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 크라나흐(Cranach, Lucas)
1472년 오버프랑켄의 크로나흐에서 출생.
A. 뒤러, H. 홀바인과 어깨를 겨루는 거장으로 도나우화파(畵派), 특히 A. 알트도르퍼와 M. 그뤼네발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508년 네덜란드 각지를 여행하였으며, 후기 고딕양식에 르네상스적인 요소를 가미하였다. 루터의 친구였으며 종교개혁운동의 지지자로서 개혁자의 초상을 그렸다. 제작 장소는 처음에는 빈이었는데(1503∼1504) 그 후,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의 궁정화가로 있다가 1505년부터 비텐베르크로 옮겼다. 1537∼1544년 그곳의 시장을 겸하였으며 만년에는 선제후를 따라 바이마르로 가서 제작활동을 하던 중 1553년 그곳에서 객사하였다.
그의 특징은 종교화에서는 유명한“그리스도의 책형(1530)”의 인물들에서 볼 수 있는 형태상실감, 초상화에서는“작센 선제후(1532)”에 나타난 모델과 풍경과의 두드러진 대비, 신화화(神話畵)에서는“청춘의 샘”이나“어울리지 않는 한 쌍”의 유머러스한 내면묘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북유럽의 미의 여신으로 일컬어지는 독특한 비너스상이며, 오늘날 세계 각지의 미술관에 있는 이들 나체상에는 인도 세밀화(細密畵)의 에로티시즘이 보인다. 작품수가 많으며 이 밖의 주요 작품에“유디트”,“아담과 이브”,“샘가에 누워있는 강의 요정”등이 알려졌다.
“비너스와 꿀을 훔쳐 먹는 큐피드”는 독일의 대표적인 화가의 한 사람인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모식으로 그린 우의(寓意)적인 그림이다.
이 그림의 정절은 아주 흥미로운데 한 쌍의 날개를 가진 어린 큐피드가 훔친 벌집에서 꿀을 따 먹는 이야기다. 비록 꿀을 훔쳐 먹는 어린 큐피드는 달콤함을 느끼지만 무리로 덮쳐드는 꿀벌의 공격으로 벌침에 쏘인다. 그는 오른손에 벌집을 움켜쥐고 왼손으로 집요하게 따라붙는 꿀벌들을 쫓으며 어머니인 비너스에게 구원을 바란다. 하지만 비너스는 큐피드를 도와 꿀벌을 쫓아주기는 고사하고 외려 그를 질책한다.
이 그림에서 우의적인 의도를 보여준 부분은 큐피드의 손에 사랑을 쏘는 활과 화살 대신에 벌집을 움켜진 어린 큐피드의 모습이다. 꿀벌의 공격과 벌침에 쏘여 고통스러우면서도 기어코 벌집을 버리지 않고 꿀을 먹으려는 큐피드의 무지한 형상도 상징하는 바는 크다. 이 그림에서 루카스 크라나흐가 사람들에게 말해주려고 한 주제는 한 순간의 쾌락을 추구하여 남의 보금자리(벌집)를 빼앗으면 그에 상응한 징벌을 받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아래에 루카스 크라나흐의 명작“비너스와 꿀을 훔쳐 먹는 큐피드”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나 꺼내보기로 한다.
아버지는 벌통을 관리할 때마다 멀찍이 서있는 나에게 蜂巢를 베어주었다. 蜂巢를 입안에 넣고 잘근잘근 씹으면 달콤한 꿀이 혀끝을 녹여준다. 蜂巢를 먹는 재미란 나에게 이승극치였다. 어린놈이 그거만 주면 고분고분해지고 말썽을 절대 부리지 않았다.
먹는 것이 달콤하기만 하면 문제가 따른다. 자기 힘이 하나도 들지 않고 남의 힘으로 먹는 일에 재미를 붙이다가는 한번쯤 봉변을 당하기는 십상이다. 어린놈이 꿀맛만 알았지 벌침의 아픔은 그 무엇인지 몰랐다.
