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닷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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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집 딸이 영어를 못 한다고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헌태의 어머니를 타박하는 중반부 설정은 한국어보다 영어에 훨씬 더 능숙한 헌태의 후반부 반격을 이끌어내기 위해 거칠게 심어놓은 시나리오상의 고리다. (이 영화에서 헌태의 어머니는 캐릭터는 없고 효능만 있는 인물이다.) 재복의 아버지가 시종 아들을 몰아붙이기만 하는데도 아나운서가 경기 직전 하필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아버지라고 하더군요”라면서 이전에 재복과 했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는 것도 얕게 파묻은 감정적 뇌관이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괴롭힐 때마다 이 영화는 인위적이다. ‘국가대표’에서
하지만 이 작품은 가장 많은 관객들을 향해 두 팔을 펼치려는 대중영화로서 일정한 감동과 재미를 갖춘 게 사실이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스포츠 영화로서 유사한 화술을 보여주었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나 ‘킹콩을 들다’보다 훨씬 더 뛰어난 경기 장면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전편을 통틀어 경기가 벌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신이 사실상 하나 밖에 없지만, 그 한 번의 동계 올림픽 장면을 유감없이 활용해 성공적인 클라이맥스로 이끈다.
충무로에서 처음 시도되었다는 캠캣 촬영이나, 10여대 카메라가 동시 촬영한 영상들은 다양한 앵글을 통해 역동적으로 연결되어 보는 즐거움을 준다. 경기장의 현지 관중들이나 한국에서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의 리액션 쇼트들도 스포츠를 카타르시스로 적절히 연결한다. 그리고 이 영화의 드라마와 달리, 경기 내용의 구체적인 전개나 결말은 전혀 진부하지 않다.
실제 경기가 벌어지기 전에 선수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가면서 훈련을 하는 장면들 역시 흥미롭다. 어설플 수 밖에 없는 동작들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몸 개그의 재미도 상당하다. (최근의 충무로 스포츠 영화들은 무엇보다 훈련 장면들을 대단히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각 인물들의 특성을 경기 방식이나 훈련 과정에 잘 녹여 넣은 점도 돋보인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는 역시 스키점프 특유의 비상 장면일 것이다. 도약대를 막 떠난 선수가 스키를 브이(V)자로 벌리고 몸을 최대한 낮춤으로써 예각을 만들어 도구와 몸을 일치시키며 아득하게 허공을 날아가는 모습은 극중에서 자주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대단한 쾌감을 준다.
이 영화의 유머는 대중적이고 적중률 또한 높다. “(딸의 사정도 제대로 모르는) 당신이 아빠야?”라는 흥철의 힐난에 “그럼 내가 엄마냐?”라고 종삼이 응수하는 부분 같은 말장난 개그조차 대사의 타이밍이나 배우의 연기가 잘 맞물려서 큰 웃음을 준다. 갑자기 들이닥친 조직폭력배에게 다들 겁을 먹고 있을 때, 사태 파악이 안 되는 봉구가 느닷없이 두목의 머리를 후려갈기는 대목처럼 기발하면서도 억지스럽지 않은 유머 감각이 빛나는 장면도 적지 않다. 좌절과 갈등이 폭발하는 신에서조차 매번 마지막 쇼트에는 웃음을 담음으로써 과도한 감정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도 재치있다.
현재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배우인 하정우는 안정되고 능숙한 연기를 통해 기대에 부응한다. 능글맞으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코치 역을 맡은 성동일은 리듬이 좋은 희극 연기와 밑바닥 감정까지 퍼올리는 비극 연기 모두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김동욱 김지석 최재환 이재응도 캐릭터를 명확히 드러내면서 호연했다.
김용화 감독은 객석을 향해 그물을 낮고 넓게 펼친다. 가끔씩 의도가 과도해 드라마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그는 관객들이 언제 감정적으로 고양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오! 브라더스’와 ‘미녀는 괴로워’에 이어 다시금 버려지거나 소외된 사람들을 따뜻하게 보듬으면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일을 해내는 그들이 이 나라를 이끄는 진정한 국가대표라고 말한다. 그게 언뜻 스포츠 영화의 전형처럼 보이는 이 영화의 제목에 힘주어 담으려 한 휴먼 드라마적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