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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Interstellar)를 통해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은 웅대한 과학소설 모험 서사극에 도전했다. 무분별한 환경파괴로 황폐해진 2067년 지구, 인류가 생존할 새로운 행성을 찾아서 우주탐험에 나선 주인공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투영해낸 것. 2010년 <인셉션>(Inception)에서 꿈속 무의식, 즉 잠재의식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현란하게 재구성해낸 SF(Science Fiction) 활극의 무대를 은하계로 확장했다.
놀란 감독의 아홉 번째 영화는 전직 조종사에서 옥수수 재배 농부로 전업한 쿠퍼(매튜 맥커너히)가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 그의 소중한 딸 머프(맥켄지 포이)에게 ‘유레카’를 외치게 할 해법을 제시하기까지, 외관적으로는 무궁무진한 과학적 난제들에 관객들이 이성을 작동하도록 하면서도 부녀지간의 가족적 사랑에 감성 코드를 접속하게 만든다.
또한 브랜드 교수 역에 마이클 케인(Michael Caine),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의 아멜리아, 그리고 맷 데이먼(Matt Damon)의 만(Dr. Mann) 박사와 케이시 애플렉(Casey Affleck)의 톰 쿠퍼, 성인과 노년의 머프 역에 제시카 차스테인(Jessica Chastain)과 엘렌 버스틴(Ellen Burstyn)과 같이, 내로라하는 명배우들이 합류했다. 이들의 호연으로 극의 완성도는 확보된 셈.
내실 있는 출연진을 갖춘 영화는 시각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경이롭다. 점점 더 척박해지는 지구와 우주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아낸 촬영술은 아이맥스(IMAX) 형식에서 특출하고, 개념적으로 이론 물리학, 블랙홀과 중력에 따른 시간지연, 5차원의 공간구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근거해 우주의 시공간을 관통하는 웜홀이 있다는 추정, 시간 여행과 연관된 존재론적 역설 등, 여러 가지 난해한 과학적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 조나단 놀란(Jonathan Nolan)은 유명한 이론 물리학자 킵 쏜(Kip Thorne)과 협력하여 영화의 과학적 근거가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할 만큼 심혈을 기울였을 정도.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러나 <인터스텔라>가 부모와 자녀, 그리고 우리가 오늘 후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야 할 길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광대한 은하계 탐험의 중심에서 작용하는 가족적 이야기는 매우 인간적이고 개인적이어서 등장인물 간의 관계에 관객들이 더욱 친근하게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게 하는 중력과 같다. 대안적 미지의 세계를 향한 과학적 탐구 정신과 광휘로운 우주 풍경, 그사이에 존재하는 스토리텔링의 핵심은 곧 인간적 고뇌와 갈등, 그리고 결국 사랑이라는 명제를 다시금 일깨운다. 부모와 아이들, 즉 가족애에 방점을 찍는 극의 이야기는 또한 영화 내외에서 공이 작동하는 음악에도 영향력을 끼친다.
영화의 내적 감동과 외적 감탄 모두를 아우르는 교량 역할, 알다시피 영화의 음악은 놀란 감독의 성공 파트너 한스 짐머(Hans Zimmer)가 다시 의기투합했다. 그 원천은 놀란 감독이 건넨 편지에서 비롯되었다. 촬영 시작 전부터 놀란은 영화의 주제에 따른 개요만 짐머에게 서신으로 보냈고, 악상을 떠올리던 짐머는 어느 날 밤 문득 피아노와 오르간을 위한 4분짜리 곡을 완성했다. 장르나 내용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는데도, 감독이 제시한 영화의 주제와 개요에 근거한 결과였다.
“나는 아버지의 의미에 관해서 곡을 썼습니다.” 짐머의 연주와 주제곡에 대한 설명을 들은 놀란은 즉시 영화 제작에 돌입했다. 거대한 여행, 철학, 과학,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둘러싼 무한한 우주에 대해 자신의 영화적 상상을 설명하던 놀란의 마음을 움직인 결정적인 동인이 되었던 것. 주제와 개요에 관한 악상을 악보에 옮겨낸 짐머의 음악은 놀란이 이야기의 핵심을 재인식하게 했고, 결국 방대한 우주 대서사와 친근한 가족 이야기의 병치로 이어지는 과정에 긴요하게 작용했다.
4분짜리 곡에서 두 가지 개념의 본질에 기반해 확장한 스코어는 주로 런던에서 녹음되었다. 현악과 목관악기, 합창을 강조한 비교적 규모가 작은 앙상블이었고, 피아노, 바이올린, 하프, 스틸 기타, 오르간이 특징적 독주 악기로 사용되었다. 가장 주목할만한 악기는 오르간이었다. 오르간은 영국 런던 교회의 오르간 반주 주임인 로저 세이어(Roger Sayer)가 연주했다. 여러모로 오르간은 오케스트라의 핵심 악기로 음악적 정체성과 같다. 오르간의 음은 광대한 공간의 깊이에 대한 경외심과 관련이 있다. 점머는 또한 악기의 형태와 역사적 중요성에서 영감을 받았다.
