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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합천대야성단맥종주
인덕산 논덕산 구실재 서산 대야성(합천)-망나니 김품석과 만고의 역적 김춘추의 이야기가 있는 대야성으로 가는 산줄기 마지막에 헨드폰을 분실하고 그 일대 가시밀림을 밤새도록 헤맸으나 찾지 못하고 담날 새벽에 산줄기의 끝자락 대야성을 넘다
글쓴이 : 우리산줄기 연구 및 답사가 자하紫霞 신경수申京秀
언제 : 2023. 06. 22(목) 맑음
종주에 필요한 국립지리원 5만분의1 지형도 도엽명 : 합천
영진5만지도 : 433
[지명(다른이름, 삼각점△ 고도m, 거리km/누계km) : 고도는 도면상 또는 등고선상 평균높이이며 거리는 도상거리임]
가야기맥이 가야한 두리봉 의상봉 오도산을 지나 만대산으로 가며 싸리터재를 지나 합천군 봉산면, 묘산면, 합천읍의 삼경봉인 568.1봉에서 동남방향으로 분기하여 봉산면과 합천읍의 경계를 따라 상두재(470, 0.3)-두리티재(470, 0.6/0.9)-인덕산(△647.7, 2.1/3)-388.9봉(1.1/4.1)-1034번지방도로 계산인곡도로고개(340, 0.3/4.4)-봉산면, 합천읍, 용주면의 삼경점(460, 0.7/5.1)-십자안부(370, 0.9/6)-450봉(0.8/6.8)-△416.5봉(1/7.8)-구실재(420, 0.2/8)-내안계고개도로(170, 1.5/9.5)-서산(257, 1/10.5)-220봉(0.4/10.9)-십자안부(130, 0.8/11.7)-207봉(0.4/12.1)-204.8봉(거대암봉, 0.3/12.4)-지적△180봉(0.4/12.8)-도로고개(60, 1/13.8)-80봉(0.4/14.2)-합천여중고(70, 0.4/14.6)-33번국도 대야성문고개(50, 0.8/15.4)-대야성산(매봉산?, 95, 0.5/15.9)-함벽루인근 도로(30, 0.3/16.2)로 내려선 이후 도로따라 합천시내를 관통하며 합천군청(30, 0.5/16.7)을 거쳐 논두렁을 밟아 24번국도(30, 0.9/17.6)를 지나 인덕산이 발원지인 합천천이 가야기맥 분기봉인근인 백두대간 초점산어깨가 발원지인 황강을 만나는 곳(30, 0.4/18)에서 끝나는 약18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이번 답사기는 막판에 헨드폰을 분실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 때문에 찍은 사진이나 지나간 궤적을 모조리 분실하게 되어 답사 도중 산님들에게 보낸 중간 보고용의 사진 3장밖에 싣지를 못했고 궤적 대신 지도를 만들어 첨부할 수밖에 없었으니 사진 거의 없는 답사자료로 이해 바랍니다
[가야]합천대야성단맥지도(지도를 클릭하시면 큰지도로 지명 등을 읽으실수 있습니다)
[가야]합천대야성단맥 합천읍 대야성부근 지도
진행경로
합천군 묘산면 팔심리-가야기맥-분기봉-상두재-두리티재-인덕산-388.9봉-1034번지방도로 계산인곡도로고개-봉산면, 합천읍, 용주면의 삼경점-십자안부-450봉-△416.5봉-구실재(불탄봉)-불탄지역-불탄곳 끝-내안계고개도로-서산-220봉-십자안부-207봉-204.8봉(거대암봉)-지적△180봉-도로고개-80봉-합천공설운동장-33번국도 대야성문고개-대야성산(매봉산?)-함벽루인근 도로로 내려선 이후 도로따라 합천시내를 관통하며 버스터미널 합천시장 사거리
등로상태
팔심리에서 가야기맥 올라가는 길은 없고 5급길로 분기봉으로 올라 이후 5급길이 계속되다가 인덕산에서 1034번지방도로로 내려가는 길은 길흔적이었다가 올라가는 길도 없다가 5급길이 이어지다가 논덕산어깨부터 높이60고개까지는 4급 좋은 길이 이어진다 이후 공설운동장 직전까지 길이 없다가 막판 산책로가 나오고 도로따라가다가 대야성산은 1급 도로같은 등산로다
독도 등 주의사항
인덕산에서 1034번지방도로까지 마루금과 구실재에서 불탄지역 내려오는 길과 220봉 내려가는 길과 막판 80봉에서 내려가는 길을 특히 주의해야함
누가 : 신경수 홀로
어디를 : 합천군 묘산면 팔심리 마지막 동네에서 가야기맥으로 올라 분기점을 거쳐 합천대야성단맥을 따라 끝까지
#인덕산(△647) : 합천군 봉산면, 합천읍
#논덕산(530)어깨(490) : 합천군 봉산면, 합천읍, 용주면
#구실재(420) : 합천군 용주면, 합천읍
#서산(△257) : 합천군 용주면, 합천읍
#거대암봉(204.8) : 합천군 용주면, 합천읍
#대야성산(매봉산?, 95) : 합천군 합천읍
왜 : 10km이상되는 산줄기 답사를 위해서
구간거리 : 23km 접근거리 : 1km 단맥거리 : 18km 기타거리(헨드폰 찾아 헤맨거리) : 4km
