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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권리 / 정여울 / 민음사(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20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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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공부할 권리인가?
1부 인간의 조건 영감의 원천: 진정한 나를 상상하라
용기의 숭고함: 일리아스, 우리 안의 영웅을 찾아서 슬퍼할 권리: 안티고네, 위대한 죽음의 서사시 사랑할 권리: 완벽한 프로메테우스, 불완전한 인간을 사랑하다 인간다운 삶: 소로와 함께 걷는 마음의 오솔길
2부 창조의 불꽃 고독할 자유: 소년은 고독을 통해 어른이 된다 작가의 탄생: 고독할수록 나다워지는 사람들 나약할 권리: 상처를 성찰로 이끄는 구원의 힘 내면의 황금: 당신 안의 멘토, 당신안의 현자를 찾아
3부 인생의 품격 열림과 트임: 아름다움에 눈 뜨다 상처의 인식: 돌이킬 수 없는 상처의 극복 나르시시즘의 역설: 리어 왕, 자기애의 극한까지 걸어가다 작은 공동체: 인간다움을 회복시키는 자아의 확장
4부 마음의 확장 분노할 권리: 우리는 분노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기억과 억압: 콤플렉스 극복의 길은 공동체 회복에 있다 영혼의 대화: 연대를 향한 의지 치유의 공동체: 파괴가 아닌 성숙으로
5부 가치 있는 삶 정의(正義)의 정의(定義): 정의보다 정의감이 필요한 순간들 혁명의 꿈: 무엇이 진짜 문제인가 오늘도 씁니다: 당신의 심장에 가닿기 위해 질문의 시작: 물음표를 들이대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니 전일성의 회복: 가장 아픈 그림자와 춤추다
고통에도 목적이 있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느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돌보지도 않는다.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에서
내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도록 늘 내 등짝을 떠미는 영혼의 바람은 바로 ‘내 안의 또 다른 나’가 아닐까 십습니다. 그건 바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아무리 바쁜 날에도 결코 멈출 수 없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시험도 없고 자격증을 딸 일도 없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고 믿는 나 자신이었습니다.
나를 지켜주는 내 안의 수호천사는 교과서에도 안 나오고 문제집에도 없는, 그렇게 평생 답이 없는 인문학이라는 화두를 짊어지고 세상 모든 것과 목마른 대화를 꿈꾸는 ‘공부하는 나’ 자신이었습니다.(p.7)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으려고 태어나지 않았다.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가리라. 누가 가장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참다운 인간은 집단이 강요하는 대로 살지 않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시민 불복종』에서
1부. 인간의 조건
1.영감의 원천 진정한 나를 상상하라 무의식, 문제 해결의 원천
공부란 ‘과거와 현재의 문제를 깨닫고 미래의 삶을 설계하는 것’ 현실을 바꾸고 싶다면, 상상을 바꾸기. 당신의 생각, 의식, 감정을 바꾸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당신의 무의식과 대화해야 합니다.(p.19)
내 안에 울고 있는 재투성이 소녀-신데렐라 -> 내 진심을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운 아이가 살고 있다. 집을 찾아온 왕자에게 “저 아이는 분명히 당신이 찾는 여인이 아닐 것”이라고 말함. 내 딸은 전혀 특별하지 않고 별 볼일 없는 아이라는 것, 유일하게 기대고 싶었던 육친이 그녀의 존재를 부정. 신데렐라의 속뜻은 ‘부모조차도 그 참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아이’라는 얄궂은 운명이 담겨 있는 것 아닐까?(p.22)
신데렐라 – 내 안에도 여전히 재투성이 소녀, 타인에게 내 진심을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운 아이가 살고 있음. 라푼젤-가족이라는 단단한 울타리 속에 갇혀 지냈던 어린 시절 잠자는 숲속의 공주 – 어느 순간 성장을 멈춰버린 채 내 안에 깊이 칩거하던 사춘기 시절.(p.22)
왕자는 신데렐라가 재투성이일 때는 알아보지 못한다, 그녀의 화려한 외모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신발에 맞는 여자를 찾아야한다는 것도 교조주의적 태도. 재투성이로 둘러싸인 한 여인의 내면을 알아보는 것, 재투성이의 외모 속에 숨겨진 한 인간의 진실을 알아보는 힘이야말로 사랑에 빠진 인간에게 꼭 필요한 영혼의 눈이다.
『신데렐라』는 내게 없는 보물이나 생명수를 찾아 멀리 떠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잿더미에 파묻혀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던 나의 진짜 운명을 되찾는 이야기다. (p.26)
남들이 아무리 자신을 초라하게 볼지라도, 자신의 위대함을 끝내 믿는 인간의 신비를 증언한다. ‘재투성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 묻혀 있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인간의 위엄을 표현하는 동화언어”이고, “자신의 유래를 알지 못하면서도 절실하게 미래를 갈망하는 은밀한 귀족의 굴복하지 않음을 표현하는 암호”다.(p.27)
2.용기의 숭고함 일리아드,
우리 안의 영웅을 찾아서 우정의 놀라운 힘
용기란 무엇인가를 증언하는 이야기. 『일리아드』는 수많은 전쟁 영웅들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커다란 고통에 맞서 저마다 지닌 최고의 모습으로 용기를 끌어내는지, 또 얼마나 비겁하게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도망치려 하는지, 그들이 과연 무엇을 지켜내기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는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이야기.
*아킬레우스(아킬레스 건) : 용기보다는 ‘명예’를 아름다운 여인 브리세이스를 아가멤논에게 빼앗겼다는 이유로 전쟁에 참천하지 않은 토라진 남자였음.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답답한 마음에 아킬레우스의 무장을 입고 출전. 트로이의 영웅 사르페돈을 죽여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트로이의 왕자 용감한 헥토르의 손에 죽고 맘. 아킬레우스가 다시 일어나게 한 것은 전우에 대한 미안함, 가장 소중한 친구를 사지에 몰아넣고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책감.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 결국 헥토르를 죽임.(p.33) 용기, 지극한 사랑의 다른 이름
*파리스 :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처럼 모두의 존경을 받을만한 영웅은 아니지만 뜻밖에 최후의 승자가 됨. 메넬라오스의 부인 헬레네를 유혹해 트로이로 끌고 옴. 온 가족의 골칫덩이, 부적절한 사랑 때문에 결국 트로이전쟁이 일어남.(p.34)
제우스는 아킬레우스를 돌보고, 아프로디테는 파리스를 돌보지만 헥토르는 오직 자신의 힘으로 싸움. 아킬레우스 손에 죽은 헥토르.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명예보다는 사랑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헥토르 시체를 받기위해 왕의 체면까지 버린다. 아들에 대한 절절한 사랑에 무쇠 같은 심장을 가진 아킬레우스를 울림. 무려 쉰 명의 아들을 모조리 전쟁에서 잃은 아버지라니, 프리아모스의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짐.(p.37) ->분노를 내려놓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뜨거운 심장을 가진 진짜 어른이 되는 순간.
