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살타, 즉 보살은 몇명의 중생을 제도하고자 발심을 한 것일까요?
발심이란 발보리심을 말하며,
발보리심이란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말합니다.
발심=발보리심=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아래에는 인도의 숫자 체계가 나오는데, 적은 수에서 점점 더 커집니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조.......이런 식으로..
근데 그게 그야말로 무진장 많습니다. 숫자 커지는 단위가..!!!
하지만, 용수보살은 그걸 모조리 다 기억하고 계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능력이 바로 다라니입니다.
다라니라는 것의 본래 의미는 한번 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을 말 합니다.
그래서 보살이 지녀야할 능력이 두개인데, 삼매와 다라니 입니다.
이 다라니는 다른 중생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온갖 경전이나 부처님 설법을 한번 듣고 잊지 않아야,
다른 중생들에게 법문할 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달라이라마께서 이 능력이 있으시다고 합니다.
그래서 십년전에 한번 만났던 사람도 기억해서, 그 당시에 대해서 얘기를 하셨다고 합니다.
아래의 내용은 중요합니다.
과연 보리심을 낸 보살이 제도해야할 중생들의 분량은 과연 얼마인가...?
보살마하살들은 한 사람을 제도하기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지 않으며, 또한 둘, 셋 내지 열 사람을 위해서도 아니며, 백,천,만 내지 십만,백만,일억,십억,백억,천억ㆍ억억의 중생들을 위해서도 아니다.
아유타(阿由他) 억의 중생들을 위해서 발심하지 않고,
나유타(那由他) 억의 중생들을 위해서도 아니며,
아야타(阿耶他)의 중생들을 위해서도 아니다.
빈바라(頻婆羅)도 아니며,
가가라(歌歌羅)도 아니며,
아가라(阿歌羅)도 아니며,
파바라(?婆羅)도 아니며,
마바라(摩波羅)도 아니며,
바타(波陀)도 아니며,
다바(多婆)도 아니며,
비바가(?婆呵)도 아니며,
포마(怖摩)도 아니며,
염마(念摩)1도 아니며,
아바가(阿婆迦)도 아니며,
마가바(摩伽婆)도 아니며,
비라가(毘羅伽)도 아리며,
승가마(僧伽摩)도 아니며,
비살라(毘薩羅)도 아니며,
위염바(謂閻婆)도 아니며,
비사가(??迦)도 아니며,
비로가(?盧呵)도 아니며,
비발제(?跋帝)도 아니며,
비가다(?伽多)도 아니며,
도라(兜羅)도 아니다.
아바라나(阿婆羅那)도 아니며,
타바라(他婆羅)도 아니며,
비바야바(?婆耶婆)도 아니며,
먁사(?寫)도 아니며,
둔나야사(鈍那耶寫)도 아니며,
혜바라(婆羅)도 아니며,
비바라(?婆羅)도 아니며,
보차다(菩遮多)도 아니며,
아발가타(阿跋伽陀)도 아니며,
비시타(?施他)도 아니며,
니바라(泥婆羅)도 아니다.
혜리부타(?浮陀)도 아니며,
파마타야(波摩陀夜)도 아니며,
비초바(比初婆)도 아니며,
아리부타(阿?浮陀)도 아니며,
아리살사(阿?薩寫)도 아니며,
혜운가(云迦)도 아니며,
도간다(度于多)도 아니며,
가루나(呵樓那)도 아니며,
마루타(摩樓陀)도 아니며,
차야(叉夜)도 아니며,
오라다(烏羅多)도 아니며,
말수야마(末殊夜摩)도 아리며,
삼마타(三摩陀)도 아니며,
비마타(毘摩陀)도 아니다.
파마타(波摩陀)도 아니며,
아만타라(阿滿陀羅)도 아니며,
바만다라(婆滿多羅)도 아니며,
마다라(摩多羅)도 아니며,
혜도말다라(兜末多羅)도 아니며,
비마다라(?摩多羅)도 아니며,
파라다라(波羅多羅)도 아니며,
시바다라(尸婆多羅)도 아니며,
혜라(羅)도 아니며,
위라(爲羅)도 아니며,
제라(提羅)도 아니며,
지라(枝羅)도 아니며,
시라(翅羅)도 아니다.
