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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편92편1~15절
제목 : 안식일의 찬미
예배용 찬미로 안식일, 성전예배에 사용되었고,
장막절 둘째 날에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저작 시기는 포로기 이후라고 합니다.
내용을 분해하면
1~9절에서는 하나님의 행사에 대한 찬미와
10~15절에서는 의인의 최후 승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1. 하나님 행사에 대한 찬미(1~9절)
1)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조석간에 찬미하라(1~3절)
“[1]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2]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3]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이스라엘의 구전법(oral law)인 미쉬나(Mishna)에 의하면,
본 시편은 안식일 아침에 부르도록 정해져 있는데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본 시는 안식일을 위한 시편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그날 아침 이 시편을 부르면서 이스라엘 예배 공동체는 먼저 어린양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께 드리는 존제(尊祭)로서 포도주를 부었습니다(민 28장).
반면, 저녁 제사 때에는 출15:1-18과 민21:17-20 중의 하나를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제외한 나머지 6일 동안 성전에서 불렀던 노래로서는
첫쨋날 24편, 둘쨋날 48편, 셋쨋날 82편, 넷쨋날 94편, 다섯쨋날 81편, 여섯쨋날 93편 등이었다고 합니다.
"아침"은 하나님의 은혜의 시기(時期)를 상징하고,
"밤"은 재난의 시기를 상징합니다.
아침은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는 시기입니다.
그 인자하심을 감사히 여김은 자연스럽습니다.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이 귀절은, 밤마다 하나님의 성실을 찬송함이 좋다는 의미입니다.
성도는 재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신실하게 보호하실 것을 믿고 기뻐하며 찬송해야 됩니다.
“좋으니이다”(토브)는
창1:4절 “빛이 하나님 보기에 좋았더라”
창1:10절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12절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를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은 창조 사역 때 피조 세계가 그의 의도와 목적에 부합됨을 보고 이를 “좋았더라”하며 '좋게'(토브) 여기셨습니다.
본 문맥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지존자 이신 그분의 계획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찬양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입니다(시33:1)
*시33: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한편, 시편 기자의 정서적 측면으로 보면, 찬양을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확신에 따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기쁨의 표현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Perowne).
2) 찬양해야 할 이유를 설명합니다.(4절)
“[4]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원문에 보면 본 구절 서두에 '이유'를 뜻하는 접속사 '키'가 있습니다.
따라서 본절은 1-3절에 언급된 바, 여호와께 대한 찬양의 근거를 제공하는 부분(14, 15절)의 서론격에 헤당하는 샘입니다.
본절은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행하신 일”로 인하여 찬양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행하신 일”에 대하여는 설명이 구구합니다.
① 하나님의 창조, ②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섭리, ③ 시인의 개인적인 은혜의 체험 등. 그러나 두 번째를 취합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그 행사가 시인을 기쁘게하고,
하나님을 높이 찬미하게 한 것입니다.
위에 말한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이 그의 과거의 체험인 것을 설명합니다.
이 시인은, 일찌기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윗절에 말한 바와 같이 찬송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3) 행하신 일을 설명합니다(5절)
“[5]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하나님의 행사는 너무 크고,
그의 생각은 너무 깊어 인간이 감히 측량하지도 추측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시106:2 “누가 능히 여호와의 권능을 다 말하며 주께서 받으실 찬양을 다 선포하랴”
이 표현 속에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 및 우주 통치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위대성, 인간의 이해를 넘는 그 계획의 방대함, 그리고 지혜의 깊이 등을 인식함과 아울러, 그 사실에 대한 인간의 망각을 탄식하는 심정이 함께 곁들어져 있습니다.
'인간은 얼마나 빨리 그분의 사역을 잊는가!
얼마나 빨리 그분의 깊이를 헤아려 보는 일을 중단하는가!
얼마나 빨리 그분의 위대성을 헤아려 보기를 포기하는가'(Barnes)!
주의 생각 -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계획들
그리고 그 방법들을 뜻합니다.
과거에 기자는 하나님의 섭리와 공의를 의심했던 적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하나님의 계획들을,
인간의 지혜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전적으로 의지할 만한 분이라는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한편 주의 행사의 위대하심과 그 생각의 깊고 오묘함에 대해서는
다윗(40:5), 이사야(사55:9), 바울(롬11:23 )등도 찬탄한 바 있습니다.
*다윗(시40:5):“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이사야(사55:9):“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바울(롬11:23):“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4) 행하신 일에 대하여 어리석은 자와 무지한 자는 깨닫지 못함 (92:6절)
“[6]어리석은 자도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어리석은 자”“무지한 자”는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합니다.
시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이러한 자들이 하나님의 크고 깊은 행사와 생각을 알 리가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 경외에 뿌리를 두는 참다운 지혜를 고의적으로 배척하는 사람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잠1:7).
