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공을 초월한 민족정서의 원형 창조와 발현
-素月 金廷湜의 시세계
김관식(시인, 문학평론가)
1. 프롤로그
素月 金廷湜 시인만큼 우리나라 근현대의 문학사에서 민중적인 정서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시인은 없다. 그 만큼 소월의 시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시인들이 공통적으로 표출한 시적 정서, 즉 민족사적인 고통의 환유물이라는 정서의 공감으로 역사주의 비평의 편협한 시각을 뛰어넘어 오천년의 우리민족의 가슴속에서 면면히 이어져오는 시공울 초월한 민족정서의 원형을 창조해냈고 발현시켜 오늘날까지 대중들의 사람을 받아오는 시인은 소월이 뿐이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매우 불운한 삶으로 33세 요정이라는 비운의 주인공이었으나 그 짧은 인생 속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정서의 윤회를 재현한 시를 남긴 천재적인 시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에 대한 연구는 수백 편에 이르고 있고 앞으로도 다각적인 관점에서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되리라 본다. 이제까지 연구 결과에 의하면 그의 시는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정한의 서정시라는 측면에서 다각적인 분석이 이루어져왔고, 민요적인 7·5조의 형식적인 율격과 리듬으로 대중들의 친화력을 자극해왔다는 결론을 도출해 온 셈이다.
그의 시세계를 상실의식과 저항의지라는 측면에서 상실의식은 사랑하는 임을 잃은 가정하의 개인적 상실의식과 또 다른 시대적 현실상황 의식을 반영한 국권 상실의식이라는 개인과 민족의 두 측면에서 조명하기도 하고, 저항의지는 식민지 현실상황에 대한 비판의식과 저항의지로 규명하여 만해 한용운, 김영랑 등의 시인들과 비교하는 연구도 있었으며, 우리의 민속수용의 측면에서 소월과 백석을 비교 연구하여 첫째, 민족의 원형인 고대의 향토성과 토착성을 순우리말로 구현함으로써 과거와 현대의 민족적 정서를 동일시하였다는 점, 둘째, 각각 민중ㆍ민족의 운율과 리듬을 현대적으로 되살려 민요시와 판소리의 재창조를 보여줌으로써 민족적 형식의 동일시를 실현하는 점1) 에서 문화 전통의 연속성을 민속요소인 내적인 정서로써 지켜 내고자했음을 규명하고자 하는 등 다각적인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어찌되었던 간에 素月 金廷湜은 오천전의 한반도에 나라를 세운 단군 이래 시공을 초월한 민족정서의 원형을 창조하고 발현시킨 시인으로 한민족의 정서를 환기시켜 왔으며 이의 정서는 만해 한용운, 김영랑, 서정주로 이어져온 것만은 부인할 수가 없다. 오늘날 현대시가 회화성을 얻는 대신 음악성의 상실과 종이출판에서 전자 매체로의 매체환경의 변화, 물질적인 가치 추구로 인간 윤리 도덕의 붕괴 등으로 인하여 시가 독자를 잃어버리고 시인은 많으나 대중적인 사랑받는 시가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민중시의 원형으로 인정받는 김소월의 위상을 새롭게 조명하고 시공을 초월한 민족정서의 원형을 탐구하여 재현시켜야 할 것이다. 따라서 素月 金廷湜의 시세계를 민족의 정신사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2. 소월시의 뿌리를 형성하는 전통성의 원형
민속, 민요, 민간신앙, 풍습, 민간설화나 전설 등의 근원적인 뿌리는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꿈과 이상, 그리고 지혜가 담겨있는 신화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신화는 모든 문화전통의 원형을 이루고 있고, 고대의 잔존물을 원형 또는 원시 심상으로 보고 모티브의 표상을 형성하는 경향이라고 융은 원형을 주장하였고, “융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다양한 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유전 암호가 되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논리 이전의 사고에 기원을 둔 이 원초적인 심상 유형과 상황은 독자와 저자에게 놀랄 만큼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2) 라고 하여 원형을 인간이 갖는 보편적· 집단적· 선험적인 심상들로 이루어진 무의식의 구조에서 그 개념을 차용해왔으며,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면서 형성된 수 없이 많은 원초적 이미지나 모티브가 표상으로 나타날 때, 우리는 표상 이전으로 거슬러 ‘원형’을 이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이제까지 문학적인 측면에서 전통성은 원시적 심성 또는 원형은 설화나 신화를 통해 민간의 사고와 문화적 조건에 따라 가감수정 또는 윤색되어 변질을 거듭하면서 현대에까지 전승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신화성은 주술성과 함께 주술은 자연을 향하여 미메시스의 방식으로 발전하고 여기에서 예술성의 기틀을 형성하면서 원시종합예술의 형태로 발전해왔다. 이러한 민족 원형적 주술의 표현이 고대에서부터 민중·민족문학을 거쳐 부터 현대시까지 전승되어오고 있고, 현대적 환상문학에서 보이는 허구적, 가상적, 신비적 세계에 대한 상상력으로 발전하고 앞으로도 전개될 것이나 그 뿌리는 신화에서 온 형식이라는 점에서 면면히 전통성이라는 이름으로 주술적인 예술적 요소는 문학과 여타 다른 예술장르에서도 주요 주제로 등장할 것이다.
