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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의 성” <로엔그린>
- 한 정치인문학자의 동구(東歐) 기행 7
구대열
기분 전환을 위해 주제를 바그너로 바꿉니다.
우리가 잘 아는 <로엔그린>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우리가 아는 건 <로엔그린>이 아니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결혼 행진곡이죠. 조금 아시는 분들은 “백조”를 말하실 거구요.
이번 동구여행과는 사실 별 관계가 없습니다.
오페라의 배경이 1천 년 전 게르만족과 헝가리 간의 전쟁이란 것을 빼고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그너 오페라 소재가 북구와 독일의 민담, 신화, 전설이라면 그리고 “2차 대전의 배경음악” 역할을 했다면
이 지역의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겁니다.
바그너의 작품이란 큰 틀에서 보면 <로엔그린>(1848)은 그의 중기 오페라의 마지막 작품 입니다.
(지금 연주되지 않는 작품들을 초기 작품으로 간주합니다.) 바그너는 자신의 오페라에서 추구했던 음악의 성격에 따라
<로엔그린>을 romantic opera,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dramatic opera,
<니벨룽겐의 반지>은 musical drama(악극)로 부르기도 합니다.
오페라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10세기 전반 하인리히 1세가 동방의 헝가리를 치기 위해 브라반트(Brabant) 공국을 방문하는데
공국의 왕녀 엘자(Elsa)가 상속자인 남동생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게 됩니다.
엘자를 고소한 자는 공국의 왕좌를 노리는 텔라문트 백작입니다.
사실은 텔라문트 백작의 부인인 이교도이자 마술사인 오르트루트(Ortrud)는 상속자 고트프리트를 마법에 씌어
백조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성배의 기사 로엔그린이 백조를 타고 나타나
텔라문트와의 결투에서 그를 무찌르고 엘자를 구합니다.
결백한 몸이 된 엘자는 로엔그린과 결혼하게 되는데,
로엔그린은 그녀에게 자기가 누구인지 묻지 말 것을 조건으로 합니다.
그러나 오르트루트의 꾐에 빠진 엘자는 결혼식 첫 날 밤에 묻지 말아야 할 이 문제를 집요하게 거론하며
로엔그린을 궁지에 몰아넣습니다. 결국 로엔그린은 자기의 신원을 밝히며,
그리고는 마중 온 백조를 타고 성배의 나라로 돌아갑니다.
마지막 순간 오르트루트가 나타나 이 백조는 엘자의 동생이라면서
자신의 승리를 축하하는데, 강둑에 오른 로엔그린이 기도하자 이 마녀는 죽고 백조는 동생으로 변하고
극적인 승리의 노래 속에 자신은 비둘기의 인도를 받으면 떠납니다.
엘자도 실망하여 죽습니다. 바그너 작품에서 여성 주인공이 죽지 않으면 이상하죠.
<로엔그린>은 우리에게 “결혼행진곡”인 신부의 합창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의 거의 모든 결혼식은 종교에 관계없이 이 곡을 신부입장 때 연주합니다.
그런데 <로엔그린>의 줄거리를 알고도 선뜩 이 곡을 자기의 결혼식에 쓰고 싶을까요?
무엇보다도 <로엔그린>은 비극으로 끝납니다.
그것도 첫날밤을 치르기도 전에 신부가 신랑에게 “당신이 도대체 누구냐?”고 따지고
신랑은 이러한 신부를 버려두고 떠나고, 신부는 죽습니다.
결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비극의 극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사연을 가진 노래가 왜 만천하 결혼식에서 사용되는지, 그 시작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좋은 노래이기 때문이겠지만.
그 다음, 노래의 가사가 신부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약간 살벌한 느낌조차 듭니다.
로엔그린이 텔라문트 백작을 이기고 브라반트 가문의 공주인 엘자와 결혼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믿음(Treulich), 사랑(Liebe), 젊음의 보석(Zierde der Jugend) 등과 함께 승리를 쟁취한 용기(Siegreicher Mut),
미덕의 수호자(Streiter der Tugend) 등 전쟁냄새가 풍기는,
그래서 “신부”를 그려내는데 적절하지 않은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서양에서는 가톨릭은 물론이고 기독교 일부에서도 이교도적인 요소가 있는 <로엔그린>에 나오는 이 곡을
결혼식용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멘델세존의 결혼행진곡 등 다른 곡을 사용하자는 논의가 있어왔고
또 실제로 그러고 있습니다.
