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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번역) - 731[5 ~ 030](250812)
< 전 체 번 역 >
한편 손권은 손책이 죽은 이후로 강동을 근거로 해서 부형의 기업을 이어받아 널리 어진 인사를 받아드려 오회에 빈관[영빈관]을 만들어 놓고 고옹과 장굉에게 명하여 사방의 빈객들을 접견해 보도록 했다. 그 후 해마다 서로 서로 천거해 왔는데 당시 인물들로 회계의 감택, 자는 덕윤; 팽성의 엄준, 자는 만재; 패현의 설종, 자는 경문; 여남의 정병, 자는 덕구; 오군의 주환, 자는 휴목; 또 오군의 육속, 자는 공기; 오인의 장온, 자는 헤서; 회계의 능통, 자는 공속; 오정의 오찬, 자는 공휴등 몇 사람들이 강동으로 찾아오자 손권은 존경의 예를 심히 후하게 베풀었다. 또 뛰어난 장수 몇 사람을 얻었는데 그들은 여양의 여몽, 자는 자명; 오군의 육손, 자는 백언; 낭야의 서성, 자는 문향; 동군의 반장, 자는 문규; 여강의 정봉, 자는 승연 등이다. 문무의 여러 사람들은 서로 보좌하니 이로부터 강동에는 인재가 많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건안 7년에 조조는 원소를 격파하고 나서 사신을 강동에 보내어 손권에게 아들을 조정으로 들여보내어 천자의 행차를 모시도록 했다. 손권은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오태부인이 주유와 장소등을 불러드려 자기 면전에서 의론토록 했다.
장소 : “조조가 우리에게 아들을 보내 입조토록 하라는 것은 여러 제후들을 견제하는 수법 입니다. 그러나 영을 받고 가지 않으면 그가
군사를 일으켜 강동으로 쳐 내려올까 걱정 됩니다. 그렇게 되면 형세가 위태롭게 됩니다.
주유 : “장군께서는 부형의 유업과 육군의 백성들을 물려받아 병사들은 정예롭고 군량도 충분하며 장사들은 모두 잘 훈련되어 있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인질을 보내려 하십니까? 만약에 인질을 보내기만 하면 꼼작 없이 조씨와 화친을 하지 않을 수 없고 그가 오라했을 때 가지 않는다면 그의 견제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 차라 리 보내지 말고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하다가 별도로 좋은 대책을 강구 하여 대처하는 것 만 못합니다."
오태부인 : “공근의 말이 옳으네.” 그리하여 손권은 그 말을 따라 사자에게 거절의 말을 전하고 아들을 보내지 않았다. 이때부터 조조는 강남을 공략하려는 마음을 먹었지만 마침 그 때 북방문제가 정돈되지 않아 남정할 겨를이 없었다.
건안 팔년 십일월에 손권은 군사를 이끌고 황조를 치게 되었는데 큰 강 가운데서 전투를 벌렸다. 황조는 참패를 했다. 그러나 손권의 부장 능조가 가벼운 배를 타고 앞서나가며 하구로 쳐 들어가다가 황조의 부장 감령의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다. 능조의 아들 능통이 당시 열 다섯 살이었는데 분발해서 쳐 들어가 부친의 시신을 탈취해서 돌아왔다. 손권은 형세가 불리해져서 군사를 거두어 동오로 돌아왔다.
한편 손권의 동생 손익은 단양태수의 직에 있었는데 성질이 괴팍하고 술을 좋아해 술이 취하면 늘 사졸들을 매질하기 일쑤였다. 단양의 독장 규람과 군승인 대원 두 사람은 항상 손익을 살해할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손익의 시종 변홍과 심복 관계를 맺고 공모하여 손익을 살해하고자 했다. 때마침 손익은 모든 장수와 현령들을 다 단양에 집합토록 하여 술자리를 마련하여 그들을 대접하려 했다. 손익의 처 서씨는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자였으며 일반 점과 주역 점에 능통했다. 이날 점을 치니 점괘가 대단히 흉하여 손익에게 대회장에 나가지 말라고 권했으나 말을 듣지 않고 여러 사람과 어울려 크게 연회를 열었다.
