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으로 가는 길,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곳이 있다. 향긋한 불고기 냄새가 발길을 붙잡는 곳, 봉성돼지숯불단지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소나무 숯과 솔잎을 이용해 돼지숯불구이를 내는 곳이다. 제법 역사가 깊은 돼지숯불구이 한 접시면 밥 한 공기 금세 뚝딱! 이 기운으로 청량산까지 올라보면 어떨까? 돼지숯불구이와 함께 청량산 단풍까지 아우르면 봉화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 된다.
봉성돼지숯불구이. 소나무 숯과 솔잎을 이용한 숯불구이의 맛과 향이 입안을 자극한다.
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봉성의 맛
봉화읍내에서 청량산으로 가는 길, 봉성면과 명호면 소재지를 꼭 거쳐야 한다. 봉성면을 지날 즈음 구수한 향기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특히 배꼽시계가 요란한 소리를 낼 때쯤이면 봉성면 소재지의 굴뚝 곳곳에서 마치 봉화대의 연기처럼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군침이 절로 흐르는 향긋한 내음이 코를 찌른다. 바로 봉성돼지숯불단지에서 피워내는 돼지숯불구이 향이다.
봉성돼지숯불단지의 한 음식점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숯불구이 연기.
봉성돼지숯불구이의 역사는 제법 깊다. 먼저 봉성면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려 현종 때 봉성현으로 칭했다가 공양왕 때 봉화현으로 명칭이 바뀌었을 정도로 봉화에서 큰 고장이었다. 봉성돼지숯불단지 내에 옛 봉화현 관아 건물인 봉서루
예부터 큰 고장에는 사람과 물산이 모이는 장터가 있었다. 봉성에도 고려 현종 때부터 들어선 유서 깊은 봉성장이 있었다. 특히 우시장이 컸다. 봉성돼지숯불구이의 역사는 바로 봉성장에서 시작된다. 봉성장터를 드나드는 각지의 사람들에게 한 끼 식사로 혹은 술안주로 내던 것이 바로 돼지숯불구이다.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으니, 족히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우리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맥족 사람들이 먹던 ‘맥적(貊炙)’과 고려시대 몽고에서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는 ‘설야멱(雪夜覓)’이 우리나라 불고기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봉성돼지숯불구이는 그 전통을 이었거나 어깨를 나란히 했던 전통음식이 아니었을까?
솔향 가득한 돼지숯불구이
봉성면에 소재한 돼지숯불구이 전문 식당들은 봉화군 토속음식단지로 지정되어 있다. 돼지숯불구이의 원조로 알려진 희망정을 비롯해 청봉, 솔봉, 두리봉, 봉성식육식당 등이 봉성면과 명호면을 잇는 도로변에 성업 중이다.
이제 천 의 역사를 간직한 봉성돼지숯불구이를 맛볼 차례다. 굴뚝으로 피어오르는 향긋하고 고소한 향을 따라 음식점으로 들어서면 가장 분주한 곳은 돼지고기를 구워내는 주방의 숯불가마다. 어두컴컴한 숯불가마에 숯불의 붉은 기운이 환하게 비친다. 고기를 얹은 석쇠가 숯불 위로 올라가면 본격적인 난장이 펼쳐진다. 고기 구워지는 소리와 함께 숯불이 일렁이면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것 같다. 보는 것만으로도 신명이 나고 허기진 배가 채워지는 느낌이다.
숯불 위에서 돼지고기를 굽고 있는 모습. 소나무 숯을 이용하기 때문에 고기에 부드러움과 향이 더해진다.
숯불은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참나무가 아닌 소나무 숯을 이용한다. 숯불이 강하지 않고 부드러울 뿐 아니라 불이 잘 붙기 때문이다. 돼지고기는 잡내가 덜한 암퇘지를 주로 쓴다. 두툼하게 썬 고기를 석쇠 위에 얹고 소금을 뿌린 뒤 뒤집기를 반복하며 구워낸다. 고기는 타지 않도록 굽는 게 중요하다. 눈으로 봐서는 대충 뒤집는 것 같지만, 적당히 구워내는 솜씨가 오랜 세월 경험에서 나온 달인의 솜씨다. 고기가 익어가면서 기름은 고스란히 석쇠 아래로 떨어지고, 기름을 태운 하얀 연기는 높은 굴뚝을 타고 밖으로 빠져나간다.