소월의 정신사적인 작품 배경은 이러한 민간의 설화나 전설을 차용한 인유를 상상력을 통해 형상화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민요적인 리듬을 바탕으로 자연적인 리듬으로 정서를 발산한 소월의 시는 민요시라는 형태를 취하고 민요시의 근원은 민족과 개인의 공동체적인 삶의 원형에서 기인된 민요적 리듬과 토속성의 소재에 바탕을 둔 그의 시가 전통을 지향함과 동시에 근대시가 지향하는 존재론적인 의미를 가지고 때문이다.3)
물 고운 자주 ( 紫朱 ) 구름,
하늘은 개여 오네.
밤중에 몰래 온 눈
솔숲에 꽃피었네.
아침볕 빛나는데
알알이 뛰노는 눈
밤새에 지난 일은……
다 잊고 바라보네.
움직거리는 자주 구름
-『紫朱구름』 전문
두 마디의 3·4조의 리듬으로 7자를 한 행으로 연결한 민요의 율격을 차용하여 절제되고 세련된 표현으로 정형적인 틀에 내적인 운율을 삽입하여 새로운 리듬감을 창조하여 구름의 움직임을 형상화하고 있다.
소월시의 민요적인 성격을 구조상으로 살펴보면 음조나, 박자, 리듬의 여러 요소, 율격 등의 같은 자극으로 반복하는 형태적상 반복이거나 모티브, 주제, 사건, 에피소드 등을 반복하는 내용상의 반복, 또는 의성어와 의태의 반복, 단어나 어구, 문장 등을 반복하는 어법적인 반복, 하나의 내용을 정지된 상태에서 여러 관점으로 파악하여 이루어지는 동시적 변화반복, 선후창, 교환창 등의 민요에서 활용되는 문답식 변화반복, 앞 단어, 어구, 문장 등을 받고 동시에 새로운 요소를 참가하면서 반복을 진행시키는 연쇄적 반복, 매 행의 시적과 종결을 동일한 반복으로 구성하는 쌍괄식 반복, 매 첫 행의 첫 단어를 되풀이하는 두괄식 반복, 매 행의 마지막 어구를 반복하는 미괄식 반복, 행과 행을 교대하여 나타나는 교차식 반복 등의 반복법 구사와 하나의 진술에 제시된 관념, 주제, 사건, 에피소드, 인들 등의 두 요소 중 중복된 부분에 대해 비교와 대치로 반복하는 점층적 병치와 제시된 두 요소를 서로 상충하는 반대 방향으로 진전하면서 의미를 긴장시키도록 두 요소간의 차이점을 대조시킴으로써 강조하는 대치적 병치로 구성되었고, 율격 및 형태상에서 본 민요적 성격은 성기옥의 연구 통계에서4) 『진달래꽃』에 수록된 총 126편 가운데 74%인 해당하는 93편이 민요적 율격을 차용하고 있음에 비하여 자유시를 지향한 시는 26%, 33편이인 것으로 보아 민요적인 구성 형태를 취하고 있고, 오세영의 『김소월, 그 삶과 문학』에서5) 소월의 민요시의 행구성을 무분절시행, 등장분절시행, 후장분절시행, 후단분절시행으로 나누었고, 연구성을 단순연, 중복연으로는 동일 중복연과 혼합중복연으로, 그리고 시구성의 특징을 반복 형식, 점층 형식, 대치 형식, 혼합 형식 등으로 구성되었음을 밝힌 바 있다.
또한 시어상에 나타난 민요적 성격으로 공식적인 표현을 들 수 있는데 소월의 경우 구비 서사시나 발라드와 같은 서사 민요에서 한 작가의 작품에 반복 되풀이되어 쓰이는 관용구이지만 짧은 서종 민요에서도 이와 비슷한 특징 발견6) 되는 공식적인 표현들로 시인을 기다리는 기간을 3년, 3일 등의 공식화, 인간의 마음을 묘사할 때의 공식적인 표현을 차용하기도 하고 관습적인 표현으로 당대에 널리 알려진 수사법을 차용한 집단적 관용어, 전형적인 상징으로 봄-버드나무, 낙엽-외로움, 달-님, 강물-무상, 꿈-허무 등과 방언과 향토적 토속어로 민요적인 전통성의 원형을 찾아 활용하였다.