날이 저물어 자리가 파해 흩어질 때 변홍은 칼을 차고 손익을 뒤따라 문 밖으로 따라 나서자 즉시 칼을 빼어 손익을 찔러 죽였다. 규람과 대원은 죄를 변홍에게 뒤집어 씌우고 저자거리에 끌어내어다 참해버렸다. 두 사람은 그 기세를 몰아 손익의 가산과 시첩들을 노략질했다. 규람이 서씨의 미모를 보고 그에게 말했다. : “내가 당신을 위해 당신 남편의 원수를 갚아주었으니 내 말을 잘 들어야 하오. 복종치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서씨 : “남편이 죽은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어찌 차마 곧 바로 당신을 따르겠습니까? 이번 그믐날을 기해 제를 지내고 상복을 벗은 다음 결혼 을 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 原 文 >
却說孫權自孫策死後,據住江東,承父兄基業,廣納賢士,開賓館於吳會,命顧雍、張紘延接四方賓客。連年以來,你我相薦。時有會稽闞澤,字德潤;彭城嚴畯,字曼才;沛縣薛綜,字敬文;汝南程秉,字德樞;吳郡朱桓,字休穆;陸績,字公紀;吳人張溫,字惠恕;會稽凌統,字公續;烏程吳粲,字孔休:此數人皆至江東。孫權敬禮甚厚。又得良將數人,乃汝陽呂蒙,字子明,吳郡陸遜,字伯言,瑯琊徐盛,字文嚮,東郡潘璋,字文珪,廬江丁奉,字承淵。文武諸人,共相輔佐。由此江東稱得人之盛。
建安七年,曹操破袁紹,遣使往江東,命孫權遣子入朝隨駕。權猶豫未決。吳太夫人命周瑜、張昭等面議。張昭曰:「操欲令我遣子入朝,是牽制諸侯之法也。然若不令去,恐其興兵下江東,勢必危矣。」周瑜曰:「將軍承父兄遣業,兼六郡之衆,兵精糧足,將士用命,有何逼迫而欲送質於人?質一入,不得不與曹氏連和;彼有命召,不得不往;如此則見制於人也。不如勿遣,徐觀其變,別以良策禦之。」吳太夫人曰:「公瑾之言是也。」權遂從其言,謝使者,不遣子。自此曹操有下江南之意。但正值北方未寧,無暇南征。
建安八年十一月,孫權引兵伐黃祖,戰於大江之中。祖軍敗績。權部將凌操,輕舟當先,殺人夏口,被黃祖部將甘寧一箭射死。凌操子凌統,時年方十五歲,奮力往奪父屍而歸。權見風色不利,收軍還東吳。
却說孫權弟孫翊爲丹陽太守。翊性剛好酒,醉後嘗鞭撻士卒。丹陽督將媯覽、郡丞戴員二人,常有殺翊之心,乃與翊從人邊洪結爲心腹,共謀殺翊。時諸將縣令,皆集丹陽。翊設宴相待。翊妻徐氏美而慧,極善卜易;是日卜一卦,其象大凶,勸翊勿出會客。翊不從,遂與衆大會。
至晚席散,邊洪帶刀跟出門外,即抽刀砍死孫翊。媯覽、戴員乃歸罪邊洪,斬之於市。二人乘勢擄翊家資侍妾。媯覽見徐氏美貌,乃謂之曰:「吾爲汝夫報仇,汝當從我;不從則死。」徐氏曰:「夫死未幾,不忍便相從。可待至晦日,設祭除服,然後成親未遲。」
< 文 段 解 說 >
(1)却說孫權自孫策死後,據住江東,承父兄基業,廣納賢士,開賓館於吳會,命顧雍、張紘延接四方賓客。連年以來,你我相薦。時有會稽闞澤,字德潤;彭城嚴畯,字曼才;沛縣薛綜,字敬文;汝南程秉,字德樞;吳郡朱桓,字休穆;陸續,字公紀;吳人張溫,字惠恕;會稽凌統,字公續;烏程吳粲,字孔休:此數人皆至江東。孫權敬禮甚厚。又得良將數人,乃汝陽呂蒙,字子明,吳郡陸遜,字伯言,瑯琊徐盛,字文嚮,東郡潘璋,字文珪,廬江丁奉,字承淵。文武諸人,共相輔佐。由此江東稱得人之盛。
