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정규 규제연구센터 제도연구팀 전문연구원
이혼을 하면 마음이 빈다. 이것은 외로움과 홀가분함이 공존하는 복잡미묘한 것이다. 마음을 다시 채우고 싶지만, 동시에 이제 다시는 결혼 따위 하지 않겠다며 치를 떨기도 하는 것이다. 30대의 연애는 근미래의 결혼에 관한 결정이 도사리고 있다. 이를 알기에 외로워도 선뜻 연애를 시작하기가 어렵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거기엔 이혼남을 누가 좋아하겠냐는 자포자기한 심정과 두 번째 결혼을 했다가 또 이혼하기라도 하면이라는 식은땀 나는 상상도 한몫을 했다.
‘국제 친구 만들기’였던가,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이름의 펜팔 앱을 설치한 것은 이런 걱정에서 벗어나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설령 호감이 일더라도 이건 ‘서울 여자와 부산 남자’ 같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장거리일 테니까 결혼은커녕 연애를 시작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서로의 감정에 책임질 일 없이, 관계의 발전에 대한 우려도 없이 재잘대며 외로움이나 털어내면 될 것이다.
마이크 타이슨이 그랬다. 누구나 얻어터지기 전까지는 그럴듯한 계획을 가졌다고. 유럽의 동쪽 벨라루스에 사는, 숲을 좋아하며 세상을 편견 없이 바라볼 줄 아는 솔직하고 호방한 여성을 알게 되고, 그 대화가 나날이 무르익으면서 나는 초장거리 연 애가 하고 싶어졌다. 서로에게 감정이 생긴다면 그 감정에 책임을 지고 싶었다. 이 관계가 발전하길 바랐다. 결국, 그해 여름 벨라루스로 날아가 동화 같은 숲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고, 친구보다 깊은 사이가 되었다. 외국인 여자친구가 있다는 발표에 주변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 ‘이혼하더니 드디어 정신이 나갔군!’ 같은 반응이었지만, 새해가 지나고 연차가 다시 충전되자마자 이번엔 터키(현 튀르키예)로 날아갔다. 안탈리아의 해변에서 다시 그녀를 만났고 꿈같은 휴가를 보냈다.
그러고 나서 바로 코로나19가 터졌다. 국경이 닫히기 시작했다. 많은 국가들이 관광비자 등 단기비자 발급을 중지했고, 찜찜하게도 뉴스에서는 코로나19로 이별하는 국제 커플들에 관한 기사를 다뤘다. 나는 큰맘 먹고 여자친구에게 한국방문을 위한 어학연수 비자 신청을 제안했는데, 여자친구가 응해주었다. 나와 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더 큰마음을 먹어야 했을 것이다. 그 후 지난해 10월, 여자친구와 혼인신고를 했다. 비록 결혼식은 못 올렸어도 법적으로는 아내, 남편 사이가 된 지 이제 아홉 달이고, 한국에 온 지는 벌써 1년 하고도 넉 달이다. 아내와 나는 서로 다른 국적, 문화, 언어, 성별, 인종, 나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가치관이 비슷하고, 대화도 잘 통하며 싸워본 적도 없다. 아내는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 편견이나 차별 없이 바라본다. 재단하려 들지도 않는다. 자기주장과 개성이 뚜렷한 편이기 때문에 그 조화가 더 신기하고 아름답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부부에게 ‘다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내가 한국에 온 처음 몇 달 동안은 음식에 대한 선호가 나와는 상당히 달랐다. 아내는 매운 음식과 날음식을 편견과 차별 가득히 바라봤다. ‘불’이라는 단어가 붙는 음식들을 매우 재단했다(웃음). 반대로 나는 항상 가장 매운 단계를 고르는 부류인데다 광어, 멍게, 낙지 같은 날음식들도 너무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함께 집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었다. 닭갈비, 주꾸미, 떡볶이, 감자탕…. 평소엔 미처 몰랐는데 의외로 한식은 많이 빨갛다. 게다가 안 빨갛다고 괜찮은 것도 아니었다. 순댓국을 싫어했던 건 나로선 큰 타격이었다. 우리의 외식은 그렇게 몇 가지 메뉴로 압축되고 무한반복됐다. 프라이드치킨, 김밥, 냉면, 돈가스, 갈비탕. 글로 쓰기만 하는데도 지겨운 음식 메뉴들….
