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이상·김일성·이수자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 핵심으로 유죄 판결받은 윤이상 김일성을 ‘우리 역사상 최대 영도자’로 칭송한 윤이상 “수령님 끝없이 흠모해 영전에 큰 절올린다”고 적은 윤이상 김일성이 ‘애국지사’로 격찬한 윤이상 하지만, 윤이상의 용서 못할 범죄는 따로 있다 한 독일 유학생(오길남)의 가족을 북으로 회유, 가정 파괴한 윤이상 북한, 해외공작조직인 ‘윤이상 음악연구소’ 평양 설립 북 교과서,“전두환의 광주대학살만행 고발한 영웅” 찬양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동백림 간첩단사건’ 핵심 인물로 김일성에게 충성의 편지를 쓴 작곡가 고(故) 윤이상(1917-1995) 출생 100년을 맞아 “국민과 함께 윤이상이 사랑했던 이 땅, 이 바다, 이 하늘의 소리를 그의 음악에서 발견하고 즐길 날을 기대해 본다”고 추모의 글을 올려, 윤이상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투쟁을 준비한 혐의로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았던 청년 윤이상을 구원했던 것도 음악이었다. 많은 사람의 존경 속에 악보 위의 선을 자유롭게 넘나들던 그였지만 한반도를 가른 분단의 선만큼은 끝내 넘지 못했다”며 “지금 윤이상은 베를린에 잠들어 있다. 그리고 아직 우리에게 그의 음악은 낯설기만 하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과 관련, 조선닷컴은 18일 “윤씨는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2년 뒤인 1969년 대통령 특사로 석방돼 독일로 돌아갔고, 베를린에서 1995년 사망했다. 친북 활동 논란이 사후에도 계속되는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조선닷컴은 이어 “지난 7월 문 대통령과 주요 20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을 방문했던 부인 김정숙 여사도 윤씨 묘소가 있는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통영에서 가져온 동백나무를 심었다”면서, 윤씨와 김 여사의 사상적 친화성을 주목했다. 조선닷컴은 정치권에선 “동백림 사건 이후 수십 차례 북한을 오가면서 독재 체제를 찬양하고 한국을 비방했던 윤이상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았는데, 정부가 앞장서서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면서 “일본·독일에서 작곡을 전공한 뒤 베를린에 정착해 활동한 윤씨는 수십 차례 방북하고, 김일성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 력사상 최대의 령도자’ ‘주석님의 뜻을 더욱 칭송’ 등의 표현을 쓰는 등 친북행위를 해 비판을 받았다”고 전했다. 조선닷컴은 또 “윤씨가 재독 간호사였던 ‘통영의 딸’ 신숙자씨의 남편 오길남씨에게 가족 월북을 권유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면서 “윤씨의 아내 이수자(90)씨는 김일성이 사망한 지 5년째 되는 해인 1999년엔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아 방명록에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며 수령님 영전에 큰절을 올립니다’라고 썼다”고 상기시켰다. 이런 윤씨에 대해 문 대통령 뿐만 아니라, 성악을 전공한 부인 김정숙 여사도 맹목적 미화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난 7월 5일 문 대통령과 주요 20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을 방문했던 김정숙 여사는 윤씨가 잠들어있는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Landschaftsfriedhof Gatow)를 찾아 참배하고 통영에서 가져온 동백나무를 심었다. 문 대통령은 공원을 직접 찾지는 않았지만 동백나무 식수행사는 문 대통령의 이름으로 이뤄졌다. 묘소에 심어진 어른 어깨높이의 동백나무 앞에는 붉은 화강암으로 된 석판에 <대한민국 통영시의 동백나무 2017. 7. 5.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이란 금색 글자가 새겨졌다. 윤이상이 세계적인 작곡가임에는 틀림없으나, 과연 그는 정치적으로 어떤 사람인가? 윤이상은 ‘동베를린 간첩단사건’으로 복역한 후 독일에 되돌아간 후에도 자유민주체제의 대한민국에 적대하고 전체주의적 김일성 세습독재집단에 친화적인 언행을 계속했다. 그 후 윤이상은 냉전시대에 당연한 응보로써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베를린에서 1995년 숨을 거뒀다. 북한문제연구가인 서옥식 박사(정치학, 전 연합뉴스 북한부장-편집국장)에 따르면 윤이상은 교도소에서 풀려난 뒤에도 아내 이수자(현재 90세)와 함께 수십차례 북한을 방문하고 김일성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 역사상 최대 영도자’‘주석님의 뜻을 더욱 칭송’이라는 등의 표현을 쓰는 등 종북행위를 일삼아 온 사람이다. 1984년 평양에 북한의 해외문화공작조직인 ‘윤이상 음악연구소’를 설립했고, 김일성의 75회 생일을 기념해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라는 곡을 바쳤다. 평양에는 그의 이름을 딴 음악당이 있다. 북한은 1992년 윤이상을 모델로 해외망명, 친북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민족과 운명’을 만들었다. 조선노동당출판사가 2000년 출간한 김일성 교시집 ‘재(在) 서독교포 윤이상 일행과 한 담화’에는 김일성이 윤이상을 ‘애국지사’로 격찬한 내용이 나온다.
