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 일입니다. 입학 후 4번째 이사와 전학을 해야 했던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새로운 집은 주공아파트 103호. 낡은 아파트의 저층은 집안으로 빛이 잘 들지 않습니다. 더운 계절엔 창문앞 화단의 초록잎이 무성해져 특히 어두워지곤 합니다. 103호는 북향에다 단지 내 어린이집을 운영했던 전 세입자가 창문에 처치 곤란한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여두는 바람에 대낮에도 잿빛인 날이 많았습니다. 날씨의 변화를 보기 힘든 이 집을 엄마는 유독 싫어했습니다.
잦은 이사는 빚쟁이를 피하기 위한 도망이었습니다. '최사장'으로 불리던 아빠는 그 직함을 유지하기 위해 5번 사업을 펼쳤다가 접었습니다. 6번째 사업 자금은 아빠의 호통과 거친 손 그리고 엄마의 눈물로부터 마련되었지요. 이때부터 아빠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일이 바빠서 그렇다고 믿고 싶은건지, 우리가 그렇게 믿었으면 하는건지 엄마는 아빠를 두둔했습니다. 집에는 올 수 없지만 저와 동생을 너무 보고싶어 한다고 거듭 말해주면서요. 저는 그 말을 한귀로 흘렸습니다. 아빠가 여자친구를 만나느라 집에 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아빠의 부재는 오히려 반갑기도 했습니다. 문을 닫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쓰고 애써 잠들지 않아도 되니까요.
아빠가 멀어지자 엄마는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다녀온 날은 두툼한 약봉투를 식탁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약봉투는 입구가 여며지지 않을 정도로 겹겹이 쌓여 부풀어 있었습니다. 약이 왜 이렇게 많아? 물으면, 엄마는 잠이 잘 안 와서 매일 이 약의 도움을 받아야 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약의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엄마를 자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만들었습니다. 거실 소파 위에 덮개처럼 널브러진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어느날은 학교를 다녀오겠다고 인사할 때 보았던 엄마의 잠든 자세가 집에 돌아왔는데도 변함이 없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호다닥 검지 손가락을 엄마 코 밑에 대보기도 했습니다. 약은 엄마의 눈을 흐리멍덩하게 만들고 대답이나 행동을 아주 느리게 했습니다. 너무 오래 잠든 것 같아 엄마를 몇 번이고 흔들어 깨우고는 팔이 아프진 않냐, 물 가져다 줄까 물으면 엄마는 기운 없이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징니 때문에 산다며 힘겹게 안아주었습니다. 그 말은 무겁게 제 마음속에 내려앉았습니다. 고함이 없으면 좋을 줄 알았던 집이 막상 적막에 싸이자 불안해졌습니다. 그 즈음 저의 하루는 엄마의 상태와 기분을 살피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엄마의 이상한 버릇을 발견했습니다. 약을 먹을 때 몇 알을 집어 주방의 상부장 윗칸, 컵 속에 모아 두는 것이요. 제 키가 닿지 않는 높이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 곳이 궁금했습니다. 엄마가 병원에 간 틈을 타 식탁 의자에 올라서서 들여다보니 초록색 컵 속에 알약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때 무슨 기분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알약을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집어 변기에 집어넣고 물을 내렸습니다. 엄마가 집을 비우면 가끔 그 일을 반복했습니다.
어느 주말, 동생과 저는 거실의 소파 앞에 앉아 연속으로 방송해주던 만화영화 '이누야샤'에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소파에 힘없이 누워 있던 엄마는 몸을 일으키며 점심을 먹자며 중국집에서 돈까스를 시켰습니다. 인원은 엄마, 동생, 나 세 명이었는데 배달 온 돈까스는 4개였습니다. 그마저도 엄마는 배가 고프지 않다며 저와 동생이 점심과 저녁에 걸쳐서 챙겨 먹으라고 말했습니다. 거실 테이블에 돈까스를 가져다 두고 다시 TV를 틀었습니다. 엄마는 거실이 어수선해 들어가서 잔다며 동생을 잘 챙기라고 말했습니다. 이내 비척비척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무언가 열리는 소리가 난 뒤, 컵 2개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었습니다. 얼핏 초록색 컵을 본 것도 같았습니다. 그날따라 돈까스는 고무 같은 맛이 났고 왠지 목 아래서 신맛이 올라왔습니다. 만화영화를 보다 잠든 동생을 보며 옆에 누워 두 눈을 꼭 감았습니다. 눈을 뜨면 모든 게 해결되어 있기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엄마가 왜 치우지 않고 잤냐며 잔소리해 주지 않을까 하고요. 하지만 쉽사리 잠들 수 없었습니다. 온 신경은 안방 쪽에서 소리가 나진 않는지에 쏠려 있었습니다.