1) 전통 설화의 수용과 인유로의 시적 형상화
소월이 민간에서 떠도는 설화를 수용하고 인유한 시로서는 「접동새」, 「춘향과 이도령」, 「물마름」, 「어버이」, 「부모」, 「후살이」, 「하다못해 달래가 옳나」 등이고, 무속 신화가 바탕이 된 시는 「초혼」, 「진달래꽃」, 「무덤」, 「묵념」, 「산 우헤서」, 「비난수 하는 맘」, 「바리운 맘」, 「열락」 등이 있고, 부분적으로나마 무속신화에 뿌리를 두고 창작된 시도 상당수 있다. 물론 형식에 있어서도 민요의 가락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월의 문학은 민속 문학으로써 확실한 전통적인 계보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대를 초월한 혼을 유발시키는 영원성 추구하는 방편으로서 민요시의 리듬의 수용과 설화를 재구성한 시를 통해 민족의 보편적인 정서와 원초성에 접근하는 리듬과 시인 자신의 개성이 융합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산 저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접동새』 전문
이 시는 민담을 시화한 작품으로 소월이 어렸을 때 숙모 계영희(桂熙永)가 들려준 설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평안도 박천땅 진두강가에 살았던 오누이의 슬픈 이야기로 큰 누나가 출가를 앞두고 계모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해 원혼이 접동새가 되어 남은 동생들을 못 잊어 밤이면 이산저산 옮겨 다니며 구슬피 운다는 내용이다.
1연은 접동새 울음 소리를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2∼5연은 1연을 떠받치는 의미론적 단락을 이룬다. 그러므로 이 시의 민담적 요소와 의미는 2∼5연에서 제시된다. 특히 4연에서 ‘누나하고 불너보랴/오오 불설워’라고 화자의 주관적 정서가 개입되어 ‘누나’가 ‘접동새’로 변주되는 의미의 확장을 가져온다. 이 부분에 전실자식들과 후실간의 대립적 갈등과 선악관이 드러나고 결국은 비극적 운명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한(恨)의 맺힘을 보여준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어린 아홉 동생을 거느린 큰 누나는 어머니 역할을 대신해야만 했지만 계모는 표독스러워 전실자식들을 몹시 학대한다. 마침내 계모의 학대와 간계에서 못 벗어난 큰 누나는 죽임을 당한다.
이 시에서는 특히 소월의 향토적 언어 감각이 두드러진다. ‘아우래비’는 ‘아홉 오라비’의 의미와 접동새의 울음을 의성적으로 환기시키고 있고, ‘불설워’, ‘오랩동생’ 같은 방언은 향토적 정서를 환기시킨다. 진두강(津頭江) 역시 향토적 공간성을 형성하는데 그 핵심은 정서의 보편적 표출이라 할 수 있다. ‘진두’는 ‘나루’의 보통명사임을 볼 때 그렇다. 소월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을 떠나 산 적이 없다. 그처럼 이 시에서도 향토적 자연과 정서, 농촌의 소박한 인정 풍속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우리 민족의 보편적 정서라 할 수 있다.7)
이 시는 아름다운 설화를 통해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는 한의 정서의 원형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과 삶과 죽음을 초월한 영혼의 순환성과 미분화된 원시성의 양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설화를 수용하고 인유하여 재구성함으로써 문학의 전통성을 전승하고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개성적인 율격과 리듬의 민요시라는 형식에 민족의 원초적인 정서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도출해낼 수 있다. 이와 같이 「접동새」는 민담적이고 향토적인 세계와 시인이 살았던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조응하여 융합시킴으로서 영원성을 구가 하는 형식이다.
2) 한의 정서의 작시법적인 특징과 미학 배경
소월시의 음악적인 리듬은 민요나 설화적인 향토적 정서의 인유와 환유에서도 비롯되었지만 소리의 효과를 노린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작시법으로 소리와 의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소리는 리듬과 조화를 이루어 시의 음악성으로 즐거움을 전달하고 의미전달을 강화하도록 특수효과 소리에 주목하면서 수정을 통한 개작시의 시어 표기했는데, 현실음으로 “넙헤-넙해-넙패(山 우에), 덥허라-덥허라-덥퍼라(봄밤), 깁히-깁피(님의 노래)” 등의 시각상의 차이 인식, “날아단이는-나라다니는(제비), 저물어도-저므러도(해가 山 마루에 저므로도)” 등의 낭독할 때의 발음의 수월성을 들어 음악성 살기에 노력했다든가 “피는-픠는(無心), 피여-피어-픠어(풀 ㅅ다기)” 등의 의고적 표기, 소월 특유의 개성적 표기로 “서름이외다(님에게), 흐릅듸다려(가는길) 등의 배려와 시어의 구성 형태를 의미의 다양성 효과를 살리기 위한 구성으로 형태의 구성, 구성의 조화에 노력했고, 의미 구조상 의미의 다양성과 유동성, 의미의 애매성을 적절히 활용하기도 하였다. 이를 들어 전정구는 『김정식 작품연구』를 통해 소월의 개작 과정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8)
첫째, 소월은 시어의 소리효과에 대한 탁월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소월이 개작과정에서 보여준 현실음을 표기 방식은 당대 민중이 실제 발음하던 소리의 효과를 살리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시낭송과 리듬의 유려한 효과를 보장하기 위한 배려이다.
