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인
아직 비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연못은 벌써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비오기 전 구름 낀 날씨엔 늘 그랬듯이 공기는 후덥지근했다. 사람이라면 그리 좋아할 수 없는 날씨였지만 그는 그 피부에 와 닿는 끈적끈적한 느낌을 좋아했다. 개구리였으니까.
그는 이미 한참을 이 연못가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날씨 탓에 날벌레들이 낮게 날아다녔다. 그러니 이 기회에 배를 채워둬도 됐다. 만약 그랬다면 앞으로 며칠 정도는 사냥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딱히 배고프지 않았기에 힘을 쓰기보단 그냥 이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그는 연못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유는 없었다. 사실은 눈앞에 있는 것이 연못이었을 뿐이다. 연못이 아니라 썩은 통나무였어도 그는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적어도 개구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행히 연못 주위는 볼거리들로 넘쳐났다. 붕어, 나비, 거미, 잠자리, 잉어, 두꺼비. 보고 있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뭐, 가끔씩은 지루해질 때도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와생(蛙生)인 것을. 그리 생각하면 참을만했다.
힘든 것은 따로 있었다. 풀잎 위에 앉아 있다 보면 자주 바람이 불어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세 번째로 자리에서 미끄러질 뻔 했을 때는 저기 옆에 보이는 돌쩌귀로 자리를 옮기는 것까지 진지하게 고민해봤을 정도였다. 생각뿐이었지만.
‘아니, 귀찮은 것은 아니다. 필요한 일에 열심을 기울이는 것은 마땅한 일이니까. 하지만 굳이 벌써부터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만약 지금 자리를 옮겼는데 바람이 멈추면 괜히 힘만 뺀 것이 아닌가? 그러니 지금은 이 자리에서 사태의 추이를 살피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다. 보아라. 그는 이미 몇 차례나 모진 바람을 이겨내 왔다. 설령 다시 거센 바람이 분다고 해도 한 번쯤이라면 다시 견뎌낼 수 있다. 힘들어지면 그때 가서 자리를 옮겨도 되지 않겠는가.’
아주 논리적이고 지혜로운 생각이었다. 적어도 개구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계속 그 자리에 머물렀다.
주위는 어느새 완전히 어둑어둑해졌다. 연못에 드문드문 동그라미들이 번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날아다니던 벌레들도, 헤엄치던 물고기들도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개구리, 그 혼자만이 연못가에서 숨 쉬는 유일한 생명인 것처럼 보였다.
문득 불안해졌지만 참기로 했다. 바람이 점차 세게 불었다. 개구리는 풀잎에서 두세번 미끌어질 뻔했다. 하지만 결국은 전부 버틸 만했다.
다음날이 되었고 하늘이 갰다. 다시 연못은 활기를 띄었다. 개구리가 볼만한 것들도 다시 늘어났다. 개구리는 배가 고파졌다. 배가 고파졌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리를 잡아먹으려 움직이며 그는 생각했다. 역시 자신은 해야 할 땐 하는 개구리라고. 어제는 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하지 않은 것이라고.
개구리는 스스로가 퍽 자랑스러웠다. 그는 궂은 날을 버텼다. 쓸데없는 소모를 줄였다. 이것이 겁먹고 도망친 다른 이들과 자신 사이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괜히 도망갔었더라면 힘만 낭비한 꼴이 아니었겠는가? 역시 그의 선택은 잘한 것이었다. 적어도 개구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며칠 후 폭풍이 찾아온 날에도 같은 선택을 했다. 당연하게도 그 후 볼거리 많은 연못가에서 개구리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