각설손권자손책사후,거주강동,승부형기업,광납현사,개빈관어오회,명고옹、장굉연접사방빈객。연년이래,니아상천。시유회계감택,자덕윤;팽성엄준,자만재;패현설종,자경문;여남정병,자덕추;오군주환,자휴목;육속,자공기;오인장온,자혜서;회계릉통,자공속;오정오찬,자공휴:차수인개지강동。손권경례심후。우득량장수인,내여양여몽,자자명,오군육손,자백언,랑야서성,자문향,동군반장,자문규,려강정봉,자승연。문무제인,공상보좌。유차강동칭득인지성。
據 의거할 거, 의탁하다. 納 바칠 납, 거두다, 수확하다. 紘 갓끈 굉. 延 끌 연, 끌어드리다. 延接 손님을 접견하다. 你我 너와 나, 서로 서로. 桓 푯말 환. 嚮 향할 향, 권하다.
< 해 석 >
한편 손권은 손책이 죽은 이후로 강동을 근거로 해서 부형의 기업을 이어받아 널리 어진 인사를 받아드려 오회에 빈관[영빈관]을 만들어 놓고 고옹과 장굉에게 명하여 사방의 빈객들을 접견해 보도록 했다. 그 후 해마다 서로 서로 천거해 왔는데 당시 인물들로 회계의 감택, 자는 덕윤; 팽성의 엄준, 자는 만재; 패현의 설종, 자는 경문; 여남의 정병, 자는 덕구; 오군의 주환, 자는 휴목; 또 오군의 육속, 자는 공기; 오인의 장온, 자는 헤서; 회계의 능통, 자는 공속; 오정의 오찬, 자는 공휴등 몇 사람들이 강동으로 찾아오자 손권은 존경의 예를 심히 후하게 베풀었다. 또 뛰어난 장수 몇 사람을 얻었는데 그들은 여양의 여몽, 자는 자명; 오군의 육손, 자는 백언; 낭야의 서성, 자는 문향; 동군의 반장, 자는 문규; 여강의 정봉, 자는 승연 등이다. 문무의 여러 사람들은 서로 보좌하니 이로부터 강동에는 인재가 많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2)建安七年,曹操破袁紹,遣使往江東,命孫權遣子入朝隨駕。權猶豫未決。吳太夫人命周瑜、張昭等面議。張昭曰:「操欲令我遣子入朝,是牽制諸侯之法也。然若不令去,恐其興兵下江東,勢必危矣。」周瑜曰:「將軍承父兄遣業,兼六郡之衆,兵精糧足,將士用命,有何逼迫而欲送質於人?質一入,不得不與曹氏連和;彼有命召,不得不往;如此則見制於人也。不如勿遣,徐觀其變,別以良策禦之。」吳太夫人曰:「公瑾之言是也。」權遂從其言,謝使者,不遣子。自此曹操有下江南之意。但正值北方未寧,無暇南征。
건안칠년,조조파원소,견사왕강동,명손권견자입조수가。권유예미결。오태부인명주유、장소등면의。장소왈:「조욕령아견자입조,시견제제후지법야。연약불령거,공기흥병하강동,세필위의。」주유왈:「장군승부형견업,겸륙군지중,병정양족,장사용명,유하핍박이욕송질어인?질일입,불득불여조씨련화;피유명소,부득불왕;여차칙견제어인야。불여물견,서관기변,별이양책어지。」오태부인왈:「공근지언시야。」권수종기언,사사자,불견자。자차조조유하강남지의。단정치북방미녕,무가남정。
建安七年 서기 202년. 신라나해니사금 7년. 遣 보낼 견. 隨駕 예전에, 내간이나 신하가 임금이 나들이 할 때 그 뒤를 따라 모시는 일을 이르던 말. 猶 오히려 유, 마치 ---과 같다, 지금도 역시. 豫 미리 예, 미적거리다, 주저하다. 猶豫 일을 실행하는데 날짜나 시간을 미루거나 늦춤, 망설여 일을 실행하지 아니함. 下 아래 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가다. 用命 명령에 복종하다[따르다]. 사력을 다하다. 전심전력으로 애쓰다. 목숨을 바치다. 將士用命 장수와 병사가 모두 명령에 복종하다. 有何逼迫 무슨 박해가 있어서. 人 사람 인, 타인[자기를 나타낼 때는 ‘己’]. 質 바탕 질, 볼모. 一 한 일, ---하면 곧 ---하게 된다. 見 볼 견, 당하다, 받다. 禦 막을 어, 맞서다, 거역하다. 謝 사례할 사, 용서를 빌다, 사죄하다, 미안함을 표시하다, 거절하다. 値 값 치, …를 만나다. (어떤) 때를 맞이하다. 즈음하다. 暇 겨를 가, 틈 가.
