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담배 이야기>
콜럼부스가 미국대륙에 처음 도착했을 때 원주민들이 긴 막대기에 말린 풀을 넣고 불을 붙여 빨아들이며 연기를 내 뿜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신기하게 여긴 콜럼부스 일행 중 하나가 그 이름을 물어 보았는데 담배를 피던 인디언은 담뱃대 이름을 물어보는 줄 알고 담뱃대의 인디언 이름인 토바코(Tobacco)라고 대답을 했고 그 이후 담배를 일컫는 이름이 토바코가 되었다고 하는 재미있는 일화(逸話)가 전한다.
사실 담배는 아메리카 인디언 훨씬 이전의 마야(Maya) 문명에서부터 담배를 피웠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니 담배의 역사는 실로 유구(悠久)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후 유럽으로 들여와 오늘날처럼 일반화 되었다고 한다.
담배의 종류는 흡입하는 방법에 따라 연기를 들이마시는 『피우는 담배』와 『씹는담배』, 코로 흡입하는 『코담배』, 물로 연기를 걸러내어 마시는 『물담배』로 크게 구별할 수 있다. 가장 보편화된 것이 종이에 담배가루를 말아 연기를 흡입하는 권련이다.
담배가루를 미세하게 분쇄해서 코로 흡입하는 코담배는 유럽에서 시작되었는데 동양에서는 몽골인들이 지금까지도 애용한다고 하고, 물담배는 과일향, 박하향 등 다양한 향료를 첨가하여 순하고 향기롭다는데 음주문화가 금지된 중동지역에서 보편화된 방법으로 여자들도 애용한다고 한다.
그 밖에 담배 잎만으로 직접 말아서 만든 시가(Cigar)가 있는데 엽권련이라고 하며 쿠바(Cuba)가 그 주산지(主産地)로 유명한 것은 모두 아실 터....
우리나라의 담배 역사는 1945년 해방을 기념하여 발매된 승리가 최초의 권련이라고 하는데 당시 판매가격은 3원(圓)이었고 물론 필터가 없는 담배였는데 환(圜)으로 화폐 개혁(53년)이 되기 전이다. 그 이후 환에서 다시 오늘날의 원으로 다시 화폐개혁(62년)이 된다.
1946년에는 백두산, 공작, 무궁화, 백구가, 1948년 계명, 1949년에는 화랑(군용), 샛별, 백합이 뒤를 이었다. 1951년 전쟁 중에 발매된 담배가 건설이고 1955년 전쟁이 끝나고 풍년을 기원한다는 의미로 발매된 것이 풍년초(豊年草)인데 정가 30환이었다.
풍년초는 권련이 아닌 종이에 말아서 피우는 봉지담배(100g)였는데 보통 봉담배라 하였다. 같은 해 발매된 무필터 권련인 파랑새는 50환, 백양은 60환, 탑도 60환이었고 1957년에는 사슴과 진달래가 발매되었는데 100환, 1958년에 발매된 최초의 필터담배 아리랑이 한 갑에 200환이었으니 풍년초(30환)는 매우 싼 시골사람들이 주로 피던 담배였던 셈이다. 1960년에는 나비가 발매된다.(70환)
그 이후로 61년에는 재건, 파고다, 모란, 금관(박하담배)이 발매되고 62년에는 새나라, 해바라기가 발매된다. 63년에 상록수, 64년에 희망, 전우, 신탄진이 발매되고 65년에 금잔디, 백조가 발매된다. 65년에는 자유종, 66년에는 새마을, 타이거, 스포츠, 수연(봉지담배 50g)이 발매되고 68년에는 여삼연, 한강, 청자가 발매되었다. 69년에 설악, 72년 은하수, 73년 비둘기가 발매되고 74년에는 개나리, 환희, 학, 명승, 태양, 한산도, 거북선, 수정(박하담배), 샘, 단오, 하루방(파이프 담배/30g, 50g), 남대문이 발매되어 새 담배 풍년을 이루고, 76년에는 연송(엽권련), 충성(군용)이 발매되며 77년에는 협동....
80년대 이후는 새로 발매되는 담배의 가짓수가 너무 많아 셀 수도 없다. ㅎㅎㅎ
담배 이름을 연도와 연관하여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시대의 시대상(時代相)이 잘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0년대 한국전쟁, 전후 새 희망과 재건운동, 그리고 새마을 운동이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화랑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담배 이름에서도 우리나라 근대사(近代史)의 흐름이 읽혀진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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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이니 50년대 초, 6·25전쟁 직후였다고 생각되는데 도시에 나가있던 동네 형이 고향에 와서는 제일 먼저 양복 안주머니에서 건설(建設) 담뱃갑을 꺼내어 마을 청년들에게 권련(卷煙)을 한 개피 씩 쭉 나누어 준 일이 있었다.