구간시간 23:30 접근시간 0:40 단맥시간 8:50 잠잔시간 2:00 휴식시간 3:00 기타시간(헨드폰 찾은시간) 9:00
글 머리에
23시20분 집을 나서
서울역가는 막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여 보니
ㄴㄱㄹ강남터미널까지 갈일이 심란하다
택시 안타려면 어차피 용산역에서 경의중앙선 막차를 타고
석빙고역으로 가는 방법밖에 없어
곧바로 1호선으로 갈아탔다
용산역에서 내려야하는데 타임을 놓치고
한강을 건너 노량진에서 내리게 되었다
옛날에는 분명히 이시간대에는 9호선이 없었는데
이제는 보훈병원가는 연장구간이 생기면서
24시가 넘어서까지 운행을 하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제는 석빙고역에서 반포대교를 걸을 생각을 하지말고
한번더 갈아타더라도 용산에서 내려 1호선으로 갈아타고
노량진역에서 한번 더 내려 9호선으로 갈아타는 경로를 알았으니
심야버스타려고 강남역을 가려면 이 경로를 택하면 될 일이다
아무튼 기적같이 00시17분 9호선으로 갈이타고
강남역에 도착하니 00시30분이다
가볍게 1시간만 게기면 되니 얼마나 편하게된지 모르겠다
생각지도 않은 시간표를 우연히 알게 되어
마치 큰 수확을 얻은 기분이다
이곳은 역사내에서 걸어가는 거리가 멀어 00시40분에
갈아탈 버스승강장7번에 도착했다
1시30분 고속버스를 타고
3시간만인 4시30분에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먹자골목 초입에 있는 24시할매국밥집에 들려
내장만국밥으로 평소 안하던 아침을 하는데
하루종일 힘을 보충해줘야 갈수 있는 장거리 산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반주 없이 먹기가 그래서
몇잔만 마신다고 시킨 소주 한병을 또 다 마시고 말았다
역류를 참으며 먹다가 보니 어느덧 5시30분이다
5시39분 설화명곡 가는 첫전철을 타려면 지금 나가도 되고
놓치면 그 다음 전철을 타도 시간상 관계는 없다
대구전철은 협궤다 폭이 좁고 좌석도 좁다
타려고 하는 승강장 앞 바닥이고 문이고 써져있는 경고문이 이색적이다
“문이 열리면 승강기 안의 바닥을 확인한후 탐승하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바닥이 꺼지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다 ^^
6시쯤 서부정류장 3번출구로 나가면
서부정류장 시외버스터미널이다
너른 터미널 안에는 요기꺼리가 여럿 있어
배를 골을 일은 없다
40분을 게기다가 6시40분 해인사행 첫버스를 탔다
오늘 산행 들머리로 가려면
분기라는 곳에서 내리는 것이 제일 가깝지만
갈아탈 버스가 바로 있는 것도 아니라 천상 택시를 이용하려면
택시가 있는 야로면까지 가는 것이 맞는 말이다
그런데 서부정류장에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생경한 말을 듣는다
배낭이 짐이 되니 배낭을 짐칸에 넣고 타란다
무슨 말이 그러냐
내 짊어지고 가는 배낭 내 자리 앞에 두고 가는데
그게 무슨 짐이 되느냐 내 앞에 사람이 서는 자리도 아니고 말이시
사람이 만원이다보면 그럴수도 있다는 취지로 이야기를 하니
당최 이야기가 통할 위인이 아니라 내가 참는 수밖에 없어
그럼 맨 앞자리 포기하고 맨뒤로 가서 쥐죽은 듯이 있다가 내리겠노라 선언하며
맨 뒷자리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내 평생 서부정류장에서 아침 첫차를 타면서 만원인적 한번도 없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고령까지만 가는 사람들은 제법 많았으나
자리를 다 채울 정도로 많은 것이 아니라 드문드문 채울 정도의 인원이지만
다른때는 텅텅 비어서 가기 때문에 많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고령까지 가니 모든 사람이 거의 다 내리고 차는 텅텅 비었다
참고로 묘산까지 가는 버스가 있으면 좋으련만
분기삼거리에서 합천시내버스로 갈아타야한다
고령에 7시15분
분기에 7시35분
야로에 1시간만인 7시40분에 내리며 기사를 슬적 한번 쏘아본다
성정이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데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는지 참으로 우스운 이야기다
주먹만한 배낭 일부러 짐칸에 넣고 일부러 가서 문열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가방 찾아서 먼지 털어 울러매고 간다는 것이
