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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심전 계발의 방향
안녕하세요. 마음 밭 계발하는 농부 공부인 최경도입니다. 이제는 천천히 마음농사를 시작해 봐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심전계발의 방향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할 것입니다.
인류가 사는 방법은 지속적으로 변하고 발전하여 왔습니다. 인류의 문명 변천을 보면 사냥을 하던 시기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한 장소에 정착하게 되었고 정착해서 생활하면서 농사짓는 법을 배워 식량을 마련하였습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는 농사 지을 준비를 하게 되는 데 마음농사 짓는 농부인 우리 공부인은 무엇을 준비하시겠습니까? 농사 지을 농부는 해가 바뀌기 전에 아니 올해 농사를 지으면서 내년도 농사지을 준비를 합니다. 먼저 결정해야할 일은 내년 농사를 지을 것인지 농사를 짓지 않을 것인지 마음에 결정을 해야겠지요. 내년에 농사를 짓지 않기로 마음을 먹으면 준비할 일이 없지만 농사를 짓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준비할 일이 많아질 것입니다.
공부인 도반 여러분은 마음농사를 짓기로 결정 하셨습니까? 물론 마음농사를 짓지 않기로 하였거나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였다면 제가 말씀 드리는 마음농사 이야기는 관계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물어보지 않으면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실화를 들은 적이 있는 데 이는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중요한 사항을 알려 주어도 관심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마음공부에 관한 원리와 방법 그리고 프로그램을 정리하면서 마음공부에 관한 법문을 찾다가 제가 좋아하는 법문 12가지를 골라 마음공부 법문 시리즈 1권을 만들었습니다. 이 때 기준은 이 법문에 공감하고 이 법문을 좋아하고 그대로 실천하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 마음공부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제가 고른 첫번째 법문은 소태산 대종사 서울 박람회에서 화재 보험 회사의 선전 시설을 보시고 한 감상을 얻었다 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항상 말하기를 생사고락에 해탈을 하자고 하지마는 생사의 원리를 알지 못하면 해탈이 잘 되지 않을 것이니, 만일 사람이 한 번 죽으면 다시 회복되는 이치가 없다고 생각할진대 죽음의 경우를 당하여 그 섭섭함과 슬픔이 얼마나 더하리요. 이것은 마치 화재 보험에 들지 못한 사람이 졸지에 화재를 당하여 모든 재산을 일시에 다 소실한 것과 같다 하리라. 그러나 그 원리를 아는 사람은 이 육신이 한 번 나고 죽는 것은 옷 한 벌 갈아입는 것에 조금도 다름이 없을 것이니, 변함에 따르는 육신은 이제 죽어진다 하여도 변함이 없는 소소(昭昭)한 영식(靈識)은 영원히 사라지지 아니하고, 또 다시 다른 육신을 받게 되므로 그 일 점의 영식은 곧 저 화재 보험 증서 한 장이 다시 새 건물을 이뤄내는 능력이 있는 것 같이 또한 사람의 영생을 보증하고 있나니라. 그러므로 이 이치를 아는 사람은 생사에 편안할 것이요, 모르는 사람은 초조 경동할 것이며, 또는 모든 고락에 있어서도 그 원리를 아는 사람은 정당한 고락으로 무궁한 낙을 준비할 것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러한 희망이 없고 준비가 없는지라 아득한 고해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나니, 생각이 있는 이로 이런 일을 볼 때에 어찌 걱정스럽지 아니하며 가련하지 아니하리요.” 하였습니다.
두 번째 법문은 소태산 대종사 산업부에 가니 목장의 돼지가 퍽 야위었는지라 그 연유를 물으니, 이 동안(李東安)이 말하기를 “금년 장마에 약간의 상한 보리를 사료로 주는 동안에는 살이 날마다 불어 오르더니, 얼마 전부터 다시 겨를 주기 시작 하였더니 그 동안 습관들인 구미를 졸지에 고치지 못하여 잘 먹지 아니하고 저 모양으로 점점 야위어 갑니다.” 하니 소태산 대종사는 “이것이 곧 산 경전이로다. 잘 살던 사람이 졸지에 가난해져서 받는 고통이나, 권세 잡았던 사람이 졸지에 위를 잃고 받는 고통이 이와 다를 것이 없으리라. 그러므로 예로부터 성현들은 모두 이 인간 부귀를 심상시하여 부귀가 온다고 그다지 기뻐하지도 아니하고 부귀가 간다고 그다지 근심하지도 아니하였으니, 옛날 순임금은 밭 갈고 질그릇 굽는 천역을 하던 사람으로서 천자의 위를 받았으나 거기에 조금도 넘치심이 없으셨고, 서가세존께서는 돌아오는 왕위도 버리시고 유성 출가하셨으나 거기에 조금도 애착됨이 없으셨으니, 이 분들의 부귀에 대한 태도가 그 얼마나 담박하였으며 고락을 초월하는 힘이 그 얼마나 장하였는가. 그런즉 그대들도 도에 뜻하고 성현을 배우려거든 우선 편하고 우선 즐겁고, 우선 권세 잡는 데에 눈이 어둡지 말고 도리어 그것을 사양하며, 설사 부득이 그러한 경우에 처할지라도 거기에 집착하지도 말고 타락하지도 말라. 그러면 참으로 영원한 안락, 영원한 명예, 영원한 권위를 누리게 되리라.” 하였습니다.