시골에서 맨날 봉초(封草/豐年草)만 피우던 청년들은 처음으로 궐련(卷煙)을 받아들고는 불을 붙일 생각은 하지 않고 요리조리 돌리며 드려다 보고 신기해하였다.
수만이 형은 언젠가 밭가에 쪼그리고 앉아 잎담배 썬 것을 꺼내 손바닥에 한 줌 놓고는 침을 퉤 뱉어 비벼서는 신문지 쪼가리로 담배를 말아 침으로 가장자리를 붙여 입에 물며,
‘제기럴, 골련(卷煙)을 한 대 턱 빼서 불을 붙여 손가락 사이에 척 끼우고는 왼손으로 허리를 척 집고 폼 나게 한번 피워 봤으면.....’ 했었으니 권련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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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담배를 필 줄 몰랐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경기도 가평(加平)으로 발령을 받자 나보다 다섯 살 위인 형님이 담배를 사서 주머니에 넣어 주며,
‘너는 술도 못 마시는데 담배까지 피지 않으면 사회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있다.’ 며
배워보라고 하였다. 형님이 모처럼 생각해서 사 준 담배인데 버리기도 그렇고 피워보니 매워서 눈물, 콧물이 다 나오고 목도 따끔거리는 것 같고.....
담뱃갑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이 사람도 주고, 저 사람한테도 권하고.... 그리고 나도 같이 한 개비 빼어 물고는 멋을 부리며 연기를 내 뿜고.... 물론 목구멍으로 넘기지는 못하는 뻐끔 담배였는데 형님 말처럼 사회생활이 매끄럽게 형성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목구멍 깊숙이 연기를 넘기며 담배 맛을 알게 됐고 니코틴에 중독되고 말았나 보다. 담배가 떨어지면 방구석과 재떨이를 뒤지며 꽁초를 찾는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제기럴.....
예전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많아서 괜찮았는데 요즘은 담배를 피던 친구들도 거의 끊고는 나보고 아직도 담배를 피냐고 핀찬을 주고.... 가는 곳 마다 괄시를 받는다.
병원에 검진이나 가벼운 치료를 받으러 가면 제일먼저 담배를 피냐고 묻고 평균 수명이 어쩌니 하며 의사마다 담배를 끊으라고 한다. 그리고 차라리 술을 한 잔씩 하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그런데 나는 아예 술에 소질이 없는 건지 술을 분해하는 효소가 체내에 형성되어있지 않은 것인지 술만 한 잔 마시면 꼭 죽을 병에 걸린 것처럼 괴롭다. 전신이 빨개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 잔 정도 마시면 다른 먹은 것을 포함해서 모두 바깥으로 내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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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교사로서 첫 발령지는 가평의 시골 분교였는데 그 곳에 근무할 때 죽기 살기로 술을 배워보기로 작정을 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옥수수로 술을 담그는데 색깔이 노~란 것이 매우 독했던(알코올 돗수가 높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집집마다 술을 담가 놓고 먹던 시절인데 가는 집마다 선생님이 오셨다고 술을 준다. 그곳 사람들은 밭에 일을 나갔다가 집에 오면 그 옥수수 술을 한 대접씩 쭉 들이키고는 김치 한 쪽을 집어 먹고는 ‘어허~, 좋다....’
나보다 몸집도 작고 허약해 보이는 사람들도 잘들 마시기에 나도 한 사발 마셨는데 곧이어 술이 오르며 눈이 감기기 시작하는데.... 웃으며 놀리는 학부형을 뒤로하고 사택으로 쫓기듯 돌아와서는 눕자마자 잠들고 말았다.
짜증이 나서 다음날부터 술을 배워보기로 작정을 하고 죽기 살기로 며칠을 그렇게 술을 한잔 마시고는 돌아와 자고, 술을 한 잔 마시고는 돌아와 자고....
결국.... 어느 날 대낮에 깔고 자던 이불(요)위에 크게 실례를 범하고 말았다. 잠결에 참았던 소피를 마음껏 내 쏟으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그런데 아차차....
에라 더러워서.... 나는 술을 배우지 않겠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나는 술을 배우지 못했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 담배만 열심히 피겠다. ㅋㅋㅋ
오늘의 내 옛날 이야기 ...... <끄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