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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난이 심한 피서철과 겨울 혹한기를 피하고 나서도 서로 일자를 조정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해파랑길’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거나 스마트폰 앱 ‘두발로’를 다운받으면 동해안을 따라 걷는 길 안내 지도와 각종 정보가 나옵니다. 걷는 길은 자주 ‘국토종단 자전거 길’과 겹칩니다. 누구는 차로 가는 게 좋지 않으냐고도 합니다만 자전거도 좋고 차도 좋습니다.
오를 때 못 보던 꽃을 산을 내려오면서 시인은 본다지만 한 발 한 발 내 발로 이 땅을 밟으며
꽃을, 많은 꽃을 보았습니다. 동해를 좌로 보면서 계속 남으로 내려가다 보면 거진-속초-주문진-강릉-정동진-옥계-묵호-삼척-울진-영덕-포항-울산-부산 등 친숙하고 정겨운 지명을 만납니다.
가진-장사-수산-추암-덕산-부구-기성-후포-고래불-축산-강구-칠포-호미곶-구룡포-양포-감포-정자-진하-대변 같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낯선 이름도 지나고 삼포해변-하조대-주문진-경포대-사천진리-안인-추암-덕산-고래불-화진-칠포-나아-일산-진하-임랑-송정-해운대-광안리해변 같은 해수욕장도 만나게 됩니다.
낯설지만 이름들이 토속적이고, 정감 있는 명파-화진포-백도-정암-여운포-기사문-지경-연곡-솔바람다리-안인-옥계-고포-기성망향-사동-월송정-경정-오보-하저-남호리-구계-월포-오포-소봉대-연동-오류-전촌-나정-나아-관성-주전-간절곶-골매-동백-구덕포-동생말 같은 마을을 지나가기도 합니다.
북평, 동해, 포항, 울산 같은 공업, 산업 항을 만나거나 군 시설을 만나면 해안 길을 벗어나 내륙 안쪽으로 들어와 국도를 걷게 됩니다. 다시 바닷가로 내려서면 지자체가 신경 써서 나무 데크를 깔아놓아 걷기 편한 곳도 있지만 모래밭이나 자갈길, 그리고 해안가 바위들은 걷는 진도가 느려져서 오히려 해안가 안쪽의 아스팔트길이 걷기 편한 경우도 있습니다. 걷다 보면 외지인들이 뽐내면서 지어놓은 펜션도 많이 지나치는데 우리가 주로 묵는 민박집 간판은 색이 바랬더군요.
자동차 소리만 없다면, 그렇죠! 차 소리만 없다면, 시골길, 어촌 길은 조용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립니다. 사람 소리도, 전자제품 소리도 없고. 모든 것이 정지된 것처럼 고요하기만 하더군요. 조그맣고 낡은 어선들이 묶여 있는 한적한 어촌들을 지날라치면 낮은 지붕의 집, 그 집 안마당이나 또는 해안가, 길옆에서 나무로 된 틀에 미역을 널어 말리는 할머니들을 자주 보게 되었는데 대개 몸뻬 차림에 허리는 많이 굽으셨더군요.
철 지난, 혹은 철 이른 모래 해변에는 인간들이 남겨놓은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는데 걷는 내내 왼편으로 쭉 보게 되는 동해바다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무섭고도 푸르른 막대한 양의 물을 그득 보듬고 꿈쩍도 않은 채 있습니다. 저 멀리 끝까지 눈을 보내 보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옆으로 긴 직선만이 보이고 직선은 푸르지만 서로 다른 푸른색으로 하늘과 바다를 구분 짓고 있습니다. 다만 표면의 거품만이 괜스레 해안가로 밀려왔다가는 모래사장을, 자갈을, 바위를 그리고 방파제 ‘트라이포드’를 잠깐 간질이고는 다시 저 멀리 달려왔던 바다로 서둘러 물러갑니다.