봉성돼지숯불구이만의 독특한 비법은 솔잎을 넣고 다시 구워내는 것이다. 솔잎 향이 고기의 잡내를 없애고 담백함을 더한다.
고기가 알맞게 익으면 봉성돼지숯불구이만의 독특한 비법이 들어간다. 바로 솔잎이다. 솔잎 향이 고기의 잡내를 없애고 맛을 담백하게 한다. 솔잎에서 나오는 테르펜 성분이 고기에 스며들어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고기 위에 솔잎을 얹은 뒤 또 한 번 구워낸 후, 접시에 솔잎을 다시 깔고 고기를 얹은 뒤 바로 상으로 내간다. 주방에서 바로 구워서 나오기 때문에 숯불에서 바로 구운 것처럼 맛도 좋고, 냄새가 배지 않는 것도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이미지 목록 완성된 돼지숯불구이. 맛도 좋지만 숯향과 솔향이 어우러져 입안을 자극한다. | 야채와 파무침, 마늘, 새우젓으로 만든 숯불구이쌈. |
봉성돼지숯불구이는 맛과 향으로 먹는 음식이다. 맛도 좋지만 숯향과 솔향이 어우러져 입안을 자극한다. 고려시대 때부터 전해온 천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하다.
고즈넉한 청량산과 하늘다리
봉성돼지숯불단지에서 명호면을 지나 안동으로 가는 35번 국도를 타면 청량산에 닿는다. 신라 말의 고운 최치원과 중국의 왕희지를 능가했다던 김생(金生, 711~?)이 수도를 했던 곳이자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몽진했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퇴계 이황이 청량정사에서 수학을 하기도 했다. 주세붕(周世鵬, 1495~1554) 선생은 청량산을 유람하며 ‘육육봉’이라 명명했다. 흔히 12대(臺), 8굴(窟), 4정(井)을 품고 있는 산이다.
청량산으로 오르는 코스는 여러 가지다. 그 중에서도 청량사와 뒷실고개를 오르는 코스와 입석에서 응진전, 김생굴을 거쳐 오르는 코스가 가장 무난하다. 청량사와 뒷실고개를 거치는 코스는 가장 빠르게 오를 수 있지만 경사가 급하다. 반면에 입석 코스는 오래 걸려도 청량산의 가을 단풍을 만끽하고, 숨은 역사를 음미하며 오르는 코스다. 입석 코스는 입석 입구와 응진전으로 오르는 길, 김생굴에서 자소봉으로 오르는 길을 제외하면 대체로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퍽퍽한 흙길을 지나면 금세 낙엽이 수북한 오솔길로 접어든다. 숨이 가빠오는 가파른 길이다. 10분쯤 오르면 갈림길이 나온다. 한쪽은 청량사, 다른 한쪽은 응진전으로 가는 길이다. 응진전으로 가는 길 역시 만만치 않은 오르막길이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힘겨운 만큼 제대로 보상을 받는다. 청량산에 매달린 듯 서 있는 응진전이 보인다. 특히 응진전을 지나 어풍대와 총명수 부근에서는 청량산의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어풍대에서는 청량사와 청량산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지고, 김생굴에서 오르는 길에서는 삐죽 튀어나온 청량사 삼층석탑과 연화봉의 장관이 한눈에 펼쳐진다.
청량산의 하늘다리. 청량산 자란봉과 선학봉의 연결하는 90m의 출렁다리에서는 천국과 지옥을 경험할 수 있다.
김생굴에서 자소봉 아래까지는 가장 험난한 코스다. 1시간이 채 안 돼 능선에 오르면 하늘다리까지는 지척이다. 연녹색 하늘다리는 청량산의 자란봉과 선학봉을 연결하는 90m의 출렁다리다. 현수교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엄연한 출렁다리다. 이 다리를 건너는 사람은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을 경험한다. 800m 높이에 떠 있는, 말 그대로 하늘다리이기 때문이다. 다리에 올라서는 순간 걷지도 않았는데 미세한 떨림이 느껴진다. 걸음을 내디디면 흔들리기 시작하고, 반대편에서 건너오는 사람들의 움직임까지 더해져 이내 출렁대기 시작한다. 발밑은 까마득한 데다 온몸이 흔들리니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듯 스릴 만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