그리고 1시간 이상 장거리에 여행에 물을 마시고 싶으면 어찌하라고
속이 울렁거리면 어찌하라고 도대체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택시차부로 가 예약해두었던 택시를 타고
묘산면 팔심리 깊고 깊은 합천의 최고 오지로 들어간다
본문
택시를 안타고 버스를 타고 왔다면
24, 26번국도 반포리에서 내려
1차선 동네길을 따라 한없이 오르다가
마지막 그런데로 상당히 크고 깨끗한 팔심리 동네에
8시에 내려 산행을 시작한다(택시요금 약20000원)
450
합천군 묘산면 팔심리 : 8:00 8:10출발(10분 휴)
충효세가라는 당호를 가진 문화재같은 집 앞으로 오르다가
일하러 나와 계시는 분들 3분에게 인덕산을 가는 길을 물었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지금은 나무하러 다니는 사람이 없어
길이 없어져 갈수 있는 길이 없단다
글고 합천에 있는 산을 여기 묘산에서 찾으면 말이 되느냐
그런 산은 나올리도 없다는 이야기만 듣는다
그래서 일단은 오르는 길을 물어서 찾는 것을 포기하고
내 나름대로 주특기를 살려서 무조건 치고 올라야 한다
내가 언제 누구에게 물어서 산을 다녔는가
사실 동네 주민들보다는 내가 더 산을 아니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조금이라도 덜 고생을 하려고 마침 동네 사람이 나와 있으니
그저 그냥 지나가기기 민망해 물어보는 수준정도라
그리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이니 뭘 그리 실망할 필요도 없다
우쪽 산밑으로 무조건 오르다가 마지막 집을 지나
넘의 밭으로 붙어서 오르다가 밭에서 길은 없어졌지만
풀무성한 밭갓길로 밭꼭지점에 이르고 무조건 산으로 들어간다
밭끝 : 8:20
길은 없지만 가시 잡목을 헤치며 특히 산초가시를 조심하며 오르는데
사방에서 산초향이 건드리기만 하면 천지사방으로 퍼져
그 향기에 취해서 오르니 빽빽한 밀림이 아니라 오를만 하다
정신 바짝 차리고 가시에 긁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드디어 가야기맥 산줄기로 올라섰다
5급 좋은 길이 기다리고 있다가 반겨준다
560, 0.6
가야기맥능선 : 8:40 8:50출(10분 휴)
좌로 잔물결로 진행하며
잠시 가면 길은 묵은 경운기길처럼 넓어지며
그 묵은 경운기길은 좌로 내려가버리고 다시 5급길로 올라
합천군 봉산면, 묘산면, 합천읍의 삼경봉이자 568.1봉인
1
분기봉에 이른다 : 9:00 9:05출(5분 휴)
팔심리마을에서부터 가야기맥으로 올라와
분기봉까지 접근거리 약1km 약40분 걸렸다
길이 없었던 것으로 보면
일단은 양호하게 분기봉에 이른 것이다
준희선배님 팻찰이 반갑다
직진하는 길은 가야기맥을 따라가는 길이므로
우쪽으로 90도 각도로 돌아서 남서방향으로
봉산면과 합천읍의 경계를 따라 간다
470, 0.3
상두재 : 9:10
Y자길 흔적이 있는 510봉(0.6) : 9:25 9:30출(5분 휴)
우쪽인 서쪽으로 내려
470안부 : 9:35
480묵은 십자안부 : 9:40
돌무지 흔적이 있는
두리티재(470, 0.9) : 9:50
순백의 향연 산목련이
그 굵은 꽃망을을 뚝뚝 떨어뜨리며
가는 세월을 한하며
아직도 그 찬연한 빛을 발한다
우쪽 사면길로 오르다가
능선을 넘어
좌쪽 사면길로 오르다가
철탑 아래로 오른다 : 10:05
530봉을 우쪽 사면으로 넘어가 잔물결로 진행하다가
520둔덕에서 좌쪽 남쪽으로 내려간다(1.6) : 10:15
500십자안부 : 10:20
좌쪽이 벌목지인 능선으로 가면서
뒤돌아본 오도산의 모습이 합천의 마터호른답게
하늘을 향해 곧추서 있는 모습이 온 산하의 조종답다
우쪽으로는 미녀봉 산줄기가 아름답게 흐른다
첩첩산중 보이지 않는 기이한 물소리조차 숨을 죽인다
“합천310 2002복구” 삼각점과 삼각점안내판이 있는
647.7봉으로 올라서니
대구의 김문암님의 인덕산 정상판이 반갑기만 하다
조망은 하나도 없다
3
인덕산 : 11:15 11:25출(10분 휴)
30m 정도 내려가다 좋은 길은 직진으로 인곡리로 내려가버리고
우쪽 남쪽으로 길 흔적을 따라 하늘색 페인트로 나무에 화살표로
갈길을 표시한 급경사를 한도끝도 없이 기다시피 내려가야 한다
으례히 그런 급경사는 바윗길이 나오고
아무런 안전정치가 없으니 조심해야한다
등고선상 고도420M지점에서 직진으로 내려가는 길은 좋으나
좌쪽 남동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운 잘보아야 길 흔적이 보이지만
잘보면 나무에 하늘색페인트로 화살표를 한 나무들이 있으니
