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노트 49
< 수행 노트는 1996년도부터 미얀마 마하시 명상원의 수행지도 스승과 한국인 수행자들의 수행면담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참고는 수행자를 돕기 위한 묘원의 글입니다. >
질문 : 명상을 하는 중에 책이 보입니다. 그리고 책장이 넘어가며 내용도 볼 수 있었습니다.
답변 : 모는 것이 생각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것이 보인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보이는 즉시 ‘보임’ ‘보임’하고 알아차려야 한다. 그런 뒤에 호흡의 일어남 꺼짐을 알아차려라. 망상이 오래 계속된 것 같다.
< 참고 >
좌선 중에 책이 보이거나 책에 있는 내용도 보인 것은 상상을 한 것입니다. 수행은 없는 것을 상상으로 만들지 않고 현재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이런 모양을 만들지 않고 몸과 마음에 있는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좌선 중에 눈을 사용하지 않으며 상상으로 모양을 만들어서 보지 않습니다.
인간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 중에서 눈을 가장 많이 사용합니다. 그래서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생각을 할 때도 눈으로 영상을 만들어서 보기도 합니다. 좌선 중에 눈을 많이 사용하면 머리가 아플 수 있습니다. 눈을 사용해서 모양을 만들 때는 알아차림이 없고 망상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좌선 중에 표상을 만들었을 때는 표상을 만든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런 뒤에 호흡으로 돌아와 일어남 꺼짐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표상은 잠재의식이 만든 상상입니다. 상상할 때는 상상한 것을 알아차리지 않으면 좋아서 1시간 내내 망상만 하다 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좌선 중에 이따금씩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는가?’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현재로 돌아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 뒤에 주 대상인 호흡을 알아차리면 좋습니다.
2. 질문 : 수행을 하다 회의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수행이 느슨해지고 의욕이 줄어듭니다. 통증이 생기면 지켜보는 힘이 없어 수행을 포기하려는 생각이 듭니다.
답변 : 목숨을 아끼지 말고 수행을 하라.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느낌을 알아차림으로 다스려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단단한 각오를 해야 한다. 수행을 해서 특별한 체험을 하려면 절대 몸과 목숨을 아껴서는 안 된다.
수행을 하는데 4가지 종류의 노력이 있다. 부처님께서도 이렇게 서원을 세우고 수행을 하셨다.
첫째, 이 몸에 살만 남고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내려도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절대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둘째, 이 몸이 힘줄만 남아도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셋째, 이 몸이 뼈만 남고 다른 것이 다 사라져도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넷째, 이 몸의 피와 살이 다 말라 없어져도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우리 수행자도 부처님의 제자라면 이런 마음으로 부처님을 본받아 그 결정심을 내야 한다. 이 수행을 하려면 반드시 결정심을 내야 한다. 먼저 나라고 하는 아상이 무너져야 하므로 영웅심을 가지고 수행을 하지 말아야 한다.
부처님 당시 비구 30분이 어떤 숲속에서 수행을 했다. 낮에는 움막 안에서 수행을 하고 밤에는 집 밖에 나와서 수행을 했다. 왜냐하면 밤에 남들이 보지 않으면 잠을 잘까봐서 그렇게 했다. 전에는 이런 식으로 수행을 했는데 지금 우리도 이런 것을 본받아야 한다. 수행자끼리 모여서 얘기를 하면 수행의 진전이 없다.