세 번째 법문은 소태산 대종사 선원 대중에게 “범부들은 인간락에만 탐착하므로 그 낙이 오래가지 못하지마는 불보살들은 형상 없는 천상락을 수용하시므로 인간락도 아울러 받을 수 있나니, 천상락이라 함은 곧 도로써 즐기는 마음락을 이름이요, 인간락이라 함은 곧 형상 있는 세간의 오욕락을 이름이라, 알기 쉽게 말하자면 처자로나 재산으로나 지위로나 무엇으로든지 형상 있는 물건이나 환경에 의하여 나의 만족을 얻는 것은 인간락이니, 과거에 실달(悉達)태자가 위는 장차 국왕의 자리에 있고 몸은 이미 만민의 위에 있어서 이목의 좋아하는 바와 심지의 즐거워하는 바를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락이요, 이와 반면에 정각을 이루신 후 형상 있는 물건이나 환경을 초월하고 생사고락과 선악 인과에 해탈하시어 당하는 대로 마음이 항상 편안한 것은 천상락이니, 옛날에 공자(孔子)가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을지라도 낙이 그 가운데 있으니, 의 아닌 부와 귀는 나에게는 뜬 구름 같다’ 하신 말씀은 색신을 가지고도 천상락을 수용하는 천인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인간락은 결국 다할 날이 있으니, 온 것은 가고 성한 것은 쇠하며, 난 것은 죽는 것이 천리의 공도라, 비록 천하에 제일가는 부귀공명을 가졌다 할지라도 노·병·사 앞에서는 저항할 힘이 없나니 이 육신이 한 번 죽을 때에는 전일에 온갖 수고와 온갖 욕심을 다 들여 놓은 처자나 재산이나 지위가 다 뜬 구름같이 흩어지고 말 것이나, 천상락은 본래 무형한 마음이 들어서 알고 행하는 것이므로 비록 육신이 바뀐다 할지라도 그 낙은 여전히 변하지 아니할 것이니, 비유하여 말하자면 이 집에서 살 때에 재주가 있던 사람은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갈지라도 재주는 그대로 있는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소태산 대종사 이어서 “그러므로 옛 성인의 말씀에 ‘사흘의 마음공부는 천년의 보배요, 백년의 탐낸 물건은 하루아침 티끌이라’ 하였건마는 범부는 이러한 이치를 알지 못하므로 자기의 몸만 귀히 알고 마음은 한 번도 찾지 아니하며, 도를 닦는 사람들은 이러한 이치를 알므로 마음을 찾기 위하여 몸을 잊나니라. 그런즉 그대들은 너무나 무상한 모든 유(有)에 집착하지 말고 영원한 천상락을 구하기에 힘을 쓰라. 만일 천상락을 오래 오래 계속한다면, 결국은 심신의 자유를 얻어서 삼계의 대권을 잡고 만상의 유무와 육도의 윤회를 초월하여 육신을 받지 아니하고 영단(靈丹)만으로 시방 세계에 주유할 수도 있고, 금수 곤충의 세계에도 임의로 출입하여 도무지 생사 거래에 걸림이 없으며, 어느 세계에 들어가 색신을 받는다 할지라도 거기에 조금도 물들지 아니하고 길이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곧 극락이니라. 그러나 천상락을 길게 받지 못하는 원인은 형상 있는 낙에 욕심이 발하여 물질에 돌아감이니 비록 천상락을 받는 사람이라도 천상락 받을 일은 하지 않고 낙만 받을 욕심이 한 번 발하면 문득 타락하여 심신의 자유를 잃고 순환하는 대자연의 수레바퀴에 끌려서 또 다시 육도의 윤회를 면하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네 번째 법문은 소태산 대종사 하루는 조 송광과 전 음광을 데리시고 교외 남중리에 산책하는데 길가의 큰 소나무 몇 주가 심히 아름다운지라 송광이 말하기를 “참으로 아름다와라, 이 솔이여! 