하기야 우리나라 결혼식은 이상한 의식들을 잡다하게 섞은 것(hybrid) 같다고 느낀 분들이 많을 겁니다.
요즘 결혼식장에는 칼 두개를 공중에 걸쳐 걸어두고 신랑 신부가 그 밑을 걸어가는 곳이 많더군요.
이것은 marriage under crossed swords라고 군인들의 결혼식에서 하는 의식입니다.
신랑의 친구인 군인들이 칼로 아취를 만들고 그 아래로 신랑과 신부가 걸어가는 모습입니다.
또 한국식에도 없는 의식인 양측 보모들에게 넙쭉 엎드려 한국식 절을 하는 모습은 뭡니까?
이래야 효심이 묻어나는 것인가요? 축가로 Danny Boy를 부르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 가사 2절은 자기가 죽고 난 뒤 “나의 무덤을 찾아 달라” 것 아닙니까.
(이 노래의 사연과 가사에 대해서는 신우재 '마사모' 회장님의 노래배달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런 저런 것 중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신부 아버지가 신부를 데리고 가서 신랑에게 인계하는 것입니다.
저희들 간의 결혼인데 왜 딸아이를 물건 같이 넘깁니까?
“내가 잘 키웠으니 이제 네가 데리고 살아라”가 아니라 “이제부터 둘이서 잘 살아라”라고 해야죠.
저는 딸아이 결혼식 때 둘이서 손잡고 입장하게 했습니다.
저의 장모님은 둘이 손잡고 입장하는 것은 아버지가 죽어 홀어머니만 있을 때라고 야단을 치시더군요.
본론으로 돌아가서, <로엔그린> 3장 서곡에 해당하는 축제의 곡과
신부행진곡에 이어 나오는 노래들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아름다운 노래는 끝나고 우리 둘만 남았구려(Das s?sse Lied verhallt)”에서 시작하여,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는 “이 감미로운 대기를 같이 숨 쉬어 봅시다(Atmest du nicht mit mir du suessen Duefte?)”,
엘자가 마법에 걸려 당신의 정체를 밝히라면서 미치기 시작하자
로엔그린이 애절하면서도 힘차게 부르는 “나의 진정을 믿어다오(H?chstes Vertrau'n' hast du mir schon zo danken)”,
그러나 엘자의 집요한 요구에 결국 굴복하여 로엔그린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저 먼 곳에서(In fernem Land)”,
그리고 로엔그린이 백조를 타고 떠나면서 부르는 이별의 노래 “사랑하는 백조여(Mein lieber Schwan)”와
이어 나오는 그의 탄식 “일 년 만 당신과 함께 있었다면(O Elsa! Nur ein Jahr an deiner Seite)”으로
이어지는 노래들 말입니다.
이탈리아 오페라로 말하면 아리아 6개가 연속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나는 유학시절부터 이 가사들을 복사하여 외우려 했으나 반쯤만 (첫 곡과 마지막 2개) 외우는데 그쳤습니다.
“이 감미로운 대기를...”과 “나의 진정을 믿어다오...”는 거의 다 외웠는데
마무리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쉽네요. 다음 부분은 노래도 좋고 가사도 좋습니다.
Das einz'ge, was mein Opfer lohne,
muss ich in deiner Lieb ersehn!
나의 희생(봉사)이 보상받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당신의 사랑
.....
“나의 진정을...”에서는,
Denn nicht komm ich aus Nacht und Leiden,
aus Glanz und Wonne komm ich her!
나는 밤과 고통의 자식이 아니라 영광과 기쁨의 자식이라.
그 외, 2막에서 로엔그린이 텔라문트 백작과의 결투에서 이기고, 3막 마지막 장면에서
강둑에 닿아 기도로써 마녀 오르트루트를 죽인 후에 나오는 승리 행진곡도 좋습니다.
<아이다>의 개선행진곡 같이 작품 전체를 압도하는 건 아니지만 “이게 독일적 행진곡”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경쾌하고 환희에 싸여 히틀러가 좋아할 멜로디입니다.
“아마도” 1940년 6월 프랑스 항복 후 히틀러가 파리에 입성하여 에펠탑을 보고 나오면서
오른손으로 지휘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이 바로
이 승리의 노래라도 해도 좋을 겁니다.
바그너를 말할 때 반유대적 성향이 빠지질 않습니다.
