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정선 이야기5
사랑 정선, 싸리골 올동박 다 떨어지기 전에 만나자
<화전 일구고, 비탈에서 콩밭 매며 시름을 이긴 사랑 소리>
“뒷집에 숫돌이 좋아서 낫 갈러 갔더니 뒷집 처녀 옆눈 길에 낫 날이 홀짝 넘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이 소리는 아주 옛적에 우리 할아버지가 환갑잔치에서 불렀던 소릿말입니다. 그러니 이 소리를 들은 지 벌써 환갑이 다 되어 가는 옛날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는 전혀 감성이 묻어나지 않는 임계면 문래리 첩첩 산골에서 농사만 하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환갑잔치에서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소리를 했습니다. 가끔 밭갈이할 때 소 다루는 소리는 했습니다만 놀이 현장에서 소리는 처음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잔치에 떡 얻어먹으러 갔다가 들은 소리입니다.
할아버지 소리를 들은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에게도 소리 한 곡 하라고 말합니다.
“하룻밤을 자고야 나도 만리성을 쌓는데, 만리성을 못 쌓을망정 만리 해나 삽시다. 아리랑~~”
가끔 할머니는 눈시울을 적시며 소리 한 자락씩 하는 모습을 봤지요.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소리를 이어갔습니다. 할머니는 <회심곡>도 가끔 부르는 터라, 소리 한 자락이야 어렵지 않았지요. 한여름 뜨거운 땡볕이 내리쬘 때, 문래리 여인들은 밭에 나가 풀과 씨름합니다. 숨이 콱콱 막히는 더위이지요. 겨우 머리에 두른 수건 하나로 땀도 닦고, 햇볕도 가릴 뿐입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면 나무 그늘에 앉아 소리를 하며 신세 한탄을 하였지요.
이 밭 저 밭에서 울려 퍼지는 여인들의 소리는 참 처량하면서도 흥겨웠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뒷산 범바위 잔등에서도 남정네들의 소리가 들립니다. 나무하러 간 사람, 버섯 따러 간 사람, 약초 캐러 간 사람들이 아리랑 소리를 잘도 합니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릿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아리랑~~.”
아우라지는 만남의 장소이면서 이별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아우라지 물길을 건너는 배는 정말 우리 역사에 영원히 기록해야 할 특별한 현장이었지요. 커다란 배를 사공이 지팡이로 노를 저어 대면 버스며 트럭이며 온갖 자동차와 사람과 짐승이 타고 건넜습니다. 물길에 일렁이는 뱃전에 서면 과연 강을 건널 수 있을지 두려워, 가슴이 콩닥콩닥했습니다. 그런 가슴의 울림은 강물처럼 일렁였습니다. 이 강물의 일렁임은 처녀와 총각의 마음으로 이어졌고요. 이렇게 할아버지 할머니의 연정이 담긴 사랑 소리는 처녀와 총각의 연정으로 아우라지에서 모여집니다. 구수한 동백(동박)기름 짜서 머릿결을 곱게 하고 임 만나러 가는 마음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여인들의 봄 소풍 화전놀이 장단>
“노랑지 저고리 앞자락에 줄줄이 흐르는 눈물은 네 탓이냐 내 탓이냐 중신애비 탓이지. 아리랑~~”
정선 고을마다 진달래 붉게 피는 날이면 여인들은 꽃단장하고 골짜기로 들어갑니다. 화전(花煎)놀이 가는 길입니다. 계곡 사이 도랑 옆 널찍한 너럭바위는 놀기에 안성맞춤이지요. 찹쌀에 진달래 꽃잎 올려 예쁜 꽃전을 만들어 먹는 날이지요. 이날은 남정네들이 주위에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여인들만의 날이니까요.