▲지난 1992년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전신)가 북한 공작 조직에 연계된 자들을 공개한 자료. 가장 왼편에 있는 인물이 바로 ‘윤이상’이다.(사진= 국회도서관) 서옥식 박사가 쓴 ‘거짓과 왜곡 조작 날조를 가르치는 사회 - 북한 교과서 대해부(해맞이 미디어, 2015)’에 따르면 북한의 음악교과서는 윤이상이 작곡과 여러 가지 활동으로 조국통일과 반독재투쟁, 인권옹호, 반핵반전 운동에 적극 참가했다면서 “광주인민봉기와 전두환 군사깡패무리들의 광주시민 대학살만행을 고발한 관현악 《광주여 영원히》,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성전에 온 남녘동포들이 떨쳐나설 것을 열렬히 호소한 교성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윤이상의 ‘용서받지 못할 죄’는 따로 있다. 그는 한 유학생을 북한으로 회유해 그의 가정을 완전히 파괴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재독 유학생 오길남씨는 파독 간호원이었던 신숙자씨와 1972년 결혼해 두 딸 혜원, 규원을 두고 있었다. 부산고와 서울대학교 문리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오길남 씨는 1985년 브레멘 대학에서 유학 15년만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윤이상은 오길남 박사에게 서신을 보내어 “박사학위 취득을 축하한다. 이제 통일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데 북으로 가서 그동안 배운 지식을 동포를 위해 써달라”고 말했다.
▲ 이수자씨가 1999년 7월 8일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 방문록에 남긴 친필 글. 2003년 북한 문학예술출판사가 펴낸‘금수산기념궁전방문록실화집(2)-영원한 추억’에 수록돼 있다. 문대통령 부인 김정숙씨의 윤이상 칭송발언에 대해 월간조선 2017년 8월호는 <누가 대통령의 아내에게 역사를 해석할 권한을 주었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비판의 날을 세웠다. 월간조선은 “대한민국은 문재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선출했을 뿐 그의 아내 김정숙씨에게 헌법상 아무런 권한을 부여한 적이 없다. 그는 그냥 대통령의 아내로써 법 혹은 관례대로 예우를 받을 뿐이다. 그런 그가 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윤이상을 ‘조국독립과 민주화를 염원했다’고 단정짓는가?”고 비판했다. 월간조선은 또 “누가 대통령의 아내에게 대한민국 역사를 해석할 권한을 줬는가? 김정숙씨는 그렇게 현대사에 해박한가? 김정숙씨는 북한이 미국을 겨냥하는 미사일을 쏘아 올린 이 시점에 윤이상 묘를 방문해 그를 칭송해야했는가? 그것이 본인의 독단적인 결정인가 주변에 있는 제3자의 권고에 의해서인가?”고 물었다. 월간조선은 이어 “나는 김정숙씨가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잘 마치도록 보살피는 임무 외에 특별한 ‘임무’가 없다고 생각한다. 국민들도 그렇게 여길 것이다.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월권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아내가 본분을 저버리고 역사의 전선(戰線)에, 이데올로기의 첨병(尖兵)을 자처하는 순간 그 종착지는 뻔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오길남 박사가 부인의 권유로 북한을 탈츨한 뒤 입북을 권유한 윤이상에게 가족의 구명을 호소했다. 윤이상은 북에서 전달받은 이 사진을 건네주면서 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가족은 죽을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한다. 탈북자들은 이 사진의 배경이 요덕수용소라고 증언하고 있다. 오길남 박사는 43세였던 1985년 12월 13일 독일 베를린에서 북한의 공작에 넘어가 부인 신숙자 씨(43)와 딸 혜원(9), 규원(7)을 데리고 월북했다. 신씨와 두딸이 2년 후인 1987년 요덕수용소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이때 신씨 나이는 45세, 두 딸의 나이는 각각 11세와 9세였다. 신씨가 2017년 현재 생존해있었다면, 그의 나이는 남편과 같은 75세이며 혜원, 규원씨는 각각 41, 39세가 된다. 이 사진은 1991년 1월 윤이상이 오길남 박사에게 ‘다시 평양으로 가라’고 종용하며 건넨 6장의 사진 중 한 장이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씨(중앙)가 2017년 7월 5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Landschaftsfriedhof Gatow)에 있는 고 윤이상 묘소에 참배하고 동백나무를 심은 뒤 주변을 살피고 있다. 