"17세기까지의 발명품 중 파이프 오르간은 가장 복잡한 기계였습니다. 기계적 장치의 구조에서 소리를 내는 악기였죠. 전화가 나오자 1위 자리를 내줘야 했지만 말이에요. 모양도 생각해 보세요. 오르간의 이 파이프들은 우주선의 제트엔진 추진력을 강화해주는 애프터 버너(Afterburner)와 같습니다." 악보의 관현악 부분과 합창 부분에 관해서도 짐머는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얻기 위해 특이한 연주와 녹음 기법을 실험했다. 목관 연주자들에게 악기로 이상하고 특이한 소리를 연주해내라고 하고, 원거리에서 왜곡되게 들리는 효과를 위해 합창단원들이 마이크에서 떨어져 노래하게 했다.
양식적으로 짐머는 <인터스텔라>의 음악을 위해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선구적 작곡가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의 작법을 도입했다. 단순한 선율과 리듬을 노골적으로 반복하는 음악 구조는 단순한 반복 같지만, 미묘하게 변형되면서 점증하는 형식으로 정신적 긴장을 고조시키며 최면처럼 사람을 홀린다. 심히 명상적인 곡조는 또한 극도의 단순함 속에서 여백과 절제미를 강조하고, 단조로움이 복잡함보다 오히려 더 풍요로울 수 있음을 발견하게 한다. 일례로 필립 글래스가 갓프리 레지오(Godfrey Reggio) 감독의 다큐멘터리 <고야니스카시>(Koyaanisqatsi)에 쓴 음악을 연상하게 하는 면이 있다. 특히 오르간을 사용해 공간의 웅장함을 포착함으로써, 탁월한 효과를 낸 점이 그러하다.
주제곡의 현악과 오르간을 위한 느리고 경건한 악상의 전개는 극 중 아빠인 쿠퍼(Cooper)와 머피(Murph)의 관계를 나타낸다. 놀란과 짐머가 영화가 촬영되기 전의 잠정적인 원곡에서 포착한 이야기의 핵심. C(다)-A마이너(가단조)-E마이너(마단조)-A단조(가단조)-C(다)-B단조(나단조)로 시작해 F메이저7(바 장7화음)-G(사)—A마이너(가단조)-G(사)를 반복해 연주하는 오르간 화음이 단조롭고 관조적이다. 꿈을 꾸는 도입부 장면과 함께 서막을 여는 'Dreaming of the Crash'와 브랜든 교수가 나사의 우주선을 보여주는 장면에 쓰인 'Day One', 강렬하고 감동적인 드라마 'Stay'(쿠퍼가 어린 딸 머피에게 손목시계를 주고 떠나는 장면)와 'Message From Home'(인듀어런스 호를 타고 웜홀로 향하는 장면), 비통함과 두려움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Detach'(쿠퍼가 레인저 2호를 분리해 블랙홀로 들어갈 때)와 같은 큐에서도 음악은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구심점을 잃지 않는다. 음악적으로 ‘Stay’와 ‘Detach’의 후반을 결정짓는 점강음(crescendos)은 경이적으로 강력하고 압도적인 감정적 불협화음이다.
한편 ‘Message From Home’은 작고 개인적인 피아노 솔로로, 주제를 간소하고 아름답게 연주했다. 지구에서 7억 4천6백만 마일 떨어진 쿠퍼와 그의 팀이 느끼는 고립감을 대변하는 사운드트랙. ‘Dreaming of the Crash’와 ‘Stay’와 같은 배경음악에는 옥수수밭을 스치는 바람, 멀리서 들리는 천둥, 창틀에 떨어지는 빗방울과 같은 자연의 소리가 포함되어 그들이 남기고 간 세상의 공허와 애절함을 더욱더 강하게 상기시킨다.
모래 폭풍 장면에 쓰인 ‘Dust’에서 짐머는 처음으로 ‘고립의 테마’의 등장을 알린다. 현악이 주도하는 테마는 황량하지만 우아하게 신비하고, 농업적으로 황폐해진 지구를 점점 더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황량하고 척박한 장소로 묘사한다. 이 테마는 ‘I'm Going Home’(만 행성에서 함께 탐사 중이던 쿠퍼를 절벽으로 밀어버리기까지의 연속장면)에서 다시 등장해 초기 우주 행성 개척자 만 박사(Dr. Mann)가 찾은 불모의 행성과 황량한 지구를 음향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생동감 있는 리듬의 오르간곡인 ‘Cornfield Chase’(차로 무인기를 쫓아가는 장면부터 영화 전반에 걸쳐 등장)를 제외하고, 악보에서 액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는 편이다. 웜홀, 블랙홀, 파도의 시퀀스에서 음악은 장면과의 연동 원리에 얽매이기보다 그 자체로 시간과 공간을 차지한다. 웜홀 장면에 나오는 'The Wormhole'은 그러한 면에서 프로그래밍 된 신시사이저 배음과 함께 현악과 피아노가 각각 긴장과 기대 속에 신경질적으로 떨리고, 숨 가쁘게 맥동하는 음형으로 공존하다 점점 증대하는 오르간 반주로 장면 전개에 조응한다.