잘 찾어서 헤매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물론 이글 이후에는 내 표시기를 찾아서 진행해도 된다
420 3.6
남동진점 : 11:55 12:00출(5분 휴)
펑퍼짐한 360안부 : 12:05
잠깐 내려가다가 갈림길에서 좌로 내려간다
예의 그 하늘색 화살표로 표시된 나무가 있다
12:05 12;10출(3분 휴)
388.9봉 : 12:15
우로 휘어서 서쪽으로 조금 치우친 남쪽으로 급경사를 내려가다
막판 도로변 높은 낙석방지용철책을 향해서 바윗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
철책밑에 이르면 철책밑에 약20CM정도의 개구멍이 나있다
배나오거나 얼굴이 두꺼운 사람들은 절대로 통과 못할 정도의 개구멍이다
배낭과 스틱을 먼저 밖으로 반쯤 내보내고
누워서 배는 최대한 들이밀고
얼굴은 철조망에 긁히지 않게 아주 천천히 빠져나가
수로로 내려서야한다
사람이 그런 자세를 취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빠져나오고나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우로 조금만 가면 좌로 길건너
높은 철책 끝나는 지점에
수로로 올라가는 곳에 아주 작은 세맨다리가 놓여있다
340, 4.4
1034번지방도로 계산인곡고개 : 12:35 12:40출(5분 휴)
가시풀 무성한 세맨수로를 밧줄잡고 올라
우쪽 절개지가로 가 능선으로 붙는데
깔따구 날파리 등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인간의 피를 빨아먹으려 안달이 났다
적당한 곳에 퍼지르고앉아
벌레기피제를 배낭과 옷등에 뿌리고 오르지만
하나마나다
(15분 휴)
절개지가 능선으로 붙으면
5급길이 다시 나오고 오를만해진다
봉산면, 합천읍, 용주면의 삼경점인 논덕산어깨에 이르러
우로 오르면 논덕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좌쪽 사면길로 들어가면 합천읍내 대야성으로 가는 길이다
좌우길 전부 4급 산책로 길로
어려운 곳 갈림길에서
포도+빵+당플랜+식혜+소주+얼음물 등으로
논덕산 산신령님에게 고시레도 하면서
마냥 세월만 탄하노라
460, 5.1
논덕산어깨(460) 삼경점 : 13:30 14:20출(50분 휴식)
좌로 U턴 하듯이 나가면 좋은 그길은 좌쪽으로 내려가버리고
우쪽 능선길로 잠간 나가면 다시 좋은 4급길이 다시 생긴다
370, 7
십자안부 : 14:45
이제부터는 졸면서 가는 길이라
진행은 자꾸 멀고먼 나라가 된다
450봉(6.8) : 14:55 15:20(25분 잠잠)
국가지점번호판을 달고 있는 철탑 지나
360안부(7.4) : 15:40
“합천434 1981재설” 삼각점이 있는
두루뭉술한 416.5둔덕
7.8
15:50
살그머니 내려갔다가 오르면 영진지도상 430봉
오록스지도상420봉으로 오르면서 지독한 난내가 바람을 업고 달려와
코끝을 간지럽히다가
정상으로 올라서면서 눈앞으로 가득 들어오는
불에타 검게 그을리고 타버린 몸뚱아리를 쓰러트리지도 못하고
오로지 서서 감내하고 있는 수많은 낙락장송과 참나무등걸들
8
구실재(420봉 불탄곳 시작) : 16:00 16:05출(5분 휴)
이제부터 눈에 보이는 곳은 모조리 불타버린 산야를
바람결에 난내만 맡으며 콧속이 얼굴이 까매지는 아픔을 딛고
모조리 시껌둥이라 잡을 곳 하나 없는 그런 능선을 오르내린다
대체적으로 한없이 내려가며
철탑지나 : 16:25
불난곳도 끝나고
눈앞으로 초록세상을 다시 찾게 되었지만
난내는 여전히 바람결에 실어온다
창고같은 민가가 한 채 보이기 시작하고
환영의 개소리가 작열한다
커다란 창고 앞으로 내려가면
개집이 부셔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고
좌쪽 내안계로 내려가는 도로와 앞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포장도로고
고개를 넘어가는 도로는 비포장이지만
그 민가 지저분한 커다란 창고 건물이 있어
문은 굳게 닫혀있어 통행이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지 않는다는 미명하에
정부에서 만든 임도를 점유하고 통행을 못하게 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행위다
설사 그 도로가 사유지일지라도 공도로 공사를 정부가 해놓았다면은
그 용도는 당연히 공도로서 기능을 해야하는 것이다
170 9.5
내안계고개 포장도로 십자안부 : 16:30
무려1.5km를 걸리적거릴 것이 없이 노출된 능선이라
빨리도 내려와 30분 정도 걸린 광활한 지역이