오길남 박사는 1985년 겨울 윤이상의 회유와 북한에서 좋은 교수직과 아픈 아내에게 최상의 진료를 보장하겠다는 북한 요원의 말을 믿고 월북한다. 아내 신수자씨는 “도대체 거기가 대체 어떤 곳인데 가려고 하느냐”며 완강히 반대했다. 그러나 이미 북한도 조국이며 개혁개방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환상에 젖어있던 오박사는 고집을 부리며 자신의 가족을 영원한 지옥으로 몰아넣는 결정을 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동의한 아내 신씨는 “당신의 이 결정이 크나큰 불행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언처럼 말했다. 잘못된 결정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985년 12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던 순간 이미 오박사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그날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는데 추운 날씨에 비쩍 마른 화동들이 색동저고리에 스타킹 차림으로 꽃을 건넸습니다. 그 순간 아내가 왈칵 울음을 터뜨렸지요. 그 아이들에게서 우리 애들의 장래를 본 것입니다. 가슴이 섬뜩했습니다.”
▲고 윤이상의 묘소에 심어진 어른 어깨 높이의 동백나무 앞에는 붉은 화강암으로 된 석판에 <대한민국 통영시의 동백나무 2017.7.5.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이란 금색 글자가 새겨졌다. 이에 대해 일부 국민들은 “대한민국은 김정숙씨를 대통령으로 뽑은 게 아니다”며 비판했다. 평양에 도착하자 오박사 가족은 외부와 차단된 채 세뇌교육을 받았으며 그는 ‘민영훈 교수’라는 가명으로 매일 13분씩 대남 선전 방송을 했다. 기가 막혔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앙당의 호출을 받았다. 그에게 임무가 하달됐다. 유럽으로 가 남한 유학생 2명을 포섭, 입북시켜라는 것이었다. 경제학자에서 대남방송 요원으로, 다시 공작원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오길남 박사는 독일로 가던 중 코펜하겐 공항에서 탈출한다. 그리고 혜원, 규원 자매와 아내 신씨는 1987년 말 요덕수용소 혁명화구역에 갇히는데 이때 혜원은 11세, 규원은 9세였다. 오길남 박사가 북한을 떠나기 전, 아내 신숙자 씨는 “내 사랑하는 딸들이 짐승처럼 박해받을망정 파렴치하고 가증스러운 범죄 공모자의 딸들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지 말고 당신 하나만이라도 빠져나갈 수 있다면 우리 몫을 살아 달라. 나는 애들에게 아버지는 바보스러웠지만 훌륭한 아버지였다고 말하겠다. 그 범죄 공모에 절대 가담하지 말라! 도망쳐라!”고 말했다고 한다. 신숙자 씨는 1942년 통영에서 태어나고 통영에서 자랐으며 통영초등(45회) 통영여중(9회)을 졸업한 전형적인 ‘통영의 딸’이었다. 2011년 5월 통영에서는 신숙자씨와 두 딸 혜원, 규원을 구출하기 위한 운동의 일환으로 요덕 정치범 수용소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통영의딸송환대책위원회’ 대책위원이기도 한 서옥식 박사는 그동안 대책위 차원에서 정부 요로와 유엔 등에 신숙자씨와 딸 오혜원, 오규원의 구금해제와 송환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보내고 민간과 합동으로 국내외 여론을 환기시키는 세미나 등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북한은 요지부동이었다고 비판했다. 서 대책위원은 “대책위는 천주교 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전국의 여러 인권단체에 신숙자씨와 두 딸을 구출해줄 것을 간청했으나 묵살당했다”면서 “그토록 정의와 인권을 부르짖던 천주교 인권위 등 국내 대부분의 인권단체들은 북한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통영의딸송환대책위원회’는 지난 2012년 7월 20일 신숙자씨 남편 오길남 박사를 상임대표로 하여 출범했으며, 노재봉 전 국무총리를 비롯한 우리 사회 각계 인사 255명이 참여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앞서 2012년 4월 신숙자 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서한으로 유엔에 전달했다.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ICNK)는 2012년 5월 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이 같은해 4월 27일자로 유엔에 보낸 A4용지 한 장 분량의 서한을 공개했다. 