트로이의 심장이자 트로이의 가장 쓰라린 아픔이었던 헥토르, 그의 장례식 동안 그 지긋지긋한 전쟁의 불꽃마저 사그라듬. 프로메테우스의 진정한 영웅성-> 제우스의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는 용기를 가졌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할 줄 알면서도 인간에게 어떤 보상도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택한 것은 밑바닥에 깔린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다.(p.70)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간할 수 있는 이성-> 이성의 밑바닥에는 공정함을 향한 감수성이 놓여 있다.(p.73) 개인과 공동체의 정의는 충돌 하는가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불의’앞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결정해야 함. 시민의 책무를 선택한다면 어쩔 수 없이 왕의 명령을 따라야 했지. 하지만 인간의 정의를 선택한다면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들판에 내동댕이쳐진 오빠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조차 빼앗아갈 만한 권력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p.77)
안티고네는 공주로서의 편안한 삶을 누릴 수도 있었지만 테베를 떠나 저주받은 오이디푸스의 길잡이를 자청했고, 이제 오빠의 장례를 몰래 치러줌으로써 죽은 폴리네이케스의 길잡이가 되려 한다. 크레온은 스스로 테베를 정복한 줄 알았겠지요. 하지만 이제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은 채 텅 빈 권력의 주인이 됨으로써 테베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안티고네의 죽음은 단지 한 인간의 사라짐을 넘어 테베의 가장 소중한 가치의 죽음이었으니까요. “우리는 서로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어요.”(p.78)
5.인간다운 삶
소로와 함께 걷는 마음의 오솔길 마루야마 겐지의 호통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되는 시골 생활은 없다. 어딜 가든 삶은 따라온다.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자연의 성깔을 알아야 한다. 고독은 시골에도 따라온다. 외로움 피하려다 골병든다.(p.83)
당신은 진정 홀로서기를 한 사람입니까? 부모에게 의존하고, 학력, 직장, 사회, 국가, 가정, 술, 경제적 번영의 시대에 의존하면서 이럭저럭 수십 년을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사실 당신은 자신에게서,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고 또 도피해 온 것은 아닐까요.-본문내용.(p.84)
고독을 견딜 수 있는가 『월든』에서 소로는 ‘전쟁터로 나가는 것’보다 ‘야생의 은둔’을 택하는 것이 훨씬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이야기했다. “삶을 회피하거나 욕설을 퍼붓지 말자, 삶보다 더 보잘것없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가장 부자일 때 삶은 가장 가난해 보인다. 트집을 잡으려 드는 사람은 천국에 대해서도 흠을 잡는다.”85 시민 불복종의 메시지 헨리 데이비드 소로, 『시민 불복종』 ->궁극적으로 통치하지 않는 정부를 지향. 즉 자유로운 인간들의 자발적인 공동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정부. 시민으로서의 행위에 의문을 제기. 의무로서 ‘인두세’를 내야 했던 소로는 자신이 왜 세금을 내야 하는지 납득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기에 6년 동안 세금을 내지 않아 감옥에 갇힘. 감옥에 있는 동안 어느 때보다 자유로웠다고 고백. “나는 당신들이 억지로 정한 시민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겠다.”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지 시민이나 국민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p.89)
그 어떤 권력의 품에도 기대지 않는 나, 그 어떤 안락함에도 중독되지 않는 나, 오직 햇빛과 바람과 물과 동굴만으로도 우주의 축복에 감사할 줄 알았던 인류의 과거가 잠들어 있다. 야생적 자아. 나 하나의 힘은 결코 작지 않다.(p.93)
2부 창조의 불꽃
1.고독할 자유
1)소년은 자란다, 고독을 통해 -나는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현대인은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양적으로는 엄청난 소통을 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진정한 소통의 결핍을 절감한다.(p.99)
우리 안의 비밀, 슬픔, 상처, 희망을 가꿀 시간을 잃어버림.->‘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그것은 혼자 있어야만 만날 수 있는 내면의 ‘나’를 느끼자. 지그문트 바우만,『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p.101)
괴테- 고독이야말로 인간의 창조성을 키워 주는 소중한 영감이 될 수 있음을 깨달은 사람. “인간은 사회에서 어떠한 사물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감은 오직 고독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다.”
오쇼 라즈니쉬 –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진짜 꾸밈없는 자신을 만날 수 있음을 일깨운다. “어느 누구도 그대의 공허감을 채워 줄 수 없다. 자신의 공허감과 조우해야 한다. 그걸 안고 살아가면서 받아들여야 한다.”(p.104)
-그림자와 대면하는 시간 심리학자 융 – 고독한 시간의 가치를 ‘그림자와의 만남’이라 일컬었을 것 같다.(p.107) 의식 – 수많은 상처들을 꼭꼭 숨기고 있는 무의식의 그림자들을 억압하거나 회유함. ->하지만 무의식의 상처는 의식의 억압을 향하여 반드시 ‘조공’을 요구.
그렇게 네 진짜 문제를 잊고 봉합하려고만 한다면 결국 네 진짜 모습을 사랑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고독 속에서 무의식의 그림자와 당당히 대면하는 것만이 자신과의 전투에서 싸워 이기는 유일한 비결이다.(p.107)
방랑자의 깨달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라스무스와 방랑자』- 실수를 저지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지독한 외로움->부끄러움과 외로움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어디에도 없어 보일 때,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고독과 대면하게 되며 내가 저지른 실수는 반드시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진실을 온몸으로 깨닫고 그 책임을 이행하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주체’로 거듭남. 실수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와 만나는 인식의 관문이다.(p.109)
라스무스는 언제 또 정처 없이 길을 떠날 지모르는 영원한 방장자 오스카를 아버지로 선택.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되는 많은 것들은 그 여행자의 숨겨져 있던 본성일 거라는 생각을 했어.”라스무스는 오스카를 따라 방랑자가 됨으로써 자신의 숨겨진 본성을 찾아냄.(p.115)
지그문트 바우만 –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문자메시지로 항상 ‘온라인’상태에 노출된 현대인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바로 고독할 수 있는 자유라고 말함. 고독한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잠재된 창조성이 만개하는 시간, 우리안의 잃어버린 모든 가능성들이 아름다운 날개를 펴는 시간임. 비록 많은 것을 잃었지만 또한 많은 것이 남아 있으니, 예전처럼 천지를 뒤흔들지는 못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다.
영웅의 용맹함이란 단 하나의 기개. 세월과 운명 앞에 쇠약해졌다 하여도 의지만은 강대하니 싸우고, 찾고, 발견하며 굴복하지 않겠노라 -앨프리드 테니슨,『율리시스』(p.116)
2.작가의 탄생
1)고독할수록 나다워지는 사람들 -동경이란 무엇인가 동경은 그 대상이 멀리 있을수록, 다가갈 수 없을수록 깊고 짙어짐. 반대로 그 대상의 불멸을 꿈꾼다.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동경이란 무엇인가를 잘 그려낸 작품. 친구 복순이를 따라 갈수 없는 질투와 열등감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참담했고 우정은 금이 감.->스스로 아프게 하던 감성은 긍정적인 발전의 계기를 맞이함. 홀로서기(할아버지,엄마,오빠의 커다란 기둥이 사라지면서 빛을 발함)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순간, 누구의 도움도 바랄 수 없는 순간, 내가 이 모든 것의 증언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에 그녀는 미래의 작가이자 용감한 주체로 거듭남.(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빈집까지 털게 됨. 겁나지 않음. 가족을 챙겨야하는 책임감 때문에)
->기둥이 사라져도 여전히 나를 지켜주는 것, 그것은 문학을 향한 멈출 수 없는 동경이었다.(p.123)
-뫼르소,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남자
-까뮈의 이방인 뫼르소는 좀처럼 실제로 만나기 힘든 인간형이지만, 우리 마음 깊숙이 도사린 또 하나의 자아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우선순위가 없다. 예컨대 결혼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 어디론가 떠나도 좋고 떠나지 않아도 좋다. 열심히 살아도 좋고 그러지 않아도 좋다. 무엇을 하는 것과 무엇을 하지 않는 것 사이에 아무런 가치의 높낮이가 없다. 이 충격적인 인간형의 밑바닥에는 과연 어떤 욕망의 소용돌이가 꿈틀거리고 있을까.(p.125)
뫼르소가 왜 살인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야말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첫걸음.
