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에 걸린 아들
등짝에 달고
소아과병원 가는 길
새까맣게 잊고 지냈던
그날의 새 울음소리
크게 들렸네
울타리 산수유나무 가지마다에
새끼 잃은 원한의
피울음 널어놓다가
외려 돌팔매질에 혼났던,
돌아보면 그저 유년의
사소한 놀잇감이었을 뿐인
새 울음소리
25년 멀고 먼 거리
순간으로 달려와서는
못 갚은 죄의 가슴
콕, 콕 찍어왔네
-<때까치> 전문
내부화를 통해 주체와 대상 사이의 거리를 없애는 것이 서정시의 본질이라면, 이서정시는, 주체에 의한 대상의 전유를 압도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어떤 '절실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실패한다. 이재무 시인이 서정시의 오래된 관성을 견뎌내고, 그 안에서 승부를 거는 한 가지 방식은 바로 이 '절실함'이다. 위 시에서 독감에 걸린 '아들 : 때까치 새끼', 그리고 '화자: 어미 때까치'는 엄밀히 말해 각기 별개의 존재이다. 양자를 동일시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그러나 시인은 논리를 무시하고 때까치 '새끼 :어미'를 자기 안으로 끌어들여(내부화)'자신 : 자신의 아들'과 동일시한다. 이 동일시는, 논리상으로는 비약이고 인식론상으로는 과도하게 주관적이지만, '정서적 논리'가 받쳐줄 때 '시적 진리'가 된다. 서정시는 이렇게 '정서적 절실함'으로 객관적 논리를 뛰어넘어 시적 진리에 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