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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4. 05.
‘세계 최강의 스마트폰 업체일 뿐 아니라 세계 최강의 반도체회사’.
지난 9일 새벽(한국시각)의 애플 신제품 이벤트를 보며 든 생각이었습니다. 애플은 최근 들어 자사의 거의 모든 제품에 자체 개발한 반도체를 탑재하고 있는데요. 이번 발표를 보니, 모바일을 넘어 PC 프로세서의 성능·물량 양쪽에서도 업계 주류 자리를 굳힌 것 같았습니다. 애플은 퀄컴 같은 AP 설계회사뿐 아니라, 인텔·AMD·엔비디아 같은 PC 기반의 CPU·GPU 회사들과 정면 승부를 벌이고 있죠.
▲ 애플의 팀 쿡 CEO가 지난 3월9일 새벽(한국시각) 신제품 출시 행사에서 '아이폰 SE' 3세대 모델을 소개하고 있다. / 애플 이벤트 동영상 캡처
◇ 세계 스마트폰 매출 44% 차지하는 애플, 반도체 회사로도 톱클래스 지위 굳혀
애플은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의 최강자일 뿐 아니라 매출에서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44%를 차지합니다. 질과 양 모두 확실한 1등이죠. 조사회사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작년 전 세계 스마트폰 매출은 4480억 달러(약 549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는데요. 메이커별로는 애플이 전년 대비 35% 증가한 1960억 달러(약 240조원)로 전체의 44%를 차지해 1위, 삼성전자가 720억 달러(약 88조원)로 2위였습니다. 중국의 오포(OPPO)가 370억 달러로 3위, 샤오미·비보가 4·5위를 차지했죠.
정리하면 애플과 삼성전자가 판매대수에선 비슷하지만, 매출에선 삼성전자가 애플의 3분의 1입니다. 그리고 중국 스마트폰 상위 3사의 작년 매출을 모두 합쳐도 애플 매출의 5분의 1에 불과하죠.
◇애플, 지난 9일 최신 A15 칩 탑재한 염가형 ‘아이폰 SE’ 3세대와 자사 최고 성능의 PC용 프로세서 M1 울트라 탑재한 ‘맥 스튜디오’ 선보여
애플은 아이폰에 들어가는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모바일제품의 두뇌에 해당하는 반도체)인 ‘A 시리즈’를 자체 개발(생산만 대만 TSMC에 위탁)하고 있으니, 당연히 애플은 세계최고의 스마트폰용 반도체 회사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전체 물량은 AP 전문회사인 미디어텍(대만)·퀄컴(미국)이 더 많지만, 종합 성능이나 단일 AP 물량, 매출·이익 면에서는 애플이 사실상 원톱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애플이 스마트폰에 이어 PC용 반도체에서도 인텔(CPU)·AMD(CPU·GPU)·엔비디아(GPU) 급 혹은 어떤 의미에서 그들을 넘어서는 수준의 강자로 부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애플이 자체 개발한 반도체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이폰에 들어가는 AP인 ‘A 시리즈’. 또 하나는 자사 PC에 들어가는 프로세서인 ‘M1′이죠.
애플이 A 시리즈는 오래전부터 자체 개발해 왔지만, PC 에 들어가는 프로세서는 인텔 제품을 탑재해 왔었죠. 그러다가 2020년 11월에 아이맥(24인치), 맥 미니, 맥북 등에 자사 최초의 PC용 자체개발 칩 M1을 탑재하기 시작했고요. 첫 탑재 이후 불과 1년 반 만에 M1시리즈는 이번에 발표된 최고성능의 칩 ‘M1 울트라’를 포함해 4 종류로 늘어났고, 탑재 기종도 10 종에 이르게 됐습니다.
◇ 애플, 강력한 ‘전성비’ 프로세서로 제품 경쟁력 끌어올리고 고객층도 확대, 애플의 반도체 전략은 시간이 갈수록 더 큰 힘 발휘... 앞으로 내놓을 AR 기기나 ‘애플카’ 경쟁력 향상에도 큰 역할 맡을 듯
M1칩의 경우 아직은 PC시장의 주류인 인텔 제품 등에 비해 규모에서 밀리지만, 성능 특히 전성비(소모전력 대비 성능)에서 경쟁 칩을 능가하고요. 이 같은 성능을 발판으로 애플이 자사 데스크톱과 노트북뿐 아니라 아이패드에서도 탑재 비중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반도체회사로도 업계 톱클래스가 되어버린 애플, 그들의 반도체 전략이 어떻게 제품 경쟁력과 애플 생태계 확장으로 연결되는지를 세 가지 포인트로 살펴보겠습니다.
