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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 시 85:1-13, 빌 1:27-30
올해 추석에는 태풍 올리와의 영향으로 제주도 인근 섬인 우도에 해일이 일어나 온 섬에 바닷물이 넘침으롷로 하여 농작물이 다 소금기로 말미암아 말라죽었다. 이를 보고 한숨을 쉬는 농민의 모습을 TV에서 볼 수 있었다. 단 한번의 태풍으로 이런 지경인데 몇 년째 계속되는 가뭄과 홍수로 인한 북한의 실정은 어떠하겠나? 말로는 실감이 안가고 일제시대와 6.25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때를 생각해보면 북한의 모습이 피부로 와 닿을 것이다. 북한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고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먹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의약품마저 동이난 상태이다.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가장 필수적이랄 수 있는 머큐롬이나 붕대도 없지만 약솜은 3번을 사용한다고 한다. 뜻있는 나라들이 돕는다고 하지만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이다. 그 정도로 심하다는 말이다. 지금은 추석이 지났지만 태풍이 또 불어올지 알 수 없다. 매년은 아니지만 대체로 가을에 한번씩은 태풍이 있었다. 다행이 우리나라를 비켜갔지만, 추석 때의 태풍으로 많은 농작물들이 피해를 입었다. 논은 벼멸구로 피해를 입은데다가 이번 태풍으로 많이 쓰러지기까지 했다. 이렇게 비는 적게 와도 화를 끼치고, 많이 와도 화를 끼친다. 옛날부터 가뭄과 홍수는 인간의 양식과 안전을 위협하는 두렵고도 떨리는 재앙이었다. 그래서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언약의 무지개’를 반가워 했으며, 갈멜산의 엘리야는 ‘지중해의 조각구름에서 들리는 큰 비소리’를 기뻐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우리가 읽은 시 85편은 바벨로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흉년과 궁핍에 시달릴 때 쓰여진 시이다. 그들은 먼 이방의 유배지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구원의 시대가 고작 이런 것인가 하는 슬픈 현실을 아쉬워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회의와 고뇌 속에서 다음과 같이 묻고 있다.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진노하시겠나이까?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그러나 그들은 아주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이 마침내 이스라엘에게 화평을, 가나안 땅에 영광을 주실 것을 믿고 바라본다. 이스라엘 자손은 이 시편을 통하여 그들의 구원이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 있음을 새롭게 확인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편은 재앙을 감사로 바꾼 소명의 노래로 마감한다. 이제 올해도 추수철이 다가온다. 용담댐 수몰로 농사는 별로 짓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고라 자손의 시로 전승되어온 이 백성들이 흉년과 궁핍 속에서도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를 섬기며 그에게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이런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들에게 감사가 흉년이 되는 영적인 보리고개가 있어서는 안되겠다.
1. 먼저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식을 주신다.
시 85:12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여기에서 ‘좋은 것’의 히브리어 ‘핫토브’는 비를 가리킨다. 이 시편과 같은 말씀은 신명기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28:12절상에서는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라고 되어 있다. 가나안 땅에는 자주 흉년이 들었다. 그래서 차세기에는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두 기근을 겪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님은 하나님도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골고루 내리신다고 하시지 않았나? 하나님이 가뭄이 들게 하시면 땅은 산물을 낼 수 없고 사람들은 양식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땅의 산물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80년대 후반의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한 10년은 된 이야기이다. 미국의 중서부에서 시작되었던 가뭄이 전세계에 식량위기의 공포를 안겨 주었다. 그때 우리나라 시장에서도 밀가루의 사재기와 값의 폭등이 있었다. 이뿐 아니라 물엿은 43%, 전분은 39%나 값이 크게 뛰어 올랐다. 당시 54년 만의 한발을 겪었던 미국에서는 섭씨 40도를 웃도는 폭염이 두달이나 계속되었다. 이로 인해 땅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고 농부들은 뜨겁게 달아오른 밭에 들어갈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하천이 하얗게 말라붙자 목이 타는 소와 말들이 선인장의 수액을 빨고 있는 모습이 TV에 뉴스거리로 나오기도 했다. 그 가뭄으로 산불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콜로라도의 강물이 크게 줄어들어 LA의 한인들까지 식수난으로 무척 고생을 했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이 비를 주셔야 인간은 양식을 얻는다. 시 85편의 좋은 것인 ‘핫토브’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조선의 태조 임금도 이스라엘의 아합왕도 비를 내리지는 못했다. 단비는 구약의 시편에서도, 신약의 복음서에서도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선물이다.
