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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큰굿 열두거리 속에 담긴 세계관
1. 제주 큰굿 열두거리에는 우주와 세계에 대한 인식과 탄생과 죽음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인간의 기대와 변화의 의지가 총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인간을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정리한 종교적, 예술적, 문화적 보고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관점 중에서 흥미로운 몇 가지를 통해 큰굿을 형성한 집단의 우주와 인간을 바라본 세계관에 접근하여 보자. 특별한 공간에서 만들어진 사유의 독특성은 보편성과 함께 특수성을 동시에 보유한다. 그것은 인류의 보편적 사고의 원형을 추적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활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변형되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현재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사고에도 지혜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제주 큰굿의 핵심적인 제의는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인간의 출생은 삼승할망이 하늘에서 가져온 꽃씨를 서천꽃밭에 심어 자란 꽃에 결정된다. 피워있는 위치에 따라 성별이 결정되고 수명이 정해지는 것이다. 인간을 ‘꽃’에 비유한 이러한 사고에는 인간과 꽃이 지닌 유한한 삶의 특징이 공유되고 있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이 꽃의 성장과정과 유사한 체계라는 점을 인식한 것이다. 그런 인식을 통해 인간의 생명은 ‘꽃’과 끊임없이 연결된다. 인간의 탄생을 책임지는 생불할망은 꽃을 사람들에게 배정하여 생명을 탄생시키고 그 생명을 15세 어른이 될 때까지 책임지고 보살핀다. 하지만 탄생만으로 인간의 생명을 원만하게 유지할 수는 없다. 끊임없는 질병과 우환 그리고 외부의 위협은 생명의 지속을 불안하게 만든다. 삼승할망은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용감하면서도 뛰어난 전사이다. 특히 아이들의 목숨을 빼앗고 얼굴에 큰 상처를 남기는 ‘마마신’은 삼승할망의 가장 큰 적이라 할 수 있다. 제주 본풀이 속에서 벌어지는 생불할망과 마마신의 대결은 생불할망이 지닌 출산의 능력을 통해 마마신의 힘을 약화시키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렇듯 인간의 생명은 꽃‘과 같이 연약하기에 자연적 힘에 의한 보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지극히 겸허하고 소박한 태도가 담겨있는 것이다.
3. 꽃의 중요성은 ‘서천꽃밭’의 존재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서천꽃밭’은 이승과 저승 사이, 하늘과 육지 사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과 죽음을 경계짓는 위치에 있다. 서천꽃밭에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생불꽃 뿐만 아니라 생명을 다시 살리는 환생꽃, 생명를 끊어버리는 악심꽃도 같이 자란다. 제주 본풀이의 영웅들은 선한 자를 살리기 위해 환생꽃을 찾아 서천꽃밭으로 오기도 하고, 악한 자를 징벌하기 위해 악심꽃을 가져간다. 서천꽃밭의 꽃들은 인간의 운명을 변화시키는 어쩌면 유일한 인간의 인위적 노력에 대한 결과를 보여준다. <초공본풀이>의 아들 3형제가 어머니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세경본풀이>의 자청비가 문도령과 정수남의 환생시키기 위해 서천꽃밭으로 와 환생꽃을 가져간다. 이승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최후의 노력인 것이다. 악의 징치도 이 곳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공본풀이> 속 사악한 주인가족도, <세경본풀이>에서 하늘에 변란을 일으킨 반역자들도 결국 서천꽃밭의 ‘악심꽃’에 의해 제거된다. 서천꽃밭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최후의 보루였던 것이다. 서천꽃밭은 기독교의 ‘연옥’과 중간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연옥이 천국으로 가는 중간 단계의 시험공간인 반면 ‘서천꽃밭’은 이승에 남아있기 위한 능력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좀 더 죽음보다는 삶에 의미를 두고 있는 공간이 아닐 수 없다.
4. 그런 의미에서 제주 큰굿집단의 저승관도 흥미롭다. ‘저승’은 결코 가고 싶은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가야한다면 최대한 시간을 늦추고 저승길이 편안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저승을 다스리는 염라대왕을 마음대로 움직였다는 ‘강림도령’의 이야기는 저승에 대한 인간의 영향력 확대의 욕망을 발견하게 된다. <저승차사본풀이>는 저승차사가 된 ‘강림도령’에 관한 본풀이다. 비록 염라대왕의 명령을 완수하는 저승차사가 되었지만 강림도령은 저승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고 저승의 군사들을 진압하고 염라대왕까지 포박할 수 있는 완력과 지혜를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죽음을 통제하고 싶다는 욕망은 <사만이본풀이>에서 더욱 명화하게 읽혀진다. 사만이는 숲속에 방치된 백년해골을 잘 보살핀 덕분에 저승차사을 따돌리는 방법을 알게 되고 그 덕분에 30세의 수명을 3천세까지 늘리는 인물이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죽음을 연장하는 다양한 액막이에 대한 인간의 의지가 발견되는 것이다. 죽음을 연장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가 저승과 죽음에 관련된 본풀이 속에 담겨 있다.
