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9일 제88회 세미나에서는 12시부터 <달기>를 상영했다. 이 영화는 한홍합작의 기원이 된 신필름과 쇼브라더스와의 합작영화이다.
1시부터는 이번에 출간된 '한국합작영화100년사'의 저자사인회를 가졌다.
1시 반부터 시작된 2부에서는 '한국합작영화100년사' 출간을 기념하여 책의 출간까지를 소개하는 북토크를 가졌다. 권영문 배우를 비롯하여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최준란 길벗 출판사 편집장, 전진환 작가, 이정후 이소룡기념사업회 부회장, 성낙범 성길시네마 사장, 박진석 전 영상자료원 부장을 모셔 이 책의 의미와 궁금한 점에 대해서도 들었다. 한국합작영화의 모든 것을 정리한 이 책은 선행연구도 없었고 아직은 후속 연구조차 없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리가 되어 한국영화사의 오류를 없애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당시 신필름을 비롯하여 합동, 한진, 삼영은 합작영화의 산실이었는데 모두 위장합작에 연루되어 있다. 현업인들이나 영화진흥공사 근무자의 입장에서는 당시 산업적인 측면에서의 순기능을 대변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역사의 관점에서 보아야 할 문제이다.
위장합작영화 제작은 한국영화100년의 역사에서 반추해볼 명암의 역사이다.
박진석 부장은 영화진흥공사 시절 시나리오를 보고 합작 여부를 판단해야 했는데 서류 환경으로는 완벽했고 회사의 존립이 결정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 담당자로서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고 부담스러움을 토로했다. 아울러 한국영화 발전의 기술적 피드백과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로 순기능을 역설했다.
임대근 교수는 영화는 국제적인 커넥션 속에서 발전하는 것이며 흐름이고 교류의 역사라고 정의하며 합작영화를 경제적 맥락에서 해석했다. 또한 당시 문화와 예술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되었다고 70년대를 회고했다.
3부에서는 1960년대 거장인 김기영 감독의 페르소나인 이화시 여배우를 모셔 그녀의 영화인생에 대해 들었다. 그녀는 영암에서의 어린 시절부터 배우의 꿈을 키웠다. 감성적인 끼가 많아 남을 곧잘 울리기도 했다는 그녀는 <젊은 느티나무 언덕>을 보며 배우로의 목표 설정을 했다.
서울로 이사와서 중고를 졸업하고 단국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에 주연배우 공모의 신문 광고를 보고 오디션에 응해 합격하며 기회를 잡았다. 영화평론가 한재수 씨 형이 운영하던 한진연기학원을 다녔고 김기영 감독에게 캐스팅되어 동아수출공사와 5년간 전속계약을 하며 배우 활동을 시작하였다. <금병매(반금련)>을 기획하며 우선 <파계>를 촬영하게 되었는데 동승들이 많이 나와야 하기에 안양예고생들을 대거 출연시켰다고 한다. 그중에는 김병학, 정한헌, 임영규가 있었고 무학여중 3학년생인 임예진이 캐스팅되었다. 임예진은 이미 <금병매>에서 춘매로 캐스팅된 상태라 출연하였다. 자신은 23세 때라며 감독의 연기 지도와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도움과 배려 속에 안정된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특히 고설봉 배우가 연기지도를 맡아 해주었고 김기영 감독은 직접 시연을 하며 연기를 유도했다고 한다.
그녀에게 <반금련>은 잊혀지지 않는 한이라고 했다. 그만큼 긴 시간 영화의 개봉을 기다리게 했고 자신을 이도저도 못하게 했던 영화였다. 5년간 전속계약을 하며 다른 감독과의 교류도 김기영 감독과의 의리를 지키느라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어도>는 이청준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공해를 소재로 전복양식 등을 다루고 있는데 민자가 고향을 떠났다가 귀향하여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제주도 아래의 차귀도와 비양도에서 한 달간에 걸쳐 촬영했다고 추억한다. 상대역 김정철 배우는 고뇌하는 청춘상으로 알랭 들롱같은 멋진 미남배우로 기억한다.
<흙>은 이광수 원작으로 횡성에서 촬영하였고 주인공의 고택은 대학로의 윤보선 전 대통령 가옥이었다고 밝혔다.
이후 김기영 감독이 설립한 신한문예 시절의 몇 편은 조역에 머무르며 영화계를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
신문기자와 중매결혼을 하여 뱅쿠버로 해외 이민을 떠나 20여 년 간 살면서 공백기가 길어졌다. 2004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활동을 재개하여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였고 60세가 넘으며 국적 회복을 하여 귀국하였다. 지난해에는 <맹진사댁 경사>에 맹진사 부인역으로 출연하였고 올해에도 2편의 연극에 출연할 예정이다.
이어 김기영 감독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그는 모든 면에서 파격적이고 기이한 감독이었다. 인자하고 순조로운 촬영 때에는 "좋았어!"를 연발했지만 NG가 나면 자신의 머리를 쥐어 뜯거나 긁으며 불만을 표출했다고 한다.
1919년생인 김 감독은 경성의대를 수료하고 미공보원에서 뉴스영화를 제작하고 <죽음의 상자>로 데뷔한다. 그후 <양산도>, <하녀> , <고려장> 등 다소 왜색적인 영화들을 감독하며 신상옥, 유현목 감독과 같은 반열에 오른다.
한국영화사에서 그녀만한 강한 캐릭터를 선보인 여배우는 일찍이 없었다. 강렬한 눈빛이 생생한 그녀는 아직은 진행형이며 그녀의 차후 출연작을 기대해 본다.
4부에서는 안태근 감독작인 <대한국인 안중근>의 시사회 및 향후 영화제작에 대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