->모든 것을 분석하고 해부하고 이해할 수 있는 믿음이야말로 인간의, 인간을 향한 폭력이 아닐까. 이방인을 읽을 때마다 뫼르소의 고독이, 뫼르소의 어찌할 수 없음이 더욱 절절한 슬픔으로 물들어 온다. 안간힘을 써서 이 사회의 일부분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 세상’에 속하기 위해 때로는 온갖 상처를 감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해가 갈수록 더 깊이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p.126.128) 카뮈 역시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사르트르와 메를로 퐁티를 비롯한 친구들은 모두 최고의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들이었고, 가난한 알제리 출신 노동자의 아들이라는 자의식이 그의 곁을 평생 떠나지 않음. 늘 소외감을 느낌. 남의 집 허드렛일 해주는 하녀였던 어머니는 문맹이었다.
『최초의 인간』의 첫 페이지의 헌사에는 “이 책을 읽을 수 없는 당신께.” 아들을 너무도 사랑하지만 아들이 쓴 글을 읽을 수 없는 어머니에게 책을 헌정.(p.128)
뫼르소는 아테네 사람들의 지극한 사랑 속에서 죽어 간 소크라테스보다 훨씬 더 불행. 어쩌면 뫼르소는 삶이 죽음보다 더 나을 게 없다는 냉혹한 부조리의 시선 속에서 죽음을 자발적으로 선택했을지도 모른다.(p.129)
-버려진 것들을 위한 투쟁/수전 손택의 이야기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과 세계에 대해 가하는 복수다.” 예술과 함께 춤추는 지식, 고통 받는 이들과 투쟁하는 지식, 점점 타인의 아픔에 둔감해지는 현대인의 영혼의 불감증을 치유하는 지식을 꿈꾸었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마음으로 느끼는 공감의 기술을 잃어버린 현대인은 영화를 볼 때는 눈물을 아끼지 않으면서 정작 살아 있는 옆 사람의 고통에는 무감각해져 감.(p.130)
『타인의 고통』 ->매스미디어가 전시하는 천편일률적인 고통의 이미지에 길들어 버린 현대인의 무딘 감수성을 공격.
‘전쟁’하면 블록버스터 영화의 전투 신을 떠올리고, ‘기아’하면 에티오피아의 배고픈 아이들을 떠올리고, 자기의 고통은 육체로 직접 느끼면서 타인의 고통은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끼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으며,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마음으로 느끼는 공감의 기술을 잃어버린 현대인은 영화를 볼 때 눈물을 아끼지 않으면서 정작 살아 있는 옆 사람의 고통에는 무감각해져 감.(p.133)
->우리가 멈춰야 할 것은 타인에 대한 연민 되찾아야 할 것은 타인을 향한 공감임을 일깨워줌. 공감
->당신이 지금 고통 받고 있는 그 자리로 달려갈 수 있는 용기의 시작이며, 타인의 고통을 걱정의 대상이 아니라 내 삶을 바꾸는 적극적인 힘으로 단련시키는 삶의 기술. 내 삶을 던져 타인의 고통과 함께하는 삶의 태도. 연민
->내 삶을 파괴하지 않을 정도로만 남을 걱정하는 기술. 뉴욕 지성계의 여왕,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15세-버클리 대학입학 17세-결혼 25세-하버드 대학 철학박사 학위를 받음 를 통해 문화계의 중심에 우뚝 서기까지의 고뇌와 방황을 고스란히 담은 일기.
사라예보 내전 당시 죽음의 공포에 맞서며 겁에 질린 사라예보 사람들에게 를 상연하던 연극연출가 손택을 좋아한다고 함. 내게 아무리 험악한 상황에서도 지금과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자유를,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통해 ‘우선 나 자신이 되는 법’을 가르쳐 준 멘토. 훌륭한 비평은 명철한 분석이나 예리한 비판이 아니라 아름다운 비평은 사랑이고, 창조이며, 마침내 예술로 거듭남.(p.134)
3.나약할 권리
1)상처를 성찰로 이끄는 구원의 힘
-상처 입은 자만이 타인을 치유할 수 있다-카를 구스타프 융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상처를 길들이고 어루만지며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영혼의 체력을 기르는 일이기도 함.
“행복한 집들은 저마다 비슷비슷한 반면, 불행한 집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다.” 레프 톨스토이(p.136)
<금기> 이성복
아직 저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제 마음속에는 많은 금기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될 일도 우선 안 된다고 합니다 혹시 당신은 저의 금기가 아니신지요 당신은 저에게 금기를 주시고 홀로 자유로우신가요
휘어진 느티나무 가지가 저의 집 지붕 위에 드리우듯이 저로부터 당신은 떠나지 않습니다. (p.137)
건강할 때 우리는 초원을 달리는 야생동물에 가깝지만, 아프고 힘겨울 때 우리는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을 닮았다. 하지만 식물처럼 연약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존재가 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가장 솔직한 본성과 만나게 된다.(p.143)
나무는 위로도 자라지만 아래로도 자란다. 아래로 자라야만 위로도 자랄 수 있다. 외적인 성장만을 증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아래로 자라는 법, 내면으로 자라는 법, 무의식 깊숙이 영혼의 닻을 내리는 법을 망각해 버렸다.
위로, 더 빨리, 더 많이 자라기만 하느라 우리 내면의 뿌리가 얼마나 자라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삶의 자양분을 필요로 하는지 미처 돌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p.147)
왜 우리는 예민함이라는 몹시 연약한 감각을 점점 잃어 가는 것일까? 우리는 연약해졌을 때 상처받는다. 상처를 안고 스스로 뒤로 물러나 주위에 벽을 짓고 단단하고 잔인해진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추악하고 잔인한 반응 없이 모든 움직임과 세상에 연약해질 때, 후회와 상처, 스스로 강요하는 훈육 없이 세심해질 때, 비로소 측정 불가능한 존재의 자질을 가질 수 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크리슈나무르티의 마지막 일기』에서
->우리가 약해지고 예민해질수록, 더욱 이 세상과 교신할 수 있는 마음의 촉수가 많아진다는 사실을 일깨움. 모두들 강해야만 한다고 하지만 생존을 위한 강인함만을 요구하는 피곤한 현대인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어린 나뭇잎처럼 연약해지는 것”이다. 즉 강함으로 강함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나약함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예민한 감수성이 필요하다.(p.147)
‘나는 약하다. 그러므로 힘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겸허함과 제멋대로 사용하지 않아 힘을 비축할줄 알고 필요할 때 자신의 힘을 나눠 주는 것에서 비롯. 우리의 진정한 무기는 타인을 통제하는 ‘강인함’이 아니라 타인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는 ‘나약함’이다.(p.149)
4.내면의 황금
1)당신 안의 멘토, 당신 안의 현자를 찾아 -영혼의 연금술사 곤경에 빠졌을 때마다 큰 위로를 받는 심리학자 로버트A.존슨
『 내면의 황금』
-대부 혹은 대모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증언.->‘제3의 부모’가 되어->원래 아이의 황금을 조용히 정리해주는 역할.