니라(尼羅)도 아니며,
사라(斯羅)도 아니며,
파라(波羅)도 아니며,
미라(彌羅)도 아니며,
바라라(婆羅羅)도 아니며,
미루(迷樓)도 아니며,
기로(企盧)도 아니며,
마사라(摩?羅)도 아니며,
삼모라(三牟羅)도 아니며,
아바야(阿婆夜)도 아니며,
검마라(劍摩羅)도 아니며,
마마라(摩摩羅)도 아니며,
아달다(阿達多)도 아니며,
혜루(樓)도 아니다.
비루바(?樓婆)도 아니며,
가라발(迦羅跋)도 아니며,
가바발(呵婆跋)도 아니며,
비바발(?婆跋)도 아니며,
바바(婆婆)도 아니며,
아라바(阿羅婆)도 아니며,
사라바라(娑羅婆羅)도 아니며,
미라부라(迷羅浮羅)도 아니며,
마차라(摩遮羅)도 아니며,
타마라(陀摩羅)도 아니며,
파마타(波摩陀)도 아니며,
니가마(尼伽摩)도 아니며,
아발다(阿跋多)도 아니다.
니제사(泥提舍)도 아니며,
아차야(阿叉夜)도 아니며,
삼부타(三浮陀)도 아니며,
바마마(婆摩摩)도 아니며,
아바타(阿婆陀)도 아니며,
구파라(?波羅)도 아니며,
파두마(波頭摩)도 아니며,
승거(僧?)도 아니며,
가제(伽提)도 아니며,
구파가마(?波伽摩)도 아니며,
아승기(阿僧祇)도 아니며,
아승기에 아승기도 아니며,
무량도 아니며, 무량에 무량도 아니다.
무변(無邊)도 아니며,
무변에 무변도 아니며,
무등(無等)도 아니며,
무등에 무등도 아니며,
무수(無數)도 아니며,
무수에 무수도 아니며,
불가계(不可計)도 아니며,
불가계에 불가계도 아니며,
불가사의(不可思議)도 아니며,
불가사의에 불가사의도 아니며,
불가설(不可說)도 아니며,
불가설에 불가설인 중생을 위해서도 아니다.
한 국토의 미진수(微塵數)만큼의 중생을 위하여 발심한 것이 아니며,
둘 셋 나아가서는 십,백,천,만,억,천만억,아유타,나유타
내지 불가설에 불가설인 국토의 미진수만큼의 중생을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한 염부제의 미진수만큼의 중생을 위한 까닭도 아니며,
구타니,울다라,불바제의 미진수만큼의 중생을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소천세계(小千世界), 중천세계(中千世界), 대천세계(大千世界)의
미진수만큼의 중생을 위하여 발심한 것도 아니며,
둘,셋 내지 십,백,천,만,억,아유타,나유타 내지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不可說不可說] 삼천대천세계의 미진수만큼의 중생을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한 부처님을 공양하고 모시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부처님을 공양하고 모시기 위해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한 국토의 미진수만큼의 부처님을 공양하고 모시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에 계시는
미진수만큼의 부처님을 공양하고 보시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한 불국토[佛土]를 정화하기 위해 발심하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미진수만큼의 불국토를 정화하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한 부처님의 법만을 받아 지니기 위해 발심하는 것이 아니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에
계시는 미진수만큼의 부처님의 법을 받아 지니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한 삼천대천세계에서만 불종자(佛種子)가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이 아니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나 미진수만큼의 삼천대천세계에서
불종자가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서도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한 부처님의 서원을 분별해 알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이 아니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에 계시는
미진수만큼의 부처님의 서원을 분별해 알기 위해서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한 불국토를 장엄하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이 아니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미진수만큼의 불국토를 장엄하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한 부처님 회상(會上)의 제자들을 분별해 알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미진수 만큼의 부처님 회상의 제자들을 분별해 알기 위해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한 부처님의 법륜(法輪)을 받아 지니기 위해 발심하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미진수만큼의 부처님의 법륜을 받아 지니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의 여러 마음을 알기 위하여서도 아니며,
한 사람의 여러 감관[根]을 알기 위해서도 아니며,
한 삼천대천세계의 여러 겁이 차례로 상속됨을 알기 위해서도 아니며,
한 사람의 모든 번뇌를 분별해 끊기 위해서 발심하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미진수만큼의 사람들의 모든 번뇌를 분별하여 끊기 위해서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이 보살마하살들은 서원하기를
“온갖 시방의 중생을 모두 교화하리라.
온갖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모시리라.
온갖 시방의 모든 불국토를 정화하리라.
견고한 마음으로 온갖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법을 받아 지니리라”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