▲ 애플의 PC 제품군용 프로세서인 'M1'. 왼쪽부터 기본형인 M1, 성능향상 제품인 M1 프로, M1 맥스. 맨 오른쪽은 이번 이벤트에서 새로 내놓은 최고성능 버전 'M1 울트라'. M1 맥스 칩을 2개 이어붙여 성능을 극대화했다. / 애플 이벤트 동영상 캡처
◇ 1. 주력 시장의 아래·위로 고객층 넓히기
애플은 이번 이벤트에서 두 가지 중요한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아이폰 시리즈 가운데 염가제품인 ‘아이폰SE(3세대)’와 고성능 데스크톱 PC인 ‘맥 스튜디오’입니다. 두 제품이 지향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주력 고객층을 가운데 놓는다면, 아이폰 SE는 그 아랫급, 맥 스튜디오는 윗급을 끌어들임으로써 고객층을 더 넓히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제품 전략의 핵심에 애플의 반도체가 있습니다.
아이폰 SE부터 얘기해 보죠. 이 제품은 애플이 작년 가을 발표한 애플의 주력제품 ‘아이폰 13시리즈’ 기본형보다도 43%나 저렴합니다. 그런데도 아이폰 13시리즈에 탑재된 최첨단 AP인 ‘A15′를 똑같이 탑재했다는 게 특이합니다. 가장 저렴한 아이폰이지만, 칩 성능만큼은 고급모델과 거의 같다고 어필하는 것이죠.
어떤 의미일까요? 우선 드는 생각은 카니발라이제이션(자사 제품 잠식) 우려. 두 번째는 프리미엄급 안드로이드폰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입니다.
애플이 저가 아이폰에 최첨단 AP를 탑재한 것은 첫 번째보다 두 번째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봤기 때문일 겁니다. 아이폰 SE 2세대의 최근 판매를 보면, 보급형 저가폰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아이폰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0%를 넘지 못했습니다. 주력시장에서 아래쪽으로의 확대를 노린 보급형이었지만, 실은 아이폰 라인업 가운데 틈새시장용에 불과했다는 것이죠.
이번에는 애플의 주력시장 아래쪽으로 영역 확대를 확실히 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에 발표된 3세대의 외형은 2세대와 거의 같습니다. 최첨단 AP가 탑재되긴 했지만 카메라는 기본적인 것만 달렸고, 디스플레이도 13시리즈보다 작죠. 화면이 작기 때문에 수요가 한정적일 수는 있겠지만, 애플의 칩 성능을 싼값에 즐겨 보려는 신규 고객이 있을 것이라는게 애플의 생각일 겁니다.
▲ 애플은 M1 울트라를 탑재한 자사의 데스크톱 PC '맥 스튜디오'가 인텔 칩을 탑재한 맥 프로보다 CPU 성능이 90% 높다고 밝혔다. / 애플 이벤트 동영상 캡처
공교롭게도 최근 플래그십 안드로이드폰의 경우 칩 성능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삼성의 갤럭시 S22 시리즈도 퀄컴의 최상급 AP를 탑재하고도 발열과 성능제한 이슈로 논란이 일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A15 칩을 탑재한 저가 아이폰, 즉 삼성 플래그십 스마트폰보다 화면은 작고 기능도 제한적이지만 칩 성능이 뛰어나고 가격은 절반인 아이폰 SE가 힘을 발휘할지 모른다는 것이죠.
삼성 스마트폰에는 악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안 그래도 중저가에서 중국폰 공세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안드로이드 진영 최고의 프리미엄폰 지위가 아이폰 SE 같은 애플의 염가폰까지 가세하면서 일부 무너질 우려도 있으니까요.
또 애플은 이번 이벤트에서 고성능 데스크톱 컴퓨터의 신제품 ‘맥 스튜디오’를 내놓았는데요. 본체에다 신형 모니터까지 구입하려면(다른 일반 모니터 연결도 가능하기 때문에, 꼭 신형 모니터를 구입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만) 한국 돈으로 기본 500만원 정도는 줘야 하기 때문에 가격은 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기에 탑재된 칩의 성능이 상당히 높다는 것입니다. 맥 스튜디오 고성능 모델에는 앞서 말씀드린 애플의 PC용 칩 M1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M1 울트라’가 탑재됐는데요. 애플은 M1 울트라를 탑재한 맥 스튜디오가 인텔 칩을 탑재한 맥 프로(맥 스튜디오보다 가격도 비쌈)보다 CPU 성능이 90% 높다고 밝혔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래픽 처리 성능 등이 크게 개선됐기 때문에 영상을 업으로 하는 전문가 수요가 있을 것 같고요. 콘텐츠 등을 찍어 수익을 내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가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전 세계 크리에이터들도 관심을 가질만합니다.