우리는 결국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외식보다 가정식을 더 선호하기 시작했다. 사실 아내는 본인이 요리하고 빵 굽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보르시(고기 채소국), 펠미니(만두), 드라니끼(감자전), 골룹치(양배추 찜) 등등 만들 줄 아는 것도 많고 맛도 훌륭하다. 문제는 매운맛이 전혀 없고 날마다 먹기엔 내 입맛에는 조금 느끼한 편이라, 머리로는 ‘감사한 줄 알고 그냥 먹자’였지만 입이 슬슬 괴롭기 시작했다. 왜 느끼한 사워크림이 모든 요리에 들어가는지도 궁금해 아내에게 살짝 물어보니 느끼함을 줄이기 위해 그런 것이라 했다(웃음).
그런데 이것도 한때였다. 아내의 요리는 언제부턴가 변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매운 요리나 날음식 요리를 만들진 않지만, 한국적인 재료나 요리법이 상당히 가미된 퓨전한식을 요리한다. 파프리카 가루와 고춧가루가 8:2 비율로 섞인 혼합 고춧가루도 애용한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당당히 잡곡밥 짓는 일을 담당했는데, 실수로 한 번 죽을 쑨 이후 해고당했다. 냉장고의 김치가 너무 잘 익었다 싶은 시점부터는 아내가 가장 사랑하는 한식인 신김치전 축제가 시작된다. 그 축제는 김치가 모두 동날 때까지 계속된다.
‘다름은 갈등을 유발한다.
갈등은 다름의 인정을 통해 해소된다.
갈등의 해소는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다름은 갈등을 유발한다. 갈등은 다름의 인정을 통해 해소된다. 갈등의 해소는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원고 작성을 요청받은 후부터 열심히 써봤지만, 중간과정이 빈다. 다름의 인정이나 갈등의 해소 단계를 쓰려고 하는데 막막하다. 왜 아내가 한국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더라? 언제부터 나는 고춧가루가 든 음식을 먹게 되었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글을 쓰다 멈추고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여보~! 여보가 어쩌다 한국 음식을 이렇게 자주 만들게 되었는지 혹시 기억나?” 그러자 아내는 잠시 말이 없더니, 이내 갑자기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내가 방금 무얼 잘못 말하기라도 한 건가 생각했다. 내가 당황해서 왜 울려 하냐고 호들갑을 떨자 아내가 입을 열었다. 아내가 한국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은 어느 날 그냥 평소 좋아하던 김밥을 직접 만들어 먹고 싶어서였다고. 그때 내가 맛있다고 칭찬을 해줬고, 그때부터 다른 한국 음식도 만들어보고 싶어졌다고. 그렇게 만든 한국 음식마다 내가 맛있다고 해주니 더 많은 것들을 요리해보고 싶어진 것이 지금에 이른 것이라고. 그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때 그 순간이 아내에게 그렇게 감격스러웠을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더 감동해서 오랫동안 말없이 아내를 꼬~옥 껴안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외식의 지평선을 넓히는 일을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훈제연어라는, 아내에게는 절대 시도 불가능할 것 같았던 공통의 선호 음식을 발견하기도 했다. 나는 점차 아내의 입맛을 닮아가며 예전에 비해 매운 음식을 먹는 빈도가 많이 줄었다. 그리고 그렇게 통각으로부터 안식을 얻은 혀는 느끼함을 줄이기 위해 아내가 얹어주는 사워크림의 신맛을 선명하게 느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