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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존재공(백규) 유작, 21-(21)]
(5) 自歎의 詩와 散文(자탄의 시와 산문)
존재공은 아버지 영이재공이 넘지 못한 한계에 도전했다. 비록 말년에 옥과현감을 지냈지만 그것으로 자신을 달래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그는 자신이 비참하기도 하고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가 지은 여러 시에는 그런 회한(悔恨)이 짙게 베여있다. 다음은 관련 시 두 편과 도산축문, 고축명 병서, 을 감상해 보자.
■ 寫懷 (사회)
虛過六十一年春 예순 한 해를 헛되이 보내고
孤負聰明男子身 총명한 남자로 외로이 지니고 있네
到老全知曾不孝 늙어가며 일찍이 불효한 것을 알겠고
看書每覺我非人 책 볼 때마다 사람노릇 못한 것을 깨닫네
事爲半是名場誤 일은 반나마 과거장의 이름으로 그르쳤고
朋友空憑戱語親 벗은 헛되이 말놀음으로 친했다 뿐이네
仍复醉迷其奈爾 이에 다시 술이나 취해 다녀도 어쩌겠는가
從今節飮養天眞 이제부터 덜 마시고 천진을 기르리
■ 遺懷 (유회)
自歎存誠無素功 존성에 쌓은 공력 없음을 자탄하노라
尋常難使此心空 심상하는 이 마음을 비우기가 어렵다오
三代過去人生晩 삼대는 이미 가벼렸으니 태어남이 늦은 게요
一元催消物態窮 일원도 소진에 가까웠나니 만물도 궁태로다
登高放歌天地寬 높이 올라 소리쳐 노래하니 고금이 통한구나
禮樂江海白頭翁 쓸쓸히 늙어가는 할아비구려
■ 續首尾吟 (속수미음)
子華非是愛吟詩 자화가 시 옲기를 즐기는 것은 아니로다
詩是子華自愍時 시는 자화가 스스로를 근심할 때 울어 나온다
欲爲大人空白髮 대인이 되려다가 백발의 몸이 되었고
稟生偏氣負良知 편협한 기질을 타고 나서 양지를 저버렸다
千年有友空書籍 천년의 벗이 있거늘 헛되이 서적만 뒤적이다가
一世何之坐呆凝 한 세상 어딜 가려 했기에 얼간이로 나앉았는가
若見仲尼吾不悔 그렇지만 만약 중니를 본다면 난 후회 않으리
子華非是愛吟詩 자화가 시 읊기를 즐기는 것은 아니로다
존재공은 이 시에서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처음에는 성벽(姓僻), 지역(地僻), 인벽(人僻) 등 주로 주변 환경 탓으로 여겼으나 말년에는 우주적 순환의 이유로 돌려 달관(達觀)의 경지에 이른 너그러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공은 자신의 시대를 '삼대' 로 진단했는데 삼대는 이상시대로부터 멀어져 버린 시대요, 경세(經歲)가 모두 지나고 소진기(消盡期)로 접어든 즉 재세(災歲)로 인식하고 있다. 또 한편 대인이 되려 했으나 편협한 성격으로 말미암아 양지를 저버리고 천년의 벗을 찾지 못하고 공부만 하다 얼간이로 나앉았다고 후회하고 있다. (존재전서 p.27, 김석회․존재문학 연구 p.29)
■ 禱山祝文(도산축문)
天冠山이여, 天冠山이여!
저는 이제 이미 富를 위하여 不仁을 求할 수도 없고
또한 밭을 갈아 시장에다 내다 살만한 餘力도 없으니
위로 부모를 모시고 아래로는 처자를 거느려 食口가 십여인인데
이들은 헐벗고 굶주려 겨울 포근한 날에도 추위를 호소하고
가을 곡식이 무르익은 때에도 배고파 울며
마른 날엔 가죽신도 없고, 궂은 날엔 나막신도 없는데다가
밭을 갈려 해도 소가 없고, 출입하려 해도 수레가 없고
하나 뿐인 남종 여종도 나무를 하고, 물을 길은 일을 하지 못하니
조상의 제사를 때 맞춰 지내지 못하고
친한 객이 이르러도 공궤(供饋)1)할 수 없고
친인척간에도 왕래문안조차 할 수 없고
歲時 절기를 당해도 스스로 차려서 즐길 수 없습니다.
