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중국어
剩男剩女 (썽난썽뉘)
'剩男剩女(썽난썽뉘)'는 사회가 발전하면서 나타난 일종 새로운 문화에서 생겨난 어휘이다. 지금까지 그 뜻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지만 보통 30세 이상의 싱글 남녀, 혹은 재혼하지 않은 독신을 카리켜 '剩男剩女(썽난썽뉘)'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연령 제한이 없이 독신인 남자나 여자 모두를 가리켜 '剩男剩女'로 표현하고 있다. 요즘 사회현상을 봐도 연애연령대가 빨라지고 있는 반면 결혼연령대가 늦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年夜饭 (니엔예판)
섣달 그믐날은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하루이다. 이날은 사람마다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맞는다는 뜻으로 온 가족이 함께 명절음식을 준비하여 먹는데 이때 먹는 음식을 '年夜饭(니엔예판)'이라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교도소 관리인, 심지어 죄수들도 그믐날에는 집으로 가서 가족들과 함께 '年夜饭'을 먹었다고 한다. 이처럼 '年夜饭'은 고대로부터 아주 중시를 받았다. '年夜饭'을 '团年饭'이라고도 한다.
借光 (지에꽝)
'借光(지에꽝)'은 주로 두가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첫째는 다른 사람의 이익이나 영광을 나누어 가지는 것을 가리키는 뜻으로 혜택을 입다, 덕을 보다, 신세를 지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두번 째는 다른 사람에게 편의를 봐달라고 부탁하거나 문의할 때 쓰는 상투적인 말로 실례합니다, 미안합니다, 수고하십니다의 뜻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즉 "借光,请让开点儿。( 미안합니다만, 좀 비켜 주십시오.)"의 문구에 흔히 사용한다.
串门 (촨먼)
'串门(촨먼)'은 설을 맞으며 친지와 친구들을 만나 신년 축복을 전달하는 행위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새해 선물을 준비하여 직접 집을 찾아가 인사를 전하는데 요즘은 인터넷시대가 도래하면서 상대방의 블로그에 새해축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耍赖 (쏴라이)
'耍赖(쏴라이)'는 두가지 뜻으로 쓰인다. 첫째, 생떼를 쓰다, 억지를 부리다, 행패를 부리다는 뜻. 보통 아이가 응석을 부리며 떼를 쓸 때 흔히 사용한다. 둘째는 자기의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시치미 떼고 모른체를 할 때, 즉 잡아떼고 발뺌을 하다의 뜻으로 흔히 사용한다. '耍赖'와 같은 뜻으로 '耍赖皮' 또는 '调皮蛋'으로도 잘 사용하고 있다.
泡沫 (파오머)
'泡沫(파오머)'는 두가지 뜻을 갖고 있다. 본의는 물에 생기는 거품, 포말을 가리킨다. 또한 파생의 의미로 어떤 사물의 표면상의 번영과 흥성이 실제적으로 현실과 부합되지 않을 때를 비유하여 사용한다. 즉 거품경제, 부동산거품 등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다. 즉 '泡沫经济, 房地产泡沫…' 등 경우에서 쓰인다.
顶嘴 (띵쭈이)
'顶嘴(띵쭈이)'는 주로 어른에게 말대꾸하다, 말대답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즉 윗사람의 명령이나 훈계를 들으려하지 않고 무례하고 경솔하게 맞서서 항변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리고 예절을 지키지 않고 무작정 큰 소리로 대항해 나설 때도 '顶嘴'를 사용한다. 이때는 쟁론(논쟁, 말다툼)하다의 뜻으로 쓰인다.
八面威风 (바몐웨이펑)
글자풀이
"八面威风" 이 성구는 여덟 팔(八)자에 낯 면(面)자, 위엄 위(威)자에 바람 풍(风)자로 이루어 졌다.