둘째, 동의어의 반복을 피한 것은, 동일한 시어의 반복이 주는 단조로움과 지루함을 해소함과 동시에 다양하고 미묘한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빚어내고 있다. 소월은 수정작업에서 적은 언어를 가지고 많은 의미를 생산하는 언어의 경제성을 실현했다.
셋째, 소월은 다의적이고 유동적이며 애매한 의미를 개작시의 주된 속성으로 부각시키려는 의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표현 대상의 동작·흐름·지속의 읨미를 강화함으로써, 즉 서술어의 동작성을 강화하거나 무정물을 의인화함으로써 소월은 시의 의미 속성에 다양성과 유동성을 부각시켰다.
또한 이러한 소월 시의 음악성을 살리기 위한 작시법적인 특징은 물론 그로 인한 한의 미학이 배태된 배경을 곽혜란은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9)
첫째, 소월은 아버지가 정신 이상자가 된 것에서 일차적으로 가장 큰 슬픔과 외로움을 체험하였다. 이는 어린 소월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상처(trauma)가 되면서, 훗날 소월의 시에 있어서 한의 무늬가 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둘째, 가정 내에서 그를 이해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아버지와는 대화가 단절된 상태이고, 어머니는 맹목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으로 감쌀 뿐 내적 소통은 어려웠을 것이고, 가문에 군림하고 있는 가부장적 유교질서만을 따지는 조부 역시 소월의 인생과 문학 등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일한 대화 상대였던 숙모 계희영 또한 평탄치 못한 결혼 생활 등으로 인해 소월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셋째, 장손으로 태어난 부담이다. 소월은 공주 김씨 일문의 장손이라는 점이 어린 시절 자존심을 키워주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친이 정신 이상자라는 열등감과 갈등을 일으키며 소월의 일생을 우월감과 열등감, 자만과 비하, 영광과 모멸로 얼룩지게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
다.
넷째, 소월의 결혼이다. 숙모 계희영이 지적한 바에 의하면 소월은 마음에 맞지 않는 결혼을 하여 번민을 하였다고 한다. 소월이 도덕적 규범 안에서 끝까지 결혼생활을 지속하였다 하더라도 그의 결혼은 한으로 남았으리라 짐작된다. 첫사랑인 오순과의 결혼 실패, 뒤이은 그녀의 요절은 소월로 하여금 슬픔의 질곡으로 몰고 갔다.
다섯째, 어머니, 숙모, 첫사랑 오순을 비롯한 주변 여인들의 불우한 삶은 그에게 한의 정서를 심어주기에 충분한 바탕이 되었다.
여섯째,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시대가 주는 허무의식이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서러움과 직접적으로 일제에 의해 피해를 입은 가정사를 돌이켜 볼 때, 당시 시대적 고통 역시 그에게 한의 근원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리고 이러한 한은 근본적으로 고통을 참고 견디며 살아온 전통적 여성의 자세에서 기인하며, 이는 여러 민요나 시조 등을 통해 소월의 시의 한의 정서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일곱째, 소월의 성격이다.