아버지가 안 계시는 어느 날, 蜂巢를 먹고픈 생각이 간절했다. 그렇다고 집에 안 계시는 아버지가 蜂巢를 따줄 일이 없었다.
“나절로 蜂巢를 따먹자.”
나는 그런 생각 처음 해봤다. 그냥 달콤하기만 한 蜂巢를 나절로 못 먹을 일이 있겠는가?
나는 벌통의 지붕을 열어젖히고 내 힘에도 부치는 蜂巢 하나를 끄집어내었다. 蜂巢에는 꿀벌들이 다닥다닥 했지만 난 거기에 서슴없이 입을 가져갔고 와작와작 뜯어먹었다. 그 순간 나한테 무더기로 덮쳐드는 아픔이 있었다. 혼비백산한 내가 蜂巢를 팽개치고 도망을 가고 있었으나 내 몸에 박혀든 아픔은 종내 멈출 줄 몰랐다.
그 일이 있은 후, 난 꿀맛을 알게 되었다. 그 꿀이 왜 그렇게 달콤하냐 하면 노동으로 빚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자고로 노동의 열매는 달콤한 것이지만 남 노동의 열매를 훔치면 고통의 응징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한낮 나에게 폭소의 추억만 던져주는 그 蜂巢사건은 내 어린 가슴에 심어준 영향이 컸다. 내 성장의 시절 내내 그런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다는 자체가 얼마나 행운인가?
위의 이야기는 필자가 동년시절에 겪었던 이야기다. 꿀의 달콤함에 빠졌던 나는 큐피드보다 더 장난스럽고 우직했다. 하지만 나는 큐피드처럼 신이 아니었기에 고통에 깨 잘 복종했고 그다지 집요하지도 않았다. 때문에 나는 큐피드가 나보다 더 바보스럽다고 여기면서 루카스 크라나흐와 같은 주제를 내놓고자 한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명작“비너스와 꿀을 훔쳐 먹는 큐피드”는 그 당시의 사회현실을 꼬집었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시대는 바야흐로 종교운동이 시작되면서 인간중심의 세상이 열린 반면 마젤란이나 콜럼버스에 의해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식민지시대가 시작된다. 신대륙이나 동방으로 처음 간 사람들은 선교사일행이다. 이들은 비너스나 큐피드처럼 인도적인 사랑을 부르짖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벌집을 빼앗아 꿀벌들을 추방하고 그 꿀을 빼앗아 먹는 약탈자들이었던 것이다. 루카스 크라나흐가 꼭 식민화를 비판하기 위해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독일이나 유럽에도 여전히 벌집을 빼앗아 꿀벌을 추방하고 그 꿀을 빼앗아 먹는 약탈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하여 루카스는 크라나흐는 자신의 명작“비너스와 꿀을 훔쳐 먹는 큐피드”에서 남의 보금자리를 빼앗으면 그에 응한 징벌을 받기 마련이라는 주제를 내놓았던 것이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필자도 루카스 크라나흐와 똑같은 주제를 내놓고 공감을 하려고 한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이런 부류의 인사들이 많다. 자신의 자그마한 이익을 위하여 남의 보금자리를 빼앗아 자신의 행복을 건설하는 것이다.
벌집을 빼앗아 벌을 추방하고 꿀을 훔쳐 먹으면 무리로 덮치는 벌들의 공격이 있을 것이고 또한 벌침에 쏘여 고통을 맛볼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달콤한 꿀을 먹을 때 시시각각 벌침을 생각하고 내가 잘 먹고 잘 살 때 또 자신이 행복할 때 남의 행복을 얼마나 밟았는지를 수시로 체크해야 할 것이다.
비너스와 꿀을 훔쳐 먹는 큐피드
로크라나흐(독일). 1537년. 목판에 유화. 174.5cm× 65.6cm. 베를린 달렘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