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을 까다 보면 재미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한 껍질 안에 나란히 들어 있는 두 알은 대부분 크기가 비슷합니다. 그런데 가끔 한 알이 유난히 크면 다른 한 알은 작습니다.
좁은 껍질 안에서 한쪽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면 다른 쪽은 그만큼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겠지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도 때로는 이와 비슷합니다.
내가 조금 양보하면 다른 사람이 편해지고, 내가 한 걸음 물러서면 누군가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나폴레옹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어머니 레티티아가 식탁에 두었던 과일이 없어졌습니다. 어머니는 나폴레옹이 먹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네가 과일을 먹었지?”
“아니에요.”
그러나 어머니는 믿지 않았습니다.
허락 없이 과일을 먹은 것도 모자라 거짓말까지 한다며 크게 야단쳤고, 나폴레옹을 방에 가두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억울했지만 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과일을 먹은 사람은 나폴레옹이 아니라 그의 어린 여동생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아들을 이틀이나 벌주었으니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너는 동생이 과일을 먹었다는 것을 몰랐니?”
나폴레옹이 대답했습니다.
“알고 있었어요.”
어머니는 더욱 놀랐습니다.
“그런데 왜 말하지 않았니? 동생이 먹었다고 말했으면 네가 벌을 받지 않았을 텐데.”
그러자 나폴레옹이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제가 말하면 동생이 야단맞을 거잖아요.”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그냥 제가 벌罰을 받기로 했어요.”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어린 아들을 꼭 끌어안았습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는 것보다 어린 동생이 야단맞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살다 보면 나폴레옹처럼 큰 희생을 해야 할 일은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작은 양보가 필요한 순간은 날마다 찾아옵니다.
부부 사이에서 내가 한마디 덜 하고, 친구 사이에서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가족을 위해 내가 조금 불편해지는 것, 그 작은 양보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자리가 됩니다.
사랑은 언제나 내가 더 많이 갖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내가 조금 작아져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며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사랑입니다.(받은 글)
첫댓글 맞습니다~^^
좋은글 감사해요
장덕원 같은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