그의 스승 안서에 말에 의하면 소월은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이며 이지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이 말은 곧 남다르게 초자아가 예민하다는 뜻이다. 초자아가 유난히 강하여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감정을 억압해야 했던 까닭에 소월은 그만큼 속으로 한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3) 한의 발생의 근원인 장례 모티브의 발상
한은 자신의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과정에서 외부의 억압과 방해로 인하여 자신의 의도가 좌절되었을 때 그때의 욕망이 원망과 탄식과 분노로 이어지면서 맺히게 되는 마음의 응어리이다. 이는 상반되는 두 대상에서 비롯되는 모순에 의한 것으로 한국인의 대표적인 정서이다. 우리 민족의 정서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수차례의 외침을 받아온 역사와 문화적인 맥락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심리적인 억압과 울분의 응어리 표현의 정서적 반응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산자끼리의 이별, 산자와 죽은 자의 이별을 수없이 되풀이 해온 우리 민족의 애환서린 정서는 고대 가요에서 비롯하여 향가, 고려속요, 가사문학, 시조 등에서 남녀상열지사, 임금과 신하의 관계에서 비롯된 원과 한의 정서, 임의 부재, 시대적 배경에 연관시켜 나라를 잃은 고향 상실, 삶과 죽음의 번민 등 우리 민족의 뿌리를 형성하는 정서로 모든 예술분야에 나타나고 있는데, 소월시가 그 민족정서를 민요리듬과 설화모티브. 민속 모티브로 끌어와 민중, 민요시로서의 서정시의 극치를 보여줌으로써 대중의 지금까지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것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진달래꽃」 전문
이 시는 연인과의 이별을 가상적 주제로 하여 그 사랑의 감정을 나타낸 작품으로“가실 때에는”이나 “보내 드리우리다” 등에서 드러나는 미래시제의 사용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아 미래에 있을지 모르는 님과의 이별 상황을 가정 하에 창작된 작품이라는 논의가 지배적이었으나 내가 싫어 떠나가는 님 앞에 꽃을 뿌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과 그 꽃을 사뿐히 밟고 떠나가라고 하는 발상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점을 들어 유재천은 님과의 이별상황에서 꽃을 뿌릴 수 있는 것은 장례식에서뿐이다.10) 고 주장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시가 단순히 님과의 이별을 가정하고 쓴 것이 아니라, 꽃을 뿌리는 행위에 의해 암시되어 있듯이 장례식 관례를 마이너스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 「진달래꽃」은 시에서 물질적으로 텍스트에 실현된 부분만이 예술적 효과를 가져 오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에 실현되지 않은 부분 역시 훌륭하게 예술작품의 구성요소가 될 수 있으며, 텍스트의 예술적 효과는 그들의 상호 대화관계를 통해서만 성립됨을 보여 주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招魂」을 보면 그 맥락이 같음을 알 수 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招魂」 전문
「招魂」 이란 “고복이라고도 한다. 운명을 하면 고인의 속적삼이나 상의를 가지고 지붕에 올라가거나 마당에 나가, 왼손으로는 옷깃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옷 허리를 잡고 북쪽을 향해 옷을 휘두르면서 먼저 고인의 주소와 성명을 왼 다음에 큰 소리로 길게 ‘복(復)! 복(復)! 복(復)!’하고 세 번 부르는데 이를 초혼이라고 한다. 초혼은 죽음으로 인해 나간 혼이 다시 돌아와 몸과 합쳐져 살아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지붕에 올라가 혼을 부르는 것은 혼기(魂氣)가 위에 있기 때문이며, 북쪽을 향해 부르는 것은 사자를 관장하는 신이 북쪽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도 살아나지 않으면 비로소 죽은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11) 를 말하는데, 망자를 떠나보내는 장례의식 가운데 하나인 고복을 모티프로 한 시이다.
이 시는 “망부석 설화”를 연상시키는 작품으로 죽은 이에 대한 처절한 슬픔을 드러내고 있는데, 「招魂」은 연인의 죽음을 전통 장례의식인 고복 절차를 빌려 애도하는 전통적인 풍습을 차용했다. 이러한 풍습의 차용 방식은 죽은 님에 대한 명복을 빌어줌과 동시에 님의 죽음으로 인한 화자의 슬픔을 시각화시키는 기능을 극대화하게 된다.
3. 에필로그
소월 김정식은 우리나라 근현대문학사의 민중적 지지를 받은 서정시인으로 오늘날까지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이다. 그는 초기시는 『창조』에 처음 시를 발표한 1920년부터 학창시절이었던 1922년까지 쓴 61편의 작품으로 주로 개인적 아픔을 드러낸 서정시 위주의 창작하였는데, 대표적인 시로 「진달래꽃」, 「먼 후일」,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못잊어」, 「산유화」, 「접동새」 등이 있고, 중기시는 112편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1923년부터 시집 『진달래꽃』이 발간된 1925년까지의 전성기 시절로 식민지 현실을 인식하고 겨레 얼을 깨달아 민요, 설화, 접맥하여 소월시의 뿌리를 형성하는 전통성의 원형을 찾아가는 한의 미학, 빼앗긴 땅에 대한 애착과 절절한 애향의식을 표출하였다. 말기시 30편은 고향을 떠나 서울을 전전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생활하던 즈음인 1926년부터 자살한 1934년까지 좌절과 실의에 빠져 궁핍하고 고통스런 생활을 하던 시기로 현실에 대한 비관적인 인식으로 비참한 삶을 절망적으로 노래한 시들로 대표적인 시로는 「들도리」, 「건강한 잠」, 「상쾌한 아침」등을, 삶의 고뇌를 노래한 대표적인 시로는 「돈과 밥과 맘과 들」, 「팔베개 노래」, 「돈타령」, 「삼수갑산」 등이 있으며, 그리고 1939년 『여성』에 발표한 9편의 시와 발표 연대가 분명하지 않은 유고시(18편) 등이 있다.