부친이 올해 70세요, 모친이 72세인데
베옷을 면하지 못하고 나물국도 배불리 먹지 못하니
실로 저를 숙맥(菽麥)2)을 분별할 수 없는 자로 만들었다면
혹시 그만 일 수도 있겠으나
이미 성근 자식이라도 있어 세상에 비추고 제 몸 징험(徵驗)케 되니
어찌 돌아보며 슬퍼 탄식(歎息)함이 없으리까?
하물며 나는 무뢰(無賴)한 흉년에 뜻밖의 돌림병을 만나
세상에 알아줄 친구도 없으니
누구와 더불어 주신모본(周身謀本)하여
(각주)
1) 供饋 : 윗사람에게 대접할 음식
2) 『춘추』의 주석서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말로, 원말은 숙맥불변(菽麥不辨)이다. 주자(周子)에게 형이 있었는데 그가 똑똑치 못하여 콩〔菽〕과 보리〔麥〕도 구분하지 못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원래는 모양이 뚜렷이 차이가 나는 콩과 보리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을 이른다.
서툴 게라도 의탁하여 살길을 찾으리오!
이제부터 흐트러져 구렁텅이에 거꾸러질 것이
단연코 의심할 바 없는지라
비록 안자(顔子)라 할지라도
이에 당하면 도(道)를 즐길 수 없을 것이로소이다.
실로 신명(神明)의 뜻을 알 수 없으니
과연 저는 어찌해야 좋으리까?
維神所宅寔名語山羣巒西來鸞翔龍挐若往易峙
1773년(癸巳) 또는 1774년(甲午)의 작품
◼ 鼓軸銘 竝序(고축명 병서)
유우씨(有虞氏 순임금)가 창오(蒼梧)3)에서 세상을 떠난 후 대악(大樂)이 쇠퇴했다. 이후 악관(樂官) 기(夔)가 나무에 가탁하여 천뢰(天籟)를 빌어 온갖 짐승이 다 함께 춤을 추는 유음(遺音)을 울렸다. 4)
나무의 곡직(曲直)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갈라지다가 갑자기 꺾이고 옆으로 뻗다가 툭 차고 일어나기도 한다. 악기들 중 큰북(大鼓)과 큰 종〔賁鏞〕은 대곡(大曲)을, 관악기와 도고〔管鼗〕 5)는 소곡(小曲)을 연주하여 경쇠와 명구(鳴球)는 위로 퍼지고, 작은 북과 큰북〔朄鞞〕은 옆에서 울려 퍼지듯 움직여 소성(小成)6)하고, 맑고 아름답게 대성(大成)하니, 네 개의 가지에서 나와 완연히 물체의 형상을 이루었다.
꿈틀거리며 위로 힘차게 올라가는 것은 용의 모습이고, 쫑긋 꼬리를 쳐들고 돌아보는 것은 호랑이의 모습이다. 진정으로 음악을 아는 사람이 이 나무를 만난다면 눈에 쏙 들어오고 마음에 찰 것이니, 그래서 북을 매다는 축(軸)으로 삼은 이유인 것이다. 이 어찌 후기(后夔)의 영혼이 되돌아와 4천 년 만에 진정으로 만난 것이 아니겠는가.
(각주)
3) 창오(蒼梧)에서 …… 후 : 창오는 지명으로 구의(九疑)라고도 하는데, 순임금이 남쪽으로 순행하다가 이곳에서 죽어 장사 지냈다는 곳이다. 《史記 卷1 五帝本紀》
4) 온갖 …… 울렸다 : 악관(樂官)인 기(夔)가 순 임금에게 아뢰기를 “아, 제가 경쇠를 치고 두드리니, 온갖 짐승들이 다 함께 춤을 추었고, 백관들이 진실로 화합했습니다.〔於 予擊石拊石 百獸率舞 庶尹允諧〕”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益稷》
5) 도고(鼗鼓) : 땡땡이, 북자루를 잡고 돌리면 북의 양쪽 끝에 단 구슬이 북면을 치게 만든 북을 말한다.
6) 소성(小成) : 성(成)은 음악 한 곡조의 매듭을 말한다.