미국은 으뜸가는 과학을 자랑하는 나라이다. 그러나 저 아메리카인들도 다급할 때는 ‘도도라’라는 기우제를 드린다. 한 무리의 나체 소녀들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꽃과 풀로 장식하고 얼굴에는 녹색 베일을 쓰고서 춤을 추며 마을은 돈다. 그때 집집에서 여자들이 나와 이 ‘도도라 소녀들’에게 물을 뿌리며 ‘비구름이여, 보리와 포도와 옥수수를 이같이 적셔다오’라고 하는 소원을 노래하며 그들과 함께 어울린다. 우리나라 신라 때의 기우가에는 ‘도룡뇽아, 도룡뇽아, 구름을 일구고 이슬을 토하여 비를 내리게 하라’라고 했다. 그러나 비는 도도라의 주술이나 도룡뇽의 신통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곡식을 키우는 비는 엘리야의 하나님이 내리시며, 풍성한 양식은 요셉의 하나님이 거두게 하신다. 그해 미국의 곡창이 불볕으로 타기 시작하자, 뉴스위크지에서는 ‘희망이 먼지로 변할 때’라는 글을 싣고 ‘현대 기술이 조롱을 당하고 있다’라고 적었다. 하나님이 돕지 않으면 사람의 기술은 쉽게 녹이 슬고 만다.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으면 인간의 희망은 언제나 먼지로 변한다. 세상의 기근은 베들레헴의 나오미처럼 모압 평야로 피난을 간다고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다. 호주에서는 한때 체중과다의 뚱보(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한)들이 살을 빼려고 걷기운동에 나서고, 거기서 모은 돈으로 아프리카인들의 굶주림을 돕는다고 했다. 이는 물론 선한 일이지만 그것으로 검은 대륙의 양식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가 오늘 예배찬송으로 톰슨이 작사 작곡한 찬송가 93장을 불렀는데 찬송 가사 중에 ‘햇빛과 비를 주시니 추수할 곡식 많도다. 귀한 열매 주시는 이 주 예수’ 좋은 것을 주시는 이는 언제나 하나님이시다. 양식은 그것이 신토불이든, 캘리포니아산 쌀이든 밀이든, 중국산 곡식이든 어느 것이든지 하나님이 주신다. 여러분은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올해도 지금까지 주리지 않고 먹고 마실 수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셨기 때문이다. 올해 우리가 심은 것이 별로 없지만 내년 추수 때까지도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주실줄 믿고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 다음으로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건강을 주신다.
시 103:5절을 보면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하였다. 여기서의 좋은 것은 건강이다. 이 앞의 3-4절상에서는 ‘그가...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라고 노래한다. 우리 시대의 의학이 홍역과 처연두와 학질을 퇴치했다고 하나 그보다 몇배나 더 위험한 심장마비와 암과 에이즈와 같은 괴질에 인간은 떨고 있다. 아직 폐결핵 같은 것도 완전히 못고치고 있다. 질병은 사람들의 가장 오랜 원수요, 피할 수 없는 천적이다. 그래서 남왕국 히스기야왕도 눈물을 흘렸고, 갈릴리 나인성의 과부도 울었다. 심장마비 또한 무서운 것이다. 몇 년 전 전주중앙교회에서 교인 체육대회를 하다가 줄다리기를 했는데 제가 잘아는 여집사님 한분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져서 돌아가셨다. 또 전주성광교회 남자집사님도 아침에 화장실에서 볼일 보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돌아가셨다. 이렇듯이 질병은 예고도 인정도 없다. 때없이 찾아와서 인간의 생명을 앗아간다.
우리나라는 교통사고와 산재로 죽는 자가 세계 1위라고 한다. 서울거리의 공기오염도와 지하상가, 지하철의 오염도는 표준치를 넘어 매우 치명적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서울에 가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머리가 띵한 것을 서울을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88년 서울올림픽을 할 때는 외꾸의 손님들이 안올까봐서 그 오염농도의 수치를 비밀에 붙이기까지 했다. 어쨌든 지금은 차가 더 많아져서 어떻게 숨을 쉬고 살아가는지 걱정이 된다. 또한 건강을 해치는 유해식품의 범람은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체에 해롭다고 판정을 받은 수입금지된 약품들, 식품들을 몰래 들여와 파는 악덕기업인들이 있다. 양식한 장어를 자연산처럼 복부에 노란물을 들여 팔았는데 이 노란 물감이 암을 유발한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가 매일 먹는 식품에도 해로운 물질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다. 음식점에서 사먹으면서도 께름직한 때도 많다. 세상이 이쯤 더러워지고 또 위태로워졌는데 왜 온 세상이 해롭다는 것을 다 아는데도 흡연인구가 늘고, 히로뽕 대마초 코카인 등 마약류까지 유행하는지 모를 일이다. 요즘 보건복지부 발표로는 고3 남학생의 경우 45% 이상이 담배를 피운다고 한다. 모두 제명대로 살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나선 사랍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담배는 피우는 사람보다 옆에 있는 사람이 더 해롭다.