素月 金廷湜의 시세계는 한마디로 “시공을 초월한 민족정서의 원형을 창조하고 발현시켜 민중적인 민요시를 창작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정시의 아버지인 셈이다. 소월시의 뿌리를 형성하는 전통성의 원형은 첫째, 「접동새」, 「춘향과 이도령」, 「물마름」, 「어버이」, 「부모」, 「후살이」, 「하다못해 달래가 옳나」 등이고, 무속 신화가 바탕이 된 시는 「초혼」, 「진달래꽃」, 「무덤」, 「묵념」, 「산 우헤서」, 「비난수 하는 맘」, 「바리운 맘」, 「열락」 등에서 전통 설화의 수용과 인유로의 시적 형상화로 한의 정서를 담아냈고, 둘째, 소월은 개작시를 통해 시어의 소리효과에 대한 탁월한 인식, 동의어의 반복을 피한 것은, 동일한 시어의 반복이 주는 단조로움과 지루함을 해소, 다의적이고 유동적이며 애매한 의미를 개작시의 주된 속성으로 부각시키려는 의식으로 보여주는 등 한의 정서의 작시법적인 특징과 아버지의 정신적인 상처와 가정 내의 협조자의 부재, 장손으로서의 책임감, 결혼으로 인한 고통, 주위 여성의 불우한 삶, 식민지 지식인의 허무의식, 소월의 내향적 성격 등이 한의 정서를 형성하는 미학 배경이 되었으며, 한의 발생의 근원인 장례 모티브의 발상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招魂」, 「진달래꽃」 등을 꼽을 수 있다. 인간의 원초적인 사랑의 현존과 부재를 다룬 소월 김정식의 시는 단군 이래 시공을 초월한 민족정서의 원형을 창조하고 발현시킨 시인으로 한민족의 정서를 환기시켜 옴으로써 오늘날까지 오랫동안 앞으로도 가장 많은 민중적인 지지를 받아왔고 받을 것이 확실시되는 영광스러운 민족 서정시인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
1. 김재홍, 『韓國現代詩人硏究』, 일지사, 1994.
2. 오세영, 『김소월, 그 삶과 문학』,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3. 전정구, 『김정식 작품 연구』, 소명출판, 2007.
4. 윤여탁 외4인, 『한국현대문학의 이해』, 태학, 1995.
5. 양병호, 『한국 현대시의 인지시학적 이해』, 태학사, 2005.
6. 성기옥, 「소월 시의 율격적 위상」, 《관악어문연구》 제2집,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77
7. 유재천, 「소월시의 님의 실체에 관한 재론」, 『현대시세계』, 1988 겨울 창간호.
8. 조연향, 「김소월·백석 시의 전통성 연구-민속 수용 양상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2.
7. 곽혜란, 「김소월 시에 나타난 한의 정서 연구」, 건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1
아동문학과 신화
김관식
미국의 시인 W.S. Merwin(1927〜)는 신화적 모티브로 자아상을 객관적으로 신화로 표출하는 시인으로 유명하다. 그에 의하면 모든 시는 신화라고 전제하고, 언어는 신화이며, 신화를 표현하는 매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언어를 매체로 하는 시는 자연적으로 신화로 탄생된다. 이를 확장 해석하여 우리의 인생 자체가 신화이고, 신화가 곧 인생이다. 인생이란 인간이 세계를 인간이 경험한 것을 이해하는 방법이며, 세계를 개념화하는 방법으로 해석했고, 신화는 인간사의 대표적 상징체로 보았다.
오후에 기대어서서
무심한 당신을 향해 내 슬픈 그물을 던집니다
외로움의 불꽃이 높이 높이 타오르고
마침내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댑니다
당신의 멍한 시선을 향해 제가 보냈던 애원은
바다나 해변의 등대같이 흔들렸습니다
당신의 시선에서 때때로 해변의 섬뜩함이
물속에서 나오는 듯
내 차가운 당신은 끄떡없이 깜깜하기만 합니다
오후에 기대어 서서
나는 무심한 당신에게 걷어채인 내 슬픈 그물을
내팽개쳤습니다
밤의 새가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같이 타오르는
별을 쪼아먹는 것만 같습니다
밤이 땅 위로 푸른 술을 드리우는
어두움과 함께 약해져 갑니다
-M S Merwin 「오후에 기대어 서서」 전문
신화적인 상징체의 “슬픈 그물”을 던지는 행위는 신화창조의 세계에 던지는 “외로움”과 “애원”이다.