그 머리 부분을 보면, 높이 치켜들고 뒤돌아보며 마치 북소리를 사랑해서 머뭇거리는 듯하다. 중간 허리 부분은 낙타 등처럼 불룩 튀어나와 북의 고리를 받치고 있으니, 힘을 쓰느라 등뼈가 수척해졌다. 꼬리가 저골(骶骨)을 따라 구부러져 올라갔다가 또 상하로 구부러져 드리워지고, 또 조금 말렸다가 뒤쪽을 가리키니, 무상(舞象)7)이 큰 박자에 호응하는 것 같다.
왼쪽 앞다리는 무릎뼈가 앞으로 활처럼 굽어 있고 오른쪽 앞다리는 비스듬히 뻗고 앞으로 나가려 하니 머리와 서로 호응하여 뒤돌아보는 힘을 돕는데, 춤추는 학이 날갯짓과 같다. 왼쪽 뒷다리는 마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듯이 밖으로 정강이뼈를 내밀고 있어 현제(懸蹄 말 무릎 안쪽에 붙은 군살)가 위를 향하는 것 같다. 오른쪽 뒷다리는 비스듬히 직선으로 쭉 뻗었으니, 대체로 무거운 짐을 지고 서 있는 네 다리가 모두 이런 모습이 있다.
힘줄 하나, 뼈 하나, 큰 마디, 작은 옹이에 터럭만큼도 인위적인 기교가 없이 천연적으로 완성된 것 같으니, 기(夔)의 신령이 참으로 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 이처럼 기이하게 북을 매달기에 적합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머리부터 꼬리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28마디가 하늘의 28수(宿)에 호응하는 듯하니, 어찌 우연이겠는가. 이는 뛰어난 사물인데도 진정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찌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겠는가.
그렇지만 이것은 다만 야산의 산굽이에서 생겨 나와 형체가 낮게 드리워지고 골격이 약해서 사고(社鼓 동네 두레북의 틀)가 되었을 뿐이다. 크고 깊은 산속에 울퉁불퉁 우뚝 솟고 영험하게 생겨 귀신들이 수호하는 백 년 된 오랜 나무가 있어서, 궁현(宮懸)8)이나 천구(天球)9)의 받침대가 될 수 있는데 해곡(嶰谷)10)의 사신(使臣)을 만나지 못하여 단지 절벽의 바람과 협곡의 비를 노래하듯 용트림하고 있음을 어찌 알겠는가.
아, 나무가 진정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도 대소가 있단 말인가. 느낀 점이 있어 다음과 같이 명(銘)을 지었다.
木之奇兮不自奇 기이한 나무는 절로 기이한 것이 아니라
而遇知者知鼔而鼓之 알아주는 자를 만나야 고축이 되리니
若大遇也 특별한 큰 만남이 있게 된다면
宜天下稱奇 천하가 기이하다 칭하리라
(각주)
7) 무상(舞象) : 《예기》 〈내칙(內則)〉에 “성동(成童)이 상을 춤추고 활쏘기와 말 타기를 배운다〔成童舞象 學射御〕.”라고 했다.
8)궁현(宮懸) : 천자나 제후의 궁중에서 연주하던 악기의 일종이다. 《五禮通考》에 “아헌이 끝나면 궁현으로 숙녕곡을 연주했다.〔亞終獻宮縣肅寧之曲〕”라고 했다.
9) 천구(天球) : 옛날 옹주(雍州)에서 공물(貢物)로 바쳤던, 하늘과 같은 색깔을 지닌 구슬로, 궁궐의 예식용으로 쓰였다. 《서경(書經)》 〈고명(顧命)〉에 “대옥과 이옥 천구와 하도를 곁채에 두었다.〔大玉夷玉天球河圖在東序〕”라고 했다.
10) 해곡(嶰谷) : 곤륜산(崑崙山)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아름다운 대(竹)가 나는데, 황제(黃帝)의 신하 영륜(伶倫)이 일찍이 이곳의 대를 취하여 음률(音律)을 제정했다고 한다.
◼ 祭亡女文(제망녀문)
1767년 21세 때 영암 조광근(曺光根)에게 시집간 외동딸이 1788년에 죽자 차남 도급(道及)을 보내 조문하게 했다. 다음은「祭亡女文」의 일부의 이다. 아버지가 출가해 42세에 타계한 딸에게 제문을 쓴 경우는 드물다. 얼마나 사무침이 컸을지 짐작된다.