모조리 타버린 불탄지역이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부터 또 졸립기 시작하니
가다 졸다 자다를 반복하며 시간만 물쓰듯이 하며 지나간 곳이라
결국 밤중에 고생만 엄청나게 하고
담날 산행도 못하고 150만원짜리 헨드폰만 새로 구입하게 만들고
좌우지간 엄청나게 고생만 시키게 되는 실머리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능선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 약100M 정도 오르다가
좌쪽 산으로 올라가는 좋은 4급길이 보이면 그리로 오르다가
너무 졸려 앉았다가 25분을 자고 일어난다
(25분 잠잠)
숨이 턱에 차도록 급경사를 올라쳐
230봉(9.7) : 17:05
잔솔숲 내려가며
(15분 잠잠)
ㅜ자능으로 올라서면 철탑이 있고 : 17:30
좌로 가면 서산리로 가는 길이고
나는 우로 남쪽으로 오른다
판독불능 삼각점이 있는 257봉
10.5
서산 : 17:35
한없이 내려가 190안부(10.8) : 17:45 17:55출(10분 잠잠)
가시풀 무성한 곳에 노란 물탱크가 있는 220봉에서
우쪽으로 돌아서 망가진 전기선 울타리를 따라서
좋은 경운기길을 내려가면
아뿔사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뒤돌아 다시 노란 물탱크가 있는 곳에서
물탱크를 지나지 말고 우로 풀무성한 곳으로 돌아나가면
그곳도 다시 망가진 경운기길이 계속된다
10.9
220봉 노란 물탱크 : 18:00 18:10출(10분 헤맴)
한없이 일직선으로 경운기길을 내려간
130, 11.7
십자안부 : 18:30 18:55출발(25분 잠잠)
거대한 병풍바위를 만나면 우쪽 끝에서 오르며
철탑지나
창원황용우 밀양박씨 망가진 합장묘가 있는
12.1
207봉 : 19:05
170안부 : 19:10
둔덕 넘어 180안부 : 19:20
거대한 암봉을 좌쪽으로 오르는데
좋던 길은 점점 희미해지다가 길 흔적으로 바뀌면서
급경사 벼랑을 사면치기로 지나가는데
안전시설이 하나도 없고 잡을 것도 별로 없어 상당히 위험하다
위로 쳐다보이는 곳이 훤해지는 곳에서
바로 그리로 급경사를 기어서 오르면
거대암봉을 지난 능선에 이른다
12.4
거대암봉 204.8봉 : 19:30
드디어 용주면과 합천읍의 경계를 벗어나
합천읍의 최남단 산줄기를 따른다
150안부 : 19:35
삼각점은 안보이고
커다란 지적삼각점 안내판만 있는
12.6
180봉 : 19:40
한없이 시나브로 내림짓을 하다
폐무덤을 지나
도로 절개지 절벽을 만나면 우로 지형을 잘 판단하여 내려가
1차선 포장도로에 이른다
길건너 절개지 절벽이라 올라붙을수 있는 곳이 안보인다
그래서 좌로 고개를 살짝 넘어가면서
붙을수 있는 곳을 꼬나보지만 결국 붙을수 있는 곳을 발견 못하고
농자재창고 같은 조그만 건물이 있는 곳에서
퍼질러 앉아 마지막 힘을 보충한다
60, 13.6
도로고개 : 20:10 20:35출(25분 휴)
여기서 고개를 완전히 넘어가서
능선 좌쪽 사면으로 난 도로따라 합천여중고로 갔으면
아무런 사단이 나지 않았을텐데
나는 올라가는 길이 경운기길이고 야산줄기가 이어지며
그끝에는 합천공설운동장이 있으니
경험쪽으로 보아 길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오른다
잘관리된 묘지에서 길은 없어지고
적당히 키를 넘는 가시풀을 헤치며 올라가는데
여기저기 묘지천지라 아마도 아직 추석 전이라
각종 가시 풀들이 자라 그런 모습이 된 것 같다
아무튼 밤이 되었고
뒤돌아본 산꼭대기 나무 끝에 걸린 하얀 초승달과
그 밑에 보석처럼 달린 하얗게 반짝거리는 금성의 자태가
한폭의 그림이다
80봉 : 20:40 20:50출(5분 휴)
하여간 죽을 맛이며 밤이 되었고
도대체가 적당히 가다간 능선을 벗어나고를 반복한다
낮같았으면 그런일이 분명 없었을텐데
밤이라 지도고 지형이고를 정확히 볼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능선으로는 갈수 없으니
사람이 갈수 있는 곳으로 가다가 보면
능선을 놓치고 엉뚱한 곳에서 가시 잡목과 사투를 벌이다보니
우쪽으로 자동차들이 달리고 있는
4차선 드너른 도로가 내려다보이니
공설운동장이고 뭐고간에 무조건 내려가 도로를 따르기로 한다
아마도 황강변을 달리는 15번군도길이 아닐까 생각된다
공설운동장과 이어진 능선인데
이런 가시밀림일 줄이야 상상이나 했으리요
처음에는 풀숲 묘를 이어서 내려가다가
가시나무 밀림이 시작되면서 사람이 서서는 지나갈수 없게 되었다
빤히도로는 내려다보이는데 가서 보면 천길만길 낭떠러지라
어떻게 내려갈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라
