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이곳으로!
짜장면박물관 (舊 인천 선린동 공화춘)
※ 등록문화재 제246호
- 주소 :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로 56-14 (선린동 38-1)
- 문의 : 032-773-9812
- 운영시간 : 화 – 일 9:00 – 18:00 (매주 월요일, 설날·추석 연휴, 1월 1일 정기 휴무)
- 입장료 : 성인 1,000원 / 청소년(14~19세) 700원 / 군인·경찰 500원 / 어린이(초등학생) 무료
※ ※ 인천 중구 내 여러 전시관·박물관 관람 예정이라면 통합관람권 구입 추천 (성인 3,400원 / 2022년 기준)
- 홈페이지
인천 차이나타운을 구석구석 걷다 보면 국내 건축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화려하고 독특한 색채와 이색적인 외형을 지닌 건물을 볼 수 있다. 이곳이 바로 '짜장면 박물관'이다. 과거 중국요리 전문점 '공화춘(共和春)' 건물이었기 때문 '구(舊) 인천 선린동 공화춘'이라는 이름이 뒤따른다. 인근 청국 조계지(청관 거리)에 국내 최초로 ‘산동회관(山東會館)’이라는 간판을 걸고 중국요리를 판매한 곳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공화춘(共和春)’의 전신이라 한다. ‘산동회관’은 산동성 출신 상인들의 동향 친목회관으로 숙식을 제공하는 객잔 성격의 업소였고, 이후 대형 연회장을 갖춘 요릿집 ‘공화춘’으로 발전했다. 공화춘은 부둣가에서 하역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먹던 야식을 짜장면으로 새롭게 변화시켜 판매를 시작했기에 짜장면의 원조 브랜드라고 할 수 있으며, 1984년 폐업하였다가 2004년 다시 개업하여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가 즐겨 먹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것이 있을까? 면 요리를 좋아하고, 또 짜장면의 역사가 궁금하다면 이곳 '짜장면 박물관' 방문을 강력추천한다.
▼ 짜장면 박물관 - 구(舊) 인천 선린동 공화춘(共和春)

여기서 잠깐, 가끔씩 헷갈리는 이름인 '자장면'과 '짜장면' 중에서 어떤 것이 맞는 말일까? 짜장면의 중국식 발음은 ‘짜지앙미옌 zhajiangmian[炸醬麵]’이다. 짜지앙미옌 → 짜쟝미옌 → 짜장면으로 부르기 쉽게 변화된 것이다. 대중들은 이처럼 이전부터 '짜장면'으로 불러왔으나, '자장면'만이 표준어로 지정되어 있었다. 현재는 국립국어원에서 두 가지 모두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으니 둘 중 편한대로 사용해도 좋다.
짜장면 박물관에 들어서면 세 점의 현판(1950년대 이전 제작 추정)이 눈에 들어온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노출되어 훼손이 심한 것을 수습하여 보존 처리한 것으로 각각 ‘共和春(공화춘)’, ‘特等料理(특등요리)’, ‘砲辦會席(포판회석 : 연회석 완비)’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 공화춘 현판 (짜장면박물관 건물이 ‘공화춘’으로 사용되던 시절 건물 입구 외벽에 걸려있던 유물)

인천 차이나타운의 많고 다양한 음식점 중에서 ‘중화요리 전문점’을 빠트릴 수가 없다. 특히 '짜장면'을 빼고 이야기할 수가 없는데 이곳이 바로 짜장면의 보급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 앞서 짜장면과 함께 선택의 고민을 하게끔 만드는 '짬뽕'의 유래에 대해서 잠시 설명해 보려 한다. ‘짬뽕’의 유래에 대해서는 지난 <군산 여행기>에서 먼저 소개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화교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산둥성(山東省 산동성, 山东省) 출신이 대부분이라 한다. 임오군란(1882) 당시 청나라 군대에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함께 들어온 중국 상인 40여 명이 입국하면서 시작되었고, 일제강점기부터 군산 곳곳에 대규모 중화요리점이 운영되었다. ‘군산’ 하면 떠오르는 음식 '짬뽕'은 중국에서 기원한 한국 음식으로 화교를 통해 산둥성 지방의 음식인 초마면의 변형으로 시작된 것이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인의 기호에 맞게 고춧가루를 첨가한 ‘붉은 초마면’을 1980년대 이후에 손님들이 '짬뽕'이라 하면서 자연스레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짜장면' 또한 인천항 개항 시 중국 산둥성에서 건너온 화교들에 의해 전해진 음식이다. ‘쿨리’라고 하는 산둥 지방 출신의 노동자들은 이곳 청국 조계지(청관 거리)에 자리 잡아 부둣가 근로자로 고용되었는데 별다른 재료 없이 춘장에 수타면을 비벼 그 자리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고향의 메뉴인 짜장면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이들을 상대로 손수레 노점상들이 생기면서 짜장면의 보급이 시작되었다.
▼ 짜장면을 판매하는 손수레 노점상의 모습

▼ 짜장면을 먹는 노동자, 쿨리

1960년대 공화춘 주방을 재현한 모습이 인상 깊다. 면을 뽑는 ‘수타 주방’과 양파, 고기 등 재료를 손질하는 ‘칼판 주방’, 춘장을 볶고, 각종 음식을 만드는 ‘화덕 주방’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벽에는 짜장면과 짬뽕 조리법이 부착되어 있다.



▼ 주방용 뜰채와 깔때기

▼ 공화춘 수습 면기, 옹기, 접시편 등이 전시되어 있다.

▼ 공화춘 식대 계산서 (1961년)

2층으로 올라가면 '짜장면'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1930년대의 공화춘 접객실을 재현한 제2전시실의 모습은 매우 흥미로웠다. 고요한 공간 속에 실제처럼 생생하게 표현된 실물 음식모형과 사람의 모습을 보니 마치 과거로 여행을 와서 시간을 멈추는 마법을 부린 것 같았다.
▼ 제2전시실 : 1930년대 공화춘 접객실을 재현
공화춘은 신해혁명 후 ‘공화국 원년의 봄’을 맞는다는 의미로 1912년에 문을 연 중국음식점이다.



▼ 1950년대 면 요리 상차림(면기, 중사발, 고량주 병, 술잔, 청테 물컵, 젓가락, 소형 접시, 양념병, 재떨이)

▼ 공화춘 젓가락

▼ 공화춘 부채

▼ 인천 중화요식업조합 협정가격표 (1974년)

▼ 공화춘 음식요금표. 당시 짜장면 가격으로 450원이 적혀 있다. (1970년대)


▼ 접시, 면기, 대접 등

2편에는 짜장면의 전성기였던 1970년대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역사와 중화요리 전문점 ‘공화춘’ 방문 후기를 써 볼 예정이다.
[참고] 짜장면 박물관, 군산근대역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