우리 교당으로 옮기었으면 좋겠도다.” 하거늘 대종사 듣고 “그대는 어찌 좁은 생각과 작은 자리를 뛰어나지 못하였는가. 교당이 이 노송을 떠나지 아니하고 이 노송이 교당을 떠나지 아니하여 노송과 교당이 모두 우리 울안에 있거늘 기어이 옮겨놓고 보아야만 할 것이 무엇이리요. 그것은 그대가 아직 차별과 간격을 초월하여 큰 우주의 본가를 발견하지 못한 연고니라.” 하였습니다. 송광이 묻기를 “큰 우주의 본가는 어떠한 곳입니까.” 소태산 대종사는 “그대가 지금 보아도 알지 못하므로 내 이제 그 형상을 가정하여 보이리라.” 하고, 땅에 일원상을 그려 보이며 말하기를 “이것이 곧 큰 우주의 본가이니 이 가운데에는 무궁한 묘리와 무궁한 보물과 무궁한 조화가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어 있다.” 하였습니다. 음광이 묻기를 “어찌하면 그 집에 찾아 들어 그 집의 주인이 되겠습니까.” 소태산 대종사는 “삼대력의 열쇠를 얻어야 들어갈 것이요, 그 열쇠는 신·분·의·성으로써 조성한다.” 하였습니다.
다섯째 법문은 무시선법과 참회문에서 마음의 자유를 얻는 것에 관한 법문입니다. “사람이 만일 오래오래 선을 계속하여 모든 번뇌를 끊고 마음의 자유를 얻은즉, 철주의 중심이 되고 석벽의 외면이 되어 부귀영화도 능히 그 마음을 달래어 가지 못하고 무기와 권세로도 능히 그 마음을 굽히지 못하며, 일체 법을 행하되 걸리고 막히는 바가 없고, 진세(塵世)에 처하되 항상 백천 삼매를 얻을지라, 이 지경에 이른즉 진대지(盡大地)가 일진 법계(一眞法界)로 화하여 시비 선악과 염정 제법(染淨諸法)이 다 제호(醍醐)의 일미(一味)를 이루리니 이것이 이른바 불이문(不二門)이라 생사 자유와 윤회 해탈과 정토 극락이 다 이 문으로부터 나오나니라.” 하였고
“또 공부인이 성심으로 참회 수도하여 적적 성성한 자성불을 깨쳐 마음의 자유를 얻고 보면, 천업(天業)을 임의로 하고 생사를 자유로 하여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어서, 삼계 육도(三界六途)가 평등 일미요, 동정 역순이 무비 삼매(無非三昧)라, 이러한 사람은 천만 죄고가 더운 물에 얼음 녹듯하여 고도 고가 아니요, 죄도 죄가 아니며, 항상 자성의 혜광이 발하여 고도 고가 아니요, 죄도 죄가 아니며, 항상 자성의 혜광이 발하여 진대지가 이 도량이요, 진대지가 이 정토라 내 외 중간에 털끝만한 죄상(罪相)도 찾아볼 수 없나니, 이것이 이른바 불조의 참회요, 대승의 참회라 이 지경에 이르러야 가히 죄업을 마쳤다 하리라.” 하였습니다.
여섯번째 법문은 이인의화 “어떤 사람이 너희 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하고 소태산 대종사에게 물으니 “원래 불교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되는 이치를 스스로 깨쳐 알게 하는 교이니 그 이치를 가르치고 배운다고 하면 될 것이요, 그 이치를 알고 보면 불생불멸의 이치와 인과보응의 이치까지도 다 해결된다.” 하였습니다. 또 여쭙기를 “그 이치를 안후에는 어떻게 공부를 합니까.” “마음이 경계를 대하여 요란하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게 한다.” 하였습니다.