예) 영화 - 당신이 잠든사이에, 어바웃 어 보이 영화(p.152.153) 피터 팬처럼 철딱서니 없이 살던 주인공이 누군가의 진정한 대부가 될 수 있는 따뜻한 심장을 지니게 됨으로써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스토리.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웬디네 아이들을 위해 커다란 강아지가 유모이자 대모 역할을 함. 로버트 존슨은 우리들 각자가 지닌 내면의 황금을 맡아 줄 수호천사 같은 사람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강조, 타인이 지닌 내면의 황금을 짊어진다는 것은 일종의 예술행위이자 어려운 책임이다.
->나에게도 내면의 황금을 키워줄 대부나 대모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내 인생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은 삶이 되지 않았을까. 그동안 못만났다면 앞으로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봐야지.
제자들을 괴롭히고 부려먹으며 가혹한 ‘갑질’을 하는 스승들 “불행한 일이지만 황금을 긁어모은 뒤에 돌려주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살인행위다. 그런 사람들은 추종자나 동조자를 모아 놓고 착취한다.”(p.154) 의 모든 학생들에게 대부의 역할을 하는 키팅 선생님,
나다니엘 호손, 사물을 통해 멘토를 찾음.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정수인 내면의 황금을 맡김으로써 큰 바위 얼굴은 한 시대의 뜨거운 상징이자 인류 보편의 ‘내면의 황금’이 된 것이다.(p.155)
-사물들의 속삭임
김소연의 『 수학자의 아침』
인간들이 바쁘게 자긴에들끼리 소통하느라 놓쳐 버리는 사물들끼의 눈부신 교감의 순간을 포착해 냄.
수학자의 아침 -김소연
나 잠깐만 죽을게 삼각형처럼 정지한 사물들의 고요한 그림자를 둘러본다 새장이 뱅글뱅글 움직이기 시작한다
안겨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안겨 있는 사람을 더 꼭 끌어안으며 생각한다
이것은 기억을 상상하는 일이다
눈알에 기어들어 온 개미를 보는 일이다 살결이 되어버린 겨울이라든가,
남쪽 바다의 남십자성이라든가 나 잠깐만 죽을게 단정한 선분처럼 수학자는 눈을 감는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숨을 세기로 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간격의 이항대립 구조를 세기로 한다
숨소리가 고동 소리가 맥박 소리가 수학자의 귓전에 함부로 들락거린다. 비천한 육체에 깃든 비천한 기쁨에 대해 생각한다 눈물 따위와 한숨 따위를 오래 잊고 살았습니다 잘 살고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요
잠깐만 죽을게,
어디서도 목격한 적 없는 온전한 원주율을 생각하며 사람의 숨결이 수학자의 속눈썹에 닿는다
언젠가 반드시 곡선으로 휘어질 직선의 길이를 상상한다
백반 - 김소연
그 애는 우리,라는 말을 저 멀리 밀쳐놓았다 죽지 못해 사는 그 애의 하루하루가 죽음을 능가하고 있었다 풍경이 되어가는 폭력들 속에서 그 애는 운 좋게 살아남았고 어떻게 미워할 것인가에 골몰해 있었다
그 애는 미워할 힘이 떨어질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는 번번이 질 나쁜 이방인이 되어 함께 밥을 먹었다
그 애는 계란말이를 입안에 가득 넣었다 내가 좋아하는 부추김치는 손도 대지 않았다 어떤 울먹임이 이젠 전생을 능가해버려요 당신 기침이 당신 몸을 능가하는 것처럼요 그랬니.....
그랬구나.... 우리는 무뚝뚝하게 흰밥을 떠 미역국에다 퐁당퐁당 떨어뜨렸다
그 애는 두 발을 모으고 기도를 한다 했다 잘못 살아온 날들과 더 잘못 살게 될 날들 사이에서 잠시 죽어 있을 때마다 그 애의 숟가락에 생선 살을 올려주며 말했다 우리,라는 말을 가장 나중에 쓰는 마지막 사람이 되렴 내가 조금씩 그 애를 이해할수록 그 애는 조금씩 망가진다고 했다 기도가 상해버린다고
『 마음사전』은 김소연 시인의 창작 비밀 노트처럼 읽히기도 함. 이렇게 사물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상상하고 기억하고 증언하는 열정이 그녀의 시를 가능하게 하는 동인임을 느끼게 만든다.
마음사전』에 실린 을 통해 나는 유리에 달라붙은 매미 한 마리를 보고서도 이토록 아름다운 생각을 이끌어 내는 시인ㄴ이 지닌 사유의 냉철함과 감각의 따뜻함을 한껏 만끽한다.(p.160)
->우리 영혼에 깊게 베인 상처를 소독하고 꿰매고 어루만져 주는 손이 된다.
『 마음사전』이 시인의 마음을 영혼의 음표로 그려 낸 세밀한 ‘악보’라면,
『 수학자의 아침』은 그 수많은 악보 중에서 시인이 바로 지금 독자들을 향해 연주하고 있는 아늑한 소극장의 콘서트 같다.(p.162)
내면의 나 자신과 대화하는 힘, 하찮은 사물들과도 교감하는 힘, 그것이야말로 아무도 내 곁에 없는 순간에도 ‘내 안의 현자’와 대화할 수 있는 마음의 에너지다.(p.164)
3부 인생의 품격
1)열림과 트임
2)상처의 인식
3)나르시시즘의 역설
4)작은 공동체
-열림과 트임
-아름다움에 눈 뜨다 자크 랑시에르와 함께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장뤼크 낭시의 『 나를 만지지 마라』
이 책에서 에 나오는 예수 부활의 첫 장면에 나오는 매우 의미심장한 구절에 주목함. _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첫날 예수의 무덤이 빈 것을 발견한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가 나타나 “마리아”라고 부른다.
너무 놀란 마리아가 “라뿌니.(스승님)”라고 예수를 붙잡으려 하자, 예수는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만지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이시며 너희의 아버지이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고 전하여라.”(요한복음 20장 17절)
->낭시는 왜 평소에 마리아는 물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만지는 것을 제지하지 않았던 예수가 왜 이 순간만은 ‘나를 만지지 말라.’했는지 질문한다.(p.168) 의심 많은 도마에게는 자신의 상처를 직접 만져보라고 했는데,
->낭시에 따르면, 예수의 말은 이중적으로 읽힌다고 함.
“너는 아무것도 잡고 있지 않다. 너는 누구도 잡거나 붙잡을 수 없다. 바로 그게 사랑하고 아는 것이다. 너에게서 빠져 달아나는 이를 사랑하라. 가 버리는 이를 사랑하라. 떠나고자 하는 이를 사랑하라.”
장뤼크 낭시의『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 그 모든 것을 꿰뚫는 하나의 철학적 개념은 바로 ‘열림’이다. 정의란 내가 생각하는 정당함만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것, 즉 정의를 둘러싼 울타리는 언제나 ‘열려 있음’을 깨닫는 데서 시작.