신화란 사전적인 의미로 “어떤 신격(神格)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전승적인 설화. 우주 및 세계의 창조, 신이나 영웅의 사적, 민족의 기원 따위의, 고대인의 사유나 표상이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를 의미하나 우리가 문학작품을 창조한다는 것은 신화와 무관할 수 없다는 입장이 W.S. Merwin의 견해이다.
문학작품이 문학창작의 내면세계와 외부세계와의 갈등의 산물이라고 볼 때 이러한 갈등은 외부세계를 형성하는 사회적인 제도나 문화나 전통과의 작가가 자신의 가치관과의 갈등상황에서 해결 방법을 찾으려는 모색이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표현한 것이 문학작품이라고 볼 때 명쾌한 갈등의 해결 방법을 제시한 문학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마련이다. 따라서 훌륭한 시인은 주관적인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시대를 뛰어넘는 신화를 창조하는 시를 창작한 시인이다. 이와 같이 시인이 치열한 문학정신에 의해 창조한 신화창조의 시는 주관적인 세계를 객관화시킨 신화성을 획득하여 명작으로 남게 된다.
차창룡은 “신화는 세계의 근원과 인간의 기원을 찾아가는 것이자 인간의 궁극적인 구원을 꿈꾸는 것으로, 유토피아를 찾는 문학의 전통적인 주제와 맞물릴 수밖에 없으므로, 한국의 현대시에도 다분히 신화적 상상력이 깃들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고 시 속에 신화가 깃든 양상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12)
첫째, 신화를 차용한 시.
둘째, 신화의 내용을 변용한 시.
셋째, 신화의 모티프를 빌린 시.
넷째, 작품의 모티프가 신화의 모티프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시.
다섯째, 신화의 원형구조가 엿보이는 시.
여섯째, 신화의 원형적인 주제와 맞닿아 있는 시.
우리나라의 문학은 문학작품 속에서 신화자체가 들어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신화적 상상력을 찾는 일이 바람직하다.
신화적인 배경을 모티브로 형성된 우리나라의 아동문학 작품은 가락국의 건국신화를 원조로 볼 수 있다. 원시적인 제천의식과 농사와 건국 등의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 가락국의 추장들이 김수로왕을 맞이하기 위해 불렀다는 「구지가」는 거북으로 상징되는 「수로」, 구워먹겠다고 불로 위협하는 분발의 역설적 표현이 돋보이는 신화적인 배경의 시이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어 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구지가」 전문
이와 유사한 700년 뒤의 신라 성덕왕 때 불리워진 「해가」가 있다. 모티브가 「구지가」와 매우 사한 구조를 보이는 시로 신화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시이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아내를 약탈해간 죄 얼마나 큰가?
네 만약 거역하고 내다 바치지 않으면
그물로 쳐 잡아서 구워먹으리라.
-「해가」 전문
거북의 상징이 아이러니하다. 수로 부인을 납치 한 것은 바다의 용인데 거북이에게 협박하고 있다. 두 시가 역시 언어의 주술성에 의존한 기원가로 노래와 춤으로 승화했고, 축제로 이어진 조상들의 지혜를 담은 신화 모티브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우리 문학의 뿌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문학은 뿌리는 원시신앙을 바탕으로 한 신화성과 익살과 해학, 순수한 동심을 바탕으로 한 아동문학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형성되고 있어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원조는 고대시가에서부터 그 발생 기원을 잡을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아동문학은 모든 문학의 원형으로 자리 잡아야 마땅하다.
이러한 문학사의 흐름과 전통을 바로 보지 못하고 아동문학을 소외하거나 무시하는 성인문학가는 없겠지만 만약 있다면 문학의 뿌리를 모르는 문외한이 아닐 수 없다.
이후 신라향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이어져오는 한국문학의 맥은 구전문학이라는 고대문학과 연결되어 있고, 구전문학들이 신화나 설화, 전설, 민담 등으로 민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교훈성과 초현실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환상적인 요소로 동화의 모티브가 되고 있음은 모든 문학의 원형이 동심을 바탕으로 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작품을를 작가들은 모두 동심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쉽게 쓴 분들이었다는 것으로 보아 신화와 아동문학은 동일선상에서 인간의 원초적인 신화성이 동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학작품의 신화적인 상상력은 지구의 71%를 차지하고 있는 바다와 해와 달과 별에 관한 것들이 많다는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쓴 서사시 『오딧세이아』의 주제는 트로이아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의 10년간에 걸친 귀향 모험담으로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우리나라 1910년대를 전후하여 근대시를 대표하고 아동문학의 근대시로 지칭하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도 바다를 모티브로 하고 있고, 우리나라 현대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1930년대 정지용의 “오·오·오·오·오·소리치며 달려가니/ 오·오·오·오·오·연달아서 몰아온다.”라고 외친 바다연작시 「바다1」에서도 바다 모티브다.
