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방식
1) 기계적 영감(Mechanical inspiration): 혹자는 축자 영감은 필연적으로 기계적 영감을 의미한다고 하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성명의 지도가 용어 선택에 미쳤다고 믿는 것은 완전히 가능하나 그 인도가 기계적 방식으로 역사하지 않았다. 이는 하나님이 성경 저자의 기록할 바를 불러 주어 저자는 단지 필기자일 뿐이며, 성령의 말씀이 통과한 통로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저자들의 심리생활은 정지 상태이고 그 기록의 내용에 나 형식에 아무 공헌도 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 견해는 성경의 다양한 문체가 승인하지 않는다.
2) 직관적 영감(Intuitional inspiration): 이는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진리의 통찰력의 고등한 발전이다. 세속적 진리의 이해가 철학이나 예술의 대(大) 저술을 산출하는 것처럼 도덕과 종교에 대한 이해가 성경을 산출한 것이라 한다. 이 이론은 성질상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시키는 펠라기우스주의와 이성론의 견해들과 계 있거나 범신론적 인관(汎神論的人觀)과 교통하고 있다.
3) 동적 영감(Dynamical inspiration): 이는 슐라이엘막허(Schleiermacher)의 교훈에 근거한 영감관인데, 성경 문서의 산출에 성령의 직접 사역의 관념을 거절하고 저자들의 일반적 영감 또는 조명 (illumination)의 관념으로 대치한다. 성경 여러 책의 저자들은 예수님의 주위에 있으며 계시의 경계에 생활한 성인(聖人)들이니 그 주위 환경으로부터 성격, 사상, 언론에 성화적 감화를 받았고 그 감화는 자연히 그들의 저서에 미쳤다. 다시 말하면 예수는 자기의 인격으로 자기와 함께 한 인격들을 영감하셨으니 그의 인격의 감화력 아래 저술되어 나온 성경 문서들은 그의 정신을 호흡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4) 유기적 영감(Organic inspiration) : 성경이 보여 주는 영감의 방식은 유기적 방식이다. 이는 하나님이 성경 저자들을 필기자가 붓을 임의로 휘두르듯이 사용하지 않으셨고 기록시키려는 단어들을 그들의 귀에 불어 넣지 않고 오직 그들의 내면적 실유(實有)의 법칙과 조화되는 유기적 방식으로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즉 하나님이성경 저자들을 그들의 성격, 성벽, 재능, 교육, 수양, 용어, 문체대로 사용하신 유기적 작업이 곧 성경의 영감이란 것이다. 이 유기적 영감이 성경이 가르치는 영감론이며 개혁신학은 이것을 표준으로 삼는다.
개혁주의신행협회 편, 『신학사전』(1993년), pp.305∼306.
첫댓글 성경의 영감에 대해서 개혁주의 입장을 잘 알려 주셨네요. 시간이 나면 벌코프의 영감설 설명을 첨부하겠습니다.
네, 아래에서 잘 읽었습니다.
축자영감설과 기계적 영감설은 다른 것
기계적 영감설과 축자 영감설은 비슷한 것으로 오해될 수 있지만 다릅니다.
그래서 개혁주의자 중 일부는 축자영감설이 기계적 영감설로 오해받을 뉘앙스를 제거하기 위해서 완전 영감설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https://cafe.daum.net/1107/YNWz/14
네, 두 개념을 혼동하면 안 되겠어요.
@노베 공감합니다.
장로교단 분열은 축자영감설 견해 차이로
https://cafe.daum.net/1107/Y4PR/23
기장의 자유주의는 잘못된 신학이고요. 위 인용된 기사와 기자가 축자영감설=기계적 영감설로 이해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네요ㅠㅠ 이미 벌코프가 축자영감설은 완전 영감설이지 기계적 영감설이 아니라고 했는데요.
옛 글들을 다시 보는 것도 도움이 되고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코람데오 공감과 격려 감사합니다 😀
유기적 영감설이 가장 합당한 것 같습니다. 오늘날은 축자영감설만 옳다고 할 것이 아니라 성서비평의 결과물들도 잘 활용하여 성경해석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절대적으로 100프로 옳은 이론은 없습니다.
좋은 포스팅입니다.
좋은 댓글 잘 참고하겠습니다.
그리고 축자영감설은 기계적 영감이 아니라 완전 영감인 것을 강조하는 본문과 벌코프의 의견에 또한 귀를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장코뱅 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