*잠1:7“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여호와 경외가 없어 참다운 지혜가 없는 자란, 이 세상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 통치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자행자지(自行自止)하는 자를 뜻합니다.
사람이 성령의 감화와 지혜를 받을 때 어느 정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5) 악인의 흥왕은 일시적이고, 영원히 멸망합니다.(92:7절)
“[7]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시인은 악인의 흥왕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것은 한때 욥이나(욥21:7~21), 아삽이나(시73:2~15), 하박국을(함1:2~4) 괴롭힌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이요, 참 번영은 아닌 것입니다.
즉 악인이 풀과 같이 빨리 생장하고, 또 흥왕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일시적이고, 곧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히 멸망하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우기(雨期) 때 한차례 비가 내리고 나면,
온 들이 푸른 나무들과 각종 꽃들로 아름다운 정원을 이루게 되는데,
본 기자는 바로 그 장면을 염두에 두고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악인도 일시적으로는 비 내린 뒤의 들의 상황과 같이,
번성하여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인과의 차이점은 그 시점에서 그들은 '하나님은 없다'(10 : 4)라고
말할 뿐 아니라 '하나님 없이도 나는 결코 요동하지 않는다'(10 : 6)라고 교만을 부린다는 사실입니다.
아무 열매도 없는 것이 들풀의 무성함과 같다는 뜻입니다.
악인들은 그 간교한 수단에 의하여
수고도 들이지 않고 얼른 성공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것이 축복을 받는 참된 성공은 아닙니다(잠 20:21).
무디(Moody)는 이 귀절에 대하여 말하기를,
"악인은 필경 풀처럼 연료(燃料)가 되기 위하여 생장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여기에는 종말론적 성격이 숨어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즉, 악인이 땅 위에서 번영하여 행복을 누리나 그 행복이 이생을 마친 후에도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강조점이 있는 것입니다.
악인도 이 땅 위에서 번영할 수 있습니다.
그 번영의 정도는 의인이 시험에 빠질 정도로 대단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번영은 이 땅 위에서 뿐이요,
결국 그들의 영혼은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 형벌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의인과 달리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따라서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73편).
6) 하나님은 영원토록 지존하십니다(8절)
“[8]여호와여 주는 영원토록 지존하시니이다”
여기서의 '지존'(마롬)을 직역하면 높은 곳에'인데,
70인역(LXX)은 '마롬'의 일상적인 용례와 같이 '높은 곳에'가 아닌 '높은 분'으로 번역하여 '높은 곳에 계시나이다'가 아니라
'높은 분이십니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악인이 잠간 동안 흥왕하다가 영원히 멸망 받는 사실(7절)에
대조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영원토록 높은 데서 주장하시는 것만큼,
악인은 반드시 심판 받을 날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폐지되지 않는 한(限),
악인의 세력이 늘 뻗쳐나갈 수 없는 것이다.
'영원히 계시는 초월자 하나님', 이 사실이야말로 우리 성도들의 믿음의 대들보가 됩니다(Calvin).
7)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흩어집니다(9절)
“[9]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이다 정녕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니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흩어지리이다”
직역하면 '보십시오, 여호와여 당신의 대적들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당신의 대적들이 소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악행자들이 흩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입니다.
이 같은 표현은 우가릿 본문(Ugaritic texts)의 한 대목을 연상시킵니다.
'보소서 당신의 대적들을, 오 바알신이여 보소서 당신의 대적들을 당신이 쪼개버릴 것입니다. 보소서 당신은 당신의 대적들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이 같은 가나안 예식서에 대해 익숙해 있었다고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예식서의 내용을 빌어왔다고 결론지어서는 안 됩니다.
기자의 관심은 이방 신 바알의 능력이 결코 아니라 오로지 진정한 능력자이신 하나님에 의하여 악행자들이 멸망당하고 말 사실일 뿐입니다.
2. 의인의 최후의 승리(10~15절)
1) 이스라엘에게 새 힘을 주사 일어서게 하셨다(10절)
“[10]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뿔"은 세력의 표상이고, "들소"는 고대에 있어서 힘쓰는 야수였습니다.
성경에서 '들소의 뿔'이란 가공할 만한 힘을 상징합니다(22:21 ; 욥39:9).
*시22:21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욥39:9 “들소가 어찌 기꺼이 너를 위하여 일하겠으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따라서 하나님이 시인의 뿔을 높이셨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와 활력,
힘을 공급하셨음을 뜻합니다.
대비가 되는 바로 앞절에 악인의 멸망 사실이 언급되고 있으므로,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공급받음으로 말미암은 시인의 번영,
명예 회복 등으로 보면 무난하겠습니다.
