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44 오난의 죄는 무엇이었는가?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창38:9)
유다의 장자 엘이 다말과 결혼한 후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 이에 유다는 엘의 동생 오난에게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창 38:8)고 한다. 그러나 오난은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기 때문에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였다. 이사건의 결론은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창38:10)로 끝난다. 오늘날의 윤리 및 결혼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 자식 없이 죽은 형을 위해 형수를 아내로 취하는 것이 '아우의 본분'이라는 것, 그 자식이 '형의 씨'가 된다는 것, 그 일을 거부한 것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하다는 것 등이 그러하다. 도대체 이 사건에 어떤 의미가 있기에 오난의 죄가 그렇게 심각하게 취급되었는가?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들을 종족 유지의 '씨'로 생각했다. 그래서 여인이 아들을 낳지 못할 때, 심지어 씨받이를 통해서라도 자식을 얻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구약에서 아들은 그 이상의 의미, 곧 부모 자신의 생명의 연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들이 없으면 그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사상에서 다음과 같은 신명기법이 주어졌다.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의 낳은 첫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신 255~6).
아들이 없으면 부모의 이름이 없어지고, 이름이 없어지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게 되며,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진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백성의 회중에서 사라지는 멸망을 의미하였다.
이렇게 아들 없이 죽은 형을 대신하여 동생이 형수를 취하여 형의 아들을 낳아 주는 제도를 흔히 수혼제도(婚制度) 혹은 형사취수법(兄死娶姓法)이라고 한다. 영어로 levirate marriage라고 하는데, 남편의 형제를 뜻하는 라틴어 levir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아우가 죽은 형을 위해 후손을 남겨 주기를 거절하는 것은 곧 형의 생명을 구원하기를 거절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세는 이 일을 행하기를 거절하는 자는 "밤에서 산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신 25:9)라고 할 것을 명하였다. 그만큼 이 일은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난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거부하였다. 그는 자신이 낳은 아들이 그 자신의 후사가 아니라 죽은 형의 후사가 될 것임을 알고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창 38:9)였다. 이와 같은 오난의 행위에서 자위 행위를 나타내는 오나니즘(ornanism)이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오난의 행위는 결코 단순한 질외사정(外射精)의 피임 행위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형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도록 하는 악한 행위였다.
더군다나 하나님은 유다의 후손에 특별한 계획이 있었다. 그것은 후에 유다에게 준 야곱의 축복, 곧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라”(창 49:10)는 것과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의 족보에서도 나타나듯이 유다 지파로 메시아의 조상을 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를 “유다 지파의 사자" (계 5:5)라고 불렀다. 그런데 오난으로 인해 메시아의 족보가 끊어질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여호와의 목전에 악”(창 38:10)한 것이었다. 구약은 메시아의 족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을 때는 이야기의 흐름을 중단하고서라도 한다. 창세기 37장부터는 요셉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38장은 그 이야기를 중단하고 여기 메시아의 족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오난의 죄는 이런 근본적인 의무를 거절한 것에 더하여 질적으로 상당히 악한 행위였다. 우선, 그의 행위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것이었다. 오난이 설정하였다(9절)는 히브리어 동사는 샤하트의 강세완료이다. 이는 오난이 한두 번 그런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다말과 성관계를 할 때마다 그렇게 행동하였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것은 매우 비열한 행위였다. 만일, 그가 진실로 형의 씨를 잇지 않기를 원하였다면 아예 형수에게로 들어가지 않아야 했다. 그런데 형수와 성관계는 하면서 매번 사정은 다른 곳에 하는 이런 행위는 얼마나 비열한 짓인가?
왜 그랬을까? 만일 그의 의도가 형의 재산에 있었다면 그건 더욱 악한 범죄 행위이다. 실제로 민수기 27장 8~9절에 의하면 "사람이 죽고 아들이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딸에게 돌릴 것이요 딸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형제에게 줄 것"이라는 법이 있었다. 오난의 형 엘에게는 딸도 없었기에 그의 기업이 오난에게로 올 수밖에 없었다. 오난은 나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