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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포인트
새 포인트로 가는 20여분 동안 옆 선수와 나는 나란히 앉아 지나가는 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에서 보는 섬들은 자주 보는 섬들이지만 볼 때 마다 항상 다른 섬 같은 느낌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섬을 바라보다 얼핏 옆선수를 돌아 봤다.
마치 시합직전의 UFC출전선수처럼 목에 힘이 잔뜩 들어 독이 올라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와 진배없는 표정이다 싶어 목구멍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허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만약 웃음이 시비꺼리 되면 하루 낚시는 둘 다 망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올라오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래도 터지려는 웃음이 목구멍에 걸려 있어 라이프자켓에 손을 찔러 넣었다.
피로회복제로 가져 온 저당사탕 몇 알이 손에 잡혔다.
순간 ‘어차피 보내야 할 인간, 사탕이나 주자’ 라는 생각이 번뜻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금니를 깨물고 앉아 있는 옆 선수에게 저당사탕을 몇 알 꺼내 밀었다.
“머씨다요?”
“당이 낮으니까 드세요.”
혹시나 거절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옆 선수는 두말 않고 받아 들며 엉뚱하게 말을 걸었다.
“근디, 말이요.”
“?”
“고거 얼매나 가요?”
뱃전에 꽂혀 있는 내 전동 릴을 가리키며 옆선수가 물었다.
“아, 이거요? 백만 원 좀 넘게 준거 같습니다.”
“흐메, 고까이거이 백만원이라고라? 흐메.”
나는 괜히 전동 릴 가격을 말했나 싶어 머쓱했다. 자랑으로 들릴까봐 구입할 때 가격보다 훨씬 작은 금액으로 말했는데 꼭 조롱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다운 됐지만 옆 선수는 전혀 개의치 않고 속을 더 긁는 듯했다.
“허지만 쪼끄맨거이 참 해 보이긴하요. 근디, 얼매나 간당가요?”
“조금 전에 말씀드렸잖습니까?”
“흠미. 고거이 아니고만이라.”
“네에?”
“고거이 얼매나 쓰는 가 이말이여.”
비로소 옆선수의 말을 완전히 이해한 내가 전동 릴 가격으로 오해하지 않은 것 같아 반가웠고 민망해서 웃었다.
옆선수는 내 전동 릴에 장착된 배터리2000의 사용시간을 두고 한말이었다.
“아하! 이거요? 한 개 풀 충전하면 8시간 사용합니다. 허지만 입질이 피었을 때는 6시간정도로 보면 됩니다. 그래서 두 개 가지고 다니는데 아직 전원이 모자란 적은 없습니다.”
옆 선수가 고개를 꺼덕였다.
“돈 가치는 하요. 혀도 나는 허벌나게 비싸서 고런 건 못 쓰겄소잉.”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충전기에 두 개 합쳐도 전동 릴 가격 절반도 안 됩니다. 배 전원을 사용하다 회로부하 걸리면 수리비가 더 나갈걸요? 낚시반경도 무제한이고.”
옆 선수는 고개를 꺼덕였다.
“허긴 그렇고만이라. 작년에 이 릴 수리함시로 26만원 홀딱 까먹당께요.”
“기아 나간 것은 사장님의 관리가 소홀했던 것이네요.”
“음메, 아니어라. 내가 얼매나 잘 닦는디?”
“방수 릴이라도 2년에 한번은 꼭 오버홀 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염분스케일이 낀 릴로 대물 걸다 기어나가는 경우 흔하니까요. 낚시하다 기어나가면 참 난감하잖아요?”
“혹시 말이어라, 전동수리하요?”
“저요? 전 볼트도 못 풉니다. 하하하.”
“근디 워찌 글께 용하요? 조거이 고 때 속 쎅인거 생각하몬. 흐흐흐.”
옆 선수가 자신의 전동 릴을 가리키며 퍼석하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인간의 정은 웃음으로 시작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어긋난 대화 몇 마디로 금세 서로의 이질감이 달아나버린 듯 했다.