그 때문일까요. 여인들의 숨은 실력이 나옵니다. 소리와 춤이 어울리며 평소 하지 않던 기량을 마음껏 내뿜습니다. 장구치며 소리하고 춤추고 웃으며 하루해가 언제 갔는지 모를 즐거운 놀이가 이어집니다. 그렇게 꽃동산에서 부르는 여인들의 소리에는 괜한 ‘탓’이 나옵니다. 힘든 시집살이에 한탄하는 ‘탓’의 대상이 중신아비입니다. 참 정겨운 마음가짐이지요. 사랑하는 남편과 가족에 대한 원망보다는 그 옛날 짝지어주고 떠난 중신아비를 탓하지요. 이처럼 정선아라리 소리에는 원망하면서도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화전놀이는 여인들이 그저 한을 풀 따름인 ‘한풀이 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선사람은 누구나 작사가, 가수>
“저 건네 불뼝대 끝에는 솔개미 한 쌍이 돌고요 임자 없는 빈방에는 나 혼자 돕니다. 아리랑~~”
자연의 현상을 따라 인간의 마음을 이어 소리하면 작사(作詞)가 됩니다. 소릿말이 탄생하는 현장이지요. 소릿말은 시(詩)의 부름이니, 정선사람들의 마음을 알만하지요. 정선아라리는 내 마음에 담긴 정서를 소리로 담아내는 아주 좋은 매체입니다. 가락은 정해져 있으니, 풀어내고 싶은 사연으로 소릿말만 담으면 ‘내 노래’가 됩니다. 비슷한 가사가 많은 원인이기도 하지요. 기존 가사를 조금만 바꾸어 자신의 마음을 담아 소리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보면 정선에 아리랑의 유행은 행복입니다. 그 때문일까요. 정선아라리 가사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고요. 정선아라리 가사 수효가 2010년 기준으로 5천 수가 넘었다고 합니다. 그중에 대부분 가사는 사랑 타령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참 예쁜 정선사람들입니다.
“저 건네 저 묵밭은 작년에도 묵더니 올해도 날과 같이 또 묵는구나. 아리랑~~.”
이 소릿말도 정선아라리 중에 많이 불리는 소리입니다. 정선 덕우리 출신 우리 어머니의 단골 메뉴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세상에 알리며 하고 싶은 일들은 많지만, 차마 할 수 없어 시간만 보내는 처지가 잘 드러나는 구절입니다. 이 소릿말도 비슷한 가사가 참 많습니다.
<고개에 대한 이미지 확대로 한국의 대표 소리로 정착>
“오늘 갈른지 내일 갈른지 정수정망 없는데, 울타리 밑에 줄 봉숭아는 왜 심어놨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정선사람들의 마음은 정선아라리 가사와 후렴구에 잘 나타납니다. 이 소릿말은 정말 많이 부르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들을 수 있는 소릿말입니다. 앞날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현재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소릿말이지요. 분명 모순되는 두 일이 서로 타당성을 가지고 팽팽하게 겨루고 있잖아요. 그 의미가 후렴에도 그대로 배어 있습니다.
우리는 내 인생을 결정짓기가 쉽지 않습니다. 분명 자신이 결정해야 하지만 판단이 어렵습니다. 어물어물하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게 사람의 인생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등 떠밀어 주기를 은근히 바랍니다. 결단을 잘 내리지 못한다고 나쁜 게 아닙니다. 그게 원래 우리 인생이니까요.
이런 심정이 정선아라리 소릿말과 후렴에도 잘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런 심정을 정선사람들은 소리로 풀어내지요. 참 많은 사람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정선아라리가 우리나라 아리랑의 원천이며, 세계로 아리랑이 퍼져나가게 한 원동력이 아마도 이런 소리의 특징이 아닐까요. 이는 여러 사람을 생각하는 사랑이 담겼기 때문에 가능한 소릿말입니다. 나보다는 주변 사람을 더 배려한 사랑이지요.
“참나무 옥지게 낫 갈아 꽂고 뒷동산 처녀 무덤에 풀 베러 갔네. 아리랑~~.”
주변을 배려한 사랑은 가끔 처녀 무덤 벌초하듯이 엉뚱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