앉거나 무릎을 꿇거나 엎드려서 지나가기라도 하면 좋지만
가시에 모자고 옷이고 배낭이고 잡아 끄는데
살이 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다보니 갇혀서 옴짝달싹도 못하고
제자리만 맴도는 것도 도로절개지로 추락할수 있으니 엄청나게 조심스럽다
결국 마지막에는 몇m 되는 곳을
풀이나 잡목을 잡고서 미끄러지듯 내려서니
도로변 너른측구수로라 그것을 넘어서 도로로 가는 것도 어렵다
다리고 팔이고 있는 힘을 다써서 버티고 서있기가 어려워서 그렇다
천신만고 끝에 그 수로를 건너 도로변에 이르러
쓸어져서 한참을 숨을 고르다 일어나
그동안 지나온 궤적과 시간을 알아보기 위해
헨드폰을 열어보려고 했더니
어렵셔 헨드폰 지갑만 있고 본체만 빠져서 어디론가 없어져 버렸다
3년도 못쓴 헨드폰인데 이럴수도 있는 것인가
나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쓰고 다니던 다촛점안경도 어디선가 빠져 달아나버렸다
안에 들어있는 자료는 돈으로 따질수는 없는 일이고
기계가격으로만 따져도 헨드폰 일백만원, 안경 60만원
합이 160만원이 날아가버렸다
내려온 곳을 역으로 올라가며 찾아보아야하나
길없는 가시밭길을 지나온 궤적을
보지 않고 더듬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여관방 가서 편하게 잔다는 것은 더욱더 못할 짓이다
그래 하여튼 역으로
수색 해보는대로 한번 해보기나 하자고 마음을 다잡고 올라가야하는데
미끄러져 내려온 곳이라 올라갈수가 없다
붙잡을 곳도 마땅치 않아 한발 올려다놓으면 곧 바로 미끄러져버리고
수도 없이 반복하다가 어찌 어찌하다가 보니 올라붙었고
또 똑같은 자세로 오르다보니 내가 마시던 사이다병도 하나 떨어져 있어
내가 내려온 곳을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지만
그 다음부터 같은 루트라는 것을 누가 장담하리요
이후 그 근방을 샅샅이 뒤지며 밤을 세웠지만
결국 그림자도 찾지 못하고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가서
아침이 되고 말았다
그과정에서 정확한 능선은 그런대로 진행할만 했고
공설운동장 실내탁구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좋은 산책로이며
방형납작돌을 포설한 길도 나오고 목책난간줄도 나오고
철제난간철계단길도 나오고 이정목에 산책로길이라고 하기도 한다
또 한군데는 아마도 무슨 대형 납골당 건물 앞으로도 내려간 것 같다
암튼 그런 공설운동장 주변으로 내려가는 것이 마루금이며
빙둘러 도로가 나있어 아무쪽이나 도로따라가도 되지만
나는 우쪽 15번군도를 따라간다
70, 14.2
공설운동장 옆 도로 : 21:00 다음날 아침 6시출발
헨드폰 찾는다고 헤맨시간 약9시간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판단이었다
도면상으로 전부 도시화가 진행이 되어
어디가 능선인지 알길이 없게 되어 그리 판단을 한 것이지만
좌쪽 도로따라가는 것이 도시화가 되기전 마루금이라
시내 도로중 제일 높은 곳으로 지나가면 맞는 길이다
참고도면 참조
도로를 관통해 33번국도 4차선도로에 이르면
도로를 가로질러 거대한 성문이 있는데
대야성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50, 15
33번국도 대야성문고개 : 6:20
앞으로 올라가는 90봉과 95봉 봉우리 2개는
옛날부터 합천을 지켜온 대야성이라는 성곽안이다
전쟁을 하게 되면 군민들 전부
이 산성안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전쟁을 한 것이다
지금부터 대야성 옆으로 나있는 1차선 도로를 따라 오른다
옛날부터 신라와 백제가 서로 영토싸움을 하던 곳이 합천 대야성이다
이런 중요한 역사유적지에 설명판 안내판 하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이해를 할수가 없는 황당한 일이다
드너른 공터에
장의자 운동기구들이 있어 쉬어가기좋은
15.3
90봉 정상이다 : 6:30
드너른 1급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
70안부에 이르면 우쪽 황강변으로 내려가는 목조바닥계단길이 있고
커다란 전망대가 있으나 나무들이 자라 조망은 꽝이다
ㅏ자안부 : 6:35
돌계단 나무계단 등으로 오르면
공터에 평상 운동기구 장의자등이 있는
95봉 정상으로 대야성산 정상이다
그런데 왜 좋은 역사적인 이름을 놔두고
어떤 봉따먹기님 표시기에
대한민국에서 제일 흔한 매봉산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다 무시한다