인간은 적과 대화를 나누면 동지가 될 수도 있는 동물임이 확실했다.
새로 옮긴 포인트에 도착했다.
“삐익!”
선장이 클러치를 미처 빼기도 전인 듯싶은데 후미에서 함성이 터졌다.
꼭 도시어부들이 후미에 동승해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우와!”
“크다. 커!”
후미의 함성은 또 다른 자리에서도 연이어 터졌지만 선두는 감감했다.
후미를 살폈다.
좌우에서 연신 몇 마리의 게르치보다 큰 우럭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배의 흐름을 살폈다.
배가 조류의 사각으로 흐르고 있었다.
포인트에 올라탄 배의 흐르는 각도는 정상흘림이 아니었다. 약한 조금물때지만 대 조금물때 보다 더 빠르게 흐르는 모양새가 리만해류에 부딪치는 쿠로시오해류 같았다.
요즘 같은 이상폭염에 표층해수온도와 심층해수온도의 차이가 극심해서 발생한 이상조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경우 선두보다 선미의 입질확률이 월등하게 높다.
이유는 해류의 영향이 아니다.
어탐기와 소냐는 해류까지 읽지 못하기 때문에 정석대로 배를 포인트에 올려도 해류가 배의 흐름을 간섭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역현상일 뿐이다.
오늘은 선장이 고생 좀 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일단 옆선수를 쳐내고 오후 물때만 잘 봐도 아내에게 자연산매운탕감은 넉넉히 가져간다는 자신감에서 지은 미소였다.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후미입질이 터진 후, 선실기기의 오차를 계산한 선장이 천천히 배를 조류와 평행이 되도록 밀어붙이는 듯 배가 사선으로 회전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묵직하게 끌어당기는 입질을 받고 나는 전동 릴의 조그를 오른손가락으로 밀어 올렸다.
“쏴르르르.”
경쾌한 금속음이 한여름 풀숲의 매미소리처럼 경쾌하게 울렸다.
그리고 나의 초리는 수면으로 곤두박질했고, 나는 얼른 수면과 수평이 되도록 대를 세웠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워풀한 챔질과 함께 옆 선수도 까무러쳤다.
“왔어야! 나 왔당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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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가 낚시하고있느듯 착각에 ... 참 재미있습니다. 다음편 기다려 집니다
빈잔님께서 재밌어 하시니 글 쓴 저도 좋습니다
멋진 오후되십시오
제가 낚시를하는 기분으로
일일드라마처럼 기다려지는 글~~
다음편 기다리면서 ~~~
네, 이 글은 대략 10회정도 연재할까합니다
그동안 관심주세요.고맙습니다
와.
디게 재미있네요
두무진앞서바다에 다녀오셨나요?
거기가 저의 홈그라운드 입니다.
들풀친구님.
무척 더운 여름이 계속되어 조행도 망설여지리라 여겨집니다
그래도 꾼들은 물을 봐야 살맛이 나겠지요? ㅎ
멋진 오후되세요
아참, 두무진이 그라운드라셨죠? 멋진 곳입니다.저는 한창 우럭낚시다닐 때 소청도와 백령을 주로 다녔습니다.
@불루보트 그곳에서 졸업사진 찍을때 지지바이들.사나나이들 과 함께 찰칵! 하든 시절이 그립습니다.
@들풀의친구 아! 백렬사나이시군요.
백령여행사와 제가 인연이 좀 있어 두무진에서 가끔 즐겼고 멸치사러 갈 때면 또한번~ㅎ
반갑습니다
조행기를이렇게재미나고흥미진진하게
쓸수도있네요~~기대만땅입니다
고맙습니다.
이 글 끝나면 또 다른 이야기 펼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관심주십시오
아! 재미있는 라디오 드라마를 듣는 것 같아요
ㅎ
고맙습니다. 편한 밤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