5. 제주 큰굿 본풀이에는 지상의 권력과 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저항의 정신이 담겨 있다. <천지왕본풀이> 속 수명장자는 엄청난 부를 소유했음에도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속이면서 부를 끊임없이 늘리는 악한이다. <이공본풀이> 속 부자 또한 가난한 자의 불행한 처지를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자이다. <세경본풀이> 속 정수남은 먹을 것을 구하지만 부자에게는 버림받고 가난한 자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그때 세경신은 “큰 농사는 망하게, 작은 농사는 흥하게”라는 자연의 명령을 통해 악을 징치한다. 선비들은 과거를 보러가는 가난한 형제들을 괴롭히고 아버지들은 딸들에게 닥친 비극을 이해하기는커녕 엄혹한 윤리적 잣대를 통해 집안에서 쫓아내는 일도 발생한다. 딸들의 죄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생겨난 불가피한 일이요 정당한 일임에도 징벌하는 것은 그 자체가 오히려 범죄인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당시 도덕률에 대한 서민들의 반항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6. 하지만 가족이 행한 죄는 처벌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범죄를 가져오게 한 외부의 악한이 철저하게 징치된다. 아버지의 어리석음이나 부재 때문에 가장 큰 희생을 받은 사람들은 딸이며 아내이다. 아들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목격하지 않지만 후일에 알게 되어 복수를 하는 주역으로 등장한다. 가족을 해체시키고 가족에게 죽음을 가져온 악한들은 철저하게 응징된다. 잔혹할 정도로 묘사되는 이들에 대한 복수는 고대 원시적인 폭력적 인식이 내재되어 있다. <이공본풀이>에서 할락궁이는 서천꽃밭에서 ‘악심꽃’을 가져와 어머니를 죽인 자 뿐 아니라 그 가족 모두에게 복수한다. <문전본풀이>는 아버지를 유혹하여 어머니를 죽이고 자식들까지 죽이려는 계모 ‘노일제대귀일의 딸’을 막내 아들의 기지로 제거한다. 그 장면은 통쾌하지만 잔혹한 장면이기도 하다. “목매달은 노일제대 들고 와 놓고 모가지는 자르고 입은 찟어서 돼지밥통 만들어버리고 양쪽허벅다리는 잘라서 디딤돌 만들어버리고 머리털은 뽑아서 던져버리니까 저 바다의 해초가 되고, 입은 잘라서 던져 버리는까 각다귀가 되고, 발톱과 손톱은 잘라서 던져버리는까 쐬굼벗, 돌굼벗이 되고 배꼽은 잘라서 던져버리니까 군소가 되고, 하문은 잘라서 던져버리니까 대전복 소전복이 되고, 똥구멍은 잘라서 던져버리니까 말미잘이 되고 자르다가 남은 건 불태워서 허풍바람에 불려버리니까 독한 년 몸 불태운 것이니” 이러한 장면 속에서 원시적 폭력과 윤리적 해결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이 혼재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문제해결에 대한 윤리적 관점을 중시하지만 그 해결 과정에는 여전히 원시적 폭력성도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7. 제주 본풀이에는 신이 되는 남성영웅들과 여성영웅들이 등장한다. 어떤 신화보다도 여성영웅들의 비중이 큰 본풀이의 내용을 보면 어떤 유형을 발견하게 되는데, 남성영웅과 여성영웅들의 성격적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본풀이 속 남성영웅들은 대부분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태어나고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모험을 시작하여 아버지를 만나 특별한 능력과 권위를 소유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버려진 상태에서 큰 아이가 아버지를 만나고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신권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곧 신통이 없음에서 신통을 새롭게 창조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버려진 상태라는 것은 곧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예비적 단계 코스모스로 이동하기 위한 카오스의 상태라고 하는 신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본풀이 속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은 평화적이고 원활한 게승담이다. 이것은 희랍신화나 다른 서양 신화에서 볼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대결과 갈등을 통한 계승과는 거리가 멀다. 갈등이 아닌 질서와 통합을 통해 권력이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성영웅들은 아버지를 통해 능력을 얻고 귀환하여 어머니를 구원한다. 본풀이 속 신들이 되는 여성들은 두 가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자식이 있는 여성들은 아들들로부터 구원받고 신의 자리에 오른다. 이러한 여성신의 성격을 모성적 특징이라고 볼 수 있지만 아버지에 의해 권력이 부여되고 아들에 의해 권력이 사용되며 고통받은 어머니까지 구원되는 상황은 남성이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 배경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8. 