이상 여섯 가지 법문에 공감하고 나도 저렇게 되어 보고 싶어서 해보겠다고 나선 사람이 오래오래 마음공부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세상 모든 사람을 마음공부 하는 사람과 마음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눠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공부를 하며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데 이 쉽지 않은 마음공부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제가 마음공부 법문 시리즈 1권을 편집하면서 이 일 권에 실린 법문에 철저히 공감하는 사람만이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마음공부를 하면서 본인의 목표를 이루고자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위에서 말한 여섯 가지의 큰 목표를 가지고 마음공부 하는 도반이 아니면 마음 밭농사를 짓기는 어려워서 처음에 시작하기도 어려우며 시작하였다 할지라도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마음 밭을 계발하려는 동기인 생사고락에 해탈하고 영원한 안락, 명예, 권위를 누리고자 하며 인간락과 천상락을 함께 누리고자 하며 무궁한 묘리와 무궁한 보물과 무궁한 조화가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어 있는 일원상의 문을 삼대력의 열쇠를 얻어 들어가고자 하며 마음의 자유를 얻고자 하며 불생불멸의 이치와 인과보응의 이치를 안후에는 마음이 경계를 대하여 요란하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게 하는 공부를 하려는 마음을 결정하여야 농사 지을 준비를 시작할 것이며 아무리 어려운 경계를 당할 지라도 마음농사가 지속될 것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우리의 천만 죄복이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이 심전 계발을 잘하고 못하는 데에 있나니, 이 일을 어찌 등한히 하리요.” 하였습니다. 또 “예로부터 도가(道家)에서는 심전을 발견한 것을 견성(見性)이라 하고 심전을 계발하는 것을 양성(養性)과 솔성(率性)이라 하니, 이 심전의 공부는 모든 부처와 모든 성인이 다 같이 천직(天職)으로 삼으신 것이요, 이 세상을 선도(善導)하는 데에도 또한 그 근본이 되는 것이다.” 하였고 “우리 회상에서는 심전 계발의 전문 과목으로 수양·연구·취사의 세 가지 강령을 정하고 그를 실습하기 위하여 일상 수행의 모든 방법을 지시하였으니, 수양은 심전 농사를 짓기 위하여 밭을 깨끗하게 다스리는 과목이요, 연구는 여러 가지 농사 짓는 방식을 알리고 농작물과 풀을 구분하는 과목이요, 취사는 아는 그대로 실행하여 폐농을 하지 않고 많은 곡식을 수확하게 하는 과목이다.” 하였습니다.
농사 지을 계획을 세우면서 많은 사항을 고려하게 되는 데 먼저 어떤 종류의 농사를 지을 지 결정하고 종자를 골라야 할 것입니다. 곡식을 심을지 채소 농사를 할지에서부터 시작하여 곡식도 벼를 심을지 아니면 보리를 심을지 아니면 콩을 심을 것인지 정해야합니다. 마음농사를 잘 지으려면 심전을 발견하고 이어 심전을 잘 계발하여야 하는 데 이를 위하여 심전계발의 전문 과목으로 수양 과목과 연구 과목과 취사 과목을 정하였다 하였습니다.
농사를 짓는 데에도 초보 농사꾼과 농사 달인이 있는 것처럼 마음 밭농사를 짓는 데에도 단계를 나눌 수 있으니 법위등급에서 급과 위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크게 나누어 보통급과 특신급과 법마상전급은 견성을 하지 못한 단계이고 법강항마위 이상은 견성을 한 단계이므로 이 급과 위는 천양지차가 있습니다. 보조스님은 견성하지 못하고 하는 수행은 오염수(汚染修)라 하였는데 마음 밭을 알고 농사를 짓는 공부와 아직 마음 밭을 확실히 발견하지 못하고 어림짐작으로 농사를 짓는 것의 차이를 말합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수양은 심전 농사를 짓기 위하여 밭을 깨끗하게 다스리는 과목이요, 연구는 여러 가지 농사 짓는 방식을 알리고 농작물과 풀을 구분하는 과목이요, 취사는 아는 그대로 실행하여 폐농을 하지 않고 많은 곡식을 수확하게 하는 과목이다.” 하였습니다. 대산 종사는 “우리가 가꾸어야 할 세 가지 밭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영전(靈田)·법전(法田)·덕전(德田)이다. 첫째 영전은 하나면서 열이고 열이면서 하나인 자리요 영생토록 죽지 않는 자리요 죄를 지으면 죄를 주고 복을 지으면 복을 주는 자리요 신령스러워 밝고 어둡지 아니한 자리며, 둘째 법전은 법이 담겨 있는 자리요 삼세 제불 제성이 함께 법을 받는 자리요 법등을 시방 삼세에 비추는 자리며, 셋째 덕전은 여기는 천지·부모·동포·법률의 사은 밭에 덕을 뿌리는 자리요 뿌린 자리마다 덕의 꽃이 피는 자리이다.” 하였습니다.
오늘은 마음 농사인 심농의 방법으로 마음 밭 계발의 방향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마음 밭 계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단계적으로 학습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시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드리며 이 시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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