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에게 / 정선례
연두에게. 오리 출하하느라 얼마나 바빴니? 아픈 허리는 좀 나아졌나 궁금해. 3월인데도 한낮 기온이 26도까지 올라간 지역이 있다는 기사를 봤어. 지구온난화라는 말이 실감하는 날씨야. 나는 추위를 많이 타지만 겨울을 좋아해. 늘 바쁜 일상에 지쳐서 그런지 축사일외에는 한가한 겨울을 기다리게 돼. 이 시기에 글을 써야지 맘 먹었는데 겨우내 책만 읽었어. 글은 마감이 쓰게 한다더니 숙제가 없으니 글이 안 써지더라고. 해마다 3월에 시작하는 글쓰기 반에 올해도 등록했어. 일주일에 수필 한 편씩 써서 카페에 올려 줌으로 하는 수업 시간에 교수님과 함께 읽지. 우리는 그냥 듣기만 하고 교수님이 문법이나 띄어쓰기 비문을 지적하고 고쳐주신단다. 이번 주 글제는 책상이야.
어렸을 때 우리 집 둥근 스테인리스 밥상은 단순한 밥상이 아니었어.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집에서 내 책상을 가져본 적이 없었거든. 그때 우리 집 밥상은 책상 역할도 했었어. 밥상 재질이 가벼워서 옮기기 쉬워서 그렇게 쓰게 됐지. 학생이 다섯 명인데 밥상은 하나뿐이라,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가끔 다툼도 있었어. 나머지는 방바닥에 배 깔고 숙제를 했지.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주말이나 방학 때 주로 남산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30분 정도 걸어가면 도서관에 도착했지. 늦게 가면 자리가 없어서 친구랑 나는 먼저 가서 책이나 필기도구로 자리를 맡아놨어. 그곳에서 우리는 <빨간 머리 앤>, <데미안> 같은 세계 명작 소설을 주로 읽었어. 그때부터 내 문학적 감성이 생겼다고 할 수 있겠지. 도서관 열람실은 공부하느라 조용했는데, 책상 칸막이 너머로 책장 넘기는 소리만 가끔 들렸어. 그곳의 책상과 의자는 원목으로 네모반듯했지. 그 좋은 환경에서 학과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좋았을 텐데, 세계 명작 소설에 빠져서 공부는 완전히 뒷전이었어.
처음 입사한 곳은 텔레비전 부품을 만드는 전자 회사였어. 내 일은 납을 녹여서 기판에 부품을 연결하는 단순한 일이었지. 낡고 손때 묻은 철제 책상에서 종일 일을 하다 보니까, 오후가 되면 눈이 건조하고 피곤했어. 가끔 사무실에 가면 깨끗한 책상과 고급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직원들이 부러웠어. 사무실 환경이 정말 쾌적했거든. 내 작업 공간이랑 비교가 되니까 더 그랬어. 고개를 숙이고 일해서 어깨가 아프기도 했고. 그래서 이직을 고민하게 됐어. 나는 인내심이 부족해서 그런지 한계를 느꼈던 것 같아. 그 후로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
마침내 내 책상을 갖게 됐어. 면사무소 생활지원계에서 업무 보조 일을 하게 된 거야. 직장생활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내 책상을 가지게 돼서 너무 기뻤어. 작은 책상 위에 달력을 놓고, 빈 책꽂이에 업무 관련 지침서랑 대학노트를 꽂아 놓고 서랍도 열어 먼지를 닦아냈지. 일을 하면서 점점 책상 위에 민원서류랑 이면지 같은 소품들이 쌓였어. 어느 날 친구가 꽃시장에서 빛이 부족해도 잘 자라는 식물이라며 스투키 화분을 선물해줬어. 집보다는 사무실 책상에 두면 더 어울릴 것 같아서 책상 한 켠에 놓았더니, 직원들이 예쁘다고 칭찬해줘서 고마웠어. 이 식물은 한 달에 한 번만 물을 주니까 키우기가 쉽더라. 또 전자파를 흡수한다는 얘기도 들었고. 그래서 일하면서 짬짬이 그 초록 식물을 바라보며 눈의 피로를 잊곤 했어.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결혼하고 취업해서 집을 떠났어. 각자 다른 시간대에 자고, 한 명은 더워야 하고 다른 한 명은 시원해야 해서 진작부터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던 나는 결국 그 방을 차지하게 됐어. 그 방에 있던 큰 아이부터 막내까지 다 쓰던 서랍이 네 개나 달린 자연친화적인 원목 책상이 있어. 네모난 모서리가 긁히고 닳긴 했지만 앞으로 50년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책상 위에는 모니터랑 프린터기도 놓았고, 공간이 남아서 쌓아둔 이면지에 손이 바로 닿을 수 있어서 습작하기에도 편리해. 비오는 날 여기에 앉아서 눈을 감고 쇼팽의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기도 해. 낮에는 밖에서 일하느라 바쁘고, 저녁엔 이 책상에 앉아 글을 써.
첫댓글 도서관 책상에서 선생님 문학적 감성이 자랐네요. 지금은 어떤 책상을 쓰시나요?
급히 쓰느라 완결짓지 못했어요.
고친 글에 이어서 마저 쓰려고 합니다.
글을 읽고 나서 '아직 쓸말이 많을 것 같은데 여기서 끝냈지?' 하며 의아해 했습니다.
완결된 글이 기대됩니다.
네 선생님
미완성 글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