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여섯시
어느동쪽에나 그만한 태양은
솟는 법인데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다고
부산피운다
태양은 수만개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나와서 해를 보라
하나밖에 없다고
착각해 온 해를 보라
성산포에서는
푸른색 이외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설사 색맹일지라도
바다를 빨갛게 칠할순 없다
성산포에서는
바람이 심한 날
제비처럼 사투리로 말한다
그러다가도 해뜨는
아침이면 말보다 더 쉬운
감탄사를 쓴다
손을 대면 화끈
달아오르는 감탄사를 쓴다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술을 마실 때에도
바다옆에서 마신다.
나는 내말을 하고
바다는 제말을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한다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맨 먼저 나는 수평선에
눈을 베었다
그리고 워럭 달려든
파도소리에 귀를 찢기고
그래도
할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저 바다만의 세상하면서
당하고 있었다
내 눈이 그렇게
유쾌하게 베인적은 없었다
내 귀가 그렇게
유쾌하게 찢긴 적은 없었다
모두 막혀 버렸구나
산은 물이라 막고
물은 산이라 막고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때는
차라리 눈을 감자
눈을 감으면 보일거다
떠나간 사람이
와있는 것처럼 보일거다
알몸으로도 세월에
타지 않는 바다처럼 보일거다
밤으로도
지울수 없는 그림자로 태어나
바다로도 닳지 않는
진주로 살거다
일출봉에 올라 해를 본다
아무 생각 없이 해를 본다
해도 그렇게 나를 보다가
바다에 눕는다.
일출봉에서
해를 보고나니 달이 오른다
달도 그렇게 나를 보더니
바다에 눕는다
해도 달도 바다에
눕고 나니 밤이 된다
하는 수 없이 나도
바다에 누워서 밤이 되어 버린다
날 짐승도 혼자 살면
외로운 것
바다도 혼자 살기 싫어
퍽퍽 넘어지며 운다
큰산이 밤이 싫어
산짐승을 불러오듯
넓은 바다도 밤이 싫어
이부자리를 차 내 버린다
사슴이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밤을 피해가듯
넓은 바다도
물속으로 물속으로
밤을 피해 간다
성산포에서는
그 풍요 속에서도 갈증이 인다
바다 한가운데 풍덩
생명을 빠뜨릴 수는 있어도
한모금 물을
건질 수는 없다.
성산포에서는
그릇에 담을 수 없는 바다가
사방에 흩어져 산다
가장 살기 좋은 곳은
가장 죽기 좋은 곳
성산포에서는
생과 사가 손을 놓지 않아
서로 떨어질 수 없다
파도는 살아서
살지 못한 것들의 넋
파도는 피워서
피우지 못한 것들의 꽃
지금은 시새워 할 것도
없이 돌아선다
사슴이여
살아 있는 사슴이여
지금 사슴으로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꽃이여 동백꽃이여
지금 꽂으로
살아있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슴이 산을 떠나면
무섭고
꽃이 나무를 떠나면
서글픈데
물이여
너가 물을 떠나면
또 무엇을 하느냐
저기 저 파도는
사슴 같은데
산을 떠나 매 맞는 것
저기 저 파도는
꽃 같은데
꽃밭을 떠나 시드는 것
파도는 살아서
살지 못한 것들의 넋
파도는 피워서
피우지 못한 것들의 꽃
지금은 시새움도 없이
말하지 않지만
어망에 끼었던
바다도 빠져나오고
수문에 갇혔던
바다도 빠져나오고
갈매기가 물어갔던
바다도 빠져나오고
하루살이 하루 산 몫에
바다도 빠져나와
한자리에 모인
살결이 희다
이제 다시 돌아갈 곳이
없는 자리
그대로 천년 만년
길어서 싫다
꽃이 사람된다면
바다는 서슴지 않고
물을 버리겠지
물고기가 숲에 살고
산토끼가 물에 살고 싶다면
가죽을 훌훌 벗고 물에
뛰어들겠지
그런데 태어난대로 태어난
자리에서 산신께 빌다가
세월에 가고
수신께 빌다가
세월에 간다
성산포에서는 설교는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기도보다도 더 잔잔한 바다
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
저 세상에 가서도
바다에 가자
바다가 없으면
이 세상에 다시 오자
카페 게시글
詩, 그림이 되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은빛II
추천 1
조회 876
23.11.21 22:21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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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른 아침 일출시간. 제주 성산포. 바다.바람이 부는 느낌.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
윤설희 씨의 낭송에 마음이 쿵~~! 했던 시 잊고 있었다가 "시.그림이 되다"가 다시 기억 하게 해주었네요 ~~^^
리듬이 있어서
긴 시이지만
편하게
술술 읽히네요....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