정의의 경계란 미리 굳건하게 정해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다고, 즉 무엇이 진짜 정의로운 행동인지에 대해 더 많이 기대하고 앞서가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정의 ‘열림’이다.(p.171)
예)2차 세계대전의 ‘의인들’ -나치의 엄중한 감시와 처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들을 구한 사람들. “의인들은 죽음을 무릅써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사람들이 어떤 제한과 제약 없이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 그저 그 사실밖에 몰랐다.”(p.173)
사랑을 줄 때조차 우리는 사랑을 받는다. 열림과 닿음, 이끌림과 만짐, 이어짐과 어루만짐 속에서 인간의 사랑과 정의는 탄생한다.(p.174)
욕망을 줄이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을 욕망하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 그것은 어떤 대단한 기회가 찾아올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순간, 내 삶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한 그 순간부터 기적은 시작된다.(p.177)
2)상처의 인식 -돌이킬 수 없는 상처의 극복 제스처 라이프
예)이창래의 ->제스처 라이프라는 상징적인 원제는 바로 이런 참혹한 역사적 상처를 끌어안고 사는 사람이 아무런 문제도 없이 모범 시민처럼 살아가는 아이러니를 꼬집고 있다. 주인공 하타에 대한 풍자가 아니라 ‘척하는 삶’을 유지하느라 버려야만 했던 수많은 인생의 가치들을 환기시키는 제목이기도 하다.
작가 이창래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진실을 끝까지 마음속에 품고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타인에 대한 지극한 속죄의식과 모범 시민의 완벽한 제스처라는 이중의 잠금장치로 봉인시킨다. 끝애에 대한 사랑과 죄책감이 그를 평생 혼자 살아가게 만들었으며, 지극히 보수적인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나 신식 교육 한 번 못받은 십대의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와 잔인하게 학살당한 끝애에 대한 연민을 서니(입양딸)에게 투사.
-모범적인 미국시민으로 키워내려함. 불안정한 정체성.184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동원의 강제성, 일본군의 거짓말
->아우성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의 오싹한 침묵 때문에 일어남.(p.187)
3)나르시시즘의 역설
-자기애의 극한까지 걸어간 리어 왕
사랑의 분량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사랑의 크기에 따라 왕국의 소유권을 배분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리어 왕은 어쩌면 제왕으로서 모든 것을 다 누렸지만 사랑만은 얻지 못한, 애처로운 애정결핍증 환자가 아니었을까.(p.190)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보다 더 황당한 나르시시즘적 질문.
-리어 왕의 진짜 문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철저하게 밑바닥까지 밀어붙여 본 적이 없다는 것, 바보광대는 겉으로는 바보이자 광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오이디푸스 왕』의 현자 테레이아시스처럼 작품 속에서 가장 현명한 예언을 도맡은 인물.
리어 왕은 폭풍우 몰아치는 춥고 황량한 밤에 딸들의 문전박대로 걸인 신세가 되고 나서야 자신이 누구인지를 조금씩 깨닫는다. “여기 누구 과인을 아는 이 없는가? 이건 리어가 아니다. 리어가 이렇게 걷고 이렇게 말하나? 그의 눈이 삐었나? 하! 내가 꿈을 꾸고 있나? 그건 아니군. 내가 누구라고 말할 수 있는 자 누구냐? ‘나는 과연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앞으로의 삶은 어때야 하는지.’성찰해봐야.(p.196-7)
4)작은 공동체
-인간다움을 회복시키는 자아의 확장
*희망을 나누는 낭독의 공동체 반지의 제왕
우치다 타츠루『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서로 책을 읽어 주고 듣고 공감하고 수다를 떠는 작은 낭독의 공동체
->그의 꿈과 실천의 기록이 담긴 소중한 대담집. 그는 세대론, 교육론, 경제론, 연애론, 우정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자유자재로 횡단하며 정체에 빠진 일본 사회의 프리즘을 통해 디스토피아 속에서 유토피아를 만드는 일의 소중함을 역설함. 잃어버린 신체성을 회복하는 것(p.200-201) 돈을 쓰지 않고서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게 되어 버린 도시인의 현실을 가리켜 철학자 이반 일리치의‘현대화된 가난’이라는 용어를 사용.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하택 옮김)
- 매일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돈을 쓸 것인가.’를 선택하느라 빼앗겨 버린 우리의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만듦.
“우리는 자기 안의 재능을 볼 수 있는 눈을 잃었고, 그 재능을 발휘하도록 환경조건을 조절할 힘을 뺴앗겼고, 외부의 도전과 내부의 불안을 이겨 낼 자신감을 상실했다.”(p.208)
사소한 위험상황에서도 119를 찾는 현대인들 -
‘위험에 스스로 대처하는 능력’을 잃어감. 현대의 자본
– 인간을 풍요롭게 만드는 부가 아니라 인간을 ‘가난하게 만드는 부’를 확대 재생산. ‘가난한 부’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향유하며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만드는 ‘희소한 부’이며, 우리 사회의 가장 힘없는, 사람들에게서 자유와 해방을 빼앗는 ‘파괴적인 부’임을 고발. 인간을 불구로 만든 전문가의 시대
–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전문가의 손’에 맡김으로써 스스로를 무력화. 내 삶을 내가 일구고 가꾸고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각종 전문가에게
->부를 과시, 처세술을 자랑함.(p.209)
현대인은 어디서나 감옥에 갇힌 수인이다. 시간을 빼앗는 자동차에 갇히고, 학생을 바보로 만드는 학교에 잡혀 있고, 병을 만드는 병원에 수용되어 있다. 사람은 기업과 전문가가 만든 상품에 어느 정도를 넘어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자기 안에 있던 잠재력이 파괴된다.
-이반 일리치,『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에서 (p.210)
“자기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는 그것이 반드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임을 잊지 말라.”
이반 일리치의 철학과 철학자 자크 데리가 말했던 ‘환대의 윤리’와 맞닿음. 환대는 전혀 예상치 못한 낯선 사람의 방문을 기꺼이 아무 준비 없이 받아드리는 것.
-> ‘친한 사람’이 아니라 완전히 ‘낯선 사람’을 향해 작동하는 커다란 사랑을 향해 완전히 열려 있는 마음이다.(p.216)
4부 마음의 확장
1)분노할 권리
2)기억과 억압
3)영혼의 대화
4)치유의 공동체
1)분노할 권리 -우리는 분노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갈길 잃은 분노의 징후들
손병석『고대 희랍 로마의 분노론』은 한 사회의 건강을 측정하는 척도를 분노로 바라봄.
=오디세우스 / 아내 페넬로페에게 구혼한 남자들,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 모든 남자들 살해했지만 역사가 그를 영웅으로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분노를 침착하게 통제하고 전략적으로 이용해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놀라운 이성 때문.
=프로메테우스 / 자신의 분노를 인간을 향한 이타적 분노로 승화. 제우스의 분노를 온전히 감당함으로 불멸의 영웅이 됨.
->‘분노를 어떻게 통제하고 활용하고 더 커다란 목적으로 승화시키는가’ 가 영웅의 위대성의 척도가 됨. (p.221)
-정의로운 분노 『뤼시스트라테』는 남편과의 성관계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집단 파업으로 유명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단지 잠자리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전쟁과 경쟁과 지배에 몰두하는 남성적 권력’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다.