< 해 석 >
건안 7년에 조조는 원소를 격파하고 나서 사신을 강동에 보내어 손권에게 아들을 조정으로 들여보내어 천자의 행차를 모시도록 했다[인질을 보내라는 뜻]. 손권은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오태부인이 주유와 장소등을 불러드려 자기 면전에서 의론토록 했다.
장소 : “조조가 우리에게 아들을 보내 입조토록 하려는 것은 여러 제후들을 견제하는 수법 입니다. 그러나 영을 받고 가지 않으면 그가 군사 를 일으켜 강동으로 쳐 내려 올가 걱정 됩니다. 그렇게 되면 형세가 위태롭게 됩니다.
주유 : “장군께서는 부형의 유업과 육군의 백성들을 물려받아 병사들은 정예롭고 군량도 충분하며 장사들은 모두 명령에 잘 복종하고 있는 데 [잘 훈련되어 있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인질을 보내려 하십니까? 만약에 인질을 보내기만 하면 할 수 없 이 조씨 와 화친을 하지 않을 수 없고 그가 오라했을 때 가지 않는다면 그의 견제를 받 게 됩니다. 그러니 차라리 보내지 말고 일어나는 변화를 관 찰하다가 별도로 좋은 대책 을 강구하여 대처하는 것만 못합니다."
오태부인 : “공근의 말이 옳으네.” 그리하여 손권은 그 말을 따라 사자에게 거절의 말을 전하고 아들을 보내지 않았다. 이때부터 조조는 강남을 공략하고저 하는 마음을 먹었지만 마침 그 때 북방문제가 정돈되지 않아 남정할 겨를이 없었다.
(3)建安八年十一月,孫權引兵伐黃祖,戰於大江之中。祖軍敗績。權部將凌操,輕舟當先,殺人夏口,被黃祖部將甘寧一箭射死。凌操子凌統,時年方十五歲,奮力往奪父屍而歸。權見風色不利,收軍還東吳。
却說孫權弟孫翊爲丹陽太守。翊性剛好酒,醉後嘗鞭撻士卒。丹陽督將媯覽、郡丞戴員二人,常有殺翊之心,乃與翊從人邊洪結爲心腹,共謀殺翊。時諸將縣令,皆集丹陽。翊設宴相待。翊妻徐氏美而慧,極善卜易;是日卜一卦,其象大凶,勸翊勿出會客。翊不從,遂與衆大會。
건안팔년십일월,손권인병벌황조,전어대강지중。조군패적。권부장능조,경주당선,쇄입하구,피황조부장감녕일전사사。릉조자릉통,시년방십오세,분력왕탈부시이귀。권견풍색불리,수군환동오。 각설손권제손익위단양태수。익성강호주,취후상편달사졸。단양독장규람、군승대원이인,상유살익지심,내여익종인변홍결위심복,공모살익。시제장현령,개집단양。익설연상대。익처서씨미이혜,극선복역;시일복일괘,기상대흉,권익물출회객。익부종,수여중대회。
績 자을 적, 성과. 敗績 싸워서 무참하게 패하다, 업적을 무너뜨리다, 대패(大敗)하다. 剛 굳셀 강. 嘗 맛볼 상, 일찍이 상, 늘, 언제나. 鞭 채찍 편, 매질하다. 撻 매질할 달. 嬀 성 규. 郡丞 군의 부태수. 戴 일 대, 받들다. 卜 점 복, 점치다. 卦 걸 괘, 저치다, 점괘. 象 코끼리 상, 형상, 징후, 점괘. 會客 손님을만나다.