히틀러와 바그너의 가족사와 유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신우재 ‘마사모‘회장님이 한 번 쓸 것입니다.
그들의 가족사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히틀러는 밖으로 폭발시켰고,
바그너는 예술인답게 안으로 승화시켰다고 해야겠죠.
이 말은 그의 오페라 가사에서 반유대적 표현들이 나오질 않고 또 그런 걸 별로 느끼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단지 민족주의적 표현들은 발견됩니다.
물론 민족지상주의가 반유대주의로 발전할 개연성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로엔그린> 3막 3장에는,
Nun soll des Reiches Feind sich nahn, (독일 왕국의 적들이여 오려면 오라.)
wir wollen tapfer ihn empfahn: (우리는 용감하게 맞을 것이다.)
aus seinem ?den Ost daher (동쪽의 황무지에서)
soll er sich nimmer wagen mehr! (감히 다시는 공격하지 못하겠지.)
F?r deutsches Land das deutsche Schwert! (독일의 땅은 독일의 칼로,)
So sei des Reiches Kraft bew?hrt! (이렇게 왕국의 힘을 증명하자.)
<뉴른베르크의 명가수(Die Meistersinger von Nuernberg)>는 노래 경연대회입니다.
“민족”, “국가” 등의 개념은 들어갈 여지가 없으며 실제로 끝까지 이 같은 말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느닷없이 “독일적인 것”, “성스러운 독일의 예술”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독일민족과 왕국이
앞으로 먼 어느 날 쇠퇴하여 외국의 지배에 놓이고
외국의 허황된 것들이 독일 땅에 이식되어
당신들이 진정한 독일적인 것을 모르게 될지라도...
이어 “내가 당신들에게 말하노니”,
ehrt eure deutschen Meister!
Dann bannt ihr gute Geister;
und gebt ihr ihrem Wirken Gunst,
zerging' in Dunst
das heil'ge r?m'sche Reich,
uns bliebe gleich
die heil'ge deutsche Kunst!
독일(예술)의 명인들을 존중하라
그러면 당신은 훌륭한 정신을 불러낼 것이며,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좋아하면
신성로마제국이 먼지가 되어 없어질지라도
우리에게는 신성한 독일 예술이 남으리라.
“신성한 독일의 예술” - 이것이 바그너가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것인가요?
<로엔그린>하면 백조와 바이에른 왕국의 루드비히 2세(Ludwig II)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왕은 우화에서나 나올만한 로마네스크 스타일의 환상적인 성을 지어
“새(新) 백조의 성(Neuschwanstein)”이라고 이름붙인 인물입니다.
Stein은 돌이지만 “성”이라는 것을 강조하여 독일어로는 Schloss Neuschwanstein,
영어로는 New Swanstone Castle이라고 쓰는데 바이에른 뮌헨 부근 관광명소 중 하나입니다.
모습을 글방에 보낸 기억이 나기에, 그 사진 몇 컷 골라 이번 구대열 박사의 동구(東歐)기행문에
붙였다. 너무 서운해 하지 말라!" - 아래 사진은 "백조의 성(城)"의 원경(遠景), 맨 밑 사진은
계곡에서 내려다 본 <백조의 성>. 사진 세 컷 모두 화가이자 사진 역시 경지에 오른
제 대학동기 홍경삼이 찍었습니다/방장
루드비히 2세는 독일연방 내에서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 이어 3번째 강국인 바이에른 왕국을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프로이센에게 헌납한 군주입니다.
결과적으로 독일 통일에는 공헌했다고 할 것입니다. 그는 고독과 환상을 좇아 성을 짓고
<로엔그린>과 백조와 관련된 그림으로 이 성의 벽을 도배하여 놓고는 결국 연못에 빠져 자살했습니다.
군주로서는 비현실적이며 실패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 궁성 하나로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겼습니다.
오늘날 바이에른 주의 서남부에 있는 이 성이 지금도 우리의 생활에서 살아 숨 쉬고 있으니까요.
바로 디즈니랜드입니다.
디즈니랜드 만화나 영화가 시작되면서 나오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성(Sleeping Beauty’s Castle)이 바로 이 성입니다.
먼 나라 설화나 전설인 <로엔그린>은 결혼행진곡과 디즈니랜드로 여전히 우리와 대화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대열/이대 정외과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박사(런던정치경제大/LSE)/전 한국일보 기자/
근저(近著): "삼국통일의 정치학"/부산고~서울대 문리대 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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