->‘비여성적’이며, ‘여성답지 못한 것’이며 나아가 억제하고 제거해야 할 쓸데없는 감정으로 치부됨.(p.227)
2)기억과 억압
-콤플렉스 극복의 길은 공동체 회복에 있다
*열등감 콤플렉스와의 끝없는 전투
알프레트 아들러는 인간의 삐뚤어진 행동을 하는 대부분의 원인을 ‘열등감 콤플렉스’로 해석함.
->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부족함을 만회하기 위한 ‘자기 정당화’지속강화됨.
-> 자기 정당화를 통해 자신의 열등감을 겉으로는 만회하면서도 실제로는 더욱 강화하고 있음을 밝혀냄.(p.235)
->인간은 반드시 자신의 노력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낙관적 희망을 심어주어 아들러가 대중에게 각광받는 이유다.(p.237)
-> 극복할 대안으로 공동체의식을 길러야 함
김서영의 『내 무의식의 방』 정신분석이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멋지게 뒤흔들 수 있는 흥미로운 학문임을 깨달음. 프로이트(정신분석)만으로는 치유적인 힘을 충분히 느낄 수 없었던 저자는 융의 분석심리학을 통해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는 체험을 했다고 고백.(p.243)->제주신화바리데기이야기 3)영혼의 대화 -연대를 향한 의지
*고결함을 지킨다는 것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농사에서 영문학에 푹 빠진 스토너. ‘세익스피어의 불꽃’을 지핀 아처 슬론 교수는 성격은 얼음처럼 차갑지만 강의는 기가 막히게 잘 하며, 다정하진 않지만 학생의 재능을 귀신같이 포착하는 명민한 스승임.
매스터스친구는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 친구의 말이 화인처럼 남음 ->“대학은 보호시설이야. 요양소, 환자, 노인, 불평분자, 그 밖의 무능력자들을 위한 곳. 우리 셋을 보게. 우리가 바로 대학이야.” “대학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걸세.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p.249)
*바로 그 한사람이 필요한 순간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한 사람을 찾아 평생을 방황하는 사람의 이야기. 수도원에서 만난 두 사람.
=골드문트
- 수두원에 어울리지 않아. 사상가를 꿈꾸지만 예술가의 피가 끓는 청년. 절대로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될 직업을 꿈꾸지만 너무도 쉽게 사랑에 빠지는 남자. 아버지뜻에 따라 신부가 되려했지만 포기하고 육체적 쾌락, 조각에 뛰어난 재능과 만물의 속삭임 속에서 신의 목소리 발견. 방랑생활로 육체노동, 여러 연령층의 여인과 사랑에 빠지기도 함
=나르치스
– 골드문트의 위험한 낭만과 열정이 바깥세상에서는 쓰일 수 있다고 믿음. 철학과 문학, 외국어에 능통.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눈을 지니고 있다. 골드문트는 신부가 될 운명이 아님을 예감함. 사랑하지만 그 마음을 소유욕으로 표현 안함.
그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든 기꺼이 보내 주는 사랑법. 겉으로 보기에는 나르치스가 골드문트의 멘토이지만, 나르치스 또한 골드문트의 삶을 통해 사제의 길에서는 얻을 수 없는 눈부신 영감을 얻는다. 골드문트는 바깥세상에서 자신의 길을 찾으려 하지만 결국 오랜 방황 끝에 나르치스에게 다시 돌아온다.(p.256)
살인까지 저지른 목숨을 극적으로 구해 준 것도 나르치스였다. 골드문트는 계율을 깨고 수도원 바깥으로 탈출하여 수십 년간 찾던 바로 ‘그 무엇’이 머나먼 타향이 아니라 그의 정신적 고향인 수도원에, 아니 나르치스에게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골드문트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가슴 아프게 속삭이던 나르치스의 명대사. “내가 만약 사랑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건 바로 너 때문일 거야.”(p.257)
*사려 깊은 언니 vs. 에고이스트 동생
심리학자 알프레트 아들러『심리학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인격이 가장 심각한 최초의 위기를 맞는 순간이 바로 형제자매가 태어나는 순간이라고 말함. 첫째 입장에서는 둘째가 태어나는 날이 인생 최고의 위기인 셈. 끔찍한 지진이 일어남.(p.260)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 자리를 스스로 채워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첫째 딸 앨리노어,
언니의 고된 일상은 아랑곳없이 자기만의 꿈과 사랑과 낭만을(p.261)좇는 철부지 매리앤의 보이지 않는 암투가 펼쳐짐. 두 자매의 차이는 ‘남자 보는 눈’으로 극명하게 드러남.
앨리노어-야망도 없고 출세욕도 없지만 평화로운 삶과 가족 안의 행복을 최고로 여기는 착한 남자 에드워드에 끌림.
매리엔 –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자신과 똑같은 열정으로 낭송하고, 첫눈에 불꽃이 튀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는 남자 월러비에게 빠짐. 언니의 날카로운 이성을 믿지 않고 오히려 에드워드를 비난.(p.264)
앨리노어의 이성적 판단이 사랑에 빠져 상대방의 치명적인 결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매리앤에게 도움이 됨. 매리엔과 엄마의 못말리는 허영심을 잠재우는 것은 아버지를 잃고 경제적 위기에 처한 가족을 어떻게든 올바르게 이끌려는 앨리노어의 공동체적 연대 의지다. 아들러는 인간의 본능적인 허영심을 누르는 가장 긍정적인 에너지로 ‘협업과 연대를 향한 의지’를 꼽는다.
『심리학이란 무엇인가』에서 허영심을 극복하는 최고의 비결로 공동체적 연대를 든다. “허영심은 인간에게 바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며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 위한 능력을 주지도 않는다. 이러한 눈부신 업적은 반드시 공동체적 의식을 통해서만 이루어 낼 수 있다.”(p.265)
이기심은 자아를 향해 과도하게 집중된 리비도다. 내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까.’를 생각하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고 성장의 시작이며, 뜻하지 않게 자기 안의 우울감을 극복할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이 되기도 한다.(p.266)
4)치유의 공동체 -파괴가 아닌 성숙으로
*이웃의 발견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멀리서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책. 거리의 의사 정혜신과 문학과 정치를 사유하는 시인 진은영이 만나 대화한 대담집 세월호 유족들의 이야기와 그들과 함께 트라우마 이후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절절한 이야기.(p.268)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의 차이
스트레스-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할 때 그 아픔. 고부간의 갈등이나 시험 직전의 긴장감처럼 삶의 부분적인 문제.
트라우마 – 아픈 만큼 파괴되는 것. 다시는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총체적인 재앙.(p.273)
5부 가치의 창조
1)정의의 정의
2)혁명의 꿈
3)공감의 글쓰기
4)질문의 시작
5)전일성의 회복
1)정의(正義)의 정의(定義)
-정의보다 정의감이 필요한 순간들 정의가 가져다주는 최대의 열매는 마음의 평정이다.-에피쿠로스
*정의를 면제받은 사람들
영화『플라이트』는 정의를 지킨 영웅의 대접을 받을 수 있었지만, 자신의 불의를 고백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잃어버린 정의감’을 되찾은 한 남자의 이야기.
