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감정적 가슴이 그보다 큰 영적 가슴의 공간 안에 있음을 기억합니다.
◈ 고요한 가슴의 현존에 헌신적으로 머무르기
자신을 늘 깊이 아끼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울 기억하십시요. 영적 가슴은 감정적 가슴보다 훨씬 미묘하고 고요하며 모든 생명과 깊고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직관적으로 느끼고 지각할 수 있습니다.
앎을 영적 가슴으로 향하게 하려면 앎이 가슴 센터로 내려가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앎이 가슴으로 내려가면 자신을 둘러싼 미묘한 고요와 함깨 미묘한 현존감 혹은 생동감을 느끼기 시작할 것입니다.
영적 가슴 안애 현존하는 것은 가슴 센터를 채우고 그곳에서 발산되는 따뜻한 햇살을 느끼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 현존은 온화한 것으로 경험될 때도 있지만 이따금 강렬하게 경험될 때도 있습니다.
가슴 안과 주위의 고요한 현존애 주의를 둡니다. 아무것도 붙잡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게 하려 하지 않습니다. 감각이 평온하고 고요해질 때 앎이 가슴으로 내려가도록 허용합니다.
영적 가슴에 시간과 주의를 드릴 때 거기에서 발산되는 현존의 미묘한 햇살을 느껴 보십시요. 사랑과 헌신을 겸손히 드리는 행위로서 가슴에 주의를 두십시요.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가슴에 현존에 앎을 바칠 때 그렇게 하는 사랑과 헌신과 성실함에 지르기 때문입니다.
받는 것보다 드리는 성실함에 관심을 기울이십시요. 가슴속 미묘한 현존감에 주의를 드리는 태도에 중점을 둡니다. 가슴에 주의를 되돌릴 때마다 곡물을 바치듯이 헌신의 행위로서 하십시요.
왜냐하면 당신은 이 삶에서 가장 귀중한 두 가지인 시간과 주위를 영적 가슴의 현존애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의미 깊은 큰 선물을 드리는 것처럼 헌신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십시요. 몇 분 뒤 가슴 센터로부터 주위를 둘러보고 보이는 것을 가슴이 어떻게 지각하는지 알아차리십시요.
고요의 눈과 가슴속 현존에 부드러운 빛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십시요. 가슴에 기반한 현존으로부터 볼 때 경험이 어떻개 다른지 알아차리십시요.
◈ 영적 가슴은 모든 생명과 친밀히 연결되어 있다.
영적 가슴은 감정과 반응의 센터인 갑정적 가슴의 넘어에 있으며 대다수 인간 안에 잠들어 있는 지각 센터입니다. 다양한 형태의 감정적 상처를 받은 우리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어렸을 때나 사춘기 초기에 어느 시점에 어느 정도 감정적 가슴을 닫고 영적 가슴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자기 보호는 충분히 이해할만 하지만 결국애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가슴이 닫히개 되고 모든 생명과 공유하는 하나임이라는 지고의 본성을 지각하고 경험하는 타고난 능력과 단절되며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자주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주 좋은 소식은 영적 가슴이 감정적 가슴과 다른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적 고통에 대해 순진하지만 잘못된 반응을 하여 영적 가슴을 외면할 수 있지만 그래도 영적 가슴은 전혀 손상되지 않습니다.
영적 가슴은 다치거나 파괴될 수 없으며 두려움이나 판단, 혹은 절망 없이 압도 당하지 않으면서 삶에 불가피한 비극적 측면을 담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적 가슴은 시공간에 물리적 차원에서 작용하지만 그 근원은 앎의 형상 없는 차원의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정적 가슴과 달리 영적 가슴에는 경계, 한계, 선호, 혹은 자아 중심적 판단이 없습니다. 우리는 영적 가슴을 잊을 수 있지만 그래도 영적 가슴은 절대로 다치지 않으며 한 번도 다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다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무지하여 외면하면 영적 가슴에 빛이 흐려진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것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참된 존재의 친밀한 측면이기 때문입니다.