95 15.5
대야성산 : 6:40
거의 다 내려가서 밤새도록 찌든 옷가지를 다 벗고
뽀송뽀송한 넘으로 다 갈아입고 나니
가시덤불 속에서 밤을 세운 혹독한 고문속에서
그래도 살아 남아 이렇게 자투리남은 구간이나마 마무리를 짓고
뒷정리를 하고 있으니
사람이란 것이 살아있으면 아름답다는 것을 또 한번 더 느낀다
(15분 뒷정리)
4차선 도로변에 이르면
등산로 입구에 금연공원안내판이 하나 서있다
30 15.8
함벽루 인근 도로 : 7:00
여기서부터 시내를 관통해 합천군청을 지나
논두렁 길로 진행해
24번국도를 만나고(30, 17.2) : 7:20
인덕산이 발원지인 합천천이 황강을 만나는 곳까지
30, 17.6
약1.8km는 밤새도록 헨드폰 찾으러 헤매다녔던 것으로
한 것으로 간주하고 완주한 것으로 기록한다
합천천 황강 합수점 : 7:30
그후
걸어서 합천시장이 있는 합천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
헨드폰가게에서 지난하게 먼곳에서 최신헨드폰을 새로 구입한다
ㄴㄱㄹ사진 때문에 전에 쓰던 512기가바이트 용량으로 달라고 했더니
그것은 지금 기계가 없고 대구에서 가져와야한다며
가격도 150만원이란다
그러면 SNS에서 허구헌날 최신형S23 3만원이라고 해대는 광고에 나오는
그 S23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3년짜리 할부로 사는데 ㄴㄱㄹ사용료만 10만원 이상씩 나올 판이니
그것보다 적은 260기가바이트짜리로 하면
여기 기계가 있으니 즉석에서 해드리면 된다고
아무리 꼬셔도 사진 때문에 용량이 부족할것에 대비해 꼭 필요하다며
내 의사를 밝히니 무려 3시간을 기다려야할 것 같단다
밖에 나가서 터미널에 가 시간표를 보니
서울가는 것이 아침7시 11시 저녁5시 그렇게 하루 3번밖에 없다
이미 시간은 10시는 넘었고
11시는 시간상 탈수 없을 것 같고
천상 저녁5시버스를 탈 수밖에 없으니
그 긴긴 시간을 기다릴수는 없는지라
대구로 이동하여 KTX를 타는 것이 순리일 것 같아
아예 대구의 이산님을 만나 이산경표를 깔아 달라고 해야할 것 같다
오늘이 5일장이 서는 날이라
시장과 터미널 일대 큰길이고 골목길이고 모조리 장이 섰는데
ㅎㅎ참외 한가마가 5천냥리하 탐이나 죽겠지만
그걸 무슨수로 집까지 이동을 하냐
하여간 과일값이 서울의 1/3도 안되지만 그림의 떡이다
빌빌 거리며 몇바퀴 돌다가 그래도 국수는 넘어갈 것 같아
시장안 국수전문집으로 가 잔치국수를 시켰다
그런데 양은 보통 서울에서 시켜먹는 양의 3배는 되는 것 같은데
고명이 별루고 국물도 별루고 거기다가 참기름까지 쳐나오니
그걸 무슨수로 다 먹느냐
더구나 밤새도록 가시구덩이에서 난리를 치는 바람에
온몸의 진이 다빠져 운신하기도 힘들고
역류는 더욱더 심해져 1시간 이상 노력은 했지만
몇젓가락 먹지 못하고 나오고 말았다
결국은 갈곳을 잃고 다시 헨폰가게로 가
탁자에 엎드려 졸고 있다가
만들어진 헨폰을 가지고 대구로 갔으나
전화번호를 다 잃어버렸으니 방법도 없고
마눌이 알고 있는 모스님에게 전화해 이산님을 연결해 만나기로 하고
예정한대로 15시30분 정확하게 동대구역 먹자골목에 도착했다
오래간만에 막창집에 들어가 기다리니
부인이 먼저 오고 주차를 하고 나중에 이산님과 합류하여
J3시산제때 보고 몇 달만에 다시 반갑게 만나
산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시간은 화살처럼 달아나 버렸다
모든 앱이 다 사라지는 바람에 열차표 예약도 못한다고 했더니
모스님이 딸래미와 어딜 가다가 대신 예약해
나에게로 보내주어 한시름은 놓았다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져 KTX를 타고 서울역에서 내려
전철을 갈아타고 집에 도착해도 아직도 오늘이라
좋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도시일 경우다
합천에서 서울 한번 가려운 보통 문제가 아닐수 없다
집에 도착해서도 평소때 같으면
국수나 자장면 끓여서 하산주 한잔 더하고 자는 것이 보통인데
샤워만 하고 진드기 수색작업을 마친후에
그냥 드러누워버렸다
너무나 힘든 이틀간의 여정이었지만
결국 답사는 단맥 1개만 했을뿐이고
나머지는 헨드폰을 분실하는 바람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단맥 1개 답사하고 난 후유증으로
새안경구입 60만원
새헨드폰구입 150만원
차비등 각종경비 30만원
앞으로 오록스지도 다운 등 헨드폰 정상화까지 들어가는
부대경비가 60만원 정도 예상이 되므로
도합 300만원이 들어갈 산줄기라
