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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생명의 떡, 예수
Text Jh 6,52-59
(52)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5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1.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통하여 살아났고 예수로 말미암아 살며 예수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가 삶의 근원이며 예수가 삶의 수단이고 예수가 삶의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앞에서 말한 두 번째, 예수로 말미암아 사는 존재가 성도임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본문은 예수로 인하여 살아난 생명이 예수를 삶의 자양분으로 삼아 그 생명을 유지해 가는 사람이 성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찬송가에 실려 있지 않지만 찬송 중에 ‘아름답다 예수님’이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1. 아름답다 예수님 나에 좋은 친구 날 위하여 죽음과 날 위하여 사셨네
(후렴) 예수님 내주여 내 중심에 오셔서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옵니다.
2. 저의 모든 일체는 주님 것이 되고요 주님 모든 일체는 저의 것이 되시오
3. 예수 없는 사업은 성공 끝에 실패요 예수 있는 생활은 만사 유익합니다.
4. 예수님은 내 생명 또한 저의 기쁨 예수 없는 내생이면 잠시라도 못 사네
5. 아침에는 예수로 눈을 뜨게 하시고 저녁에는 예수로 잠을 자게 하시네
6. 밭에 나가 일할 때 주님 감독하시고 집에 홀로 있을 때 예수 사랑 한없네
7. 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산다 하여도 예수 떠난 중생은 사는 법이 없어요
8. 예수 없는 천국은 내가 원치 않고요 예수 있는 지옥도 내가 싫지 않아요
9.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에 백합화 아름답고 귀하다.
10. 저 산 밑에 백합화 빛나는 새벽 별 가시밭에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린다.
11.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승천 내 승천 예수 친구 내 친구
비록 곡조와 표현하는 정서는 요즘 사람들 취향에 맞지 않을는지 몰라도 그 내용만은 예수님이 살려주신 생명을 예수님만을 자양분으로 삼아서 살 것과 예수님만을 위해서 살 것을 표현하는 데는 최고가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기관별로 수련회나 수양회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데, 날씨가 정말 환장할 정도로 덥지요? 수련회를 통하든, 오늘 예배를 통하든, 예수님에 대한 열정이 요즘 기온만큼이나 뜨겁게 되기를 기도하면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2.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굶주렸던 사람들에게 양식을 주셨습니다.(1-15) 그 기적의 떡을 먹었던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면 절대 굶주릴 일이 없겠다는 생각에 ‘예수를 왕으로!’라는 군중심리가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과는 달리 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피해 한적한 곳으로 가 기도하시고 제자들도 호수 건너편으로 보내 잠시 쉬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제자들이 가는 곳을 알고서 걸어서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군중들을 다시 만난 예수님은 ‘먹는 빵’만 생각하지 말고 ‘썩지 않는 영생의 빵’을 찾으라고 하시면서 당신은 이 빵을 줄 수 있는,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그랬더니 그들은 하나님의 인치신 자이신 당신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그 빵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당신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답하십니다. 계속해서 그들은, 모세가 광야에서 백성들의 먹거리 문제를 해결해 줬듯이, 당신을 믿을 수 있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모세가 주었다고 아는 떡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떡이라 짚어주시면서 그 떡은 육신을 위한 양식일 뿐이었지만 내가 주는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라 하십니다. 군중들은 모세 당시의 백성들이 광야 생활 내내 만나를 먹었듯이 자신들도 그 떡을 항상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6,28-34)
이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십니다.(6,35-51) 이 말을 들은 군중들은 수군거립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인 줄 알고 있는데,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거기에다 자신의 살이 ‘먹어 영생할 수 있는, 세상의 생명을 위한 살’이라고 하자, 서로 다투기까지 하면서, ‘어찌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이 본문 52절입니다.