이렇게 비구 30분이 수행을 할 때 숲 속에 있는 호랑이가 하루에 한 분씩 비구를 물고 갔다. 어느 보름 날 포살을 하기 위해 모였는데 비구 20분만 모이고 나머지 비구는 모이지 않았다. 서로 엊그제까지 여기저기 자기 옆에서 수행을 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비구들은 다음에는 위험에 처하면 서로 알리자고 하고 헤어졌다. 그런 뒤에 비구 한 분이 호랑이한데 물려갈 때 소리를 질렀다. 그때 다른 비구들은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비구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스님! 끝까지 알아차림을 놓치지 마십시오.”하고 외쳤다. 그 비구는 호랑이가 자기를 먹는 순간 끝까지 자기를 알아차려서 수다원의 도과를 성취했다. 그 전에 물려간 다른 비구 열 분도 소리를 지를 수 있었으나 다른 비구에게 방해가 될까봐서 소리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이런 수행정신을 본받고 있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특히 자기로 인해 다른 수행자가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면서 알아차린 비구는 자기를 뜯어먹을 때의 그 아픔, 그 느낌을 알아차려서 도를 성취했다. 우리의 느낌과 그 분들의 느낌을 비교해보아라. 수행을 할 때 자기의 부주의로 인해 자기는 물론 남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알아차려야 한다. 죽음의 염라대왕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다. 알아차림 한 가지만 그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오직 알아차리는 사람만 그가 어쩌지 못한다. 대강 대강 수행을 해서는 절대 도를 성취하기 어렵다. 이 수행은 깊고 지극한 그리고 신중한 마음으로 법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해야 한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을 때의 느낌과 지금 우리의 느낌을 비교해봐라. 호랑이에게 불려 죽을 때 어떻게 알아차림을 계속할 수 있는가? 그것은 삐띠(pīti, 희열)의 힘이다. 사람이 임종을 할 때 세 가지 징조가 자기에게 보인다. 첫째, 업 중에서 죽을 때의 마음가짐이다. 둘째, 평생 자기가 한 행동 중의 하나가 떠오른다. 셋째, 자기 갈 곳에 대한 미래의 세상이 떠오른다.
임종할 때 누구나 죽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하지만 선업을 쌓은 사람은 천상의 즐거운 영향으로 향해져 있기 때문에 고통을 견딜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삐띠의 강한 힘이라서 목숨이 두렵거나 목숨을 아끼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죽을 때 오직 법에 대한 환희심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알아차리는 마음이 끊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 참고 >
죽을 때의 마음이 다음 생을 결정합니다. 죽을 때 나타나는 표상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살아서 선한 행동을 한 것이 떠오르거나 천상에 태어나는 표상이 떠오르면 죽을 때의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때 강력한 삐띠(pīti, 희열)의 힘이 작용합니다. 죽을 때 심장에 압박이 느껴지는 고통이 있으나 좋은 표상이 떠오르면 현재의 고통은 감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환희심을 가지고 죽을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에는 일곱 가지의 깨달음의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인이 있습니다. 둘째, 법의 고찰에 대한 깨달음의 요인이 있습니다. 셋째, 정진의 깨달음의 요인이 있습니다. 넷째, 희열의 깨달음의 요인이 있습니다. 다섯째, 평안함의 깨달음의 요인이 있습니다. 여섯째,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인이 있습니다. 일곱째, 평등의 깨달음의 요인이 있습니다.
이상의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인이 충족되었을 때 다음 단계에서 도과를 성취하여 열반에 이릅니다. 이상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인 중에 넷째가 삐띠(pīti)인 희열의 깨달음의 요인입니다. 삐띠는 수행 중에 나타나는 희열의 단계인데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희열의 깨달음의 요인인 다섯 가지 삐띠(pīti)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약한 희열로 소름이 끼치거나 닭살이 돋고 온몸에 털이 일어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둘째, 순간적인 희열로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하거나 시원하고 기분이 좋은 느낌입니다.
셋째, 파도 같은 희열로 파도를 탄 듯이 공간을 떠다니는 느낌입니다.
넷째, 들어 올리는 희열로 몸이 공중에 뜨는 느낌이 들거나 실제로 공중부양을 합니다.
다섯째, 퍼지는 희열로 온몸이 완벽하게 스며들 듯이 기쁨이 충만한 느낌입니다.
이상의 삐띠는 수행 중에 희열로 나타나는 정신적 육체적 현상으로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삐띠는 수행 중에 나타나는 단계적 과정의 현상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잘못 오해하면 깨달음으로 알고 한 소식을 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그러면 수행이 퇴보합니다. 삐띠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다음 단계의 지혜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삐띠를 두려워하거나 좋아하지 말아야 합니다. 삐띠를 알아차려서 다음 단계의 지혜가 생기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수행을 할 때 목숨을 건다는 것이 극단적인 수행을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고 불퇴전의 노력을 하라는 뜻입니다. 목숨을 거는 것과 인내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는 목숨을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지 쉽게 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극단적인 수행은 절대 위빠사나 수행이 아닙니다. 극단적인 수행은 지성을 나약하게 하고 자아를 강화하는 이기적인 방법이라 잘못된 수행입니다. 무엇이나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되 물러섬이 없어야 한다는 것과 목숨을 거는 것은 다릅니다. 오직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때만이 무상, 고, 무아의 법을 보아 집착이 끊어진 해탈의 자유를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