북한당국은 이 서한에서 “신씨는 임의적 구금을 당한 것이 아니다. 그는 간염으로 사망한 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또 “남편인 오길남씨가 가족을 버렸고, 두 딸의 어머니 신씨를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에 두 딸은 오씨를 아버지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두 딸은 오씨를 상대하는 것을 강력히 거부했다. 더 이상 그들을 괴롭히지 말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길남박사는 “전형적인 거짓 답변서로 보인다. 북한의 근거 없는 주장을 담은 답변서를 공식 문건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오박사는 또 “저의 아내가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그리고 어디서 어디로 끌려다니며 살았는지 구체적인 것들이 언급되지 않아서 북한의 통보 자체가 의혹투성이”라고 했다. 북한의 사망통보와는 달리 생존해 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대책위는 송환 대상에 신씨를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다. ICNK는 “북한은 신씨가 어떻게 사망했는지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만약 사망했다면 북한이 사망증명서를 공개하고 신씨의 유해를 남편인 오길남씨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ICNK는 앞서 2011년 11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에 신씨의 생사확인과 송환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유엔 내 ‘임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이 2012년 3월 1일 신씨에 대한 북한의 답변을 요구하는 서한을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에 전달했고, 이에 북한이 4월 27일 공식 답변서를 보내온 것이다. 이에 따라 대책위는 북한당국의 발표대로 신씨가 사망했다면 사망 경위, 일시, 장소 등을 명확히 알리고 유해를 송환해줄 것을 유엔에 요청했다. 대책위는 이와 함께 2012년 9월 4일에는 오박사가 북한의 두 딸을 만날 수 있도록 정부에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하기도 했다. 한편 <故윤이상 ‘親北 논란’ 계속되는데… 文대통령 “그의 음악 즐길 날 기대”>라는 기사를 통해 “윤이상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았는데, 정부가 앞장서서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정치권의 우려를 소개한 조선닷컴은 또 <대통령 부부의 계속되는 윤이상 찬양>이라는 사설을 통해 “윤씨는 음악으로는 보기 드문 수준에 오른 음악가다. 그러나 가장 포악한 범죄 집단 편에 서서 한 가족의 인생 전체를 망친 사람이다. 윤씨의 공과(功過)를 따지는 일은 시간이 흐르면서 관련자들의 상처가 아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언젠가 후세가 음악인 윤이상과 친북 윤이상의 공과를 자연스럽게 평가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을 기다리지 않고 갑자기 최고 권력자 부부가 나서서 마치 ‘규정’하듯이 복권을 계속 시도하고 심지어 ‘민주화’까지 말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문 대통령을 비판했다. ◈윤이상의 작품 ‘광주여 영원히’등을 소개한 북한 음악교과서 해당부분 윤이상(1917~1995) 윤이상은 우리 민족이 낳은 재능있는 세계적인 작곡가이다. 유년시절부터 남다른 음악적 소질을 가진 그는 음악에 대한 큰 포부를 안고 광복전 서울과 일본에서 작곡공부를 하였으며 광복후 빠리와 베를린에서 유럽작곡법을 배우고 베를린에서 창작활동을 하였다. 그는 작곡과 여러 가지 활동으로 조국통일과 반독재투쟁, 인권옹호, 반핵반전 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윤이상은 생의 기간 5편의 교향곡과 4편의 가극 그리고 관현악, 실내악, 교성곡을 비롯한 100여편의 음악작품들을 창작하였다. 광주인민봉기와 전두환 군사깡패무리들의 광주시민 대학살만행을 고발한 관현악 《광주여 영원히》,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성전에 온 남녘동포들이 떨쳐 나설 것을 열렬히 호소한 교성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출처: 음악(고등중학교 제5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90(2001)년, p. 41.)
