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습관 / 최미숙
3월 16일(목) 광주 광산구에서 운영하는 평생 학습 교양 강좌 ‘2023 광산 아카데미’에 다녀왔다. 지난 연말 내가 속한 〈남도 역사 연구회〉에서 좋은 인문학 강좌라며 소개해 줬다. 1년 동안 각계 저명인사를 초청해 매달 셋째 주 목요일 문화예술회관에서 강연한다는 내용이다. 강사를 훑어보니 듣고 싶은 강좌 몇 개가 눈에 띄었다. 2월 현대 중국 정치 연구의 권위자인 서울대학교 국제 대학원 조영남 교수의 ‘시진핑 집권 3기, 중국은 어디로 가는가?’를 첫 시작으로 이번 달은 유시민 작가의 ‘좋은 삶은 독서에서 시작한다’라는 주제였다. 작가의 책이나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거의 챙겨보는 편이다. 엄청난 독서량과 사회 현상이나 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꼭 듣고 싶었고, 어떤 이야기를 할지 기대됐다.
구청 측에서는 인기 강사라 청중이 많이 모일 것으로 예상하고 1, 2부로 나누어 진행한다고 했다. 2부는 다섯 시부터 여섯 시 10분까지라 여유가 있었다. 세 시 30분에 출발해 회관에 도착하니 막 시작하려던 참이다. 1층은 거의 차고 2층은 넉넉해 그곳에 앉았다. 그동안 유시민 작가와 조수진 변호사가 유튜브에서 진행하는 〈알릴레오 북스〉는 자주 봤는데 실제 강연은 처음이다. 1부에 했던 말을 반복해 힘들기는 하겠지만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걸 어쩌겠는가 감당해야지. 그놈의 인기가 문제다.
유 작가님은 자신의 책 읽는 방법을 소개했다. 학창 시절 읽었던 책을 20년이 지난 후 다시 보면 긴 세월 동안 여러 일을 경험함으로써 배경지식이 많아져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며 시차를 두고 읽어보라고 권했다. 특히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부제로는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라는 고전 소설을 예로 들어 언론의 현주소를 이야기했다.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작가가 소개한 내용을 말하자면, 어느 날 스물일곱 살의 평범한 여인 카타리나 블룸이 ‘차이퉁’지의 한 기자를 살해하고 제 발로 경찰서를 찾아와 자수한다. 주인공은 저녁 파티에서 강도 살해 용의자로 경찰에 쫓기는 괴텐이란 남자를 한눈에 반해 사랑하게 되고 자신의 집에서 재운다. 그리고는 남자가 도망가도록 도와주고 은신할 제2의 장소까지 알선한다. 다음날 남자가 수배 중인 공산주의자라며 카타리나는 경찰에 체포되고 주변 인물까지 심문을 받는다. 특종 사냥꾼인 일간지 기자 퇴트게스는 이 소식을 포착하고 취재에 협조하지 않는다며 온갖 거짓 기사를 써 신문에 싣는다. 하다못해 직접 말한 진술마저도 편의에 맞게 다른 단어로 바꾸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이혼한 남편과 암으로 안정을 취해야 하는 어머니까지 찾아가 취재를 강행한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그녀를 도왔던 변호사 부부의 명예가 추락하고 일상이 무너진다. 그리고 인터뷰조차도 거짓으로 써 그동안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온 그녀를 살인범의 정부, 테러리스트의 공조자, 음탕한 공산주의자로 만들어 버린다. 군중 또한 이러한 허위 보도에 폭발적으로 호응하며 욕설을 내뱉는다. 자극적인 기사로 이득을 얻고 성적 의도로 접근했던 기자의 행태가 블룸을 피해자에서 살인자인 가해자로 변하게 한다. 그녀는 절망한 나머지 일요일 낮 열두 시 자기 아파트에서 기자를 총으로 살해하고는 경찰을 찾아가 자신의 범죄 행위를 자백한다는 내용이다.
50년 전 소설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2023년 지금과 언론 환경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에 놀랐다.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할 만큼 세월이 지났는데도 좋아지기는커녕 과장 왜곡 보도가 더 교묘해졌다. 오죽하면 ‘기레기’라고 했겠는가. 언론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며, 기사를 쓰는 기자의 양심과 소명 의식은 과연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우리보다 더 민주주의가 발달했다고 여겼던 독일 같은 나라에서도 이런 언론 폭력이 벌어졌다는 것이 의아했다. ‘표현의 자유’라는 말로 포장해 조회 수만 올리려는 언론이 얼마나 많은 ‘카타리나 블룸’을 만들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강연에서 이야기 한 책은 유시민의〈청춘의 독서〉에서 소개한 열네 권의 고전 중 하나로 이번에 다시 읽었다고 했다.
오는 길에 내 독서 방식을 생각해 봤다. 소개한 책 대부분이 내게는 어렵고 무겁다. 그런데 그 많은 내용과 등장인물을 어떻게 다 기억하고 필요할 때마다 자유자재로 꺼내는지 지식의 양을 담은 그릇이 부러웠다. 나는 책을 읽고 몇 주 지나면 주인공 이름은 물론 내용조차도 가물가물한데 비결이 뭔지 묻고 싶다. 독서 방법에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기억력이 없거나 머리가 나쁜 건지 스스로를 의심하며 자책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같은 시간을 투자하고도 잡히는 것이 없으니 답답하다.
요즘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전쟁〉3권을 읽는 중이다. 나오는 인물이 많기도 하고 이름이 어려워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읽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고, 중요한 내용은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정리하기도 하는데 그때뿐이다. 그동안 다독 욕심 때문에 한 번 읽은 책은 웬만하면 다시 들춰 보지 않았다. 이제 두세 번은 반복하고 하나하나 기록해야 할 모양이다. 어쨌든 이 시대 대표 지식인이라 생각했던 유시민 작가의 강연이 내 독서 습관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첫댓글 교양 강좌에 참가하려고 순천에서 광주까지 오셨다니 그 열정이 놀랍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최 선생님은 항상 열정이 넘치시는 것 같습니다. 본받고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일었습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선생님도 읽은 책을 잘 기억 못한다니 다 그러는 구나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읽은 걸 다 기억하면 꼭 좋은 건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 좋은 강의가
있으면 권유해 주세요. 하하.
책을 읽고 기억 못하는 사람 한 명 추가요. 하하!
저는 유시민 작가의 강연에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2시간 동안 서서 들었답니다.
박학다식하고 사고의 깊이가 느껴지는 사람을 만나면 참 부러워요.
작가가 추천한 <코스모스>를 사놓고 읽지 않고 있답니다. 어려워서요. 엉엉. 책을 읽고 기억 못한 사람 여기 또 있어요. 하하
열정이 많으신 선생님! 좋은 글 고맙습니다.
며칠 전 유튜브로 봤는데 그 곳에 계셨다니 부럽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언제부턴가 청소년 소설만 이해하는 수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직업 때문에 생긴 것 같으니 산재신청해야 할까 봐요.
저도 다독 욕심 때문에 한 번 읽은 책은 웬만하면 다시 들춰 보지 않는데, 읽고 읽고 또 읽고의 중요성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