아들의 인터뷰
‘당신은 누구세요?“
”그거 참 좋은 질문이구나!“
’내가 누구인가‘를 처음부터 다시 정의(正義)하는 것 , 그것이 정의(定義)의 시작이다.(p.284-285)
실력은 인정하기에 어쩔 수 없다는 반응 묵인과 침묵 때문에 수많은 불의와 불합리가 고스란히 은폐 되고 있음.-정의의 면책특권/정의를 실행하지 않고도 그를 정의롭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유능함때문
(완벽한 비행 말고는 아무것도 제대로 못함-알콜중독,거짓말)
-정의보다 더 지켜내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정의감이 아닐까. 우리가 정의라 믿었던 것들은 때로는 ‘정의로워 보이는 결과물’들이 아닐까?(p.281)
우리 사회에는 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남보다 많은 권력과 재산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누구나 힘겹게 지키고 있는 소중한 정의를 너무도 손쉽게 짓밟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정의를 면제받는 사람들’ 때문에 정의를 지키는 사람들의 고통은 한층 깊어져 감.(p.284)
* 책 도둑의 정의감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은 공공의 도덕이라는 잣대로 보면 불의지만 ‘타인의 고통을 위로하는 인간적인 삶’의 잣대로 보면 누구보다 아름다운 정의를 실천했던 한 소녀의 이야기.(p.285)
“우리는 법을 넘어서는 정의에 대한 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아마 정의를 위한 법이 있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법 안에 갇힐 수 없는, 즉 모든 법을 넘어서는 정의의 개념을 세워야 합니다.”
- 장뤼크 낭시,『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
에서 삶의 희망을 잃어버렸던 유대인 막스에게 리젤의 ‘책도둑질’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축제가 되어 그의 상처와 공포를 치유해준다.
-책은 유일한 영혼의 오아시스 역할. 책을 훔치는 것은 물론 정의로운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책을 훔침으로써 리젤이 실현한 삶의 가치들은 분명 정의를 넘어서는 정의, 정의보다 더 아름다운 정의감으로 완성된 행위들이 아닐까.(p.288)
국가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정의는 때로는 맹목적인 충성의 다른 이름일 때가 많다.
A.G. 비어스는 『악마의 사전』에서 정의란 “충성, 세금, 개인적인 봉사에 대한 보수”이며 “한 나라의 정부가 국민에게 파는 품질 나쁜 상품”이라고 풍자.
정의가 상호 간의 신뢰가 아닌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힘의 행사로 유지될 때는 이미 정의가 아니라 폭력의 다른 이름일 뿐. 혼자만의 정의를 힘겹게 창조해 내는 소녀 리젤은 세상의 불의를 깨달아 가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정의’를 눈부시게 발굴해 냄. 장뤼크 낭시-‘법을 넘어서는 정의,’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서 엄연히 존재하는 정의의 가치에 대해 역설.(p.289)
2)혁명의 꿈
-무엇이 진짜 문제인가
*나치 수용소에 울려 퍼진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 알리스 할머니의 삶을 담은『백년의 지혜』
그녀가 나치 수용소에서 어머니와 남편은 물론 수많은 친지들과 재산까지 다 잃고서도 건강을 유지할 뿐 아니라 존경받는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 나옴. 알리스는 아들과 함께 강제수용소에서 지낼 때조차도 음악의 끈을 놓지 않았다. 피아노연주를 들은 나치 병사는 당신의 연주는 너무도 아름답다고. 어떤 일이 있어도 부인과 아드님만은 지켜드리겠다고 고백함.
->음악이 아들과 자신의 목숨을 지켜준 비결이라고 믿음.
->예술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 똑같은 악보를 가지고 연주해도 매번 다른 연주를 해내고자 하는 배움의 열정이 혹독한 수용소 생활들 견디게 한 소중한 원동력이었다.(p.294)
*마르크스는 아직도 유효한가
『공산당 선언』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마르크스는 한물 갔다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귀뜸해줌.
마르크스를 읽으면 머리가 좋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 레비스트로스는 논문을 쓰기 전에 마르크스 책을 꺼내 들고 아무데나 펼쳐서 읽는다
->머릿속의 안개가 싹 걷히는 기분
->나를 우리 밖으로 꺼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우리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내용 중(p.296)
해답을 제출하는 것보다 질문을 발견해 내는 능력이 진정한 창조성의 원천이다. 마르크스는 모두들 해결되었다고 느낀 곳에서 또 다른 문제를 찾아내고, 모두들 괜찮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결코 괜찮지 않은 문제를 찾아냄.(p.297)
더 많은 돈과 더 큰 집과 더 멋진 스위트홈을 이루는 것이 현대인의 이상이 되었지만, 그것을 꿈꾸는 이상 자체가 ‘커다란 감옥’일 수 있음을 마르크스는 일찍이 간파했다. 시민혁명은 분명 자유를 얻게 해 주었지만 그 자유의 본질은 ‘돈을 벌어야만 얻는 자유’였음을 말함 세상 속으로 직접 뛰어들기도 전에 세상에 대한 비관론을 주입당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십 대에게 저지른 가장 끔찍한 폭력 중 하나는 바로 ‘88만원세대’라는 식의 선명한 낙인을 찍은 것이다.(p.298)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바로 이런 행복의 기원, 즉 자본으로 계산될 수 없는 행복의 가치를 창조하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움. 서른의 나이. 오랜 백수 생활 끝에 뒤늦게 취직하여 유기농산물 도매회사에 다니던 와타나베 이타루.
농산물취급회사의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로 얼룩져 있는 곳을 나와 ‘자본의 힘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꿈꾸며 버터와 설탕과 계란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천연 효모만으로 빵을 만드는 기술로 시골 빵집을 차림
->‘이윤을 남기지 않고도 결코 망하지 않는 회사’라는 마법같은 신화를 창조.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는 자본가, 이윤 창출에 목숨을 거는 자본가가 되지 않기 위하여 그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남긴 철학적 유산을 실천.
마르크스 경제학 -> 노동 착취는 그들 개개인이 사악해서가 아니라 이윤 창출을 위해 인간을 구조적으로 착취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구조의 문제 때문.(p.304-305)
3)공감의 글쓰기
-당신의 심장에 가닿기 위해 오늘도 씁니다
*들을 줄 아는 귀와 쉴 줄 아는 몸 창조적인 사람은 일에 대한 열정과 놀이의 능력을 하나로 만든다.