아마도 최악의 답사기록으로 남을 것 같다
이 합천은 남원 운봉 등지에서
완만한 고개 하나만 넘어오면 들판을 달려 도착할수 있는 곳에 위치하여
옛날부터 백제와 신라(가야)의 주요 기지 역할을 하던 곳이다
바로 이 합천 대야성전투가
백제와 신라의 명운을 좌우하게 되는데
급기야는 만고의 망나니 김품석과 만고의 역적 김춘추가
나라를 들어 당나라에게 진상하고
백제와 고구려의 드너른 땅을 잃어 만년을 이어오던 대륙의 나라가
지금의 남북한으로 쪼그라들게한 단초를 제공하게 되었으니
천추에 한이 새겨질 동네라 아니할수 없는 곳인데
그런 곳에서 나까지 그런꼴을 당했으니
이게 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석연치 아니한가
참고로 내가 년전에 써놓은
“#삼국통일에 대한 경수생각”이라는 글이 있는데
바로 이 합천 대야성전투에 얽힌 이야기라
여기 전문을 그대로 옮기니 참고 하시기 바란다
#삼국통일에 대한 경수 생각
이글은 내가 읽고 배운 역사에 대하여
역사학자가 아니라서 그 진위를 증명할 길은 없지만
말은 하고 싶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알고 싶고
그래서 느낀 생각을 서툰 글로 쓴 글이라
논쟁을 할수 있는 실력이 되지 못한다
믿고 안믿고는 독자들의 선택일 뿐이다
혹자는 까마득한 상고적이야기라 진위를 알수 없으며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일제가 날조한 역사 등을 들먹이며
역사서에 기록된 이야기만 믿을수 있다고 하거나
대부분의 국토를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흡사 삼국통일이라도 되는양 역사를 외곡하고 찬양하는 등
우리 민족의 뿌리를 부정하는 일이 오래전부터 자주 있어온 일이다
아래글은 페북의 고재형님의 글을 인용하여
썼음을 밝힌다
신라말 화랑출신의 장수로 김품석이란 이가
변방의 싸움에서 승리를 하면서
어울리지않게 지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인
지금의 합천땅 대야성의 성주가 되었다
그는 장인이 김춘추였으며 외삼촌이 김유신이었다
졸지에 어울리지 않게 높은 벼슬을 받은 그는 교만해져서
주색잡기로 세월을 보내다가
검일이라는 부하직원 부인을 강제로 취하고 만다
이에 분개한 검일은 몰래 백제에 투항하였고
돌아온 그는 식량창고에 불을 지르고
성문을 열어 백제군을 맞아들여 대승을 거둔 백제는
김품석부부를 처형했고 시체를 사비성으로 끌고갔다
이에 딸을 잃자 이성을 잃은 김춘추는
백제와의 복수의 전쟁을 치루지만
의자왕의 전술을 당해내지 못하자
고구려 연개소문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간신히 목숨만 살아왔고
섬나라 왜구에게까지 손을 벌렸으나
거절당했으며
마지막으로 당태종에게 달려가 아뢰는데
본인은 신라시조 김알지의 후손으로서
본시 중국의 투호를 지낸 아무개의 후손이라고
민족까지 바꾸어가며
사정사정하여 나당연합군이 결성되기에 이른다
그는 이렇게 지금까지 없었던 이민족의 힘으로
우리 민족사의 겨레의 민족임을 부인하고
외세를 끌어들여 사사로운 복수를 하는데 사용하여
백제 고구려 등 거의 대부분의 국토를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위화도 구테타시 명을 끌어들인 결과로 성리학이 성행하여
조왜전쟁과 조호전쟁이 발발하여 나라가 초토화 되었고
동학농민혁명시 일본을 끌어들인 결과로
나라가 망하고 일제식민시대가 도래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딸이 처형을 당했을시
왜 그 사위의 잘못됨을 알려고 하지 않았는지
알았어도 그리했다면 과연 올바른 판단력을 갖춘
왕이 될 자질을 갖춘 인물이었는지
김춘추를 삼국통일의 초석을 마련한 위대한 임금이었다는
역사적인 평가를 다시 한번 되새겨 봐야하지 않을가요
이때부터 우리 민족은 티벳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등
온세상으로 도망쳐 숨어살며 이민족화해서
지금에 이른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조금만이라도 관계가 된다면
우리민족으로 인정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금나라도 청나라도 우리역사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를 역적이라고 하며
어디까지를 충신이라 하는가
#[가야]합천대야성단맥종주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