▲수백만명의 한국인을 죽게 만든 북한 김일성에 충성을 다한 작곡가 윤이상의 동상과 흉상은 통영 윤이상기념관에 버젓이 세워져 있다.(오른편 사진들) 흥남철수작전에서 10여만 피난민을 구출한 6.25 전쟁영웅을 기리는 거제도의 김백일장군 동상은 친북·촛불군중세력에 의해 거적과 쇠사슬로 모욕당하는 수모를 겪었다.(가장 왼편 사진) 이 두 역적과 영웅의 동상이 겪는 명암이 문재인을 비롯한 한국인의 전도된 가치관을 증거한다
문재인과 종북 주사파가 자기들의 세상인줄 앎니다. 등신들입니다.
지피지기면 백정백승입니다. 주님과 진리와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라 그리하면 능력이 폭발하리라!
왜 이미 영적인 영역에서 패하고 결박을 받았으면 영적인 건국과 함께 체포되어 의와 공의에 심판을 받고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고 체제와 사상교육을 받을 것이며 불의한 재물은 100% 회수 할 것입니다 벌거벗길 것입니다.
이것이 의와 공의입니다.
물론 감옥에 있어도 저들의 인권은 존중하고 죄와 인권은 분리되어 죄에서 돌이키고 뉘우치고 체제와 사상이 영적으로 바르게 바뀌고 국민 앞에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재산회수에 적극적이면 비록 몰수할 금액이 부족해도 그도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데 용서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어도 이대로 가겠다!!! 그러면 형벌의 가혹함이 무엇인지 보여주어야 하겠지요. 이는 의와 불의에 대한 공의적 행위이며 우리와 후손에게 계승해야 할 마땅한 것입니다. 문재인이는 이미 끝장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며 그 일을 영으로 훤히 보고 이 같은 글을 올리는 것입니다. 이글이 카페에 올리기 전에 하나님아버지 앞에 저의 신앙고백과 믿음의 선포가 같이 하는 것입니다.
이때 문재인 이를 지배하는 이세상의 어둠의 주관자들이 그래 맞아 방법이 없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진실로 간구하는 기도의 영으로 믿음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 영혼들을 아버지의 긍휼과 자비의 마음으로 온유 겸손과 사랑의 옷을 입고 자기 십자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들을 사랑하며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아 자기의 십자가 바로 지고 가면 마귀는 이를 보면서 쩔쩔매며 호들갑을 떨며 방정을 떨며 끝났도다! 끝났도다! 큰성 바벨론이여 하는 것입니다.
이 설명을 문재인 안에 역사하는 어둠의 세상주관자를 다스려 문재인의 계획이 산산이 깨어지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권세로 세상을 다스리며 이 같이 자기 노출하는 불의 불법의 이기적인 기득권의 세력을 일망타진할 그날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스스로 자가 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래은 문재인 끝장내기 준비 중 이 내용을 발견하여 정리하며 아래 글을 먼저 보여드립니다. [“북한 김일성 세습에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과 민족공조] 구약성경의 에스겔서 34장은 전 장이 목자에 대하여 논한 장이다. 그래서 목자장이라 부른다. 여기서 목자란 말은 교인들을 돌아보는 목사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지도자들은 물론이려니와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 전체를 포함하여 일컫는다.