그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라는 말씀은 58절까지 이어집니다. 이곳에서 ‘먹다’라는 말이 56, 57, 58절에서도 계속 사용되는데, ‘씹어서 부수다’(동물이 먹는 것)는, 마치, ‘처먹는다’는 것같이 매우 조악한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이 표현을 마24,38에서 노아 홍수 때에 멸망하기 직전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하던 사람들에게도 사용하셨었습니다. 주님은 동물이 이렇듯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먹듯이 당신의 살을 그렇게 먹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당신의 살을 먹어야 산다는 말씀이 얼마나 리얼하고 진지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은 이 말씀을 “아멘, 아멘!”으로 시작하셨다는 점도 그같은 예수님의 진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유대인에게 매우 낯설고 충격적인 이 표현은 오늘의 우리 중에 누군가도 피상적인 이해로 복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면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낯설게 들릴 것입니다. 청중의 대다수는 예수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라는 구절은 그들 사이에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도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절대다수는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때부터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떠났다는 6,66절이 그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60절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들이 알고 있던 성경(구약)과 전혀 다른 것을 가르치셨을까요? 예수님은 당연히 구약을 바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표현은 구약의 여러 곳에 있습니다(잠9,2-6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사44,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따라서, 음식을 먹을 때, 날 것, 혹은 피채 먹지 말라(레7,26)는 율법의 피상적 표현에 얽매어 있던 그들이 문제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말이라 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일단 거부부터 할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알고자 노력하면 충분히 알 수 있거나 하나님께서 알게 하실 것입니다.
결국 이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당시 제자들조차 수군거릴 때에, 예수님께서 “너희도 가려느냐”(67절)고 물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수군거렸지만 베드로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68)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제자들도 깨달아 알지 못하였지만 믿어서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도 그렇지 않은 이가 있었으니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깨달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완악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70절)
여러분, 믿던 믿지 않던, 인정하든 않든, 예수님의 살과 피가 영생의 양식이요 음료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믿어져야 합니다. 이보다 더한 말씀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모르겠다면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진지하게 말씀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도마도 의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믿게 되었듯이 그렇게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믿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3. 예수님의 살과 피를 어떻게 먹고 마시느냐는 것과는 별개로 어떻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 혹은 그리스도인이 안심하고 먹고 마시며 자양분을 취할 수 있는 ‘자람터’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로만 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살이 내 살이 되어야 하고 예수님의 피가 내 피여야 합니다. 그것도 충만하도록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54절에서는 “영생을 갖는다"라고 말씀합니다. 53절에서는 생명을 가진다고 하셨고 54절에서는 영생을 가질 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 사도께서는 골2장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자들이 해야 할 과제는 ‘그의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즉 행위들을 예수님에게 일치시켜야 하고 생활을 예수님에게 일치하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친밀하게 행하면 행할수록 "믿음 안에서 뿌리를 내리게 되며 세워지게" 됩니다. 만일 성도가 그의 안에서 행한다면 성도는 그의 안에서 뿌리박히게 될 것이고 그리고 성도가 굳게 그의 안에서 뿌리내리게 되면 그만큼 우리는 더 밀접히 그의 안에서 행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성도가 먼저 그의 안에서 뿌리를 박지 않으면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움을 입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모든 일에 있어서 그의 안에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2,8)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이성적인 기능을 고귀하게 활용하게 하며 또한 우리의 신앙에 도움이 되는 철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신 일에 대한 이러한 철학적 탐구는 우리를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인도하며 그리고 그의 안에 있는 우리의 믿음을 확증하여 줍니다. 그러나 헛되고 속이는 철학도 있습니다. 신앙을 왜곡시키며 인간의 지혜를 들어 하나님의 지혜와 대립하게 하며 인간의 상상력을 즐겁게 하면서 한편 그들의 믿음을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별 소용도 없고 또한 깊이 관계되지도 않는 초월적인 것들에 대한 그럴듯한 호기심에 의한 사변과 말장난은 공허하고 속임수로 가득찬 지식의 유희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과 참된 양식이며 참된 음료라는 것은 어떻게 그것을 먹고 마시느냐는 것보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얼마나 충만하게 내 안에 채우고 있느냐의 여부가 더 중요합니다. 내 육체에는 예수님의 살과 피가 얼마나 채워져 있습니까? 내 영혼에는 예수님이 얼마나 충만하게 채워져 있습니까? 예수님의 살과 피가 내 안에 채워지게 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예수님을 갈구하고 있습니까? 베드로 사도의 표현을 빌리면 젖 먹는 아기가 엄마의 젖을 찾아 품속을 파고들 듯이 그렇게 파고듭니까? 다윗의 표현처럼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그렇게 찾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에게 유일한 생명의 젖줄입니다. 오직 그로부터만 먹어야 하고 마셔야 합니다. 유일하기도 하지만 완전하고 안전한 먹거리는 예수님 한 분입니다.