파이프의 공기진동에 의해 생성된 오르간 반주음은 특히 소리의 생성과정이 중력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영화의 플롯에 끊임없이 작용하는 중력의 본질에 대한 참조로 볼 수 있다는 점. 뒤에 물의 행성인 밀러 행성의 테마 ‘Mountains’에서 조율된 타악기가 똑딱 소리를 내는 리듬을 유지하는 방식은 중력에 의한 시간 팽창의 가장 중요한 개념을 나타낸다.
후반부에서 합창단, 오르간, 금관 악기가 서로 격렬하게 충돌하며 폭발하는 사운드는 서사적이며 불길한 공포감을 조장한다. 레인저호가 밀러 행성에 접근할 때 나오는 'A Place Of The Stars'는 첼로와 남성 합창단의 허밍 사이 어딘가에서 연주되는 베이스 요소로 훨씬 더 불길하고 불안한 느낌을 준다. 머피와 게티가 옛집에 차를 타고 갈 때 깔리는 ‘Running out’은 동시에 강한 긴장감을 불러내는 피아노 화음이 스타카토 반주에 따라 시간의 촉박함을 암시한다.
쿠퍼와 만 박사가 만의 행성에서 싸우는 장면에 쓰인 ‘Coward’는 <인터스텔라> 대서사에서 가장 중요한 단서와도 같은 곡이다. 조용히 시작하여 몇 분간의 추상적인 질감을 통해 멋진 질풍노도의 오르간 주도 중간 섹션으로 구축되며, 메인 테마의 신중한 피아노 연주와 대조를 이룬다. 마지막에 음악은 라흐마니노프와 같은 격렬한 피아노와 오르간 음색으로 폭발하며, 긴박한 극적 감흥을 최고조에 달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악보의 결론인 'Where we’re going'(머피와 재회하고 아주에 남겨진 아멜리아를 찾아 나서는 장면)은 부드러운 친밀감으로 메인 테마를 재조명하고, 자연의 소리와 종교적인 오르간, 고귀한 호른의 협연으로 극의 대미를 장식한다.
<인터스텔라>를 위한 한스 짐머의 음악은 ‘음향효과’, ‘음향편집’ 부문과 함께 2015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오리지널 스코어’ 수상 후보로 거명되었다. 비록 트로피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지만, 골든 글로브와 영국 아카데미에 이은 3연속 지명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란과 작업할 때 짐머는 가장 독창적인 악상 중 일부를 뽑아내곤 한다. 그의 음악적 발상은 이후 몇 년 동안 다른 작곡가들에게 모방적 창조의 근간을 제시해왔다. 놀란의 배트맨 3부작에 대한 Zimmer의 점수는 2000년대의 액션 음악 사운드를 정의했고, <인셉션>(Inception)은 웅대한 금관악으로 상징성을 부여한 오케스트라로 비등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련의 영화음악 트렌드를 선도하는 견해에서 둘의 공작이 늘 있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인터스텔라>가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스튜디오에서 모든 작업이 끝나기까지 스코어의 개념적 발전은 작곡가가 영화감독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어냈음을 입증했다. 놀란의 영화적 시각과 플롯에 늘 새로운 음악적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독특한 해법을 찾는 단짝 짐머의 또 다른 수작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클래식과 모던의 하모니, ‘2014 스페이스 오디세이(2014 Space Odyssey)-인터스텔라’의 구심점에는 파이프 오르간과 피아노 중심의 고전적 감성이 냉랭한 공감각적 앰비언트(Ambient) 사운드를 포용했고, 두 음악 양식이 이야기의 개념과 일치해낸 성과였다.
-사운드트랙 목록-
01. Dreaming of the Crash(추락의 꿈) (3:55)
02. Cornfield Chase(옥수수밭 추격) (2:06)
03. Dust(모래) (5:41)
04. Day One(첫날) (3:19)
05. Stay(가지 말고 저랑 있어요) (6:52)
06. Message From Home(집에서 온 메시지) (1:40)
07. The Wormhole(웜홀) (1:30)
08. Mountains(산처럼 거대한 파도) (3:39)
09. Afraid of Time(시간이 두려워-머피가 쿠퍼에게 영상 편지를 보내고 브랜드 교수의 중력 방정식에 의문을 품기까지의 장면) (2:32)
10. A Place Among the Stars(성운 간에 위치하다) (3:27)
11. Running Out(시간이 없어, 다 되어가) (1:57)
12. I’m Going Home(집에 갈 거야) (5:48)
13. Coward(겁쟁이) (8:26)
14. Detach(분리) (6:42)
15. S.T.A.Y.(스.테.이.-머피가 있는 집 책장 뒤로 블랙홀과 연결된 초 입체 공간을 위한 테마) (6:23)
16. Where We’re Going(우리가 가는 곳) (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