제주 본풀이의 매력은 또 다른 여성신들의 모습에서 발견된다. 이들은 독립적으로 자신의 힘과 능력을 통하여 시련을 이겨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들이다. 남성영웅들처럼 어버지로부터 권력을 부여받기는커녕 아버지로부터 버림 받는 경우가 많고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되고 도전받는 존재들이다. 이들의 영웅성은 스스로 증명할 수밖에 없다. <삼승할망본풀이>에서 생불할망은 생육신이 되기 위해 기존의 삼승할망이었던 여성과 대결을 벌인다. ‘꽃피우기’라는 생명과 지혜의 시합을 통해 삼승할망의 지위를 획득하고 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마마신과의 대결에서도 승리하여 아이들을 탄생과 성장의 수호신이 되는 것이다. <삼공본풀이>의 ‘감은장 아기’는 당당한 자신의 운명에 대한 확신 선언 때문에 위기에 봉착하지만 그녀에게 위기는 기회였다. 그것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과 능력을 소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강공주와 온달’ 설화처럼 남편을 이끌어내어 부자가 되었고 결국 자신을 버린 부모까지 구원하는 존재이다. 운명을 통제하는 능력을 지닌 그녀는 ‘전상신(운명신’이 된다. 그것은 ‘운명’이란 반드시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간의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9. 본풀이 여성영웅의 최고봉은 ‘자청비’이다. 그녀의 삶에 대한 인식과 삶을 개척하는 과정에는 원시적인 생명력 뿐 아니라 근대적 진취성까지 함유되어 있다. 그녀는 지상과 하늘의 문제를 해결한 말 그대로 전천후적 영웅이었다. <세경본풀이>의 자청비는 남성을 이끌고 주도하여 혼인에 성공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남성을 응징한다. 자청비와 관련된 남성들은 죽음을 경험한다. 그 죽음에서 환생하게 된 것은 자청비의 활약 때문이다. 자청비는 이들을 환생시키기 위해 스스로 남성으로 변장하고 시험을 이겨낸다. 하늘에서 벌어진 변란을 막기 위한 악심꽃도 가져온다. 결국 그녀는 지상과 하늘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 하늘로부터 인간을 먹여살리는 오곡씨앗을 가지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인간에게 전달했듯이, 자청비는 ‘곡식’을 가져온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의 전달자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점은 제주도 큰굿 집단이 지닌 여성의 능력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다. ‘제주도 신화’의 중심은 언제나 여성이었다. 대표적인 신화인 <설문대 할망>은 제주도 여성들의 신적 능력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신화이다. 세상을 평정하고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을 제공한 자청비는 제주도 최고의 문화영웅인 것이다.
10.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여성영웅들은 남성들에게 종속되지 않는다. 또 다른 모성영웅들이 아들로 상징되는 남성들에 의해 신들로 추앙되지만(<이공본풀이>, <문전본풀이>), 그들은 자신의 능력과 모험을 통해 자신의 신적인 자격을 검증받은 것이다. 이들에게 자식이 없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자식과의 연결은 신적인 자격을 위한 하나의 통로일 수도 있지만, 다른 방법을 통한 신적인 자격도 가능하다도 보았다. 이러한 이중적 여성영웅들의 성격은 제주 본풀이의 역사적 변천 과정에서 성립되었을 거라고 추정된다. 고대적 세계관에서 중심은 여성이었다. 제주도의 험난한 자연환경 속에서 여성들은 설문대 할망처럼 자신이 가진 능력 그 자체의 힘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었다. 현재 본풀이에 남아있는 생불할망, 가문장아기, 자청비처럼 말이다. 하지만 제주도가 육지에 의해 복속되고 불교와 유교라는 중세적 세계관이 도입되면서 가족적 윤리가 강조되었고 가족 간의 관계가 중심적 위치에 자리잡은 것이다. 모성적 여성영웅들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신의 위치로 전환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매력적인 것은 고대의 여성적 생명력과 근대적 여성의 진취성을 결합되어 새롭게 탄생한 여성들의 모습이 아닐 t수 없다. 비록 유교적 질서에 의해 여러 가지 변색되고 수정되었지만 제주 본풀이가 구연된 큰굿은 여성들의 해방구였으며 굿청을 넘어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현실로 향한 확장의 의지가 펼쳐지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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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이야기의 전승 속에서 찾은 인간의 속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