해안 따라 큰 어항마다 너나없이 길게 촘촘히 늘어선 많은 횟집, 대게 집들이 문밖에서 손님을 부르는데 ‘바닷가=회’ 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매일 바닷가를 걷는 도보 여행자는 그냥 지나칩니다. 일부러 찾아간 맛집 중에 속초의 ‘머구리’ 물회 정식과 동해 막국수는 훌륭했으며 혀끝은 아직도 그 맛을 못 잊어 합니다. 동해안 식당에는 도수가 높은 빨간 소주는 없더군요. 식당의 재미난 풍경으로는 식탁에 여러 겹의 얇은 비닐을 깔아 놓고, 손님이 나가면 비닐 한 겹을 걷어내더군요. ‘섭국’이나 ‘시락’이라는 낮선 메뉴도 있읍디다.
비가 온종일 줄기차게 내리던 날은 저녁도 되기 전 오후 일찍, 걷기를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무열왕 수중 묘쯤에 다다르자 온종일 내린 비는 비옷 속으로 스며들어 축축해져 왔습니다. 비는 해안가, 바다, 모래사장, 들판과 산 정상, 기와집 지붕, 그리고 아스팔트 위로…, 온 산하에 골고루 내리고 있었습니다. 도시라면 다소 불편했을 비, 그러나 갈증의 산하에는 비가 뿌려줘야만 할 것 같았고 그 빗속에서, 새삼, 작아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사람 드문 시골길을 가다 길을 물었었습니다. 사람들은 “조오기-” 라고 손으로 가리켰고, “조오기-”는 2시간이 넘는 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포스코의 도시 포항. 포항제철 담벼락 옆길을 달리는 시내버스는 정거장을 4개나 지나도 담벼락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포스코 바다 건너, 맞은편 해안도로는 도로와 공원으로 길게 꾸며져 있는데 시민을 위한 공간이 여유롭고 풍요로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40여년 만에 찾은 울산 시내는 6차로, 8차로의 시원한 도로망이 눈에 들어왔고 조선, 자동차로만 알려진 울산에는 외곽에 국내 ‘옹기’의 50퍼센트 이상을 만들어 낸다는 옹기 마을이 있더군요.
오랜만에 마주하는 부산은 국내 도시 중 50층 이상 건물이 가장 많다는데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수영만을 따라 걷는 데크길도 좋았고 BEXCO, BIFF와 곁을 나누며 경쟁하는 두 백화점도 재미있어 보였습니다.
해파랑길의 시작 지점은 동해와 남해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부산 오륙도의 해맞이 공원입니다. 휴전선 바로 밑 고성에서부터 동해안을 따라 해파랑길을 거꾸로 걸어 내려와 시작점에 다다랐습니다.
걸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걸었습니다. 점심때가 되면 걸음을 멈춘 곳의 근처 식당에서 점심 먹고, 잠깐 쉬고 또 걸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소주 서너 잔과 저녁밥을 먹고 민박집을 찾아들어 몸을 누입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아침 다시 또 걸었습니다. 환경운동 (*1)과 미래사업(*2)에 매진하고 있는 나이 70세, 그냥, 걷는 게 좋았고, 동해바다가 좋았고 이 땅이 좋았습니다. 좋았습니다. 2,000리 길, 800킬로미터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과 얼추 비슷한 거리라고 합니다. (*1 쓰레기 분리수거, *2 손자 돌보기)
안개비 서린
이른 봄날
산길을 걷자
어느 추억으로도
마음 달랠 길 없을 때
손짓하는 자연의 손길
보송보송 다시 살아나
빛나는 몸으로 일어서는
산을 맞으러 가자
그곳에 파랗게 눈 떠가는
나무를 찾아서
언젠가 심은 그 나무 찾아서
( 김후란 시인의 아름다운 시 ‘언젠가 심은 나무’)
출처 : 장주익, 길은 외줄기, 남으로 2,000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