▲ 애플은 M1 울트라를 탑재한 맥 스튜디오가 인텔 칩을 탑재한 맥 프로의 CPU 와 같은 성능을 낼 때 전력을 100W 덜 소모한다고 설명했다. / 애플 이벤트 동영상 캡처
◇ 2. 점점 더 명료해지는 애플 반도체 전략... 소품종 초대량생산과 모듈 설계, 효율과 성능의 양립 실현하다
이번 이벤트를 통해 애플 반도체 전략의 그림을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우선 아이폰 SE(3세대)를 생각해 보죠. 외형적 요소는 전작(2세대)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약 2년 만에 새로 출시된 제품이 2년 전 제품과 겉모습이 비슷하다는 것은 통상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얘기죠. 하지만 3세대 아이폰 SE는 전작보다 가격을 약간 올리고도 시장 반응이 좋은 편입니다. 그 이유는 칩 성능이 크게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이폰 13에 들어가는 고가·고성능 칩을 염가폰에 똑같이 집어넣는다는 것은 원가 측면에서 불리할 수도 있죠.
하지만 원가의 불리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유리함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드웨어적으로 제품을 크게 바꾸지 않고도 고객에게 새로운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상 스마트폰은 매년 디자인부터 거의 모든 스펙을 개선합니다. 이 과정에 아주 큰 비용과 인력과 시간이 투입되고, 급하게 많은 것을 바꾸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위험도 커지죠. 이런 비용과 리스크를 막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두 번째는 최신 AP인 A15 시리즈의 양산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도체의 자체 개발은 타사 제품과의 차별화로 이어지는 반면, 개발비가 1조원 가까이 들기도 할 만큼 막대한 비용이 소모됩니다. 엔지니어를 확보해서 개발하고 검증까지 마치는 과정의 이런 막대한 비용을 흡수하려면, 해당 반도체가 탑재된 제품을 더 많이 팔아서 양산 효과를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따라서 아이폰 SE를 위해 구형 AP 재고를 활용하거나 별도의 저가 AP를 만드는 것보다, 아예 A15라는 하나의 고성능 칩을 더 많이 만들어 탑재하는 편이 전체적으로는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번 아이폰 SE 3세대는 AP성능이 크게 올라간데다 아이폰 SE로서는 첫 5G 대응 제품이라 올해 판매대수가 3000만대를 넘어설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A15칩이 아이폰 13시리즈, 아이폰 미니에 이어 아이폰 SE까지 공통으로 탑재된다는 건 그만큼 이 AP의 생산물량이 늘어난다는 의미이고, 물량의 증가는 단가 인하로 연결됩니다.
조사회사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아이폰 SE를 포함한 아이폰 전 기종의 2022년 세계 출하 대수는 전년 대비 4.7% 증가한 2억4400만대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제품에 A15라는 단일한 AP가 탑재되죠. 전 세계 어떤 AP 혹은 어떤 단일 프로세서도 애플 A15의 양산 효과를 이기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애플이 데스크톱 PC로 새로 내놓은 맥 스튜디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제품의 경쟁력의 핵심도 프로세서이지요.
‘맥 스튜디오’라는 제품도 새로웠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제품에 탑재된 신형 프로세서 ‘M1 울트라’였습니다.
이미 애플은 2020년 11월에 M1이라는 자사 PC용 칩을 내놓으면서 맥북 에어와 맥북 미니에 처음 탑재했었죠. 그리고 작년엔 24 인치 아이맥까지 탑재를 확대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10월에는 M1의 성능을 더 높인 ‘M1 프로’와 ‘M1 맥스’를 탑재한 고성능 제품인 맥북 프로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거기에다 이번에 M1 맥스보다 더 뛰어난 성능을 가진 M1 울트라를 내놓은 겁니다. 재미있는 것은 M1 울트라가 새로운 기판을 쓴 것이 아니라, 기존의 M1 맥스 칩 2개를 이어 붙여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것은 모든 반도체 엔지니어들이 꿈꾸는 설계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고성능 칩을 매번 새로 개발하는 게 아니라, 그 칩을 연결해 성능을 계속 높이는 일종의 모듈화 설계입니다. 물론 M1은 단일 칩이 아니라 그 안에 CPU·GPU·NPU 등을 통합한 칩이기 때문에 칩을 단순하게 2개 연결한다고 성능이 2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애플은 처음부터 M1 울트라 같은 칩을 내놓을 것을 염두에 두고, 연결기술(애플 용어로는 울트라퓨전)을 채용해 방대한 대역폭을 가능하게 만들어 2개 칩 사이의 통신 병목현상을 최소화했다는군요.