신선한 기름으로 부으셨나이다 - 여기서 '신선한 기름'(쉐멘 라아난)의 문자적인 뜻은 '푸른 기름'인데 이것은 최고 품질의 기름을 뜻합니다.
원래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대제사장이나 왕으로 선택한 사실을 대중 앞에서 공개하는 의식 중의 중요한 순서입니다.
(출 29 : 7 ; 삼상 10 : 1).
그러나 문맥상 여기서는 시인이 기쁨으로 충만했던 사실에 대한 암시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동방에서 축제일을 맞이하여 값비싼 양질의 기름을 서로 머리에 붓는 것은 잘 알려진 관습입니다(23:5).
*시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2) 보응하는 것을 보고 듣을 것입니다(11절)
“[11]내 원수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일어나 나를 치는 행악자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귀로 들었도다”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는 자들이 일시 동안은 이깁니다.
그러나 멀지 않은 장래에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법입니다.
(살후 1:6-10; 계11:7-13 참조).
과거에 이스라엘을 치는 원수의 행악한 행동을 본 눈으로 이제는 그들이 보응 받는 것을 보며, 또 소문을 귀로 듣는 것입니다(시54:7, 59:10, 91:13)
*시54:7 “참으로 주께서는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이 똑똑히 보게 하셨나이다”
*시59:10 “나의 하나님이 그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영접하시며
하나님이 나의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가 보게 하시리이다”
*시91: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여호와의 공의가 아주 명백하게 집행되는 것을 바라본다는 데에 그 초점이 있습니다.
3) 의인은 번성하며 성장하리로다(12절)
“[12]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악인의 일시적인 번영을 풀에 비한(7절) 시인은 여기서 의인의 항구적이며, 참 번영을 종려나무와 백향목에 비합니다.
종려나무...백향목 - 저자는 악인의 멸망과 대비를 이루는 의인의 승리를 말하기 위하여 이 두 나무의 이름을 인용하고 있는데,
“종려나무”는 곧고 높게 자라고, 오래 살며, 그 열매가 많고,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그처럼 의인(성도)도, 하나님의 은총 아래서 착한 행실이 많고 영생하고 또 영화를 얻습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그 향기를 가진것과 상록수인 것과 썩지 않음과 장대하여 양질의 목재로 유명하여 “나무의 여왕”으로 취급된 것이며, 번영을 상징합니다.
이 두 나무는 푸르름, 무성한 생산력, 다함이 없는 왕성한 힘 및 영원성 등과 같은 이미지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 모든 속성들은 성도의 성결(聖潔), 충성, 영생, 흥왕에 대한 비유입니다.
4) 성전을 중심하여 살면서 번성합니다(13절)
“[13]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의인들(신자들)이 "여호와의 집에 심겼"다 함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실을 가리키는 비유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번성'은 영원한 근거를 가진 불변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함"입니다.
5) 장수의 복과 풍족한 복을 주십니다(14절)
“[14]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이것은, 신자들이 일반 인생들과 다르게 내세의 복된 생명을 가지고 있음에 대하여 말한 것입니다.
늙어도 결실하며 - 이스라엘 백성 역시 장수하는 것과 행복하게 사는 것을 소망하였는데, 그 최고의 모범은 죽을 때 그 나이가 120세였으나 그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은 모세였습니다(신 34 : 7).
그와 유사하게 여겨진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은 다윗이었다(대상29:28).
*대상29:28 “그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으매
그의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저자는 여기서 경건한 자는 늙어서까지도
원기와 생산력이 있는 삶을 살 것을 암시하고 있는 바,
아마도 그의 마음속에는 모세와 다윗이라는 표본이 있었을 것입니다.
6) 여호와의 의로운 자의 바위되심(15절)
“[15]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여호와의 정직하심 - '정직하심'은 다른 사람을 상대함에 있어서
공평한 자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기본적인 뜻은 '평평하다', '곧다'이며 기자는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통치가 공평하고 의로울 것을 밝힘으로써 본 시편을 끝맺고 있습니다.
범죄하는 악인의 융성은 잠시뿐이나(7, 9, 11절),
-7절 “영원히 멸망하리라”
-9절 “패망하리라, 흩어지리라”
-11절 “내 원수들이 보응 받은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의인의 기쁨과 번영은 영원할 것인데,
그 까닭은 바로 하나님이 공평하고 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하나님을 흔들리지 않는 바위와 같은 존재로 삼고 그분을 신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진리를 강조하기 위하여 시인은 '하나님에게는 불의가 없다'는
부정의 부정을 사용하여 본 시편을 맺습니다. (119 : 3).
*시119:3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악인들이 일시 형통하는 때에는 얼핏 생각하면, 하나님의 판단이 바르지 않은 것 같이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 시기가 잠간 지나고 의인이 축복을 받은 그 때에는,
하나님의 통치의 공정성이 뚜렷이 나타나는 법입니다.