< 해 석 >
건안 팔년 십일월에 손권은 군사를 이끌고 황조를 치게 되었는데 대강 가운데서 전투를 벌렸다. 황조는 참패를 했다. 그러나 손권의 부장 능조가 가벼운 배를 타고 앞서나가며 하구로 쳐 들어가다가 황조의 부장 감령의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다. 능조의 아들 능통이 당시 열 다섯 살이었는데 힘을 다해 쳐 들어가 부친의 시신을 탈취해서 돌아왔다. 손권은 형세가 불리해져서 군사를 거두어 동오로 돌아왔다.
한편 손권의 동생 손익은 단양태수의 직에 있었는데 성질이 괴팍하고 술을 좋아해 술이 취하면 늘 사졸들을 매질하기 일쑤였다. 단양의 독장 규람과 군승인 대원 두 사람은 항상 손익을 살해할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손익의 시종 변홍과 심복 관계를 맺고 공모하여 손익을 살해하고자 했다. 그때 손익은 모든 장수와 현령들을 다 단양에 집합토록 하여 술자리를 마련하여 그들을 대접하려 했다. 손익의 처 서씨는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자였으며 일반 점과 주역 점에 능통했다. 이날 점을 치니 점괘가 대단히 흉하여 손익에게 대회장에 나가지 말라고 권했으나 말응 듣지 않고 여러 사람과 어울려 크게 연회를 열었다.
(4)至晚席散,邊洪帶刀跟出門外,即抽刀砍死孫翊。媯覽、戴員乃歸罪邊洪,斬之於市。二人乘勢擄翊家資侍妾。媯覽見徐氏美貌,乃謂之曰:「吾爲汝夫報仇,汝當從我;不從則死。」徐氏曰:「夫死未幾,不忍便相從。可待至晦日,設祭除服,然後成親未遲。」
지만석산,변홍대도근출문외,즉추도감사손익。규람、대원내귀죄변홍,참지어시。이인승세로익가자시첩。규람견서씨미모,내위지왈:「오위여부보구,여당종아;불종즉사。」서씨왈:「부사미기,불인편상종。가대지회일,설제제복,연후성친미지。」
跟 발꿈치 근, 따르다, 수행하다. 抽 뺄 추. 擄 사로잡을 로[노], 노략질 하다. 幾 기미 기. 未幾 오래지 않은 동안. 晦 그믐 회. 成親 결혼.
< 해 석 >
날이 저물어 자리가 파해 흩어질 때 변홍은 칼을 차고 손익을 뒤따라 문 밖으로 따라 나서자 즉시 칼을 빼어 손익을 찔러 죽였다. 규람과 대원은 죄를 변홍에게 뒤집어 씌우고 저자거리에 끌어내어다 참해버렸다. 두 사람은 그 기세를 몰아 손익의 가산과 시첩들을 노략질했다. 규람이 서씨의 미모를 보고 그에게 말했다. : “내가 당신을 위해 당신 남편의 원수를 갚아주었으니 나한테 복종하여야 하오. 복종치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서씨 : “남편이 죽은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어찌 차마 곧 바로 당신을 따르겠습니까? 이번 그믐날을 기해 제를 지내고 상복을 벗은 다음 결혼 을 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2025년 8월 12일
이 종 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