M1 울트라 칩을 통해 애플이 거둘 수 있는 효과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은 매번 칩을 새로 개발하지 않고도 칩의 성능, 다시 말해 제품 성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M1칩의 경우 기본형 M1칩에서 M1 프로, M1 맥스로 가는 과정은 기판의 크기를 늘려 단위 면적당 집적한 트랜지스터 숫자를 늘리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M1 울트라에서는 기판을 더 키우지 않고, 기존에 가장 강력했던 칩(M1 맥스) 2개를 이어붙여 성능을 끌어올렸죠.
이게 가능하다면, 앞으로 고성능 칩을 개발할 때 칩을 아예 새로 개발하지 않고 M1 맥스 칩을 4개, 혹은 8개 이어붙이는 것은 어떨까요? 칩을 무한정 이어붙이는 것은 어렵다고 해도, 2개를 이어붙이는 것에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은 꽤 있어 보입니다.
애플은 이미 주요 PC 제품군의 칩을 기존의 인텔 제품에서 자체 개발의 M1 시리즈로 대부분 교체한 상황인데요. 하나 남은 것이 ‘맥 프로’입니다. 애플은 이번 제품 발표에서 이 부분을 언급하면서 “맥 프로에서 어떤 뉴스를 발표할지는 다음 기회로 넘기겠다”고 여운을 남겼죠. 애플의 다음 이벤트에서 신형 맥 프로를 발표하게 될 텐데요. 발표의 핵심은 역시 애플의 새로운 고성능 프로세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M1 울트라칩이 보여준 두번째 효과는 양산 효율입니다. 애플은 M1의 성능을 높인 M1 프로·맥스를 내놓으면서 다소 ‘무식한’ 방법을 썼습니다. 더 첨단의 초미세공정을 사용하지 못한 대신, 즉 단위 면적당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하지 못한 대신, 기판 크기를 키워 더 넓은 면적에 단위 면적당 같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하나의 칩에 집적한 트랜지스터 숫자를 높이는 방법이었죠. 이렇게 되면 성능은 높아지지만 칩의 크기가 커지게 되죠. 그런데 칩의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해당 반도체의 수율(생산품 가운데 정상제품이 나오는 비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도체를 만드는 소재인 ‘웨이퍼’의 형태가 원형이기 때문에, 사각형인 칩의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칩을 잘라내고 버려야 하는 웨이퍼 양이 늘어날 수밖에 없겠죠. 모두 낭비이고 수율 저하입니다. 게다가 칩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불량률이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애플이 M1 맥스 칩 2개를 이어붙여 M1 울트라칩을 만든 것은, 성능을 크게 끌어올리면서 생산 효율도 함께 생각한 매우 영리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애플의 반도체 전략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우선 모바일용 A시리즈 칩을 여러 개 혼용하지 않고, 당대의 최신칩을 제품의 급에 상관없이 공통으로 대량 탑재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리고 더 높은 성능이 필요한 PC 혹은 관련 제품에는 전부 M1칩을 공통으로 탑재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더 고성능이 필요할 경우엔 칩을 이어붙이는 묘기를 앞으로도 선보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리고 M1 칩의 제품 주기가 끝나고 나면, 차세대 미세공정으로 만든 M2로 바뀌면서 한 번 더 비약적인 성능 향상을 이룰 테고, 또 M2를 이어붙여 더 높은 성능의 칩을 탑재한 고성능 제품을 미래에 내놓게 되겠죠.