뜻풀이
"위풍이 당당하다"는 뜻이다
유래
원조(元朝)의 통치는 매우 참혹하기로 유명했다. 통치자들은 백성들을 몽골인(蒙古人),색목인(色目人), 한인(汉人),남인(南人) 등 4개 급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특히 원조말년 원순제(元顺帝) 재위기간, 전례없이 참혹한 통치가 시작되었고 정치는 부패하기 그지없었다.
몽골통치자들은 백성들의 목숨은 아예 안중에도 없이 거만하게 제멋대로 날뛰었으며, 특히 한인과 남인들에게는 소나 말보다도 못한 취급을 했다.
궁지에 몰린 백성들은 반란을 일으켜 원조 통치자의 폭정에 반항했고 백성들의 연이은 봉기는 원조의 반동통치를 급속도로 와해시켰다.
기원 1353년, 봉기군의 수령 장스청(张士诚)이 고우유(高邮)지역을 점령하고 장강을 넘어 창수(常熟),후저우(湖州),숭장(松江),창저우(常州) 에 수도를 세우고 왕으로 자처했다.
기원 1357년, 후베이인 청유량(陈友谅)이 핑장(平章)이라 자칭하고 장시(江西), 푸졘(福建)을 점령하고 지우장(九江)을 수도로 정해 한왕(汉王)이라 자칭했다. 이와 동시에 절강사람인 팡궈전(方国珍) 역시 기회를 이용해 병사를 일으켜 졘둥(渐东)을 차지했다.
봉기군 가운데서 비교적 세력이 강했던 주위안장(朱元璋)은 기원 1356년에 지칭(集庆—오늘의 남경)을 점령하고 우궈궁(吴国公)이라 자칭했다. 상당히 많은 지역을 점령했고 일정하게 승리도 거둔 뒤, 주위안장은 앞으로 해야할 일들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때 주승(朱升)이라는 사람을 찾아 가르침을 받으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해주는 자가 있었다. 주승은 주위안장에게 성공할 수 있는 한가지 비결을 가르쳐주었다.
주승이 알려준 비결을 듣고난 주위안장은 바로 군량과 마초를 사들이고 병마를 훈련시키며 췬시웅(群雄)들을 제거하고 화사(华夏)를 통일할 준비를 했다.
주위안장의 행동을 살피던 장스청(张士诚)과 천유량(陈友谅)은 자신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는 주위안장을 없애버리려 계획했다. 하지만 주위안장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부하대장인 화윈(华云)을 장사성의 아들로 변장시켜 진우량의 군에 파견해 군사계획을 상의하게 했다. 하지만 진우량측의 대장인 장딩볜(张定边)에 의해 발각되었다. 장딩볜은 몇번이나 천유량에게 충고했으나 천유량은 장딩볜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화김에 장딩볜의 군권마저 박탈했다. 주위안장과 끝을 보려고 작심한 천유량은 전투를 벌였고 결국 천량의 수십만 대군은 주위안장 부대에 의해 얼마 남지도 않았다. 천유량 역시 전투에서 화살을 맞고 숨을 거두었다. 따라서 천유량의 아들은 얼마 남지 않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주위안장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큰 승리를 거둔 주위안장 부대는 지우장커우(九江口)에서 술을 마시며 경축했다. 병사들이 마음껏 술판을 즐기게 하고저 주위안장은 대장 쉬다(徐达)와 함께 조용히 그 장소를 나왔다.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그들은 달밝은 밤길을 함께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가에서 그들은 한쌍의 노부부가 배를 젓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쉬다는 매우 예의를 갖춰 그 부부에게 강을 건너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부부는 매우 흔쾌히 승낙했다. 배가 강심에까지 도착했을때 그 노인은 갑자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앞에 있는 대장군은 위풍이 당당하다네… …"
주위안장과 쉬다는 소리내어 웃었다.
그후, 주위안장은 난징을 수도로 정하고 명나라의 개국황제가 되어 그때 강가에서 만났던 노부부를 찾아 상을 내리고 그때 탔던 배에는 특별히 빨간 칠을 하여 기념으로 남겼다 한다.
八面威风"은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성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