사탄이 영혼을 노략하는 방법은 영혼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들을 속이고 나아가 이 속임수를 통해 영혼을 죽입니다. "그는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한 옛 뱀"입니다.(고후11,3) 사람의 단점과 어리석음을 이용하고 자극하여 그는 늘 성도를 속이려 합니다. 사탄은 유혹하는 말로 자신의 참 모습을 은폐하고서는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합니다.(롬16,18) 유혹하는 말을 경계해야 하며 악으로 이끌려는 자들을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들의 목적은 성도들을 노략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잠1,10은 성도들에게 "악한 자가 너를 꾈 지라도 쫓지 말라"고 주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살과 피야말로 믿는 자에게 영생을 가지게 하고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그를 부활로 일으키실 수 있는 유일한 양식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는 만나와 바위에서 나온 물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영생을 주는 “참된 양식” 이며 “참된 음료”입니다. ‘참되다’라는 말은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오므로 거짓이 아니며 썩지 않고 영원히 보존된다는 의미입니다. 혹 아직까지도 메시아로부터 단지 육신의 만나를 원하고 있다면 생각을 완전히 돌려야 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육신을 위한 은사만을 바라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혹 예수님 아닌 다른 어떤 것에도 좋은 것이 있지 않을까 싶어 두리번거리고 있다면 그는 불쌍한 것을 넘어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 믿음이 충만하고 이 은혜도 충만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4. 우리의 일상에서 음식과 음료는 필수입니다. 예수님은 성도에게 생명의 충만을 위한 생명의 떡이요 생명의 음료입니다. 텃밭의 식물은 모두가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생장에 필요한 자양분을 얻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따사로운 햇볕에서 열매를 위한 영양소를 생성합니다. 땅이 메마르고 척박하면 식물은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제대로 자라지 못하면 잎을 통한 광합성작용도 불가하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농부는 늘 밭이 메마르지 않도록 물을 주고 거름을 줘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예수님께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매일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적용하고 그분의 사랑을 실천하며, 영적 양식을 얻기 위해 꾸준히 기도하고 말씀을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주변의 동료들과의 교제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나누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것을 통해 자신의 믿음이 튼튼해지고 다른 사람들도 이 믿음에 합류시켜 함께 더욱 강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밭을 보면 땡볕을 견디지 못하고 새로 난 싹이 말라죽습니다. 그런데 키가 큰 고추 혹은 잡초라도 옆에 있는 싹은 그들의 그늘에 도움을 받고 또 서로 함께 의지하면서 견디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혼자 있는 식물보다 함께 있는 식물이 생존 확률이 높고 또 튼실하게 잘 자랍니다.
한 사람이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던 중, 배가 침몰해 바다에 떠 있었습니다. 구명보트를 발견한 구조대가 이 사람을 구해냈습니다. 구조대는 그에게 생수를 제공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탈수 상태였지만 구조대가 주는 물과 양식을 먹으면서 회복되었고 다시 생명력을 얻었습니다. 화분에 심긴 꽃이 자주 물을 주고 적절한 햇볕을 받으며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바빠서 물을 주지 않고 방치하자 시들어갔습니다. 식물에 다시 물을 주고 돌보기 시작하자 식물은 다시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여러분, 생명은 양식이 필요합니다. 성도에게 그 양식을 제공하는 곳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의 살과 피로 채우라 하십니다. 충만하도록 채우셔서 알찬 열매를 많이 맺는 은혜와 복이 있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