-하워드 가드너,『열정과 기질』에서 루이즈 디살보『최고의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 쓸 수 없는 자신을 어떻게 견디는가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책이기에 더욱 커다란 도움이 됨. 자기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작가들이 글쓰기의 고통을 어떻게 견뎠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와 그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어 더욱 좋다. 글쓰기는 ‘나를 새롭게 창조하는 노동’ 놀 줄 모르는 사람은 바보처럼 ‘여행하며 글쓰기’ 글쓰기의 ‘기교’가 아니라 글쓰기의 ‘태도’가 작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
->오직 고통스러운 체험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음.(p.307-308)
버지니아 울프 :
맹렬하게 글을 썼지만 때로는 쓰는 것보다 지우고 고치는 양이 더 많음. 끊임없이 지우고 고치고 지우고 또 고치면서 그녀의 작품은 빛을 더해 감. ‘뮤즈의 환상’을 버려야만 진정한 창작의 자유가 찾아옴.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
주변의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사방이 코르크로 막힌 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자신을 고문하듯 글을 씀.1885년 9월 11일, 영국 - 1930년 3월 2일/차타레부인의 사랑, 아들과 연인, 사랑에 빠진 여인들 등
헤밍웨이 :
항해일지를 쓰듯 작업 일지를 썼다. 미래의 스케줄을 욕심스럽게 빼곡히 적어 놓는 것보다 내가 오늘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를 차분히 정리하고 겸허하게 통찰하는 것이 실제 글쓰기에 도움이 됨.(p.309)
글쓰기는 세상 최고의 피난처지만 여기서 그치면 자폐적 퍼포먼스. ‘깨고 싶지 않은 나,’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까지도 나의 진정한 일부로 만드는 자기 갱신의 몸짓. 글쓰기가 결코 깨지지 않는 이 세상의 장벽을 다만 한 귀퉁이라도 깨부술 수 있는 영혼의 도끼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p.313)
‘내면의 묵독’으로 그친 책들은 마음의 비상구로 은밀히 잠입한 후 어느새 마음의 뒷문으로 스르륵 빠져나가 버린다. 책이 삶으로 깊숙이 스며들지 못한 것이다. 독서만 할 것이 아니라 책의 메시지를 함께 나누고 실천할 ‘북메이트’가 필요하다.(p.321)
->나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말이다. 실천하자!!
『엄마와 함께 한 마지막 북클럽』 췌장암말기 선고 받은 엄마에게 아들이 제안한 책읽기 어린시절 엄마가 사랑한 책들, 자장가 삼아 엄마가 읽어주시던 책, 최근에 읽은 모든 책들에 대해 나눈 모자의 마지막 북클럽이다. 다가올 죽음을 수동적으로 준비하는 의식이 아니라 내일 죽더라도(p.321) 오늘 여전히 더 멋진 삶을 꿈꾸는 작은 축제다.
4)질문의 시작
-우리는 대답할 수 있는 질문만 듣는다 *어떻게 나 자신이 될 수 있을까?
『자크 아탈리, 등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알 수 없을 때 나를 지키기 위해 무엇에 의지할 것인가?”(p.323)
->공자에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인류에게 빛이 된 스물세 명을 선정하여 평전을 묶음. 그들이 힘들었던 시기에 자신만의 화두를 어떻게 붙잡았는지, 그렇게 해서 마침내 홀로 견뎌 낸 내면의 고투를 그려냄.
누구도 아닌 ‘자기자신’이 되기 우해 어떤 운명적 결함과 싸워 왔는지, 나를 나답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들과 어떻게 싸워 왔는지 탐구.
(실수, 가혹한 비판, 트라우마,원수까지 적나라하게 묘사)(p.324)
*관찰의 인문학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싶으면 어제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 보라.”
익숙한 길이 낯선 풍경을 펼쳐놓을 때 우리는 ‘새로운 시각’의 소중함을 느낀다.
알렉산드라 호로비츠의 『관찰의 인문학』은 같은 길을 다른 사람들과 산책함으로써 전혀 다른 풍경을 발견하는 법을 알려 준다.(p.325)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세계의 인식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지를 알려주며, ‘뭐가 중요한지’를 판가름하는 분별지가 없기 때문에 이 세상 모든 것이 중요해 보이는 어린 아이의 시선부터, 자신이 관심 있는 것만 집중해서 보느라 눈앞에 이십 달러짜리 지폐가 떨어져 있어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박사님에 이르기까지, 저자와 산책한 수많은 사람들은 걷는 몸짓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보면서도 보지 못한다. 존재를 보고 있지만 존재의 의미는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p.326)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
니체의『즐거운 학문』
“우리 청각의 한계 : 인간은 대답할 수 있는 질문만을 듣는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은 짐짓 못 들은 척 슬쩍 밀어내는 것이 인간의 자기방어기제일까? 곧바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우리를 움츠러들게도 하며, 더 크고 깊은 질문으로 데려다 주기도 한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질문의 책』
우리 청각의 한계를 실험하는 멋진 질문들로 그득. ‘완전히 새롭게 질문하는 비법’
“말해 줄래? 장미가 발가벗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게 그냥 그녀의 옷인지?”
“나무들은 왜 그들 뿌리의 찬란함을 숨기지?”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내 피를 만져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내 시에 대해 무슨 말을 할까?”
“개미집 속에서는 꿈이 의무라는 건 사실일까?”
지금 내 가슴을 고동치게 하는 질문은,
“가장 어두운 세기에 왜 그들은 보이지 않는 잉크로 글을 썼을까?”
저도 그런 글쟁이가 되고 싶습니다. 가장 어두운 시대, 당신의 꿈과 적들의 피와 우리의 끝나지 않는 저항과 버릴 수 없는 희망의 잉크를 가득 머금은 글을 쉼 없이 쓰고 싶습니다.(p.333)
“세상은 명백한 사실들로 가득하건만 아무도 관찰할 생각을 안 한다네.”
-셜록 홈즈 셜록 홈즈의 모델이 된 로버 박사는 환자를 찬찬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환자의 병명은 물론 환자의 직업까지 귀신처럼 알아맞혔다고 합니다. 아주 사소한 것들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의 결합을 통해 지식은 진화합니다.(p.334)
5)전일성의 회복
-가장 아픈 그림자와 춤 추다
*아픈 기억의 그림자 영화『리더리스』 단어의 뜻처럼, 주인공은 방향키를 잃은 채 완전히 표류하는 삶으로 추락한다. 아들이 총기난사 사건에 연루돼 사망하자 아버지는 그야말로 ‘방향타를 잃은’상태로 표류.
고통스럽게 죽어 간 아들을 마음껏 그리워할 자유조차 누리지 못한다,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이중 삼중의 죄책감에 시달리며 일자리마저 잃고,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초라한 보트에서 난민처럼 살아감. 아들이 죽은 후 인생 시계는 멈춤.(p.335)
->가장 사랑했던 존재가 가장 아픈 그림자를 드리울 때 그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대면. 자신의 쓰라린 그림자를 돌보지 않는 한 그는 결코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가 없었기 때문. 그림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우리의 존재를 짙게 물들이는 슬픔.
데이비드 리코의 『내 그림자가 나를 돕는다』 그림자를 계속 부인하는 것은 동전의 뒷면을 문질러 지우는 것과 같다고. 뒷면이 없다면 동전이 가치를 잃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그림자라는 ‘마음의 뒷면’을 통해 비로소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고.(p.336)
‘고통과 친해지는 법’ ‘고통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는 법’ 욕망이라는 동전의 뒷면이 바로 ‘내면의 그림자’다. 즉 그림자는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이 만들어 내는 그늘 때문에 생긴다.(p.337)
->‘배움을 통해 인생을 바꾸는 능력’
->그림자와의 대면을 통해 자기 안의 더 큰 힘과 만날 수 있다.(p.338)
자신을 포장하고, 끊임없이 능력을 인정받아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자아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고 각종 정신 질환이 늘어나는 것은 바로 ‘나’를 과도하게 강조하고 숭배하는 ‘자기 관리’문화 때문이 아닐까. 자아에 대한 심각한 집착에서 해방될 때에만 우리는 그림자와 대면하고 대화하며 마침내 그림자와 ‘춤을 추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p.340)
내 안에 눈에 보이는 내 모습보다 훨씬 커다란 나,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를 지닌 진정한 ‘나’가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그것을 깨닫게 하는 결정적인 기회가 바로 ‘위험 상황’이다.(p.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