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고불변의 진리(萬古不變眞理)
달걀이 상(床)에 자주 오르지 못할 정도로 달걀이 귀한 시절(時節)이었습니다.
어느 마님은 생란을 밥에 비벼먹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몸종이 밥상을 들고 오다 부주의로 그만 달걀이 마루에 떨어져 깨져버렸습니다.
우연히 그 광경(光景)을 문틈으로 본 마님은 달걀을 어찌하는지 몰래 지켜보았는데...
몸종은 마룻바닥에 깨진 달걀을 접시에 담아 상을 내왔습니다.
괘씸한 생각에 마님은 몸종에게 물었습니다.
''깨끗하다는 것이 무얼 말하는 것이냐?"
먼지나 잡티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면 혼내줄 생각이었습니다. 그
러나 몸종은 이렇게 대답(對答)했습니다.
''안보이면 깨끗한 것입니다."
마님은 그 말에 크게 공감(共感)하며 "네 말이 옳다." 하고는 흔쾌히 용서(容恕)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들의 삶에서 모르는 것이 幸福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過去)를 캐내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우리는 호기심(好奇心) 때문에 과거의 사건을 알려고 하나, 알고 난 후에는 대부분 후회(後悔)합니다.
사람은 완전무결(完全無缺)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는 것이 병이다’ 라는 말은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상황(狀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人生살이에서 많은 상황이 그렇습니다.
‘모르는 게 약이다’ 라는 말은 어설픈 지식 습득의 위험성(危險性)을 경고(警告)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즉 어설프게 알 바에는 차라리 모르는 것이 더 낫다는 충고의 말입니다.
‘책을 읽지 말라’는 성철 스님의 말씀은 독서의 무용론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어설픈 독서의 위험성을 경고한 말씀입니다.
마찬가지로 ‘돈은 만 악의 근원이다’라는 말에서 악의 근원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비롯하는 온갖 나쁜 결과입니다.
나중에 후회할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굳이 알 필요(必要)가 없습니다.
안 보거나 모르면 깨끗한 것이 되고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삼국지에 識字憂患(식자우환)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거리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소동파의 시에도 "人生은 글자를 알 때부터 우환(憂患)이 시작(始作)되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주변의 모든 사실을 세세히 알고 있다면 幸福할까요?
손바닥에 수많은 균이 있다는 것을 늘 인식하고 산다면 과연 우리들에게 유익할까요?
우리가 먹는 음식(飮食)의 해로운 성분들이나 그 유해성을 모두 알고 생활한다면 더 幸福해질까요?
물건에서 균이 옮을까봐 다른 사람이 쓰던 물건을 만지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것이 알아서 생긴 병으로 흔히 이런 경우를 "신경쇠약(神經衰弱) 증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강(漢江)에 수없이 나룻배가 다녀도 흔적(痕跡)이 없습니다.
가깝고 친하다고 서로의 허물을 노출(露出)시키거나 추궁(追窮)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행동이 아닙니다.
그 사실을 아는 순간(瞬間), 인정과 幸福은 순간에 사라지고 인간관계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상대방(相對方)이 들어서 안 좋은 이야기는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합니다.
이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眞理)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