우리는 에스겔 34:1~4절에서 악한 목자의 특성과 그 악한 목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에스겔 34:1~4절을 킹제임스 성경으로 읽어보자.
‘1.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말씀하시니라.
2. 인자야,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대적하여 예언하라. 그들에게 예언하여 말하라. 주 하나님이 목자들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자신들만 먹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화가 있도다! 목자들이 양무리들을 먹여야하지 아니하냐?
3. 너희가 살진 양들을 잡아 기름을 먹고 양털로 옷을 입어도 양무리를 먹이지 아니하는 도다.
4. 너희가 환자에게 힘을 돋우어 주지 아니하고, 병든 자를 치유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고, 쫒겨난 자를 다시 데려오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였도다. 그 대신 너희가 폭력과 잔인함으로 그들을 다스렸도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그와 같은 악한 목자가 없을까? 있다! 아주 가까운 곳에. 바로 북한을 다스리는 김일성 세습체제입니다. 여기에서 그 증거를 제시해 보겠다. 김일성 주석이 죽은 해가 1994년이다. 그때로부터 3년간에 걸쳐 그 시신을 보존하는 기념관을 꾸리는 데에 무려 8억 6천만 달러나 되는 엄청난 재정을 투입하였다. 그런데 그 3년 동안에 굶어 죽은 북한주민의 숫자가 최소한 250만으로 추정된다. 북한 국민 전체가 1년 간 먹을 식량을 확보하는 데에 대략 3억 달러면 가능하다. 그렇다면 3년간 9억 달러면 온 국민의 식량이 해결 될 수 있음에도 그 예산을 김일성의 시신을 꾸리는 기념관 건설에 투입한 것이다. (이런 정권을 상대로 남한에서 계속 수십억 달러에 해당하는 지원을 해오고 있다). 그렇게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인 김정일, 이 얼마나 악한 목자인가! 게다가 김정일은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에 약 50억 달러의 비자금을 맡겨두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 기근이 들어 수백만 명이 아사할 때, 김정일은 단 한 푼도 식량을 구입하는 데 쓰지 않았다... 지금도 김정일은 개성 노동자가 받는 월급 57.5달러 중 50달러 이상을 중간에서 직접, 또는 환치기로 가로채고 있다.(이것은 전근대사에 등장했던 극악한 지주-소작 관계에서도 볼 수 없는 현상이고 갑오농민들이 삼정의 문란시기에 들고일어났던 세금 착취와도 비교할 수 없으며 유일하게 고대 노예제 시대 때 노예들을 착취하던 노예주(主)에나 견주어 볼 수 있는 것이다). 실로 고대 노예제 사회보다 더한 착취와 폭력, 억압이 존재하는 전근대적 수령 제일의 전체주의 국가가 북한이다. 김정일은 수십억 달러를 숨겨놓고서도 주민들 구제에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전 노동당 비서 황장엽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은 군량미라도 우선 방출하여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자는 건의도 묵살하면서 그런 발상을 한 부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김정일의 화려한 식탁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코냑, 프랑스산 와인, 샥스핀(상어 지느러미) 스프, 바다가재, 캐비아(철갑상어 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소 즐겨먹는다는 음식들이다... 북한을 돕는 일에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 한 가지 있다.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들을 분리하여 도와야 한다는 원칙이다. 지금 우리 정부가 북한을 돕는 일에 과오를 범하고 있는 점이 바로 이 점에서다. 북한 정권이 어떤 정권인가? 주민들의 굶주림이나 고통은 전연 도외시한 채 그릇된 가치관과 통치관으로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굳히는 데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정권이다. 더욱이 평양의 김정일 독재정권은 오늘날 전 세계 모든 나라들 가운데 기독교를 가장 극심히 박해하는 정권이다.
성경은 악한 자를 도와주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통치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진노를 받을 것이라고 분명히 경고한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대하19:2)... 남을 도와주고 남을 사랑하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님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아합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미워하는 악한 자를 도와주고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공조’ 한다면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며 인권을 탄압하는 최악의 수구보수냉전세력인 평양의 김정일 독재정권을 퍼주기 식으로 지원하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는 악한 행위라는 사실을 성도들은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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