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백제 때의 거열성(居列城)터였다고 하지만, 진주성을 언제 쌓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사료에 의하면 고려 말인 우왕 3년(1377)에 왜구의 침입을 방어할 목적으로 성을 고쳐 쌓았으며, 임진왜란 때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적을 철통같이 막아 낸 관문이었다.
이곳 진주성에서는 임진왜란 때 두 번에 걸쳐 큰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가운데 1차 전투가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손꼽히는 진주성싸움이다.
진주성문 앞에 세워진 변영로의 시비에 씌어 있는 「논개」(거룩한 분노는/종교보다도 깊고/불붙는 열정은/사랑보다도 강하다/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그 마음 흘러라/흐르는 강물은/길이길이 푸르리니/그대의 꽃다운 혼/어이 아니 붉으랴)를 읊으며 성문 안으로 들어서면 웅장한 자태의 촉석루가 옆으로 비껴서 남강을 굽어보고 있다. 본성동과 남성동에 걸쳐 있는 진주성 안에는 의기사(義妓祠), 쌍충사적비(雙忠事蹟碑), 김시민장군전공비와 촉석정충단비(矗石旌忠壇碑)가 나란히 서 있는 정충단(旌忠壇), 북장대(北將臺), 서장대(西將臺), 영남포정사문루(嶺南布政司門樓), 창렬사(彰烈祠), 호국사(護國寺) 등의 유적들이 있으며, 이 일대가 사적 제118호로 지정돼 있다.
남강가 벼랑 위에 장엄하게 높이 솟아 있는 촉석루는 남원 광한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큰 규모이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 놓인 화반의 무늬가 눈여겨볼 만하다. 촉석루에서 바라보는 남강의 경치도 운치 있지만, 진주성 맞은편에서 보는 촉석루의 모습은 강과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처럼 고즈넉하다.
진주성 (답사여행의 길잡이 6 - 지리산 자락, 초판 1996., 16쇄 2009., 한국문화유산답사회, 김효형, 박종분, 김성철, 유홍준, 정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