지난 85년에 남극 상공의 오존층에 구멍이 뚤려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지금 그것은 미국의 국토 넓이만큼이나 커졌다. 봄철에는 극지의 오존이 50%나 줄어든다는 것도 관찰되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문명사회가 사용하고 있는 각종 공업용 가스 때문이라고 한다. 오존의 감소는 태양의 자외선의 노출을 크게 해서 인체의 유전자와 단백질을 파괴하고 바닷속의 프랑크톤까지 결단낸다는 것이다. 또 그것은 피부암을 일으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런 위험천만한 세상에서 우리가 아직 건강을 누리고 살고 있다면 그것은 기적과 같은 하나님의 은헤이다. 우리나라도 서울의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려면 몇주일씩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사상팔상진단법으로 체질을 진단해주는 이명복 박사에게 진찰을 받으려면 1년반 이상을 기다려야 차레가 온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 지구는 그 옛날 베데스다 못가의 행각처럼 병자들로 우글거리고 있다. 그런데 여러분이 건강한 몸을 지니고 있다면 이것이 어찌 적은 선물이겠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이시다. 그는 우리의 몸에 건강을 주시며 새힘을 얻게 하신다. 골수를 윤택하게 하시는 건강의 축복이 끊어지면 누구든지 쓰러진다. 이제 여러분은 독수리같이 강인한 건강의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라. 무릇 감사하는 자들마다 더욱 만족한 삶을 누리는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3. 마지막으로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주님이시다.
시 107:9절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도대체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명에 이르게하는 진리이며 그에 대한 믿음이다. 인간은 만물중에 홀로 영혼의 갈증을 지니고 산다. 그래서 바리새인 니고데모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하늘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듣고자 했다.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자는 야곱의 우물물보다 더 나은 생수를 구했으며, 시몬 베드로는 갈릴리의 어장을 떠나 제자수업에 기꺼이 나섰다.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던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에게도 영혼의 목마름이 있었으며, 이름 모를 유대의 한 부자청년은 예수님 앞에 꿇어앉아 영생의 길을 묻기도 했다. 사람은 저마다 요한3서의 수신자인 가이오처럼 ‘영혼이 잘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현대인은 삶의 공허와 영적인 속박에서 자유를 얻지 못해 허덕이고 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는 탄식은 사도 바울만의 것이 아니다.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도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는 물음을 안고 몸부림친다.
요즘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자살율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해를 거듭할수록 나이가 적어져가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어떤 남학생은 유서에서 ‘기계가 아닌데 기계처럼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나 멍청한가?’라고 했으며, 한 여학생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항변을 남기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부모들의 이혼으로 홀로 떨어져 살아야 했던 한 여학생이 ‘나를 버린 엄마, 아빠가 밉지만 그래도 사랑한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중3년인 남학생도 며칠전 중1년인 동생을 남겨두고 생활고를 비관하며 자살했는지 쓸쓸해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했는지 알 수 없지만 자살했다. 어디 삶의 부조리가 그들만의 것인가? 인간은 한층 더 규격화 되어가고, 사회는 일정한 가치만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의 일그러진 삶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 없이는 우리는 영혼의 자유에 이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귀기울여 들어야 할 말씀은 요 8:32절의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것이다.
참으로 진리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오직 믿음 뿐이다. 실제로 믿음을 가진 자만이 진리를 소유하며 그 축복을 누린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가진 믿음은 찬송가 가사 그대로 ‘금보다 귀한 믿음은 참보배’이다. 믿음은 딤전 4:9절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이지만 또한 살후 3:2절하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라고 사도 바울은 말한다. 그는 또 외치기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은 엡 2:8절하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했다. 그런데 일찍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에서 성도들이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물질문명은 대도시의 고층 건물들처럼 솟구치고 있어도 정신문화는 고대의 유물들처럼 땅쏙 깊이 매몰되고 있다. 삶의 유희는 도시 뒷골목의 디스코텍처럼 광란스러워도, 염세적인 고뇌는 어두운 골목을 벗어나지 못한다. 한때 오스트리아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유럽의 병든 문명이 싫어 멀리 남미 대륙의 브라질의 정글에까지 도망쳤으나 끝내 자살해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믿음이 없다면 단 하루도 견디기 힘든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는지 모른다. 몇 년 전부터 음악치료법이 인기를 끌고 있다. 위장병에는 베토벤의 세레나데를, 고혈압에는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을, 열등감에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을, 그리고 우울증에는 차이코프스키의 우울한 세레나데를 들려주면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믿음의 양약으로만 근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신다. 그는 여러분에게 믿음의 선물을 후히 주어 기갈한 영혼으로 배부름을 얻게 하신다. 어쨌든 성도들은 믿음으로 새상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신다. 이제 여러분은 양식을 주신 하나님ㄲ[감사하라.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이기며 살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 여러분, 성서의 큰 책인 시편의 하나님이 여러분을 먹이시며, 새 힘을 주시고, 또 그 나라에 이르도록 승리하게 하시는 구원의 주님이심을 찬양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1997-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