영적 가슴은 늘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바라볼 때마다 그것은 늘 이미 현존합니다. 가슴 센터의 고요하고 미묘한 빛나는 현존으로 시선을 돌리십시요. 그것에 첫 번째 깜빡이는 빛은 가슴속과 주위에 있는 현존애 희미하고 조용한 속삭임으로 일어납니다.
그것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것을 붙잡으려 하지 마십시요. 그것을 통재하거나 소유하려 하지 말고 그것에 사로잡히려 하지도 마십시요. 단순히 그것에 모든 주의를 두기만 하십시요.
영적 가슴이 감각, 시각, 청각, 미각, 촉각과 섞이도록 허용하십시요. 세상을 바라볼 때 그 가슴이 아는 현존애 머무르면서 보십시요. 소리를 들을 때 영적 가슴애 고요함으로부터 소리를 들으십시요.
어떤 것을 맛볼 때 영적 가슴에 천진함으로부터 맛보십시요. 영적 가슴에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감지하십시요. 영적 가슴의 현존이 어떻게 보고, 듣고, 맛보고, 감촉하는 방식에 새로운 수준을 가져오는자 알아차리십시요.
더 친밀해짐을 모든 생명과 가까운 느낌을 알아차리십시요. 영적 가슴이 누구를 무엇을 지각하든 우리는 그에게서 혹은 그와 함께 전체임, 천진함, 친밀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영적 가슴애 고요한 현존 안애 감각들을 쉬게하여 감각들이 어떻게 점점 더 민감하고 생생해지는지 알아차리십시요. 감각들이 제각기 작용하기 보다 전체로서 작용하기 시작하고 영적 가슴이 각 감각을 통해 활동하기 시작할 것이며, 온 몸과 마음이 생기있고 생동감 넘치며 모든 생명과 친밀히 연결될 것입니다.
사랑이 그렇듯이 사랑이 하나임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친밀하고 연결되어 있는 경험입니다. 하나임에는 추상적인 것이 젼혀 없습니다. 이 하나임은 당신의 온 몸과 마음에서 경험됩니다.
앎이 머리 안과 주위에서 내려와 흉부 가슴 부위에 머무르게 합니다. 이렇개 하면 더 친밀히 연결된 존재의 경험을 느끼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가슴에서 시작하여 몸에서 하나임을 느낀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요.
주위를 둘러보고 자신이 가슴으로부터 보는 것을 감지햐 보삽시요. 세상은 물질의 형태로 가득합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전부 응축된 에너지 혹은 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요. 나무들, 벽들, 발 밑에 바닥, 자기 몸을 바라보고 그것들이 모두 응축된 에너지의 형태라고 상상해 보십시요.
그것들은 영, 즉, 의식이 있고 생기를 주는 존재의 힘이 다양하게 발현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생명애 대한 감을 잡아 보십시요. 우리는 영적 가슴을 깨우고 하나임이라는 실재를 느끼고 지각하는 그 가슴애 잠재력을 깨우려 하고 았습니다.
잠시 멈추고 가슴애 고요한 마음에서 편히 쉽니다. 하루에 몇 차례 이렇게 합니다. 자기 몸과 보이는 모든 것이 형태 없는 에너지 혹은 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은 신, 붓다, 의식이 살아있는 발현입니다. 영적 가슴이 깨어나면 당신은 생명을 그렇게 보고 경험할 것입니다. 상상 속에 세상을 포함하여 세상을 이런 식으로 만날 때 세상을 지각하거나 경험하는 자기의 방식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알아차리십시요.
어지러운 환상 속에서 길을 잃지 말고, 가슴을 통해 직접 경험하고 지각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앎이 가슴으로부터 세상을 감지하는 것을 느껴보십시요. 영적 가슴에 고요한 현존 안에 거하는 앎의 텅 빈 눈으로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바라보십시요.
눈에 보이는 모든 형상은 형상 없는 것이 발현된 것입니다. 지각할 수 있는 모든 존재는 하나인 존재, 즉, 보편적 존재의 표현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