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4. 03
지난달 31일 공직자 재산공개가 이뤄졌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발표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끈 공직자는 이제 임기가 1개월여 남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의 재산변동사항에서 현 정부의 실패한 부동산 정책의 단면이 그대로 묻어났기 때문이다. 대통령 일가의 처신에는 딱히 위법사항은 없었지만 일반 시민과는 크게 달랐다. 특히 사인(私人)간의 채무액 11억원에 허탈감을 느끼는 국민들도 많았다.
문 대통령은 5월 9일 자정에 임기가 만료되면 경북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로 내려갈 예정이다. 경남 진해의 봉하마을로 내려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최근 대구 달성군에 거처를 마련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3번째 낙향한 전직 대통령이 된다.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평소 말처럼 낙향준비는 거의 마무리 단계다.
문 대통령은 천년 고찰 통도사 인근 평산마을에 796평의 부지를 마련하고 최근 사저를 신축하였다. 그러다보니 지난해 12월 31일 재산등록 시점에는 취임 전에 살았던 매곡동의 단독주택과 신축중인 평산마을의 단독주택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일시적 1가구 2주택자'가 된 셈이다.
일시적으로 1가구 2주택이 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기존의 주택을 팔고 새로운 주택을 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새로 이사갈 집을 먼저 알아본다. 문 대통령도 비슷했다. 문 대통령은 사저를 신축하기 위해서 농협은행으로부터 3억8873만원을 빌리고, 김정숙 여사는 사인간의 채무거래로 11억원을 마련했다. 청와대는 평산마을의 신축 비용의 부족분을 충당하기 위해서 개인으로부터 돈을 빌렸다고 설명했다. 매곡동 사저 매매계약이 최근 체결되어 김 여사의 채무거래액이 전액 상환되었다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주택가격을 안정시킨다는 명분으로 은행 대출을 규제해왔다. 이로인해 지난 몇 년간 많은 사람들이 금융기관의 대출제한으로 적지 않은 곤란함을 겪어왔다. 많은 경우 부족한 대출을 채우기 위해 신용대출을 받고, 주택이나 토지 등을 담보로 제2금융권의 문을 두드렸다. 그 경우 평소 3% 후반대의 이자로 대출을 받던 사람들도 5~7%까지 이자부담이 늘어난다.
이자를 갚기 위해서는 그만큼 생활비를 줄여야 한다. 또 가족 간의 금전 거래를 위해 차용증을 상세히 작성해야 한다. 부모의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으면서 형제간에 얼굴 붉히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이마저 어려운 경우에는 계약금을 날리는 경우도 생겨났다. 장시간 출퇴근에 시달리면서도 자금마련의 어려움 때문에 아예 이사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일들은 정부가 국민들을 '잠재적 부동산 투기꾼'으로 간주, 대출한도를 강력히 규제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나 김 여사는 일반인들과 상황이 다를 것이다. 11억원을 빌릴 수 있는 지인도 있고, 그 정도의 신용은 있을 것이다. 등기부에 근저당권 설정을 하지 않을 정도로의 충분한 신뢰가 형성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인과의 채무거래에 앞서, 일반 국민은 어땠을까를 먼저 생각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은행대출이 막혔다고 개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11억원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은 구태여 은행창구의 문을 두드리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일반인들은 또 금융자산을 먼저 활용한다. 은행예금이 있다면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일정금액을 제외하고 그 돈을 주택마련에 사용한다. 예금이자는 언제나 대출이자보다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은행 등 금융기관에 6억4000여만원의 금융자산이 있는데도 공사대금 전부를 은행과 개인과의 거래로 빌려 빚의 규모를 늘렸다. 만약 4~6개월 뒤 예전 주택과 토지의 매각대금이 들어올 것을 예상한다면, 예금을 이용하면 개인간 채무는 5억원 남짓이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면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도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대통령도 일반국민의 불편함을 똑같이 경험하라는 것은 아니다. 상황과 처지가 분명 다르다. 하지만 대통령은 '지인 찬스'를 통해서 필요자금을 변통하면서 일반 국민들의 곤란함을 나몰라라 하는 것은 올바른 위정자의 모습은 아니다. 대통령 일가처럼 지인 찬스가 없는 경우에도 고금리에 내몰리지 않고 주택을 마련하고, 이사가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지금 논란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에게도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었으면 한다.
홍성철 /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디지털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