또 하나 생각해볼 것이 애플의 이런 반도체 전략이 애플의 AR(증강현실) 제품, 애플카 등 모빌리티 제품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입니다. AR기기나 자율주행·스마트카에는 고도의 화상처리 능력이 요구되는데요. 여기엔 강력한 컴퓨팅 파워가 필요하죠. 따라서 이들 제품의 경쟁력은 칩 성능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성능 칩은 단가가 비싸고 전력도 많이 소모하죠. 애플의 칩은 소모전력 대비 성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앞으로 AR·스마트카 시대에 애플이 내놓을 제품의 성능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할 겁니다. 또 M1칩을 뜯어본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칩은 애플카에 장착될 미래의 칩 설계와 연결돼 있습니다. M1이후의 M2 혹은 M3칩은 애플카에도 사용될 수 있겠죠. 그리고 자율주행에 필요한 강력한 컴퓨팅 파워를 필요로 한다면, M3칩을 여러 개 이어붙인 ‘M3 수퍼울트라’ 칩이 애플카 최고급 사양에 탑재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애플의 M 시리즈 칩 전략이 지금의 애플 PC 제품군 탑재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애플의 미래 제품 전략과 연결돼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이벤트에서 엿볼 수 있었던 애플의 반도체 전략 마지막 부분은 신형 데스크톱 ‘맥 스튜디오’와 세트로 쓰도록 만들어진 모니터(스튜디오 디스플레이)였습니다. 이 제품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디자인이나 화면 성능만이 아니라, 별도의 고성능 AP가 들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니터에는 이전 아이폰 11시리즈, 아이폰 SE 2세대에 탑재됐던 AP인 ‘A13′이 들어갑니다. 물론 모니터에도 프로세서가 들어가긴 합니다만, 아이폰의 두뇌로도 쓸 만큼 고성능 제품을 탑재한다는 것이 의외였는데요. 우선은 내장카메라를 통한 화상통화, 공간음향, 시리 호출 등을 매끄럽게 작동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IoT 시대, 즉 모든 디바이스에 그 제품을 제어할 수 있는 고성능 칩이 탑재되는 시대가 한층 더 다가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확대 해석하자면, 앞으로는 모니터 등 PC 주변부품에 그치지 않고 가전제품까지도 칩의 성능이 그 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앞당겨질 것 같기도 했습니다.
▲ 애플이 지난 9일 새벽(한국시각) 이벤트에서 새로 내놓은 '아이폰 SE' 3세대. 작년 가을 발표된 애플의 주력제품 ‘아이폰 13시리즈’ 기본형보다도 43%나 저렴하지만, 아이폰 13시리즈에 탑재된 최첨단 AP인 ‘A15’를 똑같이 탑재했다. / 애플 이벤트 동영상 캡처
◇ 3. 제품 생태계에 대한 애플과 삼성의 차이, 장기적 계획과 단기적 성과 중시의 차이일 수도
이번 애플 이벤트를 보면서 다시 한번 애플의 장기적인 전략의 힘을 느꼈습니다. 애플이 A15 칩을 이렇게까지 확대해나가는 것, 불과 2년도 안 되는 기간에 자사의 PC제품군 대부분을 자체 개발 M1 칩으로 교체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말입니다. 모바일 쪽은 A시리즈, PC 쪽은 M시리즈라는 2개의 프로세서로 단순화하면서, 애플의 전체 제품군을 소화하는 능력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이런 전략은 단기적인 성과를 강조하는 기업문화에서는 나오기 어렵겠죠. 반도체 전문인 아니었던 회사에서 반도체를 직접 개발하고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깊은 기술적 안목을 갖고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 끝까지 실행할 수 있는 리더십·기업문화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애플의 반도체 전략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고, 전략이 지향하는 바는 얼마나 멀리 넓게 이어져 있을까요? 애플이 새로 내놓는 아이폰 제품 하나만 봐도, 제품 출시 3년 전부터 그 아이폰에 탑재할 프로세서 스펙을 고정하고 거기에 맞춰 제품 성능·서비스를 준비한다고 합니다. 단일 제품과 반도체의 연결이 이런 정도인데, 전체적인 반도체 전략은 이보다 더 큰 그림과 장기적인 사고를 통해 만들어졌을 겁니다.