엄마의 알약은 좌표를 찍고 기억 속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시간이 흐르며 계속 변해갑니다. 어린 시절 알약은 꽤 오래 죄책감이었습니다. 내가 뭘 잘못해서 엄마가 살기 싫어졌나, TV 소리가 너무 컸나, 알약을 다 버렸어야 했는데 괜히 망설였나, 엄마가 초록컵을 들고 가는 걸 보았으면서 왜 모른 척했지, 왜 방문을 열지 않았지. 온갖 것에서 자책할 이유를 찾아냈습니다. 내가 무언가 더 했다면 엄마가 덜 아팠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조금 더 자란 후에 알약은 원망으로 바뀌었습니다.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친구는 엄마의 보살핌과 지원을 듬뿍 먹고 만개했는데, 엄마는 엄마면서 강해지려 하지 않고 나와 동생만 남겨두고 도망가려고 했던 사실이 두고두고 제 마음을 시들게 했습니다. 아빠의 몫까지 더해 엄마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내 나이에 엄마는 벌써 6살, 4살의 딸을 길렀을 것이라 생각해 보면, 알약은 두려움으로 변합니다.
이것만 끝내면 해결일 줄 알았던 일이 더 큰 일을 불러오는 것을 겪어보니, 더 잘해낼 자신도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는 일에 치여 막막함과 무력감에 휩싸이는 나날들을 견뎌보니, 엄마는 옆에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상상하기도 고된 일상을 살아냈구나 싶었습니다. 며칠 전 “아이를 언제 낳을 거냐, 엄마도 너를 낳고 철이 들었어.”라고 말하는 엄마를 보며 알약이 떠올랐습니다. 속에서 부글부글 엉켜있는 말이 올라왔습니다. 이내 목 부근에서 턱 하고 걸려 숨이 막히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속내를 꿀떡 삼키고 “생각 없는 거 알잖아~” 하고 실없이 웃고 말았습니다.
‘엄마 그런데 사실 선택이나 선호의 이유가 아니야. 나는 엄마의 자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엄마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자신이 없어. 그리고 엄마를 잃을 수 있다는 기억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자리에 또 누군가 세워두고 싶지 않아.’ 이런 날 것의 마음을 엄마에게는 아마 평생 전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의도]
마음먹지 않아도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지는 기억이 있는 반면, 음각으로 마음에 새겨지는 기억도 있는 것 같습니다. 기억은 고정되어 있는데, 내가 변하니 의미도 변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이 기억의 의미는 계속 변해가겠지요. 미래의 징니가 그때에도 마음이 한덩어리로만 남아있지 않도록 잘 풀어 기록해두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글을 읽으면서 울컥했어요.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집안 속에서 무기력한 어머니와 징니, 동생의 모습이 눈 앞에 선연히 그려졌네요. 오랫동안 남아있었을 알약에 대한 강렬한 기억을 이야기로 풀고 전해주셔서 감사해요!
이런 기억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기죠. 기억을 잘 견디고 우리한테 전해줘서 고마워요.
어린날 징니를 꼬옥 안아주고 싶습니다.어머니의 마음도 징니의 글을 통해 그냥 전달되는 느낌입니다.제가 두 아이의 엄마라서 그럴까요?눈시울을 훔쳤어요.몇 번이고 풀어서 잘 기록두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저도 해봅니다.
자살 충동을 가진 사람과 사는 사람의 불안,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어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더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징니만의 시각과 문체가 매력적이에요. 정말 몰입해서 읽었어요.
죄책감- 원망- 두려움
이후에 온 감정은 징니님의 의도처럼 찰 풀어져서 더 나은 단어이길 바라봅니다. 12살의 징니를 안아주고싶었어요 글 내어주시느라 고생하셨어요
합평시간에는 징니의 두려움에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다시 읽으니 그 두려운 마음을 엄마에게 전할 수 없는 마음이 조금은 이해돼요. 어떤 주제를 담고 있느냐에 따라 문체와 표현을 섬세하게 바꿔쓰는 징니님의 다음 글도 기대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