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St Peter's Square(성 베드로 광장)
대성당 동쪽에는 성 베드로 광장(Piazza di San Pietro)이 있는데, 1656년부터 1667년까지 11년 동안 베르니니의 설계로 세워졌다. 설계자 베르니니는 단순한 균형미를 광장 설계의 중심 주제로 했다. 광장에 들어서면 우선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양쪽에 서 있는 타원형의 대회랑이다. 모두 284개의 원기둥꼴 대리석 기둥이 각각 네 줄로 양편에 당당히 서 있는데, 기둥 하나의 높이가 16m나 된다. 그 위에 성인과 교황의 모습들이 대리석으로 조각되어 서 있는데 모두 140개이며 대리석상 하나의 높이는 3.24m의 거대한 석상이지만 순례자들의 눈에는 조그마한 모습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까닭은 광장과 대성당의 웅장한 규모 때문이다. 광장은 폭이 246m이며 광장 입구에서 대성당의 입구까지 길이만도 무려 300m나 된다.
(20) 광장 양 옆에 있는 두 개의 분수대.
광장 한가운데에 해시계처럼 우뚝 높이 솟아 있는 거대한 오벨리스크는 원래의 자리가 이곳이 아니라 대성당 정면을 바라보면서 왼쪽에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네로 전용의 개인 경기장이 있던 자리인데 오벨리스크는 경기장의 장식을 위해 그 안에 세워져 있었다. 바로 이 경기장에서 성 베드로가 순교를 당했고, 이를 기념하여 훗날 이 자리에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지었던 것이다. 네로의 경기장은 대성당을 건립할 때 모두 철거되었지만, 오벨리스크만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겨 두었다. 그 후, 식스토 5세 교황의 명령에 따라 1586년 4월 30일 이전 공사를 시작하여 130일 후인 같은 해 9월 10일, 지금의 위치에 세우게 되었다. 받침대를 제외한 순수한 오벨리스크의 높이만도 25m이며 약 300t의 무게인 이 건축물을 이전하려고 동원된 근로자만 900여 명이었고 그 밖에도 말이 140여 필, 이전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권선기 47대 등 당시로써는 엄청난 대공사였다고 한다. 난공사 끝에 지금의 자리에 옮겨진 오벨리스크 위에 청동으로 십자가를 제작해 올려놓았는데, 이 십자가 안에는 성녀 헬레나가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 원본의 일부가 들어 있다.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양쪽에는 화려한 바로크 문양으로 장식된 두 개의 분수대가 자리 잡고 있다. 대성당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오른쪽 분수대는 지금의 대성당 정면을 설계한 카를로 마데르노의 작품이며, 왼쪽의 것은 도메니코 폰타나가 설계한 작품이다. 이 두 분수대는 광장의 아름다운 조화와 균형을 위해 건축했다고 하는데 종교적인 의미로 생각한다면, 하느님의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물로써 죄를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욱 크다. 실제로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대성당에 순례 왔던 사람들은 모두 양쪽 분수대의 물을 손으로 떠서 머리 위에 먼저 뿌린 후 대성당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한편, 오른쪽 회랑 너머에는 교황의 거처인 사도 궁전과 바티칸 미술관 등 바티칸 시국의 실체가 있다. 성 베드로 광장이 끝나는 곳에 가면 산탄젤로 성과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긴 도로에 들어선다. 이 도로의 명칭은 “화해의 길”이라는 뜻의 비아 델라 콘칠리아치오네이다. 1929년에 바티칸과 이탈리아가 체결한 라테란 조약을 기념하고자 1937년 착공하여 1950년 성년을 맞아 개통되었다. 비아 델라 콘칠리아치오네 양편에는 아름다운 건물들이 나지막하게 줄지어 있다.[33]
(21) 제1대 교황 성 베드로의 무덤.
대성당 내부에는 백 개가 넘는 무덤들이 있는데, 대부분 대성당 바로 밑 지하 동굴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성 베드로를 시작으로 역대 교황의 대부분을 비롯하여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신성 로마 제국의 오토 2세 황제, 작곡가 조반니 피에르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도 매장되어 있다. 본국에서 추방당해 교황 클레멘스 11세에게 망명을 신청해 의탁한 영국의 가톨릭교도 왕족인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와 그의 두 아들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 그리고 헨리 베네딕트 스튜어트도 이곳에 묻혀 있다. 또한,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의 아내인 마리아 클레멘티나 소비에스카와 왕위를 포기하고 가톨릭 신앙으로 회심한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도 이곳에 묻혀 있다.
(22) 수공예품
성년에만 열리는 성년의 문.
대성당 정면 양 측면에는 두 개의 시계가 있는 종탑들이 있다. 왼쪽에 있는 시계는 1931년 이후 전기로 작동하고 있다. 대성당의 종은 1288년대에 제작하였다. 중앙 입구 위에 있는 모자이크 그림은 대성당의 가장 소중한 보물 가운데 하나이다. “나비첼라(Navicella)”라고 불리는 이 그림은 조토가 설계를 기반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상징하는 배를 표현하였다. 건물 앞에 서 있는 본당으로 들어가려면 입구의 회랑을 통과해야 한다. 길이 71m, 폭 13m, 높이 20m의 장엄한 회랑이다. 바닥에는 교황 요한 23세의 문장이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대리석상이 오른쪽에 있다. 이 석상은 베르니니가 1670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그 반대편에는 1725년에 아고스티노 코르나키니가 만든 샤를마뉴의 대리석상이 있다.
입구 회랑에서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다섯 개 있는데, 맨 오른쪽에 있는 청동 문이 ‘성년의 문(Porta Santa)’이다. 1950년 성년을 기념해 스위스의 신자들이 제작하여 기증한 이 문에는 열여섯 편의 성경 이야기가 부조되어 있다. 또 같은 해에 제작된 ‘성사의 문(Porta dei Sacramenti)’ 역시 성년을 기념한 것이었다. 가운데에는 ‘중앙문(Grande Portale Centrale)’으로서 유일하게 초기부터 있던 청동 문이 있다. 1455년에 피렌체 출신의 안토니오 아베를리노가 제작한 이 문 위쪽에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아래쪽에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가 부조되어 있다. 중앙문 바로 왼쪽에 있는 문이 1977년 9월 2일 교황 바오로 6세의 80회 생일을 기념해 만든 ‘선과 악의 문(Porta del Bene e del Male)’으로 오른쪽에는 선한 것을, 왼쪽에는 악한 것을 상징하는 형상들이 부조되어 있다. 맨 왼쪽의 문은 ‘죽음의 문(Porta della Morte)’으로 교황 요한 23세가 조각가 자코모 만추에게 요청해 만든 예술작품이다. 그 이름처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장례 미사를 거행할 때는 이 문을 통해 시신이 들어 있는 관이 출입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성년의 문은 50년 주기로 성년이 되는 해에 1년 동안 열리는데, 오직 교황만이 이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다. 지금의 문은 1950년 청동으로 만든 것으로 비코 콘소르티가 설계한 것이다. 문 위에는 성년의 문 개방을 기념해 새긴 비문이 있다: PAVLVS V PONT MAX ANNO XIII 그리고 GREGORIVS XIII PONT MAX. 근래의 기념 장식판은 아래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