애플이 어쩌면 전 세계 모든 반도체회사의 꿈인 ‘소품종 초대량생산’ 시대를 이끌 주역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모바일용 AP인 A시리즈는 연간 수억개씩 찍어내고 있죠. 단일한 고성능 프로세서 가운데 세계최대 생산량일 겁니다. 애플 PC제품군에 들어가는 M1은 그에 비해 수량은 적지만, PC뿐 아니라 아이패드 프로에 이어 이번 발표에서는 아이패드 에어까지도 확대 적용됐죠. M1 시리즈가 탑재된 맥북만 해도 연간 판매량이 2000만대가량 됩니다. 맥북 판매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다 M시리즈 칩이 모빌리티나 다른 고성능 제품군을 확대될 수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M시리즈도 연간 억개 수준의 생산을 하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다음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모바일용 A시리즈과 M시리즈 칩이 통합된다면요? 아이폰이든 맥이든, 앞으로 나올 애플 제품이 궁극적으로 단일 칩을 탑재하게 되고, 그 안에서 소프트웨어적으로 성능을 조정하는 것도 아예 불가능한 얘기는 아닐 겁니다. 더 높은 성능이 필요할 경우 칩을 이어붙이는 식으로 모듈화하는 것을 더 폭넓게 사용하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 M1 울트라 칩을 만들 듯 말입니다.
이미 A시리즈와 M시리즈는 영국의 반도체 원천설계 전문회사인 ARM의 설계 기반을 쓰고 있기 때문에, 맥이 인텔 CPU를 탑재했던 시절에 비해 애플 기기 간 연결이 비약적으로 향상됐죠.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해 모바일기기·PC 상관 없이 프로세서를 하나로 통일할 수 있다면, 애플은 단일 설계 칩을 연간 억개가 아니라 10억개 단위로 찍어낼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의미의 ‘소품종 초대량생산’을 이루게 될 것이고, 애플이 이런 엄청난 양산을 통해 확보한 성능 대비 원가 경쟁력을 경쟁업체가 당해내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겠죠.
애플과 TSMC가 이와 관련해 아주 장기적인 계획을 함께 세우고 있을지도 큽니다. 지금도 애플은 TSMC의 최대 고객이죠. 천하의 TSMC라도 자사 최첨단 공정에 오랫동안 대랑으로 발주해줄 고객이 필요합니다. 애플처럼 첨단 칩을 연간 억개 단위로 발주하는 고객은 TSMC가 반드시 함께 가야 하는 파트너이죠. TSMC의 작년 고객 상위 3개사는 애플(TSMC 매출의 25.4%), AMD(9.2%), 미디어텍(8.2%)이었는데요. 올해도 애플이 TSMC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를 넘어설 것으로 보입니다. 애플이 M1에 이어 내놓을 차세대 칩 M2는 TSMC의 4나노 공정이 사용될 것으로 보이고요. M2 프로와 M2 맥스는 TSMC의 3나노 공정에서 생산되는 최초의 칩이 될 것이라는 것이 업계 관측입니다.
반면 삼성은 야심 차게 내놓은 새 플래그십폰 갤럭시 S22 시리즈의 프로세서 관리 문제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고성능을 요하는 앱 사용 시에 탑재된 프로세서의 발열 등으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데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성능을 제한하는 기능을 광범위하게 사용했다가 비판을 받고 있죠. 이 문제를 조기에 진화하지 못하면, 이제 막 출시한 갤럭시 S22 시리즈는 물론, 삼성 스마트폰 전체의 신뢰도에 손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겠지만, 어떤 특정인의 잘못된 결정이나 특정 사업부서의 부진에서 끝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근본적인 이유를 계속 파고들어가다 보면, 거기에는 결국 단기적인 성과 위주의 기업문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인사·조직 구조가 있을 겁니다.
애플의 이번 발표를 보면, 반도체를 중심으로 장기적인 그림을 그려 차근차근 실현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발표 내용이 꽤 기술적인데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고 구체적입니다.
그리고 이벤트 발언을 잘 들어보시면 애플은 ‘애플 에코시스템’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반대로 최근 삼성 이벤트를 보시면 거의 모든 발표자가 ‘삼성 에코시스템’이라는 말을 되뇌고 있죠. 어느쪽이 제품 생태계를 제대로 만들어가고 있는지는 굳이 양쪽 회사의 발표자 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제품 생태계는 제품 하나의 형태를 새롭게 디자인한다거나, 기술·성능 하나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게 아닐 겁니다. 애플 제품을 잘 살펴보시면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탑재한 경우는 거의 없죠. 이미 존재하는 기술의 완성도를 높여 애플 제품군에 잘 녹여내고, 처음엔 효과가 크지 않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전체 최적화에 수렴하도록 장기적으로 전략을 잘 짜는 것뿐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깊은 기술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지향점을 명확히 세운 뒤에 계획을 잘 수립해 차근차근 장기적으로 달성해 나가는 것이겠죠. 그 핵심이 애플의 반도체 전략에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