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의 희망
한여름 이른 아침 예배당 현관은 날 파리 시체들로 인해 지저분하다. 그중에는 마지막 숨을 껄떡거리며 생을 마감하는 녀석도 있다. 저녁 해가 태기산 너머로 자취를 감추고 교회 현관을 밝히는 조명등이 켜지면 어디선가 이놈들은 그 불빛에 옹기종기 모여든다. 어둠이 짙어지고 더욱 불빛이 밝아질수록 날 파리들은 불꽃놀이에 푹 빠져 있다. 실내까지 들어와서 한때를 즐기던 녀석들은 아침햇살과 함께 긴 호흡을 내뿜으며 이렇게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렇게 하루만 살다가 가기에 '하루살이'라고 부른다. 한자 명칭으로는 거략(蟝O) 몽예(蠓蚋), 음생충(陰生蟲), 부유(蜉蝣)라고 부른다. 하루살이는 물 위나 물가에 사는 곤충으로 애벌레 때는 물 밑의 진흙이나 모래 속에서 살다가 다 자라면 물 위로 올라온다. 다 자란 어른벌레는 떼를 지어 군무(群舞)를 즐긴다. 주로 수컷들이 노는 이 틈에 암컷들이 들어와 암수 한쌍을 이루고 무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간다. 짝짓기를 위한 혼인비행인 것이다. 이놈들은 낳은 알을 물의 표면이나 식물, 돌멩이 위에 부착시킨다. 이렇게 하루살이는 본능적으로 물 밖으로 나와 종족 보존을 위해서 짝짓기를 한 후 수컷은 곧바로 죽고 암컷 역시 물가로 가서 마지막 힘을 다하여 알을 낳고는 바로 생을 마감한다.
보통 하루살이는 그 이름에 따라서 하루만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하루도 못살거나 하루를 넘기고 며칠을 살기도 한다. 대부분의 하루살이는 평균 1~3년 정도 물속에서 애벌레로 지내다가 어른벌레가 된 후에는 물 밖으로 나오는데 그때부터 하루만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루살이는 성충(成蟲)이 된 후의 일생을 보고 지어진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아시아, 유럽 등 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하루살이는 한국에 무늬하루살이, 동양하루살이가 널리 분포하고 있고 그 외에도 두갈래하루살이, 강하루살이, 뿔하루살이, 부채하루살이, 등줄하루살이, 햇살하루살이, 흰부채하루살이, 밤색하루살이, 알락하루살이, 새꼬리하루살이 등이 서식한다. 전체적으로 하루살이는 2아목, 19과 200여 속, 2500여 종으로 분류된다.
이렇게 하루살이는 그 일생이 매우 짧아서 불러진 이름이다 보니 비유적으로는 덧없는 목숨이나 덧없는 삶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의 한평생의 삶을 하루살이로 나타낸다. 이렇게 인간의 연수가 하루살이처럼 짧아진 이유는 인간의 타락 때문이다. 태초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를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다. 그 동산에는 사람을 위해서 좋은 것들이 준비되었으니 사람이 살기에 쾌적의 장소였다. 무엇보다 에덴동산이 하나님의 복된 장소인 것은 그곳 중앙에 생명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처럼 죽지 않는 생명을 간직할 수 있게 하는 신비한 나무다. 사람은 그 나무의 열매를 반드시 먹어야 했는데 불행하게도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먹으면 죽는다는 선악수(善惡樹)의 그 과실에 그만 손을 대고 말았다. 그 결과 인간은 천년도 못 사는 정도로 그 수명이 단축되었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가 969세(창 5:27)로 정점을 찍고 인간의 연수는 점점 단축되다가 마침내 70세요 강건하면 80세(시 90:10)까지 줄어들고 말았다. 인간이 보장받게 된 무량겁(無量劫)의 시간에 비하면 80년은 하루라고 할 수도 없는 극히 짧은 시간이다. 인간의 타락은 이렇게 광겁(曠劫)을 잃어버리고 일촌광음(一寸光陰)에 머무르게 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이렇게 타락한 인간을 버리지 않으셨다. 잃어버린 백겁(百劫)의 시간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 그를 믿으면 그 시간을 회복하신다고 약속해 주셨으니 바로 영생(永生, 요 3:16)이다. 진정 믿음은 영원으로 이어지는 통로요 영원하신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는 비결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비록 80년이란 짧은 생명을 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시간이 약속된 것이다. 보이지 않은 것의 증거가 믿음(히 11:1)이듯이 믿음은 보이지 않는 백겁 시간의 증거를 가지게 한다. 육의 사람은 영원의 시간을 볼 수 없으므로 80년 밖에 안 되는 인생이 마치 천년만년 이어지는 줄 착각하고 아웅다웅한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 못된 짓도 하고, 그 자리를 지키려고 악한 짓을 주저하지 않는다. 비로소 인생 끄트머리에서 하루살이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는다. 1977년 인류는 우주 정복을 위해서 무인 우주선 보이저 호를 태양계 끝까지 쏘아 보냈다. 13년이 지난 1990년 보이저 호는 임무를 마치고 영원한 우주의 심연으로 사라지려 할 때 나사(NASA)의 자문의원 칼 세이건(Carl Sagan)은 보이저 호의 카메라를 지구 쪽을 돌려 명왕성에서 지구를 촬영하자고 했다.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보이저 호는 지구 촬영에 성공했다. 지구로부터 61억km에서 찍힌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었다. 지구에 사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한눈에 알려준 장면이었다. 인간은 그 작은 점에서 하루살이처럼 사는 존재임을 나타낸 것이다. 영원을 모르고 사는 인간의 실체다. 영생을 아는 자만이 하루살이 인생에서 희망을 쌓을 수 있다. 예수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특권이다.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이사야 51:6).
초파리
하루살이
아침 시간 교회 현관에서 생을 마감한 하루살이 떼들
지구로부터 61억 km 떨어진 명왕성 보이저호가 바라본 창백한 푸른점(Pale Blue Dot) 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