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 백합(Calla Lily) 같은 친구 김규련
커다란 유리창 너머 풀밭에 한 포기의 굵은 카라 백합이 목을 쭉 빼고 우뚝 서 있다. 문득 20년 전 카라 백합을 꽃꽂이로 만들어 한 이름 안고 나를 찾아왔던 친구 Y가 눈에 어린다. 꽃말같이 순수하고, 청결하던, 그는 엷은 미소를 띠면서 꽃을 안겨주었다. 꽃집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둘째 딸이 보더니, 이 꽃, 참 비싼 꽃인데 누가 엄마한테 선물했어? 하고 물어왔던 기억이 났다.
내가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유산을 여러 번 하였다며 힘들어했다. 다행히도 몇 년 후 첫 번째 아들을 낳고 2년 터울로 둘을 더 낳아 아들 세 명을 길렀다. 약하고 하늘하늘하여 바람에 날아갈 것 같은 그녀는 언제나 단정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보였다. 아들 세명을 기르는 힘든 중에서도 그의 집은 깨끗하고 잘 정리되어서 부지런한 엄마로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남자 형제가 없던 나의 아들은 그 들 형제랑 노는 것을 즐겼다. 교회를 8 년을같이 다니면서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놀러도 다녔다. 우리 딸 두 명이 결혼할 때마다 꼭 참석하여 축하하여 주었다. 그러다 그의 남편이 큰 사업을 시작하면서 멀리 이사를 했다. 그 후론 가끔 그를 동창회 모임에서 만났고 어느 해 추수감사절날엔 그녀가 초대해서 식사도 같이했다. 한 시간 남짓 되는 거리에 살았지만, 자주 만날 기회는 없었다. 단지 그녀의 남편이 성공한 사업가로 남 부럽지 않게 산다는 소식은 풍문에 들었다. 2 년 전 동창야유회에 갔는데 그녀가 안 보였다. 대신 그녀의 남편이 고기를 구워주고 있었다. 자기 아내가 몸이 조금 안 좋아 야유회에 못 왔다고 했다. 야유회가 끝나갈 무렵에 그녀가 잠시 아픈 몸을 이끌고 공원에 들렀다. 그녀의 입술이 비틀어지고 안면 마비가 온 듯해 보였다. 며칠 후 소문에 그녀가 화장실서 쓰러져 사진을 찍어보니 뇌에 종양이 있다고 했단다. 종양이 있는 자리가 수술하면 위험하다고 해서 치료만 받는다고 했다. 그녀의 아픈 얘기를 들으니 아스라이 20 년 전 나의 남편이 대장암 3기로 아팠던 생각이 났다. 그 당시 누군가가 그의 생의 멱살을 잡고 삶을 송두리째 뽑아 갈 것 같았다. 나는 벼랑 끝에 매달려 그를 가까스로 붙잡고 있었던 기억이 어제 일 같이 생생하다. 그때 나뭇가지를 집요하게 흔들어대는 듯한 무서운 공포감이 내 속을 다 녹아내리게 했다. 생명이란 참 불가사의 하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슬픔과 두려움을 겪고 나니 오히려 생이 가볍게 느껴졌다
그녀와 나는 한때 머그잔 가득 온기를 나눈 따듯한 인연이었기에 이 예상치 못 했던 소식에 나는 아무 위로의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값싼 위로의 말을 주어서 상처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초여름의 열기가 깊은 땅속으로부터 훅 밀고 올라오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그녀의 입원 소식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스테로이드로 부은 얼굴에 옛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누구나 인생에서 겪어야 할 ‘슬픔 총량’ 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남달리 편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도 사람은 누구나 자기 양의 슬픔을 살다 가야 하나보다. 아직 얼마만큼의 시간을 더 견뎌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무서운 더위가 재난처럼 무너져 내려도 가을을 준비하는 나무처럼 힘을 내 보자꾸나 말하고 싶었다. 이 여름을 지내고 , 다시 또 다른 여름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같이 기도했다. 이 엄청난 슬픔의 터널을 빠져나와 옛날을 얘기하며 빛바랜 앨범을 꺼내 보면서 함께 웃기를 무척이나 바랬는데, 그 대신 죽음의 비보가 전해 왔다. 누군가 내게 당신은 어느 계절의 길목에 서 있는지 물어본다면 이렇게 대답하리라. 이 세상에서 살 시간이 얼마 남아 있는지 모르는 계절에 서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녀의 장례식 날 정신없이 손님을 접대하며 계속 손수건으로 눈물을 씻어내는 그녀의 남편한테 아무 말도 못 하고 손만 잡아주었다. 옆에는 자기를 사랑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모르는 한 살 배기 손자가 평온하게 잠자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한 송이 카라 꽃 같던 친구를 보냈다. 그 순간 마음이 마취가 되어 감각이 없었다. 며칠 후에나 눈물이 나올까. 어느새 나의 정원에 있는 카라꽃도 슬픔을 인지 했는지 한잎 두잎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