『내 집은 본디 가난하여 거친 밭 한 섬지기에 거둬들이는 것이 황량했고, 나 또한 계책이 졸하여 힘써 일하지 않으면서도 위로는 사당을 지키고 다음으로 부모를 봉양하고 밖으로는 손님과 친구를 접하랴 출입왕환에 대응하랴 수입을 헤아려 지출을 하기에 천신만고하니 쌀농사 보리농사에도 양식을 이어대지 못했다. 너는 여자의 몸으로 내게 태어나 그 고달픔과 주림 번뇌가 말하지 않아도 가히 알 수 있을지니라, 친정에서 21년간 한 번도 세끼 밥을 먹어본 적이 없고, 한 젓가락의 생선 고기를 집어 본적이 없이 절구질에 물 긷기, 불 때기, 빨래와 온갖 노고에 밤낮이 없었구나…(중략)… 불씨의 윤회설이 만약 허탄한 것이 아니라면, 원컨대 다시 내 아버지 내 어머니의 자식이 되고 너의 아비로 되어서, 이 회한의 심정으로 힘을 다해 밭을 갈아 쌀밥에 고기반찬, 솜 두둑한 옷과 이불로써 내 아버지 어머니를 봉양하고, 나로 하여금 겨울에도 죽을 먹지 않고 여름날도 세끼를 거르지 않게 하고, 봄이면 쑥떡을 해주고 가을에는 청울치신11)을 사 주고, 생일날은 생선 굽고 국을 끓여 먹고 더불어 문란(門欄)에서 즐거이 놀 수 있기를…실로 그럴 수만 있다면 세간의 경상과도 바꾸지 않으리니 오직 내 소원이로다.』 12)
외동딸(1751년생)을 영암 조광근(曺光根)에게 시집보냈다. 그런데 친정에서 21년간 살면서 한 번도 하루 세끼 밥을 먹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다. 바닷가에 살았음에도 “생선을 집어먹어보지도 못했다”니 그 가난의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막내 동생(伯獻)은 4명의 형들 때문에 일찍부터 농사꾼으로 생업에 종사해야 했다. 다른 형제들의 마음도 같았지만 큰형의 입장에서는 더욱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덕산을 오가면서 공부를 하고, 서울을 오가며 과거에 응시해야 하기에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경비는 모두 가족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농사일로 얻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의 제문에 불교의 윤회설을 끄집어들인 것이다. 철저한 유학자가 불씨설로 망자를 위로한 것은 그만큼 회한과 상심이 우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직했으면 쌀밥에 고기반찬, 솜을 두둑히 넣은 옷과 이불을 해주고 싶다고 했을까. 봄이면 쑥떡해주고, 가을에는 청울치로 만든 신을 사주겠다고 했을까. 생일날엔 생선을 굽고 국을 끓여 주겠다고 했을까. 하여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사족의 바람인 경상(卿相)도 바라지 않겠노라고 소박한 소원을 나타내고 있다. 이쯤이면 평생을 공부해온 사족이나 선비의 체면 따위는 관심 밖인 것이다.
각주)
11) 칡넝쿨 속껍질로 짜서 만든 고급신발
12) 존재전서 하 413-444
(144-084일차 연재에서 계속)
첫댓글 (144-083일차 연재)
(장흥위씨 천년세고선집, 圓山 위정철 저)
83일차에도 '존재공(위백규)의 유작'이 밴드에 게재됩니다.
※ 주) 63~83일차(21일차)에는 '존재공(백규)'의 유작이 계속 이어집니다.
/ 무곡
존재공 유작 83일차에서는 인생의 회한이 짙게 깔려있는 문장을 접하게 됩니다.
상황은 다르지만, 개인적으로는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도 연상이 됩니다./ 무곡
존재선생께서는 사람의 단계를 성인, 현인, 범인으로 구별하네요./ 벽천
딸의 죽음에 대한 제망여문은 무척 슬픈 글입니다. 얼마나 존재선생의 가슴이 아팠을까요.학문적인 측면에서 여성에 대한 기록이라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이외에도 여성에 대한 기록으로 열여문이 다수 있습니다./ 벽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