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엘 그레코

엘 그레코,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1576-78년, 캔버스의 유채, 157 x 121 cm, 헝가리 국립미술관, 부다페스트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는 참회와 명상에 전념했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여섯 차례 정도 그렸다.
특히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반종교개혁 정신의 확산을 시도했던 가톨릭교회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세상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굳건한 믿음을 지킨 성녀로 추앙했고,
가톨릭교회는 개종자들이 회개하고 가톨릭교회로 돌아올 것을 희망하며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반종교개혁 회화의 주제로 채택했다.

엘 그레코가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처음으로 그린 것은
그가 스페인으로 이주하기 전의 일이다.
이 그림은 부다페스트의 헝가리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에
<부다페스트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로 일컬어지는데,
그가 스페인에 오기 전인 1577년 이전에 시작하여
이탈리아에서 스페인으로 이동하는 중에 그렸거나,
최소한 스페인에 도착해서 완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소재와 구도로 볼 때,
그의 스승이었던 티치아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거의 확실하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상징물인 향유가 담긴 유리병,
참회의 상징물인 해골과 성경,
사선의 동굴과 베네치아의 푸른 하늘,
특히 투명한 천으로 가슴을 살짝 노출시킨 표현과
셋째 손가락과 넷째 손가락을 붙여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있는 것이 비슷하다.
유리병은 깨지기 쉬운 인간의 나약성을 상징하고,
해골과 성경은 죽음을 항상 생각하며 말씀 안에서 깨어 기도하라는 권고의 소재이다.
막달레나는 티치아노의 작품에서처럼 금발의 여인이고
티치아노 작품과 역방향이지만 막달레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영적 황홀경에 빠져있으며,
가슴에 손을 모아 주님께 충성과 믿음을 맹세하고 있는 것이다.

엘 그레코,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1578-80년, 캔버스의 유채, 108 x 101 cm, 우스터 미술관, 매사추세츠
스페인에 이주하여 처음으로 그린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우스터 미술관에 소장 되어 있는데,
그래서 이 작품을 <우스터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라 부르고,
1579-80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미국 캔자스시티 넬슨 아킨스 미술관에 소장 되어 있는
<캔자스시티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1580-85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두 작품 모두 16세기 후반의 스페인 반종교개혁 정신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엘 그레코,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1580-85년, 캔버스의 유채, 101.6 x 81.9 cm, 넬슨 아킨스 미술관, 캔자스시티
특히 <캔자스시티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스페인 가톨릭교회의 시대정신을 대변해주는 명작이다.
먼저 유리병의 모양이 이탈리아 양식에서
병 입구와 바닥 부분이 좁고 가운데가 볼록한 스페인 양식 유리병으로 바뀌었다.
또 가슴을 살짝 드러낸 매혹적인 여성의 이미지에서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완전히 가린 정숙한 여인의 절제된 이미지로 바뀌었다.
특별히 참회와 금욕을 강조했던 스페인 가톨릭교회의 정신이
엘 그레코의 그림에 반영된 것이다.
이탈리아의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께 맹세하는 손동작을 취하고 있었지만
스페인의 마리아 막달레나는 두 손을 깍지 낀 채 결연히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래서 감격보다는 결심이 강조되고 있고,
영적 충만함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신앙의 각오가 물씬 풍긴다.
16세기 후반의 이탈리아가 감격과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곳이라면
스페인은 신비체험을 통한 신앙의 엄격한 결단이 요구되었던 땅이었기 때문이다.
1580년을 경계로 이전에 그렸던 <우스터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하늘은
아직도 베네치아의 푸른 하늘빛이 남아 있지만,
1580년 이후에 그렸던 <캔자스시티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하늘은
검은 구름이 푸른 하늘을 가리고 있어 스페인의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큰 눈망울에
이탈리아의 푸른 하늘빛을 가득히 담고 있어,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정신의 세계가 엘 그레코에 의해 통합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엘 그레코,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1585-90년, 캔버스의 유채, 109 x 96 cm, 카우 페라트 미술관, 시체스
스페인 바르셀로나 근교도시 시체스 카우 페라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1585-90년에 그린 <시체스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이전의 그림들과 사뭇 다르다.
먼저 성유가 든 유리병이 그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이전 그림에서는 흰색 블라우스에 푸른색 망토를 걸쳤다면
이 그림에서는 속옷 없이 붉은색 망토를 걸치고 있고,
이전 그림에서는 하늘에 향해 시선을 두었다면
이 그림에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응시하고 있으며,
이전 그림에서는 깍지 낀 손이었다면
이 그림에서는 다시 셋째 손가락과 넷째 손가락을 붙이고
오른손으로 긴 머리카락을 감싸 쥐고 맹세라도 하듯 가슴에 손을 대고 있으며,
왼손으로는 죽음을 생각하라는 손동작을 하며 해골을 가리키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막달레나의 단호한 얼굴 표정이 돋보인다.
십자가의 예수님만 바라보는 큰 눈망울과 우뚝 솟은 콧대,
그리고 굳게 다문 작은 입술에서 금욕적인 결연함이 배어나온다.
그녀는 오직 죽음을 생각하며 십자가의 예수님만을 묵상하고 있는 것이다.
뒤쪽 벼랑에는 인동넝쿨이 한 가닥 붙어 있다.
시련을 이기는 기도의 생명력을 이런 식으로 표현 한 것이 아닐까?
배경에는 푸른 구름이 어지럽게 춤춘다.
죄 많은 기억이 막대기를 휘둘러서 먼 곳의 구름을 휘저어놓은 모양이다.
엘 그레코의 그림에서는 예사로운 풍경조차 내면의 기억을 반영한다.

엘 그레코,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1605-10년, 캔버스의 유채, 118 x 105 cm, 개인 소장
엘 그레코가 마지막으로 1605-10년에 그린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개인인 소장하여 여러 미술관을 순회하며 전시되었고,
한 때 스페인 빌바오의 펠릭스 발데스 이자기르 컬렉션에서 전시되었기 때문에
<빌바오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라고도 불린다.
이 그림은 엘 그레코의 스승 티치아노가 그랬던 것처럼
화가의 황혼기 심성을 반영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눈물이 많아진다고 했던가?
마리아 막달레나는 왼손으로 해골과 성경과 편지를 가리키며
셋째 손가락과 넷째 손가락을 붙인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펑펑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녀의 푸른색 속옷과 붉은색 망토에서 신성과 인성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하느님의 사랑이 철철 넘치고 있으며,
그녀의 흐려진 눈망울에서 신비체험의 흔적이 듬뿍 엿보인다.
그녀는 주님께서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깨닫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왼손 집게손가락으로 가리킨 편지에는 무엇이라고 쓰여 있을까?
아마도 엘 그레코 자신의 서명이 쓰였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자기를 불러 가면
언제라도 “예.” 하고 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고,
순백의 하늘나라 명부에 자기 이름이 기록되기를 희망하는 염원이
그 편지에 기록된 것은 아닐까?
배경에 있는 춤을 추는 것 같은 짙은 먹구름에서
화가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감을 갖게 한다.
멀리 보이는 초록의 나무들도 이제는 암흑 속으로 사라지려 한다.
생의 마지막 날에 우리도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통회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우리도 막달레나처럼 “그분께서 정말 나를 사랑하셨구나.” 하는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참회의 눈물을 진심으로 흘리는 사람만이 그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막달레나는 ‘비탄의 바다’라는 뜻이다.
비탄의 눈물이 후회의 바다를 씻어준다고 해석하면 어떨까?
참회의 눈물이 바다를 이룬다면
이 세상은 벌써 하느님 나라에 도달하고도 남았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