우리민족은 삼면이 바다인 지정학적인 관계로 바다는 정치·군사·문화·산업의 중요한 가치 창조의 생활공간으로 작용해왔음을 알 수 있다. 가락국의 김수로왕 왕비 허황옥, 마고할미, 연오랑과 세오녀, 제주의 신화 선문대할망, 해상왕 장보고와 이순신 장군의 영웅적인 해전 등 바다를 모티브로 신화가 창조되었다는 것은 신화가 인간의 꿈과 이상, 지혜를 담아내는 총체적인 상상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18세기 신비주의 시인으로 손꼽는 윌리엄 블레이크는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 손바닥 안에 무한을 거머쥐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붙잡는다.”라고 노래했고, “상상의 세계야말로 영원의 세계” 라고 상상력의 무궁무진한 신비와 신화의 세계를 언급했다.
자연은 인간에게 가장 위대한 상상력의 원천이다.
신화의 창고에는 현대시에서 찾을 수 없는 무한한 은유와 상징이 가득 저장된 보고이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흐르는 집단무의식 속에서 잠재해있는 신화적인 속성을 시인의 영감으로 끌어내어 재창조해낼 때 훌륭한 문학작품이 탄생된다.
우리아동문학은 모든 문학의 원형으로 신화를 창조하는 문학이다. 이에 걸맞게 오늘의 시대상황에서 동심을 이해하고 새로운 신화적 상상력으로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치열한 문학정신과 깊은 사색으로 내면세계와 외부세계와의 치열한 갈등에 대한 해답을 찾는 창작 작업에 몰두해야 할 것이다. 문학의 본질적인 가치를 망각하고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한 속물적인 명리적인 가치만을 쫓다가는 위대한 신화는 창조되지 않는다. 좋은 작품이 없는데 빈 껍데기의 작가 이름이 남아있을리 없고 남아있는들 공허하고 조롱꺼리가 될 뿐이다.
송시열은 제주도 귀향길에 보길도 바위 위에다 자신의 이름을 새겼고 당나라 소정방은 우리나라 문화재에다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한사람은 당대의 사상을 이끌갔던 조선의 정치가요, 또 한 사람은 중국의 장군이었다. 이밖에도 금강산 바위 위에 새긴 커다란 이름, 무릉계곡 무릉 반석 위에 새긴 이름들, 그밖에 바위나 철물, 인조콘크리트 위에 새긴 이름들과 자연을 훼손하고 나무 위에 새긴 이름들, 심지어 담벽에 써놓은 글, 등 인간의 존재가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고, 모두 자신의 이름을 오랫동안 후대의 누군가에 알리려는 인간의 어리석은 심리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새긴 이름을 후대에 그 이름의 존재가 누구인지를 알 리가 없고 만약 안다면 좋은 인상으로 남겠는가? 헛된 명리적 욕구가 앞서기 전에 좋은 작품을 써서 후대에 남기는 일이 바람직한 문인의 자세일 것이다. 책으로 출판된 인쇄물들은 20, 30년이 지나면 퇴색되고 도서관의 창고로 그 효용가치를 상실하여 버리지만 바위 위에 새긴 낙서는 두고두고 비웃음꺼리가 되고 만다.
성경의 전도서 1장 1절부터 18절에는 이에 대한 해답을 “헛되고 헛되다”고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신화는 모든 문학의 뿌리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인류에게 꿈을 꾸게 하고, 인간다운 삶의 향기를 이어주는 소통의 다리이다. 초현실적인 영웅의 활약상을 통해 무한한 상상력과 인간의 유한성과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영원한 이상의 나침반이다. 인간만이 갖는 무한한 상상력을 통해 우주의 비밀에 대한 환상과 초현실적인 인물을 창조하여 유한한 생명을 초월하려는 의지를 표현한 신화는 문학의 뿌리를 형성하고 있으며, 인간의 원초적인 원시성에 뿌리를 둔 아동문학의 특성과 깊은 상관관계에 있다.
세계화시대 다양한 민족의 교류가 빈번한 오늘날 국소적인 민족 집단들이 꿈 꾸고 믿어왔던 다양한 신화의 교류와 충돌로 인해 세계는 전쟁이 끊일 날이 없다. 이제 지구촌의 평화와 인류공동체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는 역할이 바로 아동문학인들에 주어졌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생명존중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위대한 문학작품을 창작하여 인류가 공존할 미래의 희망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아동문학가들은 범세계적인 지구촌의 신화를 